[광복절특집]排日사상 고취시킨 숨은 독립운동가 이원발 의사

기사입력 2016.08.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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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룡 초대 한의協 회장 부친 뜻 이어받아 일제잔재와 싸우는데 선봉

    [편집자주]15일 일제로 부터 대한민국이 광복한지 71주년을 맞았다. 애국지사인 도산 안창호 선생,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돼 총살당한 윤봉길 의사 등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은 많지만 애국지사 김덕기, 이동녕, 이회영, 안창호 등과 활동한 이원발(字:士進. 號:문제공) 선생의 이름을 들어본 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이에 한의신문에서는 이원발 선생의 생전 업적과 독립활동을 광복절을 즈음해 조명해봤다.

    이원발1

    [한의신문=김승섭·김지수기자]영남상고 설립자이자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 초대 회장을 지낸 이우룡 선생은 우길용, 윤무상, 권의수, 정원희 선생 등과 뜻을 모아 한국의약회를 발족, 5인동지회를 결성하고 한의사제도의 기틀 마련에 헌신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가 끝난 뒤 1950년 즈음 당시 양의사 단독법으로 추진되고 있는 ‘국민의료법’은 한의사제도를 없애거나 한의사 자격을 의사와 동등하지 않게 격하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를 막아선 것이 5인 동지회였고, 지금의 2만여 한의사들이 환자들을 상대로 양의사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인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이들의 공로라 하겠다.

    5인동지회 규합에 나선 이우룡 선생. 이 선생을 길러낸 이가 바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부친 이원발 의사(義士)다.

    이 의사는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활동하며 만주 정의부 부흥학교 교장으로 항일 사상을 고취하다 잡혀 4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옥고를 치르다 옥사했다.

    한의신문은 이 의사의 생전 독립운동 활동사항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928년 10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신의주발(發)로 실린 기사를 찾아 살펴봤다.

    당시 ‘朝鮮ㅇㅇ忠想宣傳(조선ㅇㅇ충상선전), 復興校長送局(부흥교장송국), 한방날에군중모아선전, 復興校長送局(부흥교장송국) 奉天(봉천)에서 逮捕押送(체포압송)’이란 제하의 기사를 살펴보면 ‘경북 영양군 석보면 신평동 출생으로 일찍이 북만주로 건너가 현재 봉천성 해룡현 하수도자 부흥학교 교장으로 있는 이원발과 경북 안동군 동후면 라수동 출생으로 현재 동교(同校) 교사로 있는 김일우 두 사람은 수일 전 애봉현 본령사 관경찰서원에게 체포돼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된 이래 취조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두 사람은 신의주검사국(신의주지청)으로 넘어갔는데 사건 내용을 살펴보면 이원발은 부흥학교가 정의부의 귀관학교(교관·무관)인 줄 알면서도 교장직으로 있으면서 한일합병일을 기념일로 해 우리 국민들에게 배일(排日) 사상을 고취해 선동한 혐의를 받았다.

    함께 붙잡힌 김일우는 정의부의 편집원으로서 배일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일조했다. 당시 이원발 의사가 신의주지청으로 징역을 선고받으며 받은 죄목은 ‘치안유지법위반’이었고 판결일은 1928년 11월 9일 이었다.

    초대 이우룡 한의협 회장 역시 부친의 이 같은 뜻을 이어받아 영남상업학교(현 부산 정보고)를 설립하고 한의사를 폄하시키려던 일제잔재와 싸우는데 선봉장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의부(正義府)란 지난 1924년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을 위해 만주에서 조직된 단체를 말하며 이 의사는 이 정부의의 부흥학교 교장으로 일반인을 상대로 일제만행을 폭로하고 배일사상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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