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월급 털어 한의사 보러 오던 환자…내 꿈은 침대 위 환자와 교감하는 것

기사입력 2017.09.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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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의 제 149차 미얀마 한의약해외의료봉사에 다녀온 장정현 한의사의 봉사 수기를 싣는다.



    의료봉사를 지원하기 전, 나는 한의사로서는 다소 따분한 삶을 살고 있었다. 뭔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의료인으로서 가장 벅찼던 순간을 떠올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 때 의료봉사를 갔던 경험이었다. 묵은 기억 속에서 콤스타라는 게 있었다는 걸 끄집어냈다. 그렇게 나는 미얀마 봉사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아침이 밝았고, 우리가 3일간 의료활동을 펼치게 될 양곤 전통의학병원에 도착했다. 건물은 낡았지만, 쾌적하고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 단원의 복창 아래 잠깐의 선서시간을 가진 후, 오전 진료가 개시됐다. 내 담당 통역사 분의 한국어는 아주 훌륭해서 환자와의 소통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오전에는 마치 리허설을 하는 느낌으로 모두들 진료 시스템에 차차 적응해가고 있었다. 어느덧 환자 차트도 빼곡히 쌓여갔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환자들이 잦아들 무렵, 한 소녀가 찾아왔다. 한쪽 안검이 완전히 내려 앉았는데,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 처치를 바라는 건 아니고 그냥 원장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시력에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외과적 성형술을 추천해줬으나, 그 소녀가 앞으로 어떤 수술도 하지 못할 것임을 나도 알고 소녀도 알았다.

    그렇지만 그 소녀는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자랑할 것이다. 어떤 환자는 한 달 월급을 몽땅 털어 이 곳까지 달려왔으나 고열로 인해 입구에서 거절당했다. 저마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지 알기에, 그만 마음이 저려왔다. 내가 이름도 기억 못하는 어떤 환자에게는 평생의 순간이요,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알기에 침 한군데 한군데 허투루 놓을 수 없었다.
    통역이 좀 고생을 했지만, 최대한 자세히 물어보고 확인하려 했다. 에어컨도 없는 찜통 날씨에 두꺼운 가운을 입고 있으려니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지만 차라리 그것은 열매 같았다.

    사실 긍휼지심이라든지, 봉사라든지, 의술을 ‘베푼다’든지 하는 표현은 지극히 일방향적인 느낌이다. 새벽 3시부터 기다려 준 환자들을 생각하면 감히 그런 표현을 쓸 수 없다. 되려 기다리다 병이 날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으니까. 마침내 따뜻한 손으로 환자의 차가운 살을 감싸고 자침을 할 때에, 내 위에서 폭죽같은 것이 터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꿈은 그 잘난 대학도 아닌, 빳빳한 의사면허증도 아닌, 바로 당장 이 침대 위 이 순간이라는 것을.

    정리= 민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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