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광복 71주년 대한민국 지켜낸 또 한명의 한의사, 공적 빛나

기사입력 2016.08.1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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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섭

    [한의신문=김승섭기자]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왈우(曰遇) 강우규 선생은 이미 한의계는 물론,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익히 알려진 인사다.

    강 선생은 1959년 평남 덕천에서 태어나 1920년 순국하기 까지 약 60평생을 살면서 함경남도 홍원에서 한약방을 열고 한의사로서 어려운 환자들을 치료하며 평생을 보냈고, 약방경영을 통해 모은 재산을 교육·계몽운동에 썼다.

    순국하기 1년 전인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 신흥동에서 독립선포식을 거행했으며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영국제 폭탄을 가지고 귀국해 그해 서울에 잠입, 9월 2일 남대문역에서 조선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齊藤實]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암살에 실패하고 붙잡혀 다음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국가는 그를 기려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광복 71주년인 올해는 한의계에서 조차 잘 알려지지 않는 또 한명의 한의사이자 교육자가 독립운동을 한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뜻 깊은 해이다.

    바로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 초대 회장을 지낸 이우룡 선생의 부친인 이원발 의사(義士)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는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생전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문제공(號) 이원발 선생에서 건국훈장 가운데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과 더불어 명예의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날 인천광역시 주관으로 남동구 '인천종합예술회관'에서 열린 수여식에는 이 선생의 손자인 이병성 선생이 대리 수여했다.

    그는 생전 한의사로서 어려운 환자들에게 약방문을 처방해주다가 만주 정의부(正義府)에서 활동하며 부흥학교 교장직을 맡아 배일사상(排日思想)을 고취하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 옥중에서 순국했다.

    부흥학교는 당시 귀관(교관·무관)학교로 군인을 양성하던 곳이었고 왈우 선생과 마찬가지로 이 선생 또한 약방경영을 통해 모은 재산으로 부흥학교를 설립, 교장직을 맡아 일반인을 상대로 배일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열중했다.

    한의계가 광복 71주년을 맞아 그를 주목해야할 이유는 이 선생이 단순히 한의사이자 교육자로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선생은 아들 5명을 두었는데 그 차남인 이우룡 선생이 한의협 초대회장을 지냈고, 3남인 이용익 선생도 한의사로서 인천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다.

    4남인 용주 선생은 서울에서, 막내인 창호 선생은 부산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는 등 모두 4명의 아들을 한의사로 길러냈고, 3남인 용익 선생의 아들 종훈씨는 현재 미국 LA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는 등 3대가 한의계 발전을 위해 애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선생이 일반인들을 상대로 고취시킨 배일사상은 그대로 아들은 이우룡 선생에게로 이어져 일제시대가 끝난 뒤 1950년 즈음 당시 양의사 단독법으로 추진되고 있던 '국민의료법'을 저지해내는 공로로 이어졌다.

    이우룡 선생은 우길용, 윤무상, 권의수, 정원희 선생 등과 뜻을 모아 한국의약회를 발족, 5인동지회를 결성하고 한의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그들의 공적비는 현재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한의협 회관 건물 앞에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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