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이전 한의학 속의 해부학(Ⅲ) - 臟腑圖를 중심으로

기사입력 2015.06.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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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학의 외과 치료 역사 속에서 인체 구조에 대한 해부 지식 바탕으로 인체 내부의 병변을 제거하거나 손상된 부위를 접합하기 위한 수술 요법 시행

    시술 후 절개 부위를 봉합하고 고약 등 약물 요법을 병행, 관리하였던 기록들이 남아 있고, 외부로 손상 부위가 드러난 것을 치료하였던 것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한 외과 치료가 시행돼

    무제

    인체 구조에 대한 해부지식이 구체적으로 응용된 분야로서 外科와 法醫學을 들 수 있는데, 질병 치료와 관련해서는 한의학의 외과 치료 시행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外科理例 에서 癰, 疽, 瘡瘍 등이 모두 외부에 나타나기 때문에 外科라고 부른다고 외과를 정의하였는데 여기서 外라는 것은 내부의 五臟六腑와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고대부터 사용되었던 砭石이 바로 이러한 외과 치료와 관련되어 있어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馬王堆帛書 에서도 牡痔를 결찰한 후 칼로 절제하는 방법과, 痔核을 제거하기 위하여 개의 방광을 항문에 삽입한 후 공기를 불어넣어 痔瘻가 밀려나오면 칼로 절제하는 방법 등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외과 처치 중에서 현대의 수술과 유사하게 흉부나 복부를 절개하여 병변 부위를 절제하거나 장기를 접합하였던 기록들이 의서와 일반 문헌 속에 기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列子 를 살펴보면 扁鵲이 心性을 바꿀 목적으로 두 사람에게 독주를 마시게 하여 마취시키고 흉부를 열어 심장을 꺼내 바꾸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 수술을 통하여 장기를 절제하는 개념이 당시에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史記扁鵲倉公列傳 에서도 五臟의 수혈 위치에 따라 피부를 가르고 살을 연 뒤 막힌 맥을 통하게 하고 끊어진 힘줄을 이으며 골수, 뇌, 고황, 격막 등을 바로하고 腸胃와 五臟을 깨끗이 씻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화타가 麻沸散을 사용하여 마취하여 개복술을 시행한 기록이 많이 전해지는데, 後漢書列傳 을 보면 술에 麻沸散을 타서 복용하게 하여 마취한 후 감각이 없어지면 배와 등을 갈라 적취를 제거하고, 다시 봉합한 후에는 神膏를 붙여서 4-5일이 지나면 수술 부위가 아물고 한 달이 지나면 평상으로 회복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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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諸病源候論 에서는 金瘡으로 인하여 腸이 끊어진 경우 이를 신속히 연결하여 바늘과 실로 봉합하여 잇고, 닭의 피를 그 경계 부분에 발라서 기가 새나오지 못하게 한 후 안으로 밀어 넣는 방법이 나온다. 이는 절단된 腸을 수술을 통하여 접합하는 방법으로서 7세기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러한 기술이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복강 내 지방조직이 밖으로 나온 것을 병변 부위의 혈관을 결찰하고 괴사시켜 잘라낸 기록도 있다. 또한 일반적인 金瘡에서 몸통, 팔꿈치와 손목, 무릎, 허벅지 혹은 과(踝) 부위의 모든 관절이 절단된 것을 다시 이어붙일 수 있으며 이때에 부서진 뼈를 먼저 제거하고 봉합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이처럼 수술과 봉합 기술은 매우 보편적이었는데, 전통적으로 절개 부위를 봉합할 때에는 桑白皮를 실처럼 만들어 사용하였다. 舊唐書安金藏傳 을 보면 桑白皮線으로 봉합하고 고약을 붙이는 기록이 나온다. 구체적인 봉합 방법은 諸病源候論 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각각 종횡으로 봉합하되 닭의 혀 모양으로 간격을 두고 각도를 유지하여 횡으로 서로 마주보지 않게 한다. 또한 음양의 순서로서 상하 역순과 완급에 따라 서로 바라보게 봉합하는데, 양은 음에 붙고 음은 양에 붙어서 마치 현대의학의 八字봉합법과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방법으로 봉합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경우, 봉합 부위에 膿이 생기거나 營衛가 통하지 않아 癰이 될 수도 있다고 그 부작용의 예후를 설명하고 있다. 봉합술과 관련하여 晉書魏詠之傳 에서는 魏詠之라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구순구개열인 兎缺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손 부위를 절개하여 다시 붙인 후 백일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죽만 먹어서 낫게 하였다는 의미 있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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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사고로 인하여 외상이 매우 많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처치법도 함께 발달되었는데, 예를 들어 資治通鑑 을 보면 화살이 얼굴의 뺨에 박힌 경우, 뼈를 뚫고서 그 사이에 쐐기(楔)를 놓아 1촌 정도의 틈을 만든 후 화살촉을 제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밖에 부인과에서 이상 출산 시 태아 신체부위와 産道와의 위치관계에 따라 산파가 시행하였던 여러 가지 手技法들과, 출산 시 子宮이 탈출된 證을 다스리기 위한 시행된 여러 가지 外治法들이 婦人大全良方 에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과 치료 관련하여 삼국시대의 百濟新集方 에서 肺癰을 치료한 처방이 현재 일본의 醫心方 속에 남아있으며, 고려시대에는 劉涓子鬼遺方 과 瘡疽論 등이 呪禁式의 과거시험 과목으로 채택되어 당시 治腫의학에 대한 수요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외과의 분과를 鍼灸醫, 瘰癧醫, 治腫醫 등으로 정하여 전문성을 더욱 높였으며 鄕藥集成方 과 醫方類聚 에서도 외과질환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任彦國과 제자들이 저술한 治腫秘方 과 治腫指南 이 대표적인 외과 서적인데, 심장이 흉추 5추와 6추의 안쪽에 매여 있으며 피부로부터 겨우 1촌 떨어져있다고 하여 그 해부학적 위치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心과 肺, 腸 등에 생긴 毒氣와 癰을 제거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또한 鍼으로 종기를 절개하고 혈맥을 묶어 종기가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게 하며 군살과 碎骨을 제거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숙종 때에는 白光玹이 腫鍼, 曲鍼, 三稜鍼, 散鍼 등을 사용하여 정밀하게 癰腫 등의 외과질환을 치료하였던 기록이 남아있으며, 그밖에 李宜春의 瘍醫微 , 姜彛五의 若山好古(腫方)撮要 , 저자 미상의 三十六腫圖錄 등의 서적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이 한의학의 외과 치료 역사 속에서 인체 구조에 대한 해부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인체 내부의 병변을 제거하거나 손상된 부위를 접합하기 위한 수술 요법을 시행하였으며 시술 후 절개 부위를 봉합하고 고약 등 약물 요법을 병행하여 관리하였던 기록들이 남아 있다. 또한 외부로 손상 부위가 드러난 것을 치료하였던 것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한 외과 치료가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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