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들을 도와주려 하니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

기사입력 2011.02.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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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지 연 제인한방병원 한방소아과장


    지난 설 연휴에 필리핀 나보타스시 해외의료봉사에 다녀왔다. 이번 의료봉사는 ‘한국여의료인회’에서 처음으로 주최하는 것으로 대한여한의사회, 한국여자의사회, 대한여자치과의사회, 전국여성치과기공사회가 함께하는 의미있는 해외의료봉사여서 해외의료봉사에 관심이 있는 한의사로서 또한 여한의사회 임원으로서 류은경 회장님과 소경순·정연희 부회장님과 함께 다녀왔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참 차를 타고 가다 어느 골목 입구에 도착을 했는데 골목이 좁아서 차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으니 다들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차에서 내려보니 아주 좁은 골목은 아니었는데 차가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듯 해보였다. 골목길을 걸어가는 것이야 어렵지 않은 일인데, 이 골목은 바닥이 오수(汚水) 천지여서 바지를 걷어 올리고 조심조심 걸어야 하니 걷는 게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이 골목은 판잣집의 입구이자 마당인 듯 아이들은 삐걱거리는 판자골목 사이를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판잣집 문에 걸터앉아 몸의 반은 집에, 다른 반은 골목에 내놓은 채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모습을 나타내자 판자촌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정말 많은 호기심을 보였는데, 우리가 지나갈 수 있는 가운데를 남겨두고 골목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우리의 몸과 손을 만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처음에 약간 당황했지만 바로 적응을 해서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한 아이는 아예 내 허리춤에 매달려서 떨어지지를 않아서 좁은 골목에서 아이들과 인사하랴 허리춤에 붙은 아이와 함께 걸어가랴 정말 정신이 없었다. 드디어 의료봉사를 하게 될 해상판자촌의 ‘바다 위의 교회’에 도착했다. 이곳은 한국의 박선호 선교사님께서 운영하시는 곳으로 다른 판잣집들처럼 바다 위에 세운 판자 교회인데, 이곳에서 10여년 전부터 이곳의 생활 개선과 복지를 위해 힘쓰고 계신다고 했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아이들이 한국말을 곧잘 하는 편이었다. 골목을 지나오는 동안 아이들이 “안녕”,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정말 의아했었는데 오랜 시간 신경을 쓰고 보살피신 결과라 생각하니 이제는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곳 사람들은 워낙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서 검사나 응급치료가 필요한 양방진료가 먼저 시작되어서 봉사 첫날 오전에는 그렇게 환자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에 환자가 몰리면서 덩달아 우리쪽에도 환자들이 밀리게 되었는데, 장소도 좁고 말도 안 통해서 이래저래 정신없이 진료가 진행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의료혜택을 거의 받은 적이 없는 편이라 한방 치료에 대해서는 아예 들어보지도 못한 분들이 많아서 뾰족한 침을 보기만 해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로 서툰 영어로 얘기를 한 후 침 치료를 해드리는데 효과 또한 좋아서 치료 후에 더 만족하고 가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는 끼니도 잘 해결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비타민, 사탕은 물론 팝콘기계까지 가지고 갔는데, 단연 인기 최고는 팝콘이었다. 팝콘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했던 차에 밖으로 나가봤더니 의료봉사하는 곳 입구에서 팝콘기계로 직접 팝콘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는데 그 줄이 어찌나 긴지 끝이 안 보일 정도였다. 온 동네에 퍼진 고소한 팝콘 냄새에 나도 살짝 군침이 돌 정도이니 아이들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껏 기대한 채 팝콘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순진하고 예쁘던지, 나도 모르게 바로 카메라에 담아버렸다.

    둘째와 셋째 날은 나보타스시청 마당에 천막을 치고 의료봉사를 했다. 진료를 하기 전에는 판자촌 진료가 더 힘들 것 같았는데 실상은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도로가에 위치한 시청 마당에 천막으로만 가리고 진료를 하려니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으로 너무나 시끄러웠고, 먼지와 공해가 너무 심해서 목이 칼칼할 정도였다. 무더운 날씨에 천막 안은 찌는 듯 덥고 답답했다. 더구나 환자는 밀리고 장소도 좁아서 침 치료를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다가 환자들이 침 치료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는 궁리 끝에 ‘한방파스요법’을 시작했다. 아픈 부위에 침 대신 파스를 붙여주자 아프지도 않고 시원한지 환자들이 너무 좋아하였고, 이제는 환자들이 먼저 손짓으로 저거해 달라고 할 정도였다.



    오후에는 소아과 환자들이 많았다. 전공이 한방소아과인지라 아이들만 보면 신이 나서 열심히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감기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감기증상도 심하지 않았다. 엄마들은 아이가 누런 콧물이나 초록색 콧물이 나오고 기침이 심하다고 했는데 엄마의 말과는 달리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면서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엄마들의 생각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아파도 의료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사정이라 미리 감기약을 처방받아 놓고 증상이 있을 때 먹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허약하고 영양결핍인 아이들의 상태를 고려해서 몸을 보강할 수 있는 약을 더 많이 가지고 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감기약을 더 많이 가져올 걸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바쁘고 치열하게 진료를 마치고 나면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저녁 먹을 기운조차 없이 숙소로 돌아가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이것이 바로 봉사하는 마음인가보다.

    정신없이 3일간의 의료봉사가 지나갔다. 꾸준히 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하나같이 봉사를 통해서 당신들이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얘기하셨던 의미를 이번 봉사를 하면서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하니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어 이번 의료봉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번 의료봉사에는 정말 감사할 분들이 많은데, 의료봉사를 계획하고 참가하신 분들 뿐만 아니라 필리핀 현지교민과 유학생들, 필리핀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성심껏 도와주셔서 정말 수월하게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수업까지 휴강하시고 오셔서 옆에서 손발을 잘 맞춰주셨던 이정미 선생님, 유창한 영어와 빛나는 센스로 우리를 완벽하게 도와주었던 김승경·송민희 학생, 필리핀어를 영어로 통역해주느라 고생했던 요야이·지를 비롯한 많은 필리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나를 친구라 불러주며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도와주었던 필리핀 친구 메스트로는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의료봉사후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해상 판자촌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깊고 맑은 눈빛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되어 내 일상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 세상에 건강하게 태어나 한의학을 공부하여 침 하나만 가지고도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으니 나는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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