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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의료 붕괴’, 예산 구조부터 바꾼다…재정 개편 입법 추진[한의신문] 지방 의료 붕괴가 ‘지역 소멸’의 방아쇠로 작동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농어촌 의료 인프라를 국가 책임 아래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이 본격화됐다. 보건소 신·증축 예산조차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는 현행 재정 구조를 손질해 농어촌 주민의 건강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개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농어촌회계법 개정안’과 ‘지방분권균형발전법 개정안’을 29일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보건소 등 농어촌 보건기관의 시설 개선과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한 예산 지원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추진 중인 농어촌 의료서비스 개선사업은 도시와 농촌 간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보건소 등 공공 보건기관의 시설·장비를 확충하는 국가 핵심 사업이다. 하지만 최근 집행 실적을 보면 시설개선사업은 40.6%, 신·증축 사업은 34.3%에 그치는 등 집행률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배경으로는 관련 예산이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내 ‘지역자율계정’으로 한정돼 있어 지자체의 포괄 예산 구조 속에서 우선순위에 밀려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 이개호 의원은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가장 치명적인 원인 중 하나가 의료 공백”이라며 “보건소 신축 예산조차 제때 집행되지 못하는 현행 예산 구조로는 농어촌 주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 의원은 ‘농어촌회계법 개정안’을 통해 지역자율계정에 국한됐던 전출금 범위를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전체로 확대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재원이 지역자율계정과 지역지원계정에 고르게 배분, 농어촌 의료여건 개선사업의 안정적 추진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지방분권균형발전법 개정안’에는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직접 지원하는 ‘지역지원계정’의 세출 항목으로 △의료 취약지역 응급의료체계 구축 △지역 의료인력 및 의료기관 육성·확충 사업을 명시했다. 법적 근거 부족으로 소외돼 왔던 필수 의료 인프라 사업을 지역지원계정의 핵심 사업으로 규정, 붕괴 위기에 놓인 지방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도록 했다. 이 의원은 “이번 패키지 법안이 통과되면 농어촌 보건소의 현대화는 물론 응급의료체계와 의료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 지원이 한층 촘촘해질 것”이라며 “어디에 살든 차별 없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균형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이 의원을 비롯해 김정호·문금주·민형배·박수현·소병훈·어기구·위성곤·임오경·이강일·전진숙·조계원·채현일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최혁진 의원(무소속)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
건보공단, 4대 사회보험료 고액·상습체납자 인적사항 공개[한의신문]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정기석·이하 건보공단)은 4대 사회보험료 고액·상습체납자 1만3449명(건강보험 1만444명, 국민연금 2424명, 고용·산재보험 581명)의 인적사항을 건보공단 누리집(www.nhis.or.kr)을 통해 30일 공개했다. 인적사항 공개대상은 ’24년 12월31일 기준, 납부기한 1년 경과한 건강보험료 1000만원 이상, 연금보험료 2000만원 이상, 고용·산재보험료 5000만원 이상 체납자다. 공개항목은 체납자의 성명, 상호(법인인 경우 명칭과 대표자 성명), 나이, 업종‧직종, 주소, 체납액의 종류·금액 등이며, 올해부터는 공개효과를 높이기 위해 건보공단 누리집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자관보(www.gwanbo.go.kr)에도 인적사항을 동시에 공개한다. 고액·상습체납자 인적사항 공개는 체납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자진납부를 유도해 보험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다. 건보공단은 지난 3월31일 제1차 보험료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 공개 예정자 2만9660명을 선정해 6개월 이상 소명기간을 부여하고 해당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보험료 납부를 독려했으며, 18일 제2차 보험료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공개 예정자 중 보험료를 납부했거나 사망·수급자, 소득·재산이 없는 자 등을 제외하고 공개 대상자를 확정했다. 올해 4대 사회보험 고액·상습체납자 인적사항 공개자 수는 1만3449명으로, ’24년(1만3688명) 대비 약 1.7% 감소했다. 공개자의 체납액은 3641억원으로 ’24년(5639억원)과 비교해 약 35.4% 감소했는데, 이는 ’24년에 고용·산재보험 공개 기준 강화로 인해 고액 체납자가 일시적으로 대거 공개된 이후 ’25년 인적사항 공개 대상인 신규 체납자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인적사항이 공개된 체납자 중 체납액을 납부해 공개 기준금액 미만으로 떨어진 경우 공개자 명단에서 즉시 삭제하는 등 공개자 명단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면서 “인적사항이 이미 공개된 체납자와 향후 신규로 공개 예정인 체납자에게 인적사항 공개에 대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안내하여 체납보험료의 자진납부를 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건강보험 과오납 환급권 소멸시효 3→5년으로 연장 추진[한의신문] 건강보험 과오납 환급권 등 국민의 건강보험 관련 권리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입법이 추진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건강보험 과오납 환급권 등 건강보험 관련 권리의 소멸시효를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보험료·연체금·가산금 또는 본인일부부담금을 과오납부한 경우 해당 금액을 환급받을 권리와 보험급여 및 보험급여 비용을 받을 권리에 대해 소멸시효를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소득자료 연동 방식으로 운영되는 특성상 권리 관계의 확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 조세불복 절차나 행정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정당한 환급권 행사가 제한되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반면 ‘국세기본법’은 국세 환급금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국민연금법’ 역시 과오납금 및 연금급여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두고 있다. 서영석 의원은 “동일하게 국민에게 금전적 부담을 지우는 준조세 성격의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만 소멸시효를 3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제도 간 형평성과 정합성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 의원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과오납부한 금액을 환급받을 권리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 △보험급여 비용을 받을 권리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연장, 보험료 납부 가입자와 보험급여를 실시한 요양기관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도록 했다. 이번 개정안을 살펴보면 제91조(시효)에 제2항을 신설해 △보험료·연체금·가산금으로 과오납부한 금액을 환급받을 권리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 △보험급여 비용을 받을 권리 △과다 납부된 본인일부부담금을 돌려받을 권리 등에 대해 5년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소멸시효가 완성되도록 명시했다. 서 의원은 “이미 국세와 국민연금에 적용되고 있는 기준에 맞춰 건강보험 제도의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 개선”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건강보험 전반의 권리 보호 체계가 정비돼 국민 모두가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서 의원을 비롯해 강준현·김주영·김태년·남인순·박지원·소병훈·윤준병·이해식·진성준·한정애·허종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
의왕시, 한의약 육성 조례 시행…초고령·저출생 대응 보건의료체계 재정립[한의신문] 최근 경기도 내에서 한의약 관련 조례 제정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의왕시도 초고령·저출생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고자 한의약을 지역 보건의료 해법이자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제도화했다. 국가 시책과 지역 특성을 반영해 시민건강 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꾀하는 ‘의왕시 한의약 육성을 위한 조례’가 24일 시행되면서 한의약 기반의 지역 맞춤형 공공보건 전략이 본격화됐다. 이에 앞서 박혜숙 의원(국민의힘)이 지난달 12일 대표발의한 이번 조례는 이달 2일 조례등심사특별위원회에 이어 5일 열린 제316회 제2차 본회의에서 최종 가결됐다. 박 의원은 “‘한의약육성법’에 따라 국가 정책 기조와 의왕시의 여건을 반영한 한의약 육성 체계를 구축해 시민건강을 증진하고, 지역경제 발전을 견인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조례에 따르면 제3조(시장의 책무)에서 시장은 한의약의 육성·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국가 시책과 시 특성을 고려한 한의약기술 진흥 시책을 수립·추진하도록 책임을 명확히 했다. 이어 제4조(한의약 육성 지역계획의 수립·시행 등)에서는 △한의약 육성·발전의 기본 목표와 방향 △한의약 연구 기반 조성 지원 △한의진료·한약을 활용한 건강증진 및 치료사업 △한의약기술 진흥 △정보화·과학화 촉진 △한의약 정보 제공 및 홍보 등 지역계획을 체계적으로 시행하도록 규정했다. 또 제5조(지역계획 수립의 협조)를 통해 시장은 계획 수립·시행 과정에서 관계 기관과 단체에 자료 제공 등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고, 제6조(한의약 건강증진 및 치료사업의 추진 등)에서는 학계·연구기관·민간단체와의 협력체계 구축 근거를 마련했다. 아울러 제7조(사무위탁)를 통해 관련 사업을 지역 한의사회 등 한의약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시는 한의약 육성과 관련한 정책·사업 정보를 시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적극 홍보할 수 있도록 해 시민 체감도를 높일 계획이다. 박 의원은 “이번 조례 제정을 계기로 지역 특성에 맞는 한의약 육성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시민건강 증진과 함께 지역 보건의료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
㈜한퓨어, 제2회 한의사와 함께하는 뉴질랜드 녹용 산업 시찰[한의신문] 뉴질랜드 사슴협회(이하 DINZ·Deer Industry New Zealand)의 초청으로, 지난해 1차 녹용산업 시찰에 이어, 보다 심도 있는 교류를 위해 ㈜한퓨어가 주관한 제2회 뉴질랜드 녹용 산업 시찰이 지난 11월 21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됐다. 시찰단은 ㈜한퓨어 정충묵 대표와 무궁화한의원 김다은 원장, 경희늘푸른한의원 주찬호 원장으로 구성됐으며, 뉴질랜드의 사슴 농장과 녹용의 주요 연구·생산 시설을 방문했다. 이번 2기 시찰단에서는 실제 임상에서 녹용을 사용하는 한의사의 시각이 충분히 반영된 밀도 높은 교류가 이뤄졌다. 현지에서는 DINZ 관계자와 연구진, 농장주들이 직접 동행하며 뉴질랜드 녹용 산업의 전반을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한의학에서 녹용은 으뜸가는 약재 중 하나다. 그만큼 환자들의 기대치가 높으며, 안전성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하다. 이에 시찰단은 임상에서 사용되는 녹용이 어떤 환경과 기준 아래 생산·관리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녹용 생산지인 뉴질랜드를 찾았다. 이번 시찰은 사슴 사육, 절각, 선별, 연구로 이어지는 전 과정의 실제 운영 체계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던 중요한 자리였다. 표준화된 품질 관리: PGG Wrightson grading centre 첫 일정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녹용 선별시설 중 하나인 PGG Wrightson 방문이었다. 시찰단은 먼저 녹용 총괄 책임자인 토니 코크렌(Tony Cochrane)으로부터 안전 규정과 선별 작업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작업소 내부로 들어갔다. 농장에서 절각된 녹용은 수의사가 할당한 VelTrak 전자 추적 태그가 즉시 부착되며, 냉동 상태로 작업소에 배송된다. 입고 단계에서는 이 VelTrak 태그를 다시 스캔하여 개체 정보와 이력을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는데, 이러한 추적 시스템은 농장에서부터 최종 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역추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선별실에 도착한 녹용은 성상, 무게, 길이, 둘레, 단면 구조 등을 기준으로 SAT·SA·A·B 등급으로 분류되고, 이후 영하 20℃의 냉동실에 보관된다. 등급 결과는 다시 농가에 통보되어 생산자의 품질 관리와 사육 전략에도 반영된다. 시찰단은 현장에서 다양한 등급의 녹용을 직접 들어보고 무게와 성상 차이를 비교해 보며, 분류 기준과 관리 체계에 대한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녹용 선별 과정이 단순 외형 평가가 아니라 기준화된 데이터에 기반한 철저한 품질 관리 시스템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 직원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총괄 책임자인 토니 역시 실제로 녹용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작업자 대부분이 20년 가까이 녹용 산업에 종사해 온 베테랑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장기간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엄격한 기준에 따라 수많은 녹용 중 최상품만을 골라내고 있었으며, 한국으로 수출되는 의약품용 녹용은 이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에 한정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대형 냉동창고에서 등급별 녹용을 직접 비교해 보니, 뉴질랜드가 오랫동안 고수해 온 ‘표준화된 품질 기준’과 ‘추적 가능한 관리 체계’가 녹용 산업의 신뢰도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동물 복지 중심의 생산 현장: Whyte Farm 애쉬버턴 지역 최대 규모의 사슴 농장 Whyte Farm에서는 사육 환경과 절각 시설을 중심으로 운영 실태를 살펴봤다. 이 농장은 가족 경영으로 약 5000마리의 녹용 생산용 사슴을 사육하고 있으며, 뉴질랜드 녹용 산업 1세대에 속하는 도널드 화이트(Donald Whyte) 씨가 오랜 기간 일군 농장이며 아들 글렌 화이트(Glen Whyte) 씨와 딸 안젤라 화이트(Angela Whyte) 씨로 대를 잇고 있다. 이 농장은 암수와 연령, 상태에 따라 세밀하게 패덕(paddock, 가축을 방목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구획해 놓은 울타리 안의 초지(草地) 구역)이 구획되어 있었으며, 임신한 암사슴들의 경우 은신처가 충분히 있는 넓은 방목지로 배정되었다. 사슴의 영양 공급과 보조제 투여에 대한 질문에는 “순수 grass feeding으로 운영한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절각 대기 및 절각 시설은 사슴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부드러운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 있어 발자국 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었고, 사슴을 이동·고정하는 장치는 몸이 닿는 모든 부분에 쿠션이 덧대어져 조용하고 부드럽게 작동했다. 절각은 과학적으로 연구된 방식으로 마취해 고통 없이 진행되며, 반드시 수의사 또는 면허 소지자만이 절각이 가능하다. 이러한 설비를 통해 사슴이 다치지 않으면서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절각이 이뤄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동물복지를 중심 가치로 두는 뉴질랜드의 사슴 산업 운영 철학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귀에 부착된 태그를 스캔하여 개체 이력을 확인한 뒤, 절각이 끝난 녹용에는 곧바로 VelTrak 추적 태그를 부착하고 즉시 냉동창고로 옮긴다. 이처럼 절각 직후부터 녹용의 위생과 이력 관리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절각 시설과 냉동 보관실이 물리적으로도 가까이 위치해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빠르게 냉동 상태로 전환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정밀한 분석과 데이터 기반의 과학 기술: BSI 연구소 이번 시찰의 핵심 일정 중 하나는 링컨대학교 내 BSI(구 AgResearch) 연구소에서 진행된 학술 교류였다. 스티븐 하인즈(Stephen Haines) 박사는 화학 및 합성 유기 화학을 전공한 녹용 연구의 권위자로, 1985년부터 지금까지 녹용의 성분과 작용 기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다. 하인즈 박사는 녹용의 생리활성 기전에 대해 “핵심은 단백질이 분해되며 생성되는 펩타이드”라고 설명했다. 녹용에는 콜라겐과 헤모글로빈 등에서 유래한 다양한 펩타이드가 풍부하게 존재하며, 이들이 면역 조절, 상처 회복, 항염, 신경 보호 등 여러 기능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한국 환자들이 특히 궁금해하는 임상 질문들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녹용 복용이 비만을 유발하는지, 소아에서 성호르몬 교란이나 성조숙증을 유발하지는 않는지, 기존 종양을 자라게 하지는 않는지 등에 대해 하인즈 박사는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직접적인 성호르몬 증가나 종양 성장 촉진 작용은 확인된 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전립선암·유방암·골암 등 다양한 종양 모델에서 종양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와 항암제 투여 시 피로·체중 감소를 줄이고 회복력을 높이는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는 한의 임상에서 체력 저하, 만성 피로, 항암 후 회복 관리에 녹용이 활용되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로 볼 수 있다. 학술 교류 후에는 최신 설비를 갖춘 연구실 견학이 이어졌다. 표지물질을 이용한 추적 실험, 펩타이드 및 단백질 분석을 위한 전자현미경 등 다양한 장비들을 직접 보면서, 녹용 연구가 단순 경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정밀한 분석과 데이터에 기반하여 축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녹용 산업의 초석: Invermay 연구소 이어서 방문한 Invermay 연구소는 뉴질랜드 사슴 연구의 발원지라 불리는 곳으로, 사슴의 품종·영양·사육 방식 등에 대한 기초 연구가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곳이었다. 한때 유해동물로 취급되던 사슴을 체계적으로 사육 가능한 가축으로 전환하고, 오늘날과 같은 녹용 산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기관이기도 하다. 이번 일정에서는 녹용 연구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두 원로 연구자, 캔 드류(Ken Drew) 박사와 지미 서티(Jimmy Suttie) 박사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두 분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로서의 태도와 열정을 잃지 않고 학술 회의에 흔쾌히 응해주었으며, 그들의 모습 자체가 뉴질랜드 녹용 연구가 걸어온 시간의 깊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특별히 시찰단을 위해 준비된 서티 박사의 ‘1970년대부터 2004년까지 인버메이에서 진행된 녹용 연구’ 브리핑은 뉴질랜드 녹용 산업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학술 교류에서는 뉴질랜드 녹용 산업이 시작된 초기 배경부터 환경에 따른 녹용의 효능 차이, 품질 향상을 위한 종자(種子) 관리의 중요성 등이 논의되었으며, 1세대 연구진이 수행했던 녹용 부위별 약성, 추출법, 효율 분석 등 기초 연구 성과들도 함께 공유됐다. 이를 통해 오늘날 뉴질랜드 녹용 품질의 철학적 기반이 특정 기술이나 단기 성과가 아니라, 오랜 연구 축적과 현장 경험 위에서 형성되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약 50년에 이르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뉴질랜드가 높은 수준의 녹용 산업으로 성장해 온 과정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원로 연구자들이 들려준 연구용 사슴 도입 초기의 시행착오와 현장 경험담은 뉴질랜드가 현재의 수준 높은 관리 시스템과 안정적인 생산 체계를 갖추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연구소에서는 절각 시기와 절각 후 처치에 따른 녹용의 성장과 효능 변화를 분석하는 실험이 현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연구소와 바로 인접한 곳에는 연구소 관할의 사슴 농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녹용이 앞서 방문했던 BSI 연구소의 연구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연구와 사육 현장이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를 직접 확인하며, 뉴질랜드 녹용 산업이 과학적 연구와 현장 실험을 토대로 발전해 온 체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녹용산업 발전을 위한 현장 교류의 장: SCNO Velvet Competition 마지막 일정은 South Canterbury–North Otago 지역에서 열린 Velvet Competition 행사였다. Velvet Competition은 뉴질랜드 농가가 참여하는 녹용 경연대회로, 명칭과 달리 경쟁 중심의 품평회에 그치지 않는다. 사육농가를 비롯해 선별사와 유통 관계자 등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 동안 생산된 녹용의 특성을 함께 살펴보고, 품질 향상과 산업 발전을 위한 정보를 교류하는 자리였다. 심사에서는 녹용의 형태, 균형, 성장 상태 등 다양한 요소가 평가되며, 우수한 평가를 받은 사슴은 이후 정자 교류를 통해 뉴질랜드 사슴 사육 기반을 개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통해 사슴의 유전 형질과 녹용 품질을 장기적으로 향상시키려는 뉴질랜드 농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에는 지역 농가를 비롯해 DINZ의 패디 보이드(Paddy Boyd) 의장과 품질관리 담당자 등이 참석했으며, 특별히 이번 시찰단을 향한 따뜻한 환대가 이어졌다. 시상자로 정충묵 대표가 함께 참여하도록 배려한 점을 통해, 한퓨어가 뉴질랜드 녹용 산업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뉴질랜드 녹용의 가치와 신뢰 이번 시찰은 사슴 사육, 절각, 선별, 연구, 그리고 산업 전반에 형성된 운영 철학과 품질 기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특히 뉴질랜드 녹용 산업이 보여준 신선도 유지 관리 시스템과 표준화된 선별 과정, 동물복지를 중시하는 사육·절각 시스템, 그리고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와 농가 간의 긴밀한 협력 구조는 뉴질랜드 녹용의 경쟁력을 소비자와 임상 현장에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느껴졌다. 앞으로도 한국과 뉴질랜드가 연구와 임상 경험을 지속적으로 교류하여, 녹용 산업이 더 건강하고 신뢰성 있게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한퓨어는 이번 시찰을 통해 얻은 녹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일반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제작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한의원에 공급되는 의약품용 녹용의 안정성과 품질 관리 수준을 보다 투명하고 신뢰성 있게 전달할 계획이다. -
불법개설 의료기관 근절에 공동 협력[한의신문]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본부장 조준희)는 27일 부산광역시한의사회(회장 송상화)·울산광역시한의사회(회장 황명수)·경상남도한의사회(회장 최중기)와 불법개설 의료기관 근절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에 따라 향후 이들 기관들은 △불법개설기관 근절 협력을 통한 국민건강권 향상과 사전예방 △사무장병원·면허대여 약국 등 불법개설기관에 대한 행정조사 공조 강화 △불법행위 예방을 위한 교육 및 홍보활동 추진 등에 적극 협력키로 했다. 조준희 본부장은 “부산·울산·경남 한의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불법개설 기관을 근절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함은 물론, 재정 누수를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부산·울산·경남 한의사회에서도 불법개설자의 불법행위 제재를 위해 건보공단과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
심평원, ‘2025 자원순환 어워즈’ 환경부 장관상 수상[한의신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강중구·이하 심평원)은 24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E-순환거버넌스가 공동으로 주최한 ‘2025 ESG 자원순환 어워즈’에서 자원순환 실천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은 심평원이 폐전기·전자제품 등 폐자원의 회수-재활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임직원 참여형 캠페인을 추진하고, 이를 생활 속 실천으로 안착시켜 자원순환 문화를 확산한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특히 심평원은 E-순환거버넌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폐전기·전자제품 약 18톤을 회수해 친환경 시설에서 재활용함으로써 52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거두었으며,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금 360만원 전액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며 환경 보호와 사회 가치 실현을 동시에 달성했다. 아울러 향후 기관에서 배출되는 폐자원(플라스틱, 우유팩 등)을 재활용해 물품을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활동과 지역사회 연계를 통한 자원순환 확산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한정 심평원 안전경영실장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ESG 경영 실천 노력을 인정받게 되어 뜻깊다”면서 “앞으로도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중심으로 한 자원순환 문화를 지속적으로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10)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경희대 蔡炳允 敎授(1936∼2016)는 한방안이비인후과를 개척한 한의학자이다. 그는 1973년 경희대에 교수로 취임한 이후로 이 분야의 권위자로서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였다. 1977년 『월간 한의약』 1,2월 합권호에는 채병윤 교수의 「眼治療의 方法的 考察」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되어 있다. 그는 이 논문의 서두 설명에 다음과 같이 전제를 깔고 있다. “眼科의 치료에 있어서는 內治와 外治의 두가지 방법이 있다. 內治란 약물요법을 말하고 外治란 침구와 수술 및 點眼의 방법을 말한다.” 이 전제에 따라 아래와 같이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로 요약한다. ① 수술요법: 氣輪, 血輪, 肉輪 등에 있는 瞖膜은 割去할 수 있으나 大眥의 紅赤한 塊肉은 割去하기가 곤란하다. 烏珠에 瞖膜이 遮蔽되어 있는 것은 鉤割할 수 있고, 外邊에 있는 赤絲肉도 가볍게 제거할 수 있다. ② 點眼療法: 눈이 갑자기 赤腫으로 氣血이 정체된 것은 한꺼번에 3〜5찰 連點하는 것이 좋으나 氣血이 虛弱한 사람은 투약하여 원인을 방어하고 약물로 세척하는 것이 좋다. 瞖膜이 있는 경우는 點眼藥과 內服藥을 겸용하나 瞖膜이 없는 것은 약물로 세척하면서 내복약을 겸한다. ③ 點眼의 약물요법: 內症만 있고 外症이 없으면 點眼할 필요가 없고 밖으로는 약간의 紅絲赤脈이 있으나 초기증에 있어서는 점안약만으로도 消散된다. 만약 內症이 형성되었고 또 外症을 드러낸다면 內外를 동시에 치료하여야 한다. ④ 鍼療法: 鍼治는 기혈의 울체된 것을 開導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침혈은 주로 迎香, 上屋, 耳際, 좌우 兩太陽穴을 사용한다. 이것이 역시 기혈의 허실과 그 병증의 완급을 관찰하여야 하고 開導한 후에는 반드시 약물로 補해서 기혈의 손상을 방지해야 한다. ⑤ 경구요법, 약물요법: 안질환이 火症이라느 관념을 떠나 어느 臟, 어느 腑, 어느 經絡의 병적 원인인가를 구명하고, 증의 虛實輕重에 따라 寒溫藥劑의 선택을 결정해야 한다. 병증이 寒涼藥劑가 필요하나 脾胃가 허약한 체질에는 투여할 수 없다. 비위가 허약하면 약물 등의 장애로 효과를 발생치 못할 뿐 아니라 血이 손상되면 원기의 좌절로 변증이 속출된다. 外障은 芩連과 知栢을 사용하되 반드시 酒製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 병증을 관찰하고 장부나 경락을 감별하고 病歷의 久近으로 한열허실을 관찰하여 투약하는 것이 좋다. 眼의 병증은 肝腎의 근본이 허약하므로 발생하나 근본이 壯實하면 表病의 발생이 희소하다. 그러나 사람의 체질은 氣血의 허약과 陽性, 陰性이 있고, 병증에는 표리허실이 있고, 男女老幼의 차이가 있고, 급성만성과 病歷의 久近이 있으며 약물에는 寒熱溫涼과 상승하강, 발산 등의 차이가 있다. ⑥ 導引法: 마음을 맑게 가지고 과도한 망상을 없애고 분노를 삼가고 성생활을 절제하며 텔레비나 영화를 적게 보아야 한다. 마음을 맑히면 火가 消息되고 寡慾하면 水가 생기고 시력을 아끼면 眼의 피로가 감소되고 눈을 감고 있으면 神膏가 滋潤해진다. 두 손바닥을 함하여 문지른 후 熱이 있을 때 兩眼을 27회 정도 마사지하거나 혹은 손으로 兩眉後面의 조금들어가는 곳을 39번 누르거나 손가락으로 兩眼下를 마사지하고 손으로 귀를 40번 잡아당기고 微熱이 나도록 마사지한다. 또 손으로 眉中上에서 髮際까지 39번 문지르고 서서히 입에 침을 여러차례 목으로 넘기면 기분이 상쾌해지며 눈이 맑아진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71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지난달에 출간된 현대의학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신간 두 권을 읽고 있었던 터라, 12월은 이 책들을 주제로 삼아도 되겠다 싶었다.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VS 의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로 제목도 미리 정해 두었다.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나온 것도 벌써 2006년의 일이다. “아이들 감기, 한방으로 다스린다”는 한의계의 포스터를 문제 삼으며 한의학 폄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책으로 저자는 소아과 의사이다. 『의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2023년)는 의대 중심의 엘리트, 면허 독점 구조가 의료를 왜곡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공정성을 해치고 있으므로 의대 특권을 해체하고 의료·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국가가 지속가능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으로 저자는 성형외과 의사이다. 의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의사 한 명의 외침은 설득력이 부족했는지 올해 대학입시에서도 최상위권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의대로 달려가고 있다. 나혼산 개그맨의 갑질 뉴스를 읽어가다가 미리 정해둔 제목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 이모, 의대 교수 맞다! 박00 재차 강조”, “주사 이모, 의사면허 없고 조리사 자격증만 있어”, “주사 이모, 의사인 줄” 등 합법과 불법의 논박을 한번에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국내 의사면허 제시였을 것이다. 그 선명하고도 깔끔한 방법이 있음에도 위와 같은 하나마나한 시부렁거림이 난무하는 이유는 주사 이모가 의사면허가 없기 때문이다. 이토록 의사면허는 대단하고 무거우며 그리고 값비싼 것이다. 면허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면 의료법 상 불법이다. 무자격자의 의학적 시술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단순 소비자는 일반적으로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무자격자인 걸 알면서 지속적으로 이용하거나 소개를 하는 행위 혹은 이익 관계라도 존재한다면 공범 가능성도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주사 이모, 부항 할매 같은 야매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주사 이모 뉴스가 봇물 터지던 날, 약간의 친분이 있는 보좌관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항 할매’라고 불리우는 조선족 한 분이 동여의도 모 오피스텔에서 오랫동안 근무(?) 중이라는…. 새벽이든 야간이든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카톡으로 예약을 시도해서 할매가 오라고 하면 땡큐고 오늘은 안 된다고 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곳. 내가 원하는 시간에 30분에서 1시간 사이 전신 불부항으로 시작하여 지압과 경락마사지의 중간 즈음에 해당하는 수기치료를 꼼꼼하게 병행함은 물론 태국 마사지에서나 가능한 아크로바틱 포지션을 취하게 한 후 급소를 딱딱 때리는 듯한 손기술이 더해지면 카이로프랙틱과 추나를 받을 때의 뼈 맞춰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는 실감 나는 경험담. 뻑적지근했던 온 몸의 근육들이 비로소 제 위치를 찾아가는 다시 태어나는 바로 그 느낌! 여의도역 금융맨들과 주말 야근이 잦은 국회 근무자들끼리 알음알음으로 찾아간다는 전설적인 부항 할매! 근무 시간 이내라면, 대기 없이 치료만 가능하다면 국회 내 의무실을 이용하겠지만 새벽이나 야간에 간절하게 치료가 받고 싶을 때 문 여는 의료기관이 없으니 이 할매만한 분이 없다는 하소연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치료비는 현금, 게다가 할매가 부르는 게 값! 그때그때 달라요! 주사 이모나 부항 할매같은 야매들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의성이다. 소비자가 치료받고 싶은 특정 시간과 장소를 최대한 맞춰주기 때문이다. 방문진료, 야간시술 그리고 차내 링거 등은 의료소비자의 시간을 아껴주는 섬세한 배려이다. 정식 의료기관을 방문할 경우 의무기록이 남고 대기실에서 일반인들과 섞여있다가 의사를 만나야 하는 번거로움은 얼굴 팔린 사람들에게는 꽤 불편한 일이다. “내가 젤 잘나가” 레벨의 유명인들도 병의원에서는 한 명의 환자일 뿐인데 기다리면 안 되고, 일반인들과 섞이면 안 되고,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선민의식은 위법성의 두려움마저 희석시켰을 것이고 야매 시술과 대리 처방의 편리함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야매든 면허 있는 의료인에게든 누릴 특혜가 거의 없는 일반인들은 오직 “과잉진료 없는 병원”, “사기 치지 않는 양심 병원”, “의료사고 없는 병원” 등을 키워드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가고자 하는 과목의 병의원을 꼼꼼하게 검색한 후 방문을 결심하고도 영수증 리뷰에 올라온 유경험자들의 간증까지 몇 개 읽고나서야 병원에 도달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한다. 과한 의전으로 최근 여론의 도마에 오르신 여권 중진 의원님 한 분의 의전 리스트에 드디어 대학병원 특혜 이용까지 보도되었다. 일반인들은 과잉의료 주의, 의원님들은 과잉의전 주의! 한두 사람의 특별한 대우를 위해서는 안 특별한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특별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위험한 과잉의료』(피터 괴체, 공존, 2023년 11월) - 제약회사에 고용된 의사들은 약에 대해 비합리적인 견해를 가져서, 더 나을 것도 없는 고가의 약을 저렴한 대체약보다 선호하고 또 약물 치료를 다른 대체 치료법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정기 건강검진은 더 많은 진단, 더 많은 투약, 더 많은 유해반응을 야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다. - 수많은 비질환(non-disease)이 있다. 제약회사들은 아픈 사람들과 아플 위험이 있는 사람들, 즉 모든 사람들에게 약을 파는 것으로는 부족해 수많은 비질환을 만들어냈다. 정신의학은 온통 비질환으로 가득하다. - 의사들은 자신의 임상 경험을 강조한다. 임상 경험은 진실을 호도하기 쉽다. - 건강한 사람의 일상에서 통증은 모두가 겪는 현상이며 대개는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통증에 대한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 만성 통증은 이야기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아편 제제에 의존하게 되며, 그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도 많다. 만성 통증 환자는 의사가 치료하기에 매우 까다롭다. 어떤 것도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는 대체로 심리적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 많은 환자와 일부 의사들이 대체의학의 비합리성에 매료된다. 내가 보기에는 인간의 신앙적 성향과 관련된 현상인 것 같다.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 (로버트 러프킨, 정말중요한, 2024년 12월) - 우리는 과학을 좇다가 병을 얻었다. - 모든 질병의 발병 여부는 개인의 유전적 특질과 더불어 독소, 결핍 상태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생활습관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식품산업은 공중보건 분야를 구미에 맞게 뜯어고칠 수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쓰레기 음식도 건강한 먹을거리로 탈바꿈시킨다. - 그때나 지금이나 항암 선택지는 똑같다. 수술 아니면 방사선 치료 아니면 화학요법이다. 이 모든 연구에 집중했건만 여전히 우리는 베고, 태우고, 독을 쓰기만을 반복한다. - 의사가 여러분의 건강을 챙기지는 않는다. 영양사가 내 몸매를 날씬하게 가꾸지도 않는다. 트레이너가 탄탄한 몸을 책임지는 일도 없다. 결국 자신에게 달린 문제다. - 5년 전에 이 책을 쓰려고 관련 조사를 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흔한 질병들의 원인이 비슷비슷했다. 서방 세계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들의 뿌리가 결국에는 하나였다. - 노화와 결국에는 죽음 자체를 포함하는 주요 만성 질환의 뿌리는 대사 기능이상이다. 이 문제는 어떤 명의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다. - 당신은 매일 그리고 매끼 더 나은 방식으로 더 오래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복된 삶이 내 손에, 내 입에, 내 위장에, 내 혈류에 달렸다. 『의사를 반성한다』 (나카무라 진이치, 사이몬북스, 2025년 1월) - 가만히 놔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좋은 배려이다. - 미국의 노년 의학자 토마스 피누케인(Thomas E.Finucane)은 고령의 치매 환자에게 억압적으로 음식을 주입하는 일은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항상성이 흐트러지거나 회복에 방해가 될만한 사태를 만나면 몸은 여러 방법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 움직일 때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라는 몸의 신호이다. - 면역학의 권위자 야야마 도시히코(矢山利彦) 박사는 ‘암은 때릴수록 흉폭해진다’라고 주장한다. - 나이 들어서 탈이 나는 것은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탓이다. - 병원 산업은 늘 유행을 몰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때마다 한 차례씩 회오리바람이 분 다음 그 유행이 끝나야 바람이 잠잠해진다. 『중독을 파는 의사들』 (애나 렘키, 오월의 봄, 2025년 11월) - 현대 미국 문화에서는 통증을 철저히 피해야 할 저주로 여긴다. 이 새로운 인식은 통증이 영구적인 신경학적 손상을 일으켜 향후 또 다른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 심리적 손상과 마찬가지로 신체 통증 역시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향후 통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중추 민감화(central sensitization)라고 한다. - 오늘날 우리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의 기준이 전례 없이 낮아진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 새로운 기준 탓에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중독성 처방약물 처방과 소비가 늘어났다. - 오늘날 의료계에서는 속임수와 기회주의가 만연한 구조 속에서 돈을 버는 일이 의료 행위를 결정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 이 시대의 정신과 의사들이 스스로를 ‘정신약리학자’라고 부르며 정신과 약물 처방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비약물적인 방법으로 통증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의 핵심은 통증을 조절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기 위해 ‘신경계를 재훈련’하는 것이다. - 의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은 환자와의 관계이다. 이 핵심 진리를 지키기 위해 의료 제공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진단의 시대』 (수잰 오설리번, 까치, 2025년 11월) - 질병 정의의 확장, 즉 더 많은 사람이 병이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에 포함되도록 기준점을 옮기는 추세는 많은 의학적 문제의 진단율에 극적인 효과를 일으켜왔다. - 진단에는 언제나 회색 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의사는 환자에게 최선이라고 느끼는 바에 따라서 과소진단이나 과잉진단 중 어느 한쪽을 택하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 주류 의학에는 하나의 진단 범주에 산뜻하게 들어맞지 않는 여러 계통에 걸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 - 두려움은 과잉진단의 강력한 추진력이다. 암은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무엇인가이다. 두려움의 해독제는 지식, 신뢰, 지원이다. - 병력이 복잡한 환자를 만날 때면, 나는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건강했던 때가 언제였는지를 물으면서 대화를 시작하고는 한다. -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더욱 고착시키는 진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취미, 관심사, 열정, 사회망을 통해서 웰니스를 추구해야 한다. - 진단은 명백히 아픈 사람을 위해서 남겨두고, 차이와 불완전함을 더 관용적으로 봄으로써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에 침구라고 하는 게 있었잖아요. 옛날에.. 그 다음 해방 이후에 그게 뭐 어찌어찌하다 사라진 거 같아요. 근데 침구는 한의학의 일부로 돼 있나요? 아니면 그냥 없어져 버린 건가요?” “한의사는 약을 달이는 것과 처방을 하지, 침 놓는 것은 잘 안 하죠?” “이 소위 단침이라 하나? 조그마한.. 보통 침구사는 긴 침 쓰는 그런 사람들이 있던데 과거에..” “침을 별도로 연구하는 뭐 그런 프로그램은 없어요?” “그 침구학이라든가 침술에 관한 연구나 이런 것들은 다 나름대로 하고 있어요?” 지난 12월16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있었던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님의 한의계 관련 질문들의 목록이다. 위 영상을 내게 처음 공유해 주신 선배는 “이게 어찌 된 노릇이야?”로 시작했다가 “다 내 탓이오!”로 끝나는 문자를 함께 남겼다. 현 시대의 한의학 위상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침구치료를 해방 이후에 사라진 것으로, 그래서 한의사는 침치료보다는 약을 달이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로 한의계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잘못인가? 아니면 이런 대중의 인식 형성에 기여를 했을 것이 분명한 업계 당사자들 잘못인가? 대통령님 발언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던 마음을 위로해준 싯구절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본인의 자화상을 보면서 쓴 시이다. “나라고 해도 좋고/ 나 아니라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고/ 나 아니라 해도 나다/ 그 시비 속에 나는 없다/ 제석천 구슬 중중 무진하거늘/ 여의주 한 상(相)에 집착하는 자 누구인가, 하하” 현대의학의 문제점이 아무리 부각되어도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한의학이 제시되는 일은 대한민국 보건정책 혹은 주류 의료계에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한의학 자체가 가진 시대적 그리고 내재적 한계 상황을 머리에 가슴에 짊어진 채, 임상한의사로서의 간당간당함을 감당하며 올해도 진료실을 바쁘게 그리고 즐겁게 뛰어다녔다. 다가오는 2026년, 큰 바람은 없다. 올해만큼 딱 올해만큼만 건강한 일상을 이어가는 것. 그 뿐이다. -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⑳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요즘 한의대의 풍경은 밤에도 환히 불이 켜져 있다. 기말고사 기간 정신없는 학생들이 왠지 안쓰럽게 생각되기도 하고, 과거에 나 자신도 다 겪은 과정이긴 하지만 새삼 한의대생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한의대생의 하루는 언제 시작될까. 이른 아침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일 수도 있고, 시험 기간 새벽까지 이어진 공부 끝에 겨우 눈을 붙였다가 다시 눈을 뜨는 순간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한의대생의 하루 대부분이 ‘공부’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기초의학과 한의학 이론, 임상 과목과 실습까지 배워야 할 내용은 방대하다. 한 과목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시험 준비가 시작되는 잦은 시험 스케줄이 익숙해질수록 학생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계획표를 세우지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이해하며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은 점점 ‘이번 시험만 넘기자’는 마음으로 바뀌곤 한다. 공부의 시간은 쌓이지만, 그 시간이 곧바로 성장의 시간으로 이어지는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배우는 사람’ vs ‘버티는 사람’ 교육은 흔히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러나 학생의 입장에서 교육은 결국 시간의 경험(time experience)이다. 하루 24시간 중 얼마나 몰입할 수 있었는지, 얼마나 고민할 여유가 있었는지, 얼마나 휴식할 수 있었는지가 학습의 질을 좌우한다. 여기서 한의대의 교육은 그동안 학생의 지식 수준과 성적은 관리해왔지만, 학생의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한의대 재학기간동안 학생이 진정한 ‘배움의 시간’으로 경험을 쌓고 의료인이 되어가는 지 교육자의 고민이 필요하다. 한의대생의 시간은 자주 분절된다. 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예습과 복습, 과제와 시험 준비가 이어지고, 실습이 끝나면 보고서와 평가가 기다린다. 학생들은 늘 “이번 주만 넘기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 ‘이번 주’는 학기 내내 반복된다. 하루하루는 바쁘게 흘러가지만, 정작 스스로 배움을 정리하고 성찰할 시간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공부는 계속되는데, 학습 내용이 남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특히 요즘 같은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이해와 성찰의 시간은 줄어들고, 암기와 반복이 우선된다. 질문을 던질 여유는 사라지고, “왜 이 내용을 배우는지”보다는 “시험에 나올까”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시험이 끝나면 안도감과 함께 허탈함이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시험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점점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되어간다. 어떤 학생은 “공부를 했다는 느낌보다, To Do List를 지웠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수업과 수업 사이, 시험과 시험 사이를 건너뛰듯 이동하다 보면, 지식은 축적되기보다 흩어지기 쉽다. 학생의 시간을 존중하는 교육 임상실습 시기의 시간 경험은 또 다르다. 학생들은 환자를 만나며 ‘의사가 된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지만, 동시에 실습 평가와 기록, 지도교수의 기준에 신경 쓰느라 환자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싶어도 “지금 이 장면이 평가에 어떻게 반영될까”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시간은 배움과 긴장이 뒤섞인, 매우 복합적인 경험으로 남는다. 이러한 시간의 축적은 학습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습은 탐구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고, 실패는 성찰의 기회가 아니라 피해야 할 위험이 된다. 질문하지 않는 학생, 안전한 답만 찾는 학생,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기준을 기다리는 학생이 만들어지는 구조는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교육이 학생의 시간을 어떻게 설계했는가의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의대 교육이 쉬워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의료인은 전문직이며, 충분한 학습과 훈련은 필수적이다. 다만 한의대 교육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학생의 시간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쓰이게 하고 있는지 말이다. 좋은 의료인으로 성장하기에 중요한 것은 학습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시간이 어떤 경험으로 남는가이기 때문이다. 의학교육 연구에서는 이미 학생의 ‘시간 경험’이 중요한 교육 지표로 논의되고 있다. 학생이 학습 과정에서 몰입하고, 실수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지가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한의대 교육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필요하다. 학생에게 생각할 시간, 질문할 시간, 회복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한의학교육 역시 교육과정을 개편, 관리만 할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 경험과 시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과목 간 과도한 중복을 조정하고, 평가 시점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며, 실습과 이론이 단절되지 않도록 구조를 정비하는 일은 모두 학생의 시간을 되돌려주는 작업이다. 이는 교육의 밀도를 낮추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을 바로잡는 일이다. 학생의 시간을 존중하는 교육은 학생을 신뢰하는 교육이기도 하다. 모든 시간을 통제하려는 교육은 단기적 성과는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주도성을 약화시킨다. 반대로 일정한 여백과 선택권을 허용하는 교육은 다소 불안감을 줄 수는 있지만, 책임 있는 학습자로 성장하게 만든다. 미래 한의사의 시간 한의대생의 시간은 곧 미래 한의사의 시간이다. 지금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배움에 대한 자세도 달라질 수 있다. 바쁜 진료 현장에서도 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한의사,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하는 의료인은 학창 시절 ‘의미 있는 시간’을 경험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한의학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거창한 제도나 새로운 과목을 떠올리기 전에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보면 좋겠다. “지금, 한의대생의 시간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는 순간부터, 한의학교육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