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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❺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약을 다루는 현장에는 늘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공존한다. 하나는 전통의 경험과 직관이 쌓아 올린 복합 처방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혈중 농도나 약물동태 곡선 같은 근대 약리학의 언어다. 환자의 몸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려면 두 언어를 모두 알아두면 좋다. 그럴 때 흔히 제기되는 첫 질문이 “이 성분, 몸으로 얼마나 들어가느냐”이다. 그러나 한약 성분은 혈중 AUC(Area Under the Curve) 하나로는 전모를 보여 주지 않는다. 일부는 혈관으로 곧장 들어가서 전신 농도를 확보해야 효과를 내지만, 더 많은 성분은 장내 미생물이나 간 대사라는 우회로를 거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작용하거나, 아예 흡수되지 않은 채 장관 내에서 역할을 다 한다. 숫자를 넘어선 총체적 시야가 필요한 이유다. 다섯 겹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복합 약물 탕제를 복용하면 첫 관문은 위·소장에서의 가수분해다. 다당·배당체가 잘게 쪼개지고, 지용성 성분은 단순 확산으로, 수용성 배당체는 운반체 단백질의 도움으로 장벽을 넘는다. 두 번째 관문은 장 상피 자체와 간에서 벌어지는 1차 대사다. 시토크롬 P450, UGT, SULT 계열 효소가 성분의 분자 구조를 바꾸어 놓는다. 세 번째 관문은 장내 미생물이다. 흡수되지 못한 고분자 배당체는 β‑글루코시다아제에 의해 소수성 아글리콘으로 변환돼야 비로소 장벽 투과성이 생긴다. 네 번째 관문은 재흡수다. 변환된 대사체가 장벽을 다시 넘어야 전신 순환계에 입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이 끝난 뒤에야 면역·대사 조절 신호가 혈중과 조직으로 퍼져 나간다. 이러한 다층적 루트 때문에 단일 수치로 흡수를 재단하는 시도는 언제나 어딘가를 놓치기 쉽다. 혈중 농도를 확실히 확보해야 하는 대표 성분 갈근(葛根)의 푸에라린은 가장 많이 연구된 한약 플라보노이드다. 경구 생체이용률은 랫드 모델에서 약 7 %로 보고된다. 낮은 수치이지만 해당 연구에서 정맥 투여 시와 비교했을 때 조직 분포는 관상동맥, 뇌혈관까지 두루 퍼졌고, 반감기가 4~6 시간으로 길어 반복 투여 시 농도 누적이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갈근은 이렇게 생체이용율이 낮아 전통적으로 한 번에 비교적 많은 양을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고삼(苦參)의 알칼로이드인 마트린은 2 mg/kg 경구 투여 후 C_max 92 ng/mL, 절대 생체이용률 17 %로 보고됐으며 반감기가 3 시간가량이라 1일 3회 복용 설계로 전신 항바이러스·항섬유화 효과를 목표로 한다. 카페인은 더 극단적 예다. 45 분 이내에 99 %가 흡수되고 혈중 최고 농도에 도달한다. 이런 고흡수·고반감기 성분은 의도한 전신 작용을 얻는 데 유리하지만, 동시에 약물 상호작용과 C_max 급등 리스크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장내 미생물 변환물이 주인공”인 성분 대황(大黃)의 센노사이드는 직접 흡수율이 사실상 0 %다. 대신 대장에서 특정 장내 미생물이 이를 ‘레인 안트론’이라는 활성형으로 전환해야 비로소 효과를 나타낸다. 이 과정은 주로 비피도박테리움 같은 유익균의 β‑글루코시다아제와 환원효소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장내 미생물 상태에 따라 동일한 용량의 센노사이드라도 반응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때 활성물질인 레인 안트론은 장 점막에 국소 자극을 주어 연동운동을 촉진하고, 일부는 혈류로 들어가 COX 억제를 통해 염증성 장 질환의 통증도 완화한다. 그래서 대장내시경 전 항생제나 장 세정제를 사용한 환자는 센노사이드 반응성이 저하될 수 있다. 만일 대황계 약물이 듣지 않는 만성 변비 환자의 경우, 유익균 보충이나 프리바이오틱스 병용을 통해 반응성을 회복할 수 있다. 비슷한 패턴은 황금(黃芩)의 바이칼린에서도 보인다. 경구 생체이용률이 2~4 % 수준이나 탈배당 후 형성되는 바이칼레인·바이칼레인‑7‑O‑글루쿠로니드가 NF‑κB 하위 신호를 억제해 강력한 항염 작용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 대사체는 뇌혈관 장벽 투과성이 높아 신경 염증 질환 연구에서 주목받는다. 한약 성분과 장내 미생물의 ‘공동 제작’ 모델이 어떻게 전신 작용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흡수되지 않아서’ 효과적인 성분 반대로, 흡수가 되지 않아 작용을 완성하는 성분도 있다. 망초(芒硝)는 황산나트륨 10수화물로, 경구 투여 시 장 점막으로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 오히려 흡수되지 않는 덕분에 장 내강에 고삼투 환경을 만들어 수분을 끌어들여 변을 연하게 하고 장관 압력을 높인다. 연구에 따르면 설파트 이온은 장 융모를 쉽게 통과하지 못해 지속적인 삼투층을 형성해 준다. 같은 계열로는 마그네슘 설페이트, PEG, 락툴로스 등이 있으며, 이들은 ‘비흡수성 이온·분자’라는 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배변 촉진, 장 세정, 간성 뇌병증(암모니아 포집)까지 임상 범위를 넓힌다. 흡수율을 바꿀 수 있는 제형 공학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발효·효소 처리는 배당체를 아글리콘으로 전환시켜 장벽 투과성을 높인다. 둘째, 지질 나노입자나 고형 지질 캐리어는 소수성 성분을 림프 경로로 우회시켜 1차 간 대사를 피한다. 셋째, 피페린 같은 bio‑enhancer를 병용하면 약물 대사 효소나 P‑gp를 억제해 동반 투여 물질의 C_max를 2~5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다만 와파린, 페니토인 등 협소한 치료역을 가진 약물과 동시 복용할 때는 INR·혈중 농도 모니터링이 필수다. 넷째, 염변경이나 프로드러그 설계로 용해도, 지질 친화도를 조절하는 기법이 있다. 베르베린의 경우 기반 염을 유산염에서 호박산염으로 바꾸었을 때 C_max가 2배 이상 상승했다는 보고가 있다 임상의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검 리스트 첫째, 내가 기대하는 효능의 주성분이 원형 분자인가, 아니면 장내·간내에서 재탄생한 대사체인가. 둘째, 제형이나 병용 약물이 흡수율을 의도치 않게 끌어올려 독성 리스크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셋째,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낮은 흡수율=효능 부족’이라는 오해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해소할 것인가. 예를 들어 “센노사이드는 흡수가 안되니 효과가 없다.”라는 걱정은 “몸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이 약을 완성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약 성분이 체내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반드시 일정 농도의 혈중 도달이 필요하다는 전통 약리학의 명제는 절반만 맞다. 어떤 성분은 낮은 흡수율이라도 장내 미생물 변환물이나 국소 장점막 작용으로 강력한 임상 효과를 만든다. 반면, 고흡수 성분은 전신 독성·약물 상호작용 리스크라는 짐을 함께 짊어진다. 결국 임상의가 설계해야 할 것은 단순한 ‘흡수율 올리기’가 아니라, 작용 위치·대사 형태·환자 안전성을 모두 묶어 내는 통전적 약력학 전략이다. 복합성을 과학으로 번역할 때, 한약은 전통과 현대가 손을 맞잡고도 여전히 설득력을 잃지 않는 치료 옵션으로 남을 수 있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46)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陳雪樓(생몰년대 미상)는 중국 蘇州 출신의 醫家로서 중앙연구원의 인터넷 자료에 ‘肺癆內婦科名醫陳雪樓’이라는 표제가 붙은 것이 있으므로 폐결핵 계통을 전문으로 하는 醫家로 파악된다. 1987년 陳雪樓 先生은 『中國歷代名醫圖傳』(江蘇科學技術出版社)이라는 역대 의학 인물 초상화를 모아 펴낸 역작을 낸다. 이 책은 양운청, 유진하, 유국휘, 방준, 왕맹기, 심침, 조서성, 정종원, 조망계 등 화가들의 협조로 그림을 완성해서 수록했다. 수록된 醫家들의 초상화는 130장으로 모두 130명의 초상화를 담고 있다. 담고 있는 의가들은 △원시시대 복희씨, 신농씨, 황제, 기백, 하상주시기 이윤, 의화, 의완 △전국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편작, 순우의, 부옹, 화타, 장중경 등 △위진남북조시기 왕숙화, 황보밀, 갈홍, 도홍경 등 △수당오대시기의 소원방, 손사막, 왕빙 등 △송금원시기 금원사대가, 진자명, 엄용화, 왕호고, 나지제 등 △명청시기 설립재, 손일규, 왕긍당, 왕청임, 당종해 등 130명의 초상화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의가들에 대한 초상화 작업은 역사적 공백의 보완과 시각적 증거의 제공이라는 측면의 의의가 있다. 이것은 문화적 정체성과 집단 기억의 재확립이라는 측면에서 해당 직업군의 사회적 가치와 기술적 전통의 가시화란 측면에서 가치 있는 일이다. 더 나아가서 예술적, 교육적 소통 창구로서 기능하여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촉진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교육적 측면에서 추상적인 역사 설명을 구체적인 시각자료로 전환해서 학습자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이것은 과거의 침묵을 깨뜨려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초상화 작업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例言’에서 밝히고 있다. ‘例言’의 글을 필자 임의로 해석하여 정리한다. ◯ 이 책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종지로 삼아 역대 의약문헌의 고증을 중시했다. 근거를 찾기 어려운 전설이나 사실적 기사라고 보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높은 수준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기준을 삼았다. 학설이 다양해서 정하기 어려운 경우는 중점이 되는 것을 위주로 해다. ◯ 이 책의 도상은 국내의 저명한 화가로 하여금 傳記의 내용과 여러 방면에서 수집된 자료를 근거로 정밀하고 구상하여 그린 것이다. 예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래와 같은 세가지 원칙을 견지하였다. ① 도상의 눈썹과 눈은 神氣가 전달되도록 하고, 형체가 법도에 맞게 하여 形神이 겸비되도록 했다. 아울러 생존시대의 복식과 의가의 생애, 성격, 학술적 성취 등에 맞도록 하였다. ② 고대 화가가 만들었던 의가의 초상화와 조각물로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원형을 유지하여 잘 계승하는 방향에서 완성했다. 청나라 말기의 어의 가운데 그림자의 형식으로 相片이 남아 있는 경우는 화필법에 따라 그림을 완성했다. 근거로 삼을 相片이 없거나 훼손된 상편만 남아 있는 경우에는 화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완성했다. ③ 완성된 의가의 도상이 工筆畵이나나 寫意畵이건 모두 전통화의 예술적 풍격과 고도의 기법을 담고 있어 해당 의가의 전기와 부합되도록 노력했다. 이것은 예술성과 진실성을 결합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다. -
말기 암 환자의 의학 외적인 돌봄과 실무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지난 달,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교육을 받기 위해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다녀왔다. 이 교육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법정 필수교육이며, 해당 기관의 개설이 가능한 의료인에게 기본 자격 요건으로 부과된다. 법적으로 한의사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을 개설 가능한 의료인에도 불구하고(한의사 전문의에 한함), 나는 이 교육을 최초로 신청했던 날로부터 약 2년이 흘러서야 마침내 실제로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의’라는 선택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진료실에서 한의사라는 직종으로 다양한 증상군의 환자를 마주하다 보면,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이 꽤나 많다는 걸 종종 체감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무엇부터 잘못되었으며, 누가 이렇게 내버려 두었나 등의 따위를 이제 와서 운운하기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요즘의 시기는 이례적으로 한의계 내부의 실무적 의견이 이전보다는 잘 합치되고 있으며, 지금은 지향점이 같은 의료인들이 합심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앞서 언급했듯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을 법적으로 한의사가 개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 2년 전에는 필수 법정 교육을 신청하는 화면에 ‘한의’라는 단어는 선택지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교육을 듣기 위해서는 ‘일반의-의사’로 등록해야만 했다. 이론교육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어찌어찌 들었다만, 토론 중심의 대면 교육으로 진행되는 실무교육은 현실적으로 어찌어찌하기가 어려웠다. ‘일반의-의사’로 신청한 30대 여성의 면허번호가 ‘2’로 시작하는 다섯 자리 숫자라면, 내가 그 당시의 실무자였어도 등록 허가를 선뜻 내주지 않았을 것 같다. ‘이미 대기자도 많고 교육이 급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참고로 직전의 문장은 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어떤 분의 말을 그대로 빌린 것이다. 당시에 실무교육의 거듭된 비선정으로 하소연하는 나에게 해주셨던 답이었다. 관련 내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자 참 간만에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다. ‘왜 우리는 대기자에도 속하지 않고, 교육이 급한 사람에도 속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우리에게 개설 권한이 있는 의료기관에 대해, 정작 교육 이수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가.’ 2년이 흐른 현재 ‘한의’라는 선택지 생겨나 다행인 건 2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한의’라는 단어의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 또한 누군가께서 보이지 않는 분투를 통해 만들어 낸 한 칸이라고 생각한다. 한의계의 지난 모든 판도를 바꿨던 지금까지의 변화는, 결국 누군가의 한 칸에서 시작되었음을 익히 들었기에 분투하신 그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한 칸이 실제로 나의 앞선 억울함의 8할을 해소해 주기도 했다. 2년을 기다린 교육이었다. 꽉 막히는 아침 출근길, 송도에서 구로까지 이동하는 그 시간조차 괜히 설렜다. ‘말기 암 환자와 그 보호자의 관리’라는 분야에서 정부가 공인한 표준적인 내용을 듣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오갔다. ‘소모적인 일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분야인데, 실제로 전업으로 종사하고 계신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본인의 생각을 떠나서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학생 같은 궁금증부터 시작해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에 계시는 분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의미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그리고 그 중에 내가 가장 확인받고 싶었던 부분은 이것이었다.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어깨 너머로, 때로는 싹싹 빌다시피 하며 의과·한의과 교수님들과 의료진으로부터 배워온 ‘말기 암 환자의 의학 외적인 돌봄과 실무들’-그 구체적인 행동들이 과연 맞는 방향이었는가를 정말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널찍한 교육실에 들어서니 약 서른 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 중 ‘의사 직종’에 속하는 수강생은 4명뿐이었고, 당연하게 느껴진 게 슬프게도, 한의사는 나 혼자였다. 모든 수강생들은 8명씩 4개의 조에 나뉘어 배정되었고, 의사 직종에 속하는 사람들은 각 조에 1명씩 배정되었다. 명찰을 받아 들고 내가 속한 조 테이블에 가서 자리에 앉자, 이미 대부분이 조원들이 모여 있었다. 오! 한의사 선생님이시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자, 이미 서로 안면을 튼 듯한 몇몇 분들이 나와 내 명찰을 보았고, 그 중 한 분이 인사를 받아주심과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건넸다. “오! 안녕하세요? 오! 한의사 선생님이시다! 우와! 한의사분들은 말기 암 환자분들이 아프다고 하시면 침 놔주시는 거예요? 마약 못 쓰시지 않으세요?” 이 말이, ‘한의사’라는 태그를 달고, 억울함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을 품은 채, 내 면허로 개설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필수교육을 겨우겨우 승인받아 들으러 간 전문의인 내가 들은, 첫 인사였다(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교육-실무교육에 대한 후기는 총 3편에 걸쳐서 연재 예정입니다). -
제75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를 다녀와서최성열 대한한의학회 재무이사 (가천대 한의과대학 교수) 지난달 6일부터 8일까지 일본 도쿄 게이오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제75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는 한의학이 국내뿐만 아니라 적어도 동아시아 의료 담론을 형성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 자리였다. 전통의학을 둘러싼 과학적 연구와 임상적 성과들이 한·일 양국간의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조응하며 진화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대한한의학회의 적극적인 국제 교류 노력이 있었다. 한국(대한한의학회)과 일본(일본동양의학회)은 2009년 정식 협약을 맺은 이후 꾸준히 학술 교류를 이어오고 있으며, 이번 총회에서도 공동 심포지엄이 개최돼 양국의 학문적 성과가 교차하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대한한의학회는 단순한 발표 참여를 넘어 심포지엄의 공동 주최자로서 학술적 중심축의 역할을 담당했고, 이는 곧 한의학의 국제화를 위한 리더십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인삼양영탕의 한·일간 각기 다른 임상적 해석·응용 ‘확인’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인삼양영탕 관련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전통의학이 공통된 한약제제임에도 각기 다른 임상적 해석과 응용을 보여주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경희대학교 권승원 교수는 인삼양영탕을 기반으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및 한의 문헌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임상 적용 사례를 발표하며, 표준임상진료지침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근거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인삼양영탕이 한의 변증 의미를 넘어 다양한 질환에서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근거 기반 치료제로서의 수많은 가능성을 부각시킨 발표였다. 또한 동신대학교 양승정 교수는 같은 제제를 갱년기장애 환자에 대한 임상 사례 중심으로 접근했다. 증례별 환자 특성과 변증 패턴에 따른 맞춤형 처방 전략을 소개함으로써, 실제 임상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과 치료 효과의 다양성을 제시한 발표였다. 이에 대해 일본 참가자들은 일본과 다소 다른 처방에 대한 접근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수많은 질의가 오간 학술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두 연구 모두 동일한 한약제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학적 길이 열릴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이에 대한 국제적 비교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있어서 의미가 컸다. 실제로 많은 일본 학자들은 “한국과 일본이 같은 처방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처방 체계 및 임상 접근 방식의 비교 연구가 향후 전통의학 발전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공감했다. 전통의학이 국제의학으로 나아갈 방향성 제시 또한 이번 총회에서는 부산광역시와 동의대학교가 공동 수행한 치매 예방사업 사례도 발표돼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한의 치료가 MCI(경도인지장애) 환자군에서 기억력 및 우울 증상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는, 한의학이 지역사회 건강관리모델로서도 충분한 효과성과 실현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일본 측 의료진과 연구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통합의학의 한 축으로서 한의학의 가치를 실증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됐다. 결국 이번 학술총회는 한의학이 단지 전통의학이라는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표준화된 근거 기반의 국제의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과 방향성을 공유한 자리였다. 특히 국제 공동 임상연구 및 처방 데이터의 표준화, 한약제제의 다국적 적용 비교 분석 및 적응증 범위 확대, WHO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 확대를 통한 정책 반영 등과 같은 후속 아젠다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와 함께 양국간 교류 협력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한한의학회는 그간의 축적된 학문적 자산과 실무적 역량을 바탕으로, 이러한 방향성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이를 지속해야 할 책임 또한 느낀다. 한의학의 국제화는 단지 한의학을 외국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건강 위기에 대한 해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에 대한 주도권은 깊은 학문적 성찰과 진정성 있는 교류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 이번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 참여는 한의학이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세계와 소통하는 한의학, 그리고 과학과 융합하는 한의학의 미래는 이미 시작됐으며, 그 길 위에서 대한한의학회의 역할은 더욱 빛날 것을 기대한다. -
- '냉장과 냉동 사이' 편 - -
권해진 원장, 아이와 학부모 대상 ‘가족건강 한의학’ 강의[한의신문] 권해진 원장(파주시 래소한의원)은 지난 14일부터 28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에서 ‘가족건강 한의학: 마음까지 살펴드립니다’를 주제로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듣는 강의를 진행했다. 권해진 원장은 14일 첫날 강의에서는 음양오행과 자연과의 상관성 및 한의학의 원리를 이야기하며 아이들에게는 ‘목화토금수’ 한자의 의미를 알리고 가르쳤다. 이날 학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손목을 만지며 맥을 짚어보았으며 모양이 특이한 한약재인 팔각회향과 계피를 만져보는 시간도 가졌다. 21일 두 번째 강의에서는 향기가 독특한 약재인 박하와 음식으로 쓰이는 약재인 곽향(배초향,방아)을 관찰한데 이어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승근혈과 승산혈 맛사지 방법을 알아보고, 부모가 아이의 다리에서 직접 혈자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28일 세 번째 강의에서는 더위를 한약으로 이길 수 있는 ‘생맥산’을 만들어서 함께 마시는 시간을 가졌고, 아이들에게 손수건 염색을 한약재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같이 만들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도서관 이용자들에게는 한의학 정보를 아이들에게는 한의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는 장이었다. 참여자들의 호응이 좋아 가을에 한 번 더 특강을 진행 할 예정이다. 이번 강의는 권 원장이 저술한 <우리 동네 한의사>, <텃밭에서 찾은 보약> 등 책의 내용과 더불어 우리 몸의 혈 자리 체험과 한방차 시음도 함께 하는 등 어린이 청소년과 성인들이 한의학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됐다. 권해진 원장은 “지난 2020년부터 대중 강연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번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강의가 61번째”라면서 “전국 어디든 달려가 한의약의 효능과 우수성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미래형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실질적인 기여 기대”[한의신문]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및 전북바이오융합전문대학원(JABA) 김성철 교수(사진)가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 한의중개개인연구 부문에 선정됐다. 김성철 교수는 ‘퇴행성 뇌질환 동물모델에서 폴리도파민 코팅 나노 법제유황(금액단)의 뇌막 림프계 활성화를 통한 퇴행성 뇌질환 혁신 치료기술 개발연구’로 오는 ‘27년 12월까지 3년간 총 2억2000만원을 지원받아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19년 12만5000여 명에서 ‘23년 14만2000여 명으로 13% 가량 증가했으며, ‘21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89만여 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오는 ‘39년에는 200만명, ‘50년에는 3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돼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연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번 연구는 폴리도파민으로 코팅된 나노 법제유황(금액단)을 활용해 뇌막 림프계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파킨슨병·알츠하이머성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의 새로운 치료 기전 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연구 핵심 소재인 ‘금액단(金液丹)’은 중국 송대의 의서 ‘태평해민화제국방’에 최초로 기재돼 ‘편작심서’ 등을 통해 널리 활용된 한약으로, 법제를 통해 유황의 독성을 제거하여 전통적으로 불면증이나 중풍, 착뇌병(뇌질환), 각종 암, 주독(간해독), 두통, 급만성 경풍, 풍질(風疾), 소갈(당뇨) 등 다양한 난치성 질환 치료에 활용돼 왔다. 김성철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전통 한의약 제형을 현대 과학기술과 접목, 림프계를 활용한 신개념 약물 전달 경로를 규명하고자 한다”며 “폴리도파민 코팅 나노 금액단은 약물 전달 효율과 생체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미래형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향후 신경면역학 및 퇴행성 뇌질환 치료 분야에서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또한 한의약 기반 치료전략의 분자생물학적·해부학적 접근을 통해 한의약의 치료 효능에 대한 근거를 확보하고, 기존 퇴행성 뇌질환 치료 전략과의 융합 가능성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2025회계연도 주요 사업의 효율적 추진방안 ‘강구’인천광역시한의사회(회장 정준택)는 28, 29일 이틀간 영흥도 일원에서 ‘인천광역시한의사회 임원 수련회’를 열고, 2025회계연도 주요 사업에 대한 효율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수련회에서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과의 정책 간담회를 통해 제안된 한의약 관련 정책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한편 인천시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 한의약 공공의료 사업인 만큼 실질적인 정책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회무를 집중키로 했다. 또한 인천시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국가보훈자 대상 한의진료 및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사업의 효율적인 진행방안과 더불어 지난 5월 진행된 ‘인천시한의사회 회원의 날’ 등 주요 추진사업에 대한 결과를 공유했다. 이와 함께 인천시의회 이명규 시의원도 임원 수련회 현장을 찾아, 향후 추진한 인천시한의사회의 주요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의회 차원에서의 협력방안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정준택 회장은 “이번 임원 수련회는 딱딱한 회의장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연 속에서 보다 효율적인 회무 추진방안을 모색하고자 개최하게 됐다”면서 “기존에 진행돼 왔던 사업은 더욱 알차게 진행되는 방안과 더불어 한의약을 통한 인천시민들의 건강 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정 회장은 “더불어민주당과의 정책 간담회에서는 인천시 내의 한의 공공의료 확대를 위해 인천의료원 내 한의과 설치 및 경로당 돌봄 한의약 사업, 일차의료 한의방문진료 지원사업 연계 등을 통한 ‘찾아가는 한의약 의료서비스 사업’을 제안한 바 있다”면서 “점차 통합 돌봄 체계가 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한의약의 역할이 보다 확대될 수 있도록 인천시한의사회가 제안한 정책들이 반드시 실행돼 인천시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한의약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마커리스 모션 캡처 시스템’ 임상 활용 가능성 확인[한의신문]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이승훈·이수지 교수팀은 최근 체계적 문헌고찰을 바탕으로 어깨 관절 가동범위 측정에 활용되는 단일 카메라 기반 ‘마커리스 모션 캡처 시스템’의 임상 활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저널에 발표된 단일 카메라(RGB-D) 기반 동작분석 시스템 관련 논문 2976편 중 14편을 선정해 분석한 것으로, △팔 들기(굴곡) △팔 벌리기(외전)와 같은 단순 동작에서 최신형 카메라일수록 높은 신뢰도와 타당도가 나타남을 확인했다. RGB-D란 몸에 마커를 부착하지 않고도 빛을 활용해 관절 방향 및 골격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마커리스(Markerless)’ 방식의 광학식 센서를 말한다. 이와 관련 이승훈 교수는 “RGB-D 센서의 장점은 저비용인 동시에 비접촉 방식의 편의성을 갖춘 것으로, 일부 복잡한 움직임에서는 보완이 필요하지만 단순 동작 움직임 평가도구로서 유용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서 수행한 정상인·오십견 환자 대상 임상연구와 이번 문헌고찰 결과를 바탕으로 정확도와 일관성 개선을 위한 후속 연구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한의디지털융합기술개발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생명공학 전문 학술지 ‘Frontiers in Bioengineering and Biotechnology(IF: 4.8)’ 5월호에 ‘어깨 동작 범위 측정을 위한 RGB-D 센서 단일 카메라 마커리스 모션 캡처 시스템의 유효성과 신뢰성: 체계적 고찰(Validity and Reliability of Single Camera Markerless Motion Capture Systems with RGB-D Sensors for Measuring Shoulder Range-of-Motion: A Systematic Review)’이라는 제하로 게재됐다. -
융합한의학회, ‘소아내분비·탈모 전문가 과정’ 성료[한의신문] 대한융합한의학회(회장 양웅모)는 29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264호에서 ‘소아내분비·탈모 전문가 과정’ 오프라인 교육 및 수료식을 개최했다. 이번 교육은 소아 성장, 성조숙증, 소아비만, 탈모 등 다양한 임상 영역에서의 진단과 치료 접근을 다루며, 전국 각지의 한의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날 강의는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김규석 교수(한방피부과)·이선행 교수(한방소아과)와 경희대 한의과대학 양웅모 교수(기초한의학과)가 참여, 실제 진료에서 활용 가능한 치료 전략과 판단 기준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특히 강의 중에 참석자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으며, 복합적인 질환에 대한 현장 진료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이와 함께 이번 과정에서는 ES기술 기반의 전문가용 한약제제인 ‘전문가 시리즈’가 함께 소개됐다. 실제 강연에서는 탈모 치료를 위한 ‘리모수’, 성장 촉진에 도움을 주는 ‘성장수’, 성조숙증 관리에 활용되는 ‘조화수’, 소아비만을 고려한 ‘리감수’ 등이 소개됐으며, 이론과 제형 간의 연계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 수강자는 “복잡한 케이스에서 치료 방향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 교육을 통해 보다 명확한 접근 방법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양웅모 회장은 “이번 전문가 과정은 한의 진료가 감각이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최신 데이터와 구조화된 로직을 통해 환자에게 더욱 신뢰받는 의료로 나아가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한의학이 더 이상 ‘보완’이 아닌 ‘선택’의 치료가 되기 위해, 앞으로 과학적 검증과 임상 효능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교육과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융합한의학회는 향후에도 진료 현장과 연결된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지속적인 학술 교류와 협력을 이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