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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세계경제 전망[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③] 김광석 오마이스쿨 대표강사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유튜브, 네이버 비즈니스, 오마이스쿨 인기 콘텐츠인 ‘경제 읽어주는 남자’의 김광석 오마이스쿨 대표강사(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로부터 어려운 경제를 쉽고 재미있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실수를 저지를지 모를 상황을 피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실수이다”라는 말이 있다. Peter McWilliams라는 미국의 유명 시인이 남긴 표현으로, “To avoid situations in which you might make mistakes may be the biggest mistake of all”을 번역한 말이다. IMF(2018.10.9.)는 한국 경제성장률을 2018년은 3.0%에서 2.8%로, 2019년은 2.9%에서 2.6%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반면, 정부는 ‘최근 경제동향’을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2017년 12월부터 열달째 “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언급했고, 하반기에는 소득주도성장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의 흐름과 크게 역행한 적이 없다. IMF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글로벌 무역 갈등과 금융 불안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수를 저지를지 모를 상황을 피하는 ‘경제적 판단의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2019년 세계경제의 지형을 세계경제, 주요국 경제, 국제유가, 환율 순으로 들여다보고, 기업과 가계가 객관적인 경제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2018년 세계경제 회고 2017년 경제는 회복기로 평가된다. 경제침체기에서 벗어난 2017년과 빗대어, 2018년의 세계경제는 성장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침체될 것인가? 하는 ‘의문투성이’의 한해로 기억된다. WKF 2017(World Knowledge Forum)는 2018년 경제를 ‘변곡점(Inflection Point)’으로 표현했다(2017.10.19). 즉, 그동안 회복세를 보여 왔으나, 향후에도 이 회복세가 지속될 것인지 여부가 확실치 않은 그런 ‘의문투성이’의 시점이라고 본 것이다. 2018년에 진입하면서, 세계 경제는 다양한 경기 하방요인들이 크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속도가 예상보다 더 가파른 속도로 인상되었고, 미국과 주요 신흥국들간의 정치적 갈등 등으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하기도 했다. 미 · 중 무역분쟁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격화되고, 장기화되는 양상으로 세계 경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2019년 세계경제의 지형은? 세계경제는 2016년의 불황기에서 벗어나 2017년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고, 2018년에는 그 수준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 7월에는 IMF가 2018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9%로 전망했고, 2019년에도 3.9%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보았다. 2018년과 2019년의 세계경제는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며, 2017년부터 이어온 경기 확장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2018년 10월 들어 2018년과 2019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3.7%로 하향조정했다. 즉, 2019년 세계경제는 ‘종전에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경기 확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세계 경기 확장세는 지역별로 상이(less bal anced)하다. IMF가 2018년 10월에 세계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하게 된 배경에는 선진국보다 신흥국 불안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했다. 선진국 경제성장률은 2.2%에서 2.1%로 1%p 하향조정한데 그쳤지만, 신흥국 경제성장률은 2018년 4.9%에서 4.7%로, 2019년 5.1%에서 4.7%로 큰 폭의 하향조정을 이행했다. 미 · 중 무역분쟁, 터키 경제제재, 이란 핵제재 등을 비롯해,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무역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고, 펀더맨털이 취약한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자본유출의 위험이 본격적으로 가시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경제 전망에 기초한 시사점 2019년에는 세계 경기 확장세가 서서히 마무리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상당한 경각심을 가지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먼저, 2018년까지 한국경제의 성장세를 견인한 수출이 2019년에는 점차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주요 수출대상국들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신규 시장을 공략하여, 취약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요구된다. 한편, 대외 경제가 불확실 할 때는 상대적으로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2019년에는 고부가가치 산업 및 신성장동력 산업을 발굴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③獨蔘湯에 깃든 우애와 제망매가(祭亡妹歌)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타고난 허약증을 개선시키려 活血湯 처방 학질 후 원기잃어…獨蔘湯 달여 입에 넣어줘 『제문록』임에도 형제자매 깊은 우의 엿보여 연전에 우연히 『제문록(祭文錄)』이란 표제의 필사본을 뒤적이다가 홀연히 찾아온 가을바람처럼 처량한 감회를 떨칠 수 없어 사연을 적어보기로 한다. 『제문록』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 집안의 제사에 올릴 제문을 짓고 그 글을 모아둔 것이다. 저자의 성명은 기재돼 있지 않고 다만 아호인 듯 ‘죽천장(竹川藏)’이라고 적어 소장자만 표시해 놓았다. 작성 시기는 표지에 ‘융희기원후갑술단양일장(隆熙紀元後甲戌端陽日粧)’이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1934년 단오날에 표지를 입혀 책으로 묶은 것이다. 첫머리에 주작인 ‘유인진양하씨제문(孺人晉陽河氏祭文) 신미(辛未)’라고 했으며, 또 다른 제문에는 ‘임신십이월이십일(壬申十二月二十日)’이라 적었으니 제문은 대략 일제강점기 중반인 1931∼1932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이 제문록을 새삼 들춰본 또 다른 이유는 한글로 적은 제문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내용보다도 제문을 한글로 지은 경우가 드물고, 특히 문집이나 이렇게 책으로 모아둔 경우는 더욱 희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문에 비해 훨씬 쉬이 읽히는 제문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뜻밖에 치병기록이 담겨져 있어 단숨에 눈길을 끌어당겼다. 본문의 일부를 그대로 적어본다. “중형 순도가 망매 유인 안동권실의 영(靈) …… 너의 최질(체질)이 약함은 염여(염려)하여 활혈탕(活血湯)이란 약방문은 나도 모르게 심지어 부모동기도 모르게 널(너)를 먹이던 그 화제(和劑)난 언제던지 백씨의 슈중(手中)에 노칠 적이 업섯다. 너의 이십년 성장함은 전연이 백씨의 졍역이 태산과 같앗다 ….” 나이 차이가 많은 형제남매간에 맏이는 늘 부모를 대신하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여기서도 손위 오빠가 어린 누이의 선천적인 허약증을 돌보기 위해 부모나 형제 몰래 활혈탕(活血湯)이란 약방문을 장만해 두고 수시로 체질 개선, 즉 타고난 허약증을 회복시키려 남몰래 노력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이 집안에는 약탕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약방을 운영했거나 적어도 약방 화제를 다룰 만큼 다소간 여유가 있는 집안이었나 보다. 이런 노력 끝에 어른으로 성장하여 출가시켰으니 부모역할을 대신하느라 오죽 애쓴 것이 아니겠는가? 예전엔 이렇게 장남, 장손이 집안의 어른 노릇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허약증에 만만찮은 시집살이를 견뎌내지 못했던 듯, 결국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또 다른 제문은 순한문으로 작성되어 있는데, 이 역시 먼저 간 누이의 영전에 바치는 글이다. 거기에도 젊은 누이가 갑자기 병이 들어 “…토사절립(吐瀉絶粒), 급병미진(急病未診), 학후원기치손(瘧後元氣致損)…급전삼음(急煎蔘飮), 이시적구(以匙滴口)”라 했으니 위로는 구토하고 아래로는 대변 설사가 계속되는 급한 증상이 나타나 미음도 들지 못하고 미처 진료를 받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했으니 대략 학질을 앓은 후에 원기가 급격하게 허손된 까닭이라고 자신의 견해까지 덧붙여 놓았다. 또 작자는 상당한 의약지식을 갖추고 있었던지 급히 독삼탕(獨蔘湯)을 달여 수저로 떠서 입속에 흘려 넣어 주었다고 적고 있다. 이런 방법은 원기폭탈(元氣暴脫)에 쓰는 최후의 수단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재빨리 환자의 생명을 회생시키는 전통적인 대처법이다. 대개 죽어가는 사람도 되살려 내는 공효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작자도 진단했듯이 급증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오랫 동안 학질을 앓으면서 몸 안의 원기가 모두 고갈된 상태였는지 끝내 회생되지 못한 채 절명하고 말았다. 여기 실린 3편의 글은 모두 작자보다 어린 누이들에게 바친 제문으로 한 나무에서 자라난 가지처럼 동기로 성장한 친 남매간이었지만 아직 이른 나이에 급병을 앓아 세상을 하직함으로써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심정을 다소 격하게 노정하고 있다. 제문이라 하면 집안마다 돌아가신 선조들의 제사에 읽는 축문이나 차례 모신 후 소지(燒紙)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제문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등장하는 『삼국유사(三國遺어事)』의 제망매가(祭亡妹歌)를 들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신라의 고승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이 제문 역시 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속세의 연을 차마 끊지 못해 먼저 돌아간 누이의 애달픈 운명을 노래하는 스님이 모습이 처연하게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의 길이 여기 있음에 넌 가노란 말도 못다 이르고 …….” 의약을 다소 익힌 작자였음에도 몸이 약한 어린 누이를 위해 평생 활혈탕을 지어먹이고, 학질을 앓다가 병석에 누운 누이에게 독삼탕을 끓여 바쳐도 끝내 가녀린 육신을 살려낼 수 없었다는 자책에 밀려오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어느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먼저 간 사람을 잠시 그리워해도 좋으리라. -
[진료실 이야기] 진료실 안팎서 많은 인연 만나는 직업, 한의사[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여한의사들이 진료 현장에서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고희정 대한여한의사회 정보통신이사. 나의 직장은 빠른 걸음으로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한의원이다. 평소 아침은 10년차 동료인 직원의 독촉이 없다면 더없이 청아한 가을 하늘과 바람을 몸과 마음속에 그득 담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상가 문을 열고 있는 사장님들과 인사도 하고 아이들 등교를 돕고 느려진 걸음으로 귀가하는 학부모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작한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우리 동네에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출근길에 활력을 얻는다. 그 힘 덕분일까? 한의원 문을 열 때는 어느 환자가 어떤 불편함으로 제일 먼저 오시나 궁금하고 살짝 설레기도 한다. 1999년 한의사가 된 첫해에는 ‘환자오셨어요’ 하는 소리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퇴근까지의 하루가 너무 길었고, 다음날 더 아프다고 찾아오면 어쩌나 걱정도 꽤 했었던 것 같다, 그 무시무시한 환자들은 자기 식으로 젊은 원장을 평가도 하고 원장에게 조언도 꽤 많이 해줬는데, 이제는 자식의 어린 자녀를 데리고 친척집에 방문하듯 지나는 길에 들러 인사를 한다. 작은 한의원이라 환자수는 많지 않았겠지만 20년이라는 시간을 펼쳐보니 많은 분들이 떠오른다. 어느 날 점심시간 비닐봉투 가득 도라지를 담아 오신 팔순의 할머니가 생각난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누군가에 대한 찰진 욕을 30분쯤 하시던 당신은 지치셨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보약이 얼마유?” 하고 물어보셨다. 그 당시 셜록홈스의 직관을 부러워하던 때라 오감을 동원해 어른을 살피는데, 그 분은 자신에게 만원도 쓰기 아까워하시는 그 많은 우리네 어머님 중 한 분이셨다. 평소 원장이 즐겨먹는 대보탕을 한잔 드리고 힘드시면 또 오시라고 말씀드리니, 욕쟁이 할머니는 간데없고 미소 띤 여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어르신은 문턱이 높을까 걱정했던 한의원에 가끔 들리셨고, 다음 계절에는 자녀분들이 또 그 다음 계절에는 수험생 손자들이 내원했다. 이제 어르신은 중증 치매로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자녀 손을 잡고 오실 때 면 처음 만났을 때 미소로 인사하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부모를 잃은 다른 자녀들은 힘이 들고 가슴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어 내원을 한다. 내가 해주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치료실 환자 곁에서 잠이 들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눈물을 닦아주고 기분 전환할 수 있도록 여러 이야기들을 나눈다. 환자들이 진심으로 고맙다 말할 때면 과거 몇 번이고 한의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힘이 되어 주신 스승과 같으신 선배들이 생각난다, 반백의 나이라 철이 드나싶다! 그 중 한 분은 우천 박인상 교수님이다. 이제는 우리 곁에 안 계시지만 지금의 동의과학연구소의 시작이 되어주시고 한의학에 한결같이 성실하셨던 분이다. 치료에 자신이 없어 고개 떨군 내게 “아침 먹었어? 나두 잘 몰러~그런데 이렇게 한번 해봐. 조금 나을거야. 계속 공부해. 그래야 실력이 늘지. 돌팔이라고 누가 비난해도, 무시하지 말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거면 배워~앞으로는 마음에 병이 있는 환자가 많아 질거야. 시대를 읽을 수 있어야해. 그래야 환자를 치료하지!”하곤 하셨다. 그때 그 말씀을 귀가 아닌 가슴에 담았어야 했는데...한의사로서 오랜 진료에서 나오는 혜안을 가지신 어르신이 그립다. 그래도 제자 분들이 계속해서 연구를 하시고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 또 다른 인연은 이정변기요법을 근간으로 한의 상담 치료학회의 뿌리를 만들어주신 서대현 원장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환자인 타인에게 집중하고 그들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려고 노력하는 생활이 자연스러워질 때 쯤, 지쳐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서글픈 감정이 들었던 적이 있다. 가끔 전해오는 동료의 부고소식은 더더욱 안타까웠고, 상처받은 나는 누가 치료해주나 의문이 들던 때였다. 이 때 인생 선배로서 서원장님의 간결하지만 정성스러운 말씀과 상담치료학회에서 동료 원장님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이해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한의사는 진료실 안팎으로 많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멋진 직업이라 느끼는 요즘 시간의 단련으로 내 나이가 진료하기 딱 좋은 나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서툰 글 솜씨로 용기내기에도 좋은 나이일지 모른다. 요즘 세간에 힘이 되기보다 걱정을 안겨주는 소식이 많아. 이런 소식에 눌려 소소한 기쁨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이전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의병들처럼 한의계의 불꽃이 되어주셨던 많은 동료 선배들이, 21세기에는 작은 역할들을 정성껏 하시는 멋진 동료와 후배들이 많음에 감사한다. -
弔辭/문준전 명예회장님 별세, “교수님, 편히 쉬세요”10월 13일이 필자에게는 중요한 날이다. 1961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던 그해 가을, 그 날은 금요일이었다. 오산비행장에서 제주도로 가기 위해 이륙했던 군 수송기가 엔진과열로 인한 고장으로 추락하면서 출장차 탑승했던 십여 명의 군 장병들이 모두 사망하고 유일하게 필자의 부친이 살아남으셨다. 주변에서는 조부모님의 독실한 신앙의 기도가 살렸다고 하였다. 물론 심각한 전신 부상으로 그 후로 수년간 병원 신세와 함께 날만 궂으면 정확한 일기예보를 하셨다. 그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한약을 드시면서 결국 필자의 운명은 한의사로 정해졌다. 아버님은 작년에 회혼례도 하셨다. 한약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번 10월 13일이 금요일은 아니었으나, 은사이신 문준전 교수님께서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들었다. 교수님은 필자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결정하신 분이다. 깔끔한 신사와 강직한 분위기, 논리적인 말씀이 인상적 필자는 한의대에 들어와 처음부터 학업은 뒷전이었다. 신입생 때는 학생 데모로 휴업도 많았지만 ‘경희극장’이라는 학교 연극부에서 활동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참여했던 모임은 그해 결성된 ‘二五律’이라는 동아리였다. 봉사나 취미 목적이 아닌 음양과 오행을 조율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지하 학술동아리였다. 지하라 지도교수가 없던 상태로 출발했지만, 그 후로 언젠가 선배들이 교수님을 모셔와 동아리 모임에서 처음 뵀었다. 당시 교수님께서는 한의대 교수 가운데 최고 엘리트로 존경받던 터이다. 깔끔한 신사와 강직한 분위기 그리고 논리적인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또 예과 2학년부터 ALA (AFKN Listening Association) 라는 영어공부 동아리에 빠져들었다. 스스로 경희대 ALA를 만들고 본1 때는 급기야 ALA 전국연합회장으로 선출되어 학교 공부와는 먼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겨우 진급에 본과 2학년까지 A+는 유일하게 교수님의 한방병리학 과목이었다. 본2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조교이던 안규석 선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문 교수님께서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시는데 네가 영어를 잘하니까 학교에 나와 논문 작업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뜻밖의 전화였지만 그다음 날 바로 학교로 달려갔다. 교수님과의 본격적인 인연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영문 초록을 손보고, 몇 군데 의대 도서관에 가서 참고문헌 몇 개 찾는 것으로 며칠이면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성실하게 하다 보니 교수님의 주문이 점점 늘어나서 겨울방학 내내 병리학교실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매일 밤 열 시 넘어 교문을 나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점차 학문 연구라는 새로운 세계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본3에 올라와서는 매년 열리는 행림제에서 교수님 지도로 “뉵혈의 병리에 관한 문헌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우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로 청파동 교수님 댁을 수시로 방문하여 밤늦게까지 말씀을 듣곤 하였다. 사랑채로 항상 정갈하게 상을 봐주시던 단아한 모습의 사모님이 떠오른다. 그때 비로소 한의학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교수님 덕에 한의대 졸업과 병리학교실 조교 생활 시작 기억나는 말씀으로 “노랑 머리 파랑 눈동자들에게 우리도 뭔가 주어야하지 않겠나?” 점차 마음속으로 병리학교실 조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교수님께서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본4에 올라가면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의대 대학원보다 KAIST의 전신인 KAIS에 진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의사 국시 대신 생화학 미생물학 등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을 어느 날 교수님을 뵈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으셔서 근황을 말씀드렸다. 놀라시면서 “나는 자네가 학문 연구보다는 사회 활동을 더 잘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 그러면 우리 교실에 조교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당시 선임 조교가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시다가 필자의 굳은 의지에 결단하셨다. 당시 본관을 왕래하시면서 어렵사리 유급 조교 자리를 하나 만들어주셨다. 그 덕에 졸업하고 바로 병리학교실 조교 생활을 시작하였다. 81년이다. 그해 교수님은 졸업생들의 자발적인 출연으로 기금 1억 원의 교내 한의학연구소를 만드셨다. 한의학 분야의 연구비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 취지와 규모에 대해 학교에서는 대대적으로 축하 격려하였다. 그러나 뜻밖에 동아일보에 투서가 들어가 사회면에 졸업생 강제 모금이라는 식으로 기사가 나갔다. 사회문제화되고 연구소 설립이 무산되었다. 결국, 그 책임을 지고 당시 고 이문재 부속한방병원장과 학과장인 교수님께서 사직하셨다. 두 분은 서울고 동문이다. 그러자 이에 분개한 학생들이 학생회 중심으로 장기간 수업 거부와 시험 백지 동맹 등 학내 데모를 지속하였다. 그러던 중 후배 한 명이 학교 측에 조교가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제보를 함으로써 필자는 그다음 날로 사유서 한 장 쓰고 조교직에서 쫓겨났다. 무엇보다 그 연구소가 정식 출범하고 교수님께서 그 연구소를 주도하셨다면 우리 한의계가 지금처럼 힘들게 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 교수님께서는 강남에서 개원하시다가 동국대학교 한의대학장으로 부임하여 몇 년간 교수로 봉직하셨다. 여전히 필자와 교수님과의 관계는 계속되었다. 87년 겨울, 필자를 경희대 교수로 들여보내기 위해 교수님께서는 도올 김용옥 선생님과 함께 강남의 카페에서 안규석 교수를 만나 설득했었다. 필자가 경희대로 돌아오면 교수님의 복귀가 어려워진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직접 그 해명을 하시면서 필자에게 길을 내주셨다. 그래서 이듬해 필자는 모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의학 발전을 위한 깊고 크신 뜻을 받드는 것이 도리 94년이다. 한약 분쟁의 성과로 보건사회부 산하에 한국한의학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소장 공모가 났었다. 필자는 당연히 교수님께서 최적임자라 생각하고 면접하는 날, 과천의 보사부에 직접 차를 운전하여 모시고 갔었다. 그러나 당시 동국대 학장 신분이시라 한의학연구소 이사장이던 고 조영식 경희대 총장께서는 경희대 출신이어야 한다는 주변의 강권에 밀려 다른 결정을 하셨다. 조 총장님께서는 교수님의 주례를 서셨고 또 연구소 설립 추진 등 평소 그 능력과 인품을 잘 알고 계셨지만 경희한의대 보직자들의 요구가 워낙 거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1년 필자가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인사드리면서 “이제서야 恨을 풀어드린다”고 하였더니 “잘 되었다”고 하시면서 너무 기뻐하셨다. 그 후 한의연에 방문하셔서 체질 진단도 하시고 여러 번 감격해 하셨다. 만약에 교수님께서 초대 소장으로 부임하셨다면 오늘의 한의연이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96년이다. 교수님은 제자들의 간청과 추대로 제30대 대한한의사협회장이 되셨다. 당시 고려대학교가 홍일식 총장 주도로 한의과대학 설립을 추진했었다. 교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협회 측과 고려대 측이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상당히 진척되었는데, 마지막에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때 고려대학교에서 한의대를 만들었다면 한국 한의대의 위상과 수준이 지금과는 꽤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에는 필자가 단국대로 옮기고 나서 교수로 모시려 하였는데, 학교 측의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수님께서는 수십 년간 양도락을 이용하여 진단하고 약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처방하면서 진료하셨다. 학교로 모셔 교수님의 임상 기록과 내용을 정리하려 하였는데 아쉽다. 10월 13일, 육신의 부친은 죽음에서 생환하셨지만, 정신적인 부친은 아주 먼 길을 떠나셨다. 교수님을 떠나 보내드리면서 더불어 크게 아쉬운 지나간 일들이 오늘의 한의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실감한다. 가셨지만 한의학 발전을 위한 깊고 크신 뜻을 받드는 것이 제자의 도리라 생각한다. 교수님, 편히 쉬세요. 이제 저희 후학들이 남기신 뜻과 노력을 이어 다하겠습니다. 최승훈 (단국대학교 교수/한약진흥재단 이사장) -
“한의과대학관 개관 계기로 한의대 교육 개편 박차 가할 것”이재동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장 한의학은 몸 치료에 ‘강점’… 질환 치료와 병행해 한의학만의 장점 부각시켜야 몸 치료와 질환 치료 매칭시키는 능력 키우는 임상교육 강화에 초점 맞춰 ‘경희한의노벨의학프로젝트’, ‘통일민족의학센터’ 등 비전 실현 위한 사업 제시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 오는 31일 새롭게 마련된 한의과대학관 개관식을 갖고, 향후 비전 선포를 통해 미래 한의학 발전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임을 대내외로 천명할 예정이다. 이재동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장은 “이번 한의과대학관 개관이 있기까지 동문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지원과 협력,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를 계기로 한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외적인 인프라가 갖춰진 만큼 앞으로는 내적인 인프라 구축에 전력을 다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즉 이 학장은 이번 한의과대학관 개관이라는 상징적인 행사를 통해 최근 한의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의과대학 교육에 대한 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움직임들이 여타 한의과대학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이어져 한의학 교육과정 개편에 있어 경희대 한의과대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임상역량 중심으로 교육과정 개편 추진 이 학장은 “최근 들어 의학교육의 패러다임이 임상역량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의과대학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반면 한의과대학은 제2주기 한의학교육평가원 인증기준에 비로소 반영되는 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많은 교수들이 교육과정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적극적인 동참 아래 진행되는 과정에 있다”며 “현재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는 시뮬레이션센터를 설립해 PBL, CPX, OSCE 등 임상역량을 강화하고 평가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시도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돼 조만간 교육에 적용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학장은 한의학이 미래에 현재보다 더 큰 의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질환 치료는 물론 한의학이 강점을 지니고 있는 ‘몸 치료’에 대한 교육을 명확히 해야 하며, 이에 대한 임상실습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학이 지금까지 우수한 의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는 서양의학과는 차별화된 ‘몸 치료’가 있었기 때문으로, 물론 현대의학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KCD질병명에 따른 질환에 대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한의학의 강점인 ‘몸 치료’를 적용해 나간다면 더욱 우수한 의학으로 발전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한의계에서도 1차 의료에서의 한의사 역할 강화를 위해 미국의 정골의사(DO)를 모델로 삼고 있다. DO의 주장을 들어보면 ‘질환 치료와 자연치유력을 높일 수 있는 몸의 힐링파워를 높여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한의학과 맥을 같이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DO는 수기치료만 활용하는 반면 한의학에서는 이미 정신기혈이나 장부의 기능 및 문제 발생시 해결법 등이 이론화돼 있으며, 다양한 치료법을 통해 임상에서 활용하고 있는 만큼 더 훌륭한 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돼 있다. 앞으로는 몸 치료에 대한 한의학적 이론 중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수 있는 것만을 정립해 학생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몸 치료와 질환 치료를 매칭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임상실습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과정 개편의 핵심이 될 것이다.” 질환 교육 앞서 명확한 한의학적 개념 정립돼야 이를 위해 본과 2학년 1학기 때까지는 몸 치료에 대한 한의학적 교육과 더불어 질환을 양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의생명과학을, 또한 2학년 2학기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질환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며, 이후 임상실습에서는 한의학적 몸 치료에 대한 관점과 질병 치료에 대한 관점을 매칭시키는, 함께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실습교육을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학장은 “한의학에는 몸을 보는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모든 이론을 교육시키다보면 학생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적어도 학부 교육 때는 이미 검증된 이론들을 중심으로 최대한 컴팩트한 핵심적인 내용으로만 강의가 진행돼야 학생들도 혼란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몸 치료를 보는 교육이 끝나면 학생들은 질환 자체를 모르더라도 최소한 몸 치료에 대한 개념, 즉 어떠한 몸의 문제를 보면 어떤 원인에서 오는 것인지, 증상은 무엇인지, 생활습관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 몸을 보는 눈이 확립되게끔 교육과정을 구성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 학장은 이어 “이러한 한의학적 개념 정립 없이 양방적인 질환을 공부한다면 한의학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도, 서양의학도 아닌 애매한 의학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한의학의 도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즉 증상이란 몸에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나타나는 하나의 신호이며, 이는 맥진, 복진, 설진, 망문문절 등을 통해 진단(변증)할 수 있다는 것이 한의학의 몸 치료에서 가진 장점이다. 즉 장부의 기능을 알고 몸을 알면 진단이 가능케 하다(몸 치료)는 점이 한의학이 중심이 돼야 하며, 이것이 바로 한의학, 한의사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재동 학장은 향후 경희대 한의과대학 미래비전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안으로 ‘경희한의노벨의학프로젝트’와 ‘통일민족의학센터’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벨의학프로젝트와 관련 이 학장은 “우수한 한의대생들에게 보다 밝은 미래비전을 제시해줘야겠다는 오랜 고민 끝에 구상하게 됐다”며 “한의학의 경우 최근의 학문 트랜드인 융·복합에 가장 적합한 학문이며, 실제 경희대에서는 물리학과 등 이과대학, 인문학 관련 대학이나 간호대학 등이 한의학과의 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몇몇 학과에는 전문과목이 개설돼 운영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경희대 ‘한의학연구소’를 ‘융합한의과학연구소’로 개칭, 적극적으로 다른 학문과의 융·복합 연구를 시도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이 학장은 “한의학은 이러한 융·복합 연구에 적합한 학문인 만큼 만약 한국 의학계에서 노벨상이 나온다면 한의학에서 나올 수 있다는 굳은 믿음 아래 이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빠르면 10년, 늦어도 30년 안에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될 수 있도록 세계 유수 의과대학에 버금가는 교육과정과 함께 거기에 맞는 연구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 경희한의대 동문이 참여하는 노벨의학프로젝트 추진 이 학장은 이어 “노벨의학프로젝트는 단순히 재직교수나 학부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경희대 한의과대학의 동문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함께 독려할 계획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URP 학생연구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나갈 계획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졸업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모든 학생들이 SCI급 논문 1편 이상은 발표하는 것”이라며 “논문 작성에 어려움이 있는 임상개원가 동문들을 학생들과 연계시켜 SCI급 논문을 작성해 발표하도록 하고, 연구에 참여한 동문들에게는 논문 내용이 들어간 감사패 등을 수여해 노벨의학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긍지를 심어주고,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연구소스를 제공하는 등 상호 윈-윈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경희대 한의대 전체가 참여하는 노벨의학프로젝트가 될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통일민족의학센터의 경우에는 현재 ‘남북 화합’이라는 현 시대의 트랜드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남북 교류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남북간 한의학에 대한 △교육 △연구 △산업화 등에 대한 활발한 교류를 통해 남북 화합은 물론 국가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경희대 한의과대학은 한의과대학관 개관을 기념해 내달 1일에는 ‘One Giant Leap for Human Health: Convergence of Korean Medicine’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메모리얼 슬로언 캐터링 암병원 Gary E. Deng 교수 등 국제적인 암 연구자를 초청해 인류의 최대의 난제의 암 극복에 대한 한의학적 최신 지견 등을 공유하는 한편 한의학의 역할을 모색할 예정이다. -
밤비 내리던 도쿄최승훈 한약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교수 “IST를 거쳐 전통의학이 ICD-11에 편입되면서 세계 의학은 바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Nature’는 1869년 영국에서 창간된 이래 전 세계 과학 분야에서의 중요한 진전과 성과를 소개하고 있는 최고 학술지이다. ‘Science’와 더불어 impact factor(IF)가 무려 40에 이른다. 1953년에는 James Watson과 Francis Crick의 DNA 구조에 관한 ‘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가 실리기도 했었다. 9월 27일 자 Nature 홈페이지 메인에 필자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글이 실렸다<사진 참조>. 내년 5월 세계보건총회 (World Health Assembly)에서 ICD-11이 통과될 예정이고, 무엇보다도 그 26章(Chapter 26)에 전통의학이 자리잡게 되는데, 그 프로젝트를 필자가 처음 기획하고 진행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로부터 인정받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보람이자 기쁨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필자의 비전은 일관되게 한의학의 세계화였고, 이제 그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8월 중순부터 한 달여 Nature의 아태지역 담당자와 인터뷰를 했었다. WHO에 근무하면서 2004년에 시작했던 ‘WHO International Standard Terminologies on Traditional Medicine in the Western Pacific Region (IST)’ 작업이 15년만에 ICD-11로 열매를 맺는다. IST에서 ICD-11에 이르는 과정은 길고도 험했다. 시작하면서 전통의학 표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고, 또 그 과정에서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 참가국의 기대와 요구를 수용 조화시키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많은 고비가 함께했던 WHO의 전통의학 표준화 과정 WHO에서의 전통의학 표준화 과정에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최대의 위기는 2006년 6월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IST를 근간으로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Traditional Medicine (ICTM)을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ICD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기대로 열렸던 서울 회의 무렵이다. 이미 세 차례의 WHO 회의 결과로 만든 IST 초안을 영어권 전문가들이 3차례에 걸쳐 리뷰를 거의 마칠 무렵이었다. 당시 서울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게이오대학의 와타나베 겐지 교수가 일본의 Japan Liaison of Oriental Medicine (JLOM)에서 IST를 거부하기로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당시 IST작업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던 쇼화의대의 도리이츠까 가쓰오 교수는 그 책임을 물어 일본 동양의학회에서 제명당했으며, 앞으로 일본은 IST를 포함한 WHO의 표준화 작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2003년 WHO에서 필자가 처음으로 전통의학 표준화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일본은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에 대한 우려를 줄곧 해왔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WHO의 전통의학 표준화 작업에 대응하고 협력하기 위해 일본 국내에서 전통의학에 관련된 5개 학회가 연대하는 JLOM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대체로 WHO 회의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젊고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영어가 가능하다. 반면에 영어가 가능하지 않아 WHO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사들은 대개 보수적 폐쇄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당시 JLOM 내의 이시가와 도모아키 박사를 중심으로 원로 보수 진영에서 진보적 성향의 전문가들에 대해 대대적인 비판과 함께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우여곡절 끝 WHO 전통의학 표준화 작업에 일본 동참 WHO 전통의학 표준화를 주관했던 필자로서는 충격과 당혹감에 한동안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서태평양지역에서 가장 많은 분담금을 지원하는 일본이 뒤로 나자빠지면 지난 3년간 WHO에서 일했던 모든 작업이 물거품 된다. 게다가 당시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장도 일본 출신이었다. 와타나베 교수를 통해 조만간 도쿄의 동양의학회를 방문하고 사태를 주도한 동양의학회 임원들과 만나자고 제안했다. 2006년 8월 8일 도쿄에 도착해 역 근처 동양의학회 사무실에 4시 30분경 도착했다. 평소보다 무거운 분위기가 입구에서부터 전해진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동양의학회 이시노 쇼고 회장을 위시해서 16명의 인사가 포진하고 있었다. 또 영어-일어 전문통역사도 배석했다. 영어가 안되는 보수 진영에서 직접 일어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자 함이었다. 또 테이블 위에는 필자가 지난 3년 동안 WHO에서 했던 작업을 분석한 자료가 쌓여있었다. 필자도 제대로 다 정리 분석하지 못했던 자료들이다. 그리고 벽에 걸린 모니터에는 그 자료가 비쳐지고 있었다. 내심 놀랍고 당황스럽다. 바로 16:1 담판이 시작되었고, 회의는 중간에 도시락으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무려 11시 반까지 계속됐다. 마치 적진에서 일본을 상대로 홀로 독립운동을 하는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보수 원로들이 장황하고도 신랄하게 쏟아놓는 비판을 통역사의 난감한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대로 조용히 다 듣고 나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좋다. 당신들이 그동안 함께 노력해서 만든 WHO IST를 거부한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신들이 지금 이렇게 거부하면 마치 고양이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꼴이 될 것이다. 지금 중국측에서 독자적으로 국제 전통의학 표준용어를 만들고 있는데, 지금 내가 계속해서 그들을 견제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들의 작업이 중단되면 결국 그들이 만든 표준안만 남게 된다. 그런 상황을 당신들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제 당신들의 현명한 판단만이 남았다”라고 했다. 그러자 잠시 그들끼리 숙의 시간을 거친 다음, “알았다. 당신의 의견을 수용하겠으니 3개월 더 검토할 기한을 달라”고 요청해왔다. 최대 위기를 넘어가고 있는 순간이다. 일본은 참여 후 마무리 단계까지 깔끔하고 성실히 협조 열두 시가 다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그날 밤 도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호텔 방에 누워 귓가에 울리는 창밖 빗소리는 속삭이듯 다정하게 들렸다. 불면의 밤을 넘어 도쿄의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편히 잠 잘 수 있었다. 이듬해 WHO에서 IST가 출간되자 JLOM은 도쿄에서 기자발표회와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베풀어 주었다. 일본측은 대부분의 표준화 작업에서 처음에는 다소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지만 일단 시작해서 진행되면 마무리 단계까지 깔끔하고도 성실하게 협조해주었다. 그렇게 중대 고비를 넘긴 IST는 ICTM으로 진화되면서 내년 ICD-11의 26장에 실리게 된다. 현재 26장에 실릴 것으로 알려진 증(證)이 실제 임상을 충분히 받쳐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앞으로도 적지 않은 수정과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전통의학이 세계 주류의학의 트랙에 올랐고, 그렇게 전 인류의 건강을 위해 이바지할 것이다. Nature 담당자가 마지막 메일에서 필자의 “It will definitely change the medicine around the world”라는 문장에서 medicine 앞의 the를 빼도 좋겠냐고 물어왔다. 영어 정관사 문제는 언제나 간단치 않다. “Sure.” 그는 그 문장으로 중간 헤드라인을 잡았다. IST를 거쳐 전통의학이 ICD-11에 편입되면서 세계 의학은 바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
“한의계·의계, 열린 마음으로 난임 치료해야”김동일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병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오는 10일 제13회 임산부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된 김동일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병원장에게 소감과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한의신문=민보영 기자] Q. 제13회 임산부의 날에 장관 표창을 받게 됐다. A.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한의계의 노력을 격려하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고, 저보다 더 노력하는 분들이 미처 부각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 송구한 마음이다. 특히 한의과대학의 어려운 현실에서 국가와 임상 한의사들이 원하는 근거들을 충분히 생성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늘 마음이 편하지 않다. Q. 현재 하고 있는 난임 관련 연구는. A. 한의 난임 치료의 근거를 확인하는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환자 치료는 모두 끝났고 일부 환자들을 관찰 중이다. 작년에 이루어진 경기도한의사회의 난임치료 사업 결과를 분석했으며 올해 있는 서울시한의사회의 사업 결과를 분석할 예정이다. 갈수록 한의치료를 희망하는 난임 환자들이 늘고는 있지만 보조생식술이 반복된 환자들이 많고, 환자의 연령 역시 증가하는 추세라 한의 단독 치료와 보조생식술 시술시의 협진 치료, 난임 예방사업 등 현실에 맞는 방안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Q. 올 1월 난임 치료를 위한 착상 개선용 한의 난임치료 처방 특허를 획득했다. A. 해당 특허인 '배란착상방'은 원래 반복유산 및 절박유산 치료제로 활용됐던 '수태환(壽胎丸)'에 약물을 가미해 구성, 창방한 처방이다. 난임 환자, 반복 착상 실패 환자 등에 사용했을 때 일정한 효과가 있어 관련 기전을 규명하고 특허 출원했다. 임신은 난자의 질, 정자의 질, 난소의 내분비 상태, 자궁내막 환경 등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나타낸다. 배란착상방은 배란과 난자의 질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자궁내막 환경과 내분비 상태를 조절하는데 유효하다. 따라서 난자의 질, 배아 등급 등에 특별한 이상 없이 착상 실패가 반복될 경우에 더욱 효과적인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Q. 한의난임치료가 갖는 장점은. A. 한.양방 두 영역에서 역할이 좀 다른 면이 있다. 한의치료는 배우자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치료 과정에서 부부관계를 개선시켜야만 하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배란과 수태의 과정에 관여되는 생리기능을 개선시키는 측면도 있다. 이런 면은 장점이겠지만 부부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나 한의 치료로 개선할 수 없는 배우자 요인이 있는 경우, 또한 난관폐색 등 자연임신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한의 치료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은 갈수록 이런 대상자가 많아지는 추세라 예방과 협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의계와 의료계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난임 환자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Q.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등 앞으로의 난임 관련 활동 계획은. A. 2010년 한의사협회 지원으로 제가 주관해 개발했지만 이후 개정되지 못했다. 남성 난임에 대한 지침 역시 개발된 적이 없다. 여성 난임에 대한 개정작업과 함께 남성 난임에 대한 개발 작업이 시작될 필요가 있다. Q. 난임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임신과 출산 그 자체보다는, 모성 건강 증진과 부부 사이의 애정을 강화시키는 노력을 하면서 적절한 진단결과에 따라 치료를 받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일차적으로 부부생활과 일반 건강 증진에 대한 생활습관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부적절한 의료정보보다는 난임 전문가들의 판단을 신뢰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주도적이든, 보조적이든 한의 치료 역시 유효한 치료법임을 설명드리고 싶다. -
뉴욕에서 찾아본 통합의료와 현대 한의학안승현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박지혁 원장 인터뷰 다양성의 도시 뉴욕 맨하탄. 그곳에서 삼년째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며 그가 생각하는 통합의료모델을 그려가는 사람이 있다. 박지혁 원장은 동국대 한의대 졸업 직후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한 뒤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에서 한의학 석사를 취득했다. 경희성신한의원 진료원장, 서초 함소아한의원 진료원장 등을 거쳐, 2012년 도미해 자생한방병원 뉴저지 분원장을 역임한 뒤, 2015년에 뉴욕 맨하탄에서 Dr. Jihyuk Park Clinic을 개원했다. 필자는 이번 여름방학 중 그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1주간 특성화 실습을 진행했다. 그가 생각하는 통합의료, 한의대 교육과 한의계의 혁신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Q. 원장님께서는 한국에서 한의사 생활을 하시다가 미국으로 넘어오셨는데요, 미국에서 한의사 생활을 하시면서 느꼈던 점은 어떤 것들인가요? 그리고 특별히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 맨하탄에서 진료를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A. 한의사는 한국에서 의료인으로서 위상이 높다고 볼 수 있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미국인들이 알아서 그런 것을 인지해 주길 바랄 순 없어요. 여기서는 우리 한의사가 스스로의 능력을 어필해야 합니다. 미국 의사들과 관계에서도 한국의 한의사가 충분한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doctor 레벨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전달되어야 하고요. 미국에서 한의사가 다른 의료인들과 소통하며 진료해야 할 때 우리만 이해하는 한의학 용어를 사용한다면 의료계 사회에서 우리들의 위상은 고지식한 별종처럼 외롭게 인식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침 치료나 한약의 효과에 대해 설명할 때도 한의사들만 이해할 만한 용어로 설명하는 건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설명해 버리면 다른 의료인들하고 소통할 수가 없어요. 또한 무엇보다도 ‘민족의학’, ‘한의학적’, ‘한방원리’ 등 한의학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며 존재의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한의학의 보건의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다른 의료인 및 환자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한의학, 한의대 교육과정에 관하여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요, 저도 미국에서 제 오피니언을 한국에 전해 한국 한의계의 변화를 촉진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특히 극단적인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도시인 뉴욕 맨하탄에서 진료를 하며 듣고 본 다양한 경험을 한국에 알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Q. 맨하탄에서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시면서 주위의 다양한 직역의 의료인들과 협업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원장님만의 철학이나 노하우 같은 게 있다면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제가 추구하는 로컬 의료기관 세팅은 의료인들간의 협력과 소통을 강화하는 시스템이에요. 지금 한국의 일부 병원에서는 의사와 한의사가 환자를 단순 공유하여 따로 각자 알아서 진료하는 동서의 협진만 주로 보이고 있지, 어떻게 보면 통합의료 시스템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편이죠. 한국에서는 한의사와 의사 직역간의 불신이 깊어서 협력에 지장이 막대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다른 의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생리학적 혹은 해부학적 지식을 통해 환자에 대한 침 치료를 설명합니다. 그러면 타 의료 직역들도 저의 치료방식에 대해 접근하기가 쉽고 또 신뢰가 생기겠죠. 보험으로도 커버가 되고 치료효과가 좋아서 환자의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야 아무 문제가 없지요.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협업을 할 때는, 의료인 각자의 능력으로 독립적인 진료를 시행하되 합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교집합 부분에서만 협력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래야 여러 종류의 갈등을 피할 수 있어요. 다른 의료인과 같이 비즈니스를 할 때에도 최대한 간단한 방식이 좋습니다. 또한 진료과목이나 치료기술 등 내가 잘하는 것이 확실해야만 해요. 그래야 그 특기를 위주로 다른 의료인과 협력할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만약 진료 실력도 없이 사교적인 관계에만 치중한다면 결국 제대로 된 협력의 구조가 성립할 수 없어요. 다시 말하자면, 통합의료 시스템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각 의료인은 각자의 특징이나 장점이 확실해야 합니다. 능력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협력을 할 수 있는 의미있는 교집합도 파악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Q. 저는 미국에 와서 3주간 버지니아 통합의학대학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그 학교에서 ‘DAOM( Doctor of Acupuncture and Oriental Medicine)’ 라고 하는 동양의학 박사과정 수업도 참관을 했습니다. DAOM 과정에 대한 원장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저는 Integrative medicine 을 지향하는 DAOM 과정에 대해 올바른 교육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acupuncture school에서는 주로 TCM 중의학 위주로만 가르치는 경향이 있죠. 그러다가 최근에 DAOM 이라는 박사과정이 여러 학교에 생기면서 새로운 통합의학적 교육이 도입되기 시작했어요. DAOM 과정을 보면 기존 임상 중의학의 심화내용 외에도 bio medicine 과목을 함께 가르치죠. 세계 의학계에서 통합의학 분야가 급성장하고 있는데, 한국의 한의대에서는 부산대 한의전을 제외하고는 통합의학교실이 개설되지 않는 것을 보면 한의학 교육이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상연구를 통해 효과가 검증된 전통 및 자연 치료법을 활용하는 열린 마음의 의과학, 동양 전통의학과 서양 현대의학의 만남, 환자의 body(몸) – mind(마음) – spirit(영성) 을 모두 고려하는 전인적인 치료 의학 등이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통합의학의 철학입니다. 현대화, 과학화, 세계화를 지향하는 한국 한의학의 미래를 예상해 볼 때 이러한 미국 통합의학의 현재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보면 미국의 ‘Acupuncture school’이 전반적으로 그다지 내실이 없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DAOM 이라는 비교적 최근의 미국 박사과정에서 통합의학을 추구하는 것이 한국의 한의대에 알려진다면 한의대 교육이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변화하는 데에도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의 한의계는 좁은 사회에서 온갖 관계들이 서로 엮여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스스로 혁신을 이루어 내기가 너무 힘들지 않나 싶어요. Q. 한국 한의대의 교육이나 한의학 혁신에 대해서 언급을 해주셨는데요, 거기에 대해서 부연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일단은 한의사들의 합리적인 사고와 과학적 태도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한의대 침구의학 과목에서도 생리학과 해부학을 기반으로 하는 Medical Acupuncture 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면 좋지 않을까요? 한국 고유의 침법으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사암침법에 대한 치료 효과 역시 과학적 태도로 합리적인 검증을 해 실용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상연구에서 사암침법에 적합한 합리적인 효과 검증방법을 고안한다던가, 사암침법에서 중시하는 이론이 생리학적으로 그 메커니즘을 밝힐 수 있는지 등에 대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한의학이 과학화 되어야 한다는 것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한의사가 과학적 태도를 더 가져야 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의 혁신은 한의학의 의과학적 보편성을 강조하는 기반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봅니다. 사상체질의학을 예로 들자면, 기존에는 사상인 체질변증이 한국 고유의 한의학이며 그 우수성을 밝혀내자는 식으로 과거지향적인 시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유전학의 과학적 성과를 한의과학에서도 다루어 이것이 인체 생리 병리의 패턴을 이루는 것을 관찰하여 체질의학이 개인맞춤의학으로 발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의 한의대 교육은 이론적인 것에 너무 치중하여 정작 임상현장의 실용적인 내용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침 치료시에 위생과 소독을 철저히 하는 CNT(Clean Needle Technique)를 얼마나 준수하는지에 관한 것들이 그렇죠. 한의대 교육 현실에서는 한의사 직무의 이런 실용적인 부분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한의대 졸업 직후 한의사들이 바로 투입될 1차 의료현장에서 꼭 필요한 진단 및 치료 술기 등이 한의대 실습 교육에서 충분히 다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모든 한의학과대학에 통합의학교실이 설치돼 이를 한의계 혁신의 구심점으로 삼아 한의사들이 의과학계 및 다른 의료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면 좋겠습니다. 통합의학교실은 현재 한의협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한 의료통합에 대한 정책 연구와 제안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부산대 한의전에도 통합의학 교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런 면에서 저는 부산대에 기대가 큰 편이에요. 사실 통합의료와 통합의학의 개념은 좀 다릅니다. 환자를 중심으로 의료진과 치료기술 등 모든 진료요소를 구성하는 것이 통합의료이며, 여기에 사용되는 검증된 임상적 의과학적 지식을 통합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합종양학은 미국에서 제일 활발한 통합의학 분야 중 하나이고, 미국 종합병원 암센터 급에서는 통합의료 시스템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편입니다. 저도 미국에 오기 전부터 통합종양학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고 그러한 관심이 미국에 오게 된 동기가 되었죠. 시간이 흘러 지금 저는 미국 통합의료 시스템에 대한 파악이 끝났으며, 각 환자의 Narrative 를 통해 환자중심적 진료를 구성하고 Comprehensive Medicine (종합의학) 적으로 의료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으로 관심이 확장되었습니다. 지금의 한의진료는 단순히 동서협진을 촉구하는 것 이상의 통합의료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한의사 자체가 21세기 진료환경에 걸맞는 역량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데, 한의학은 현대에 강조되고 있는 만성질환진료와 건강관리 등 1차 의료에 적합한 면이 있어서 유리하죠. 또한 침과 한약 등 대표적인 한의 치료기술을 선진화 하자면, 침은 미국의 Medical Acupuncture 와 CNT 를 도입하거나, 약은 중국의 중성약, 대만이나 일본의 한약제제 등을 모티브로 하여 제약산업의 활성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한국 한의대의 WDMS (세계의학교육기관목록) 재등재 이슈가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하게 교육 개혁을 드라이브하고 있습니다. 한의대는 한국의 의학교육기관으로서 세계 의학교육의 표준을 준수해 명실상부한 physician 양성기관으로 정립되고 인정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제는 양방의 대척점에서 한의학적 원리를 고수하는 등 한의학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포지셔닝으로는 세계 보건의료계에서 고립을 자초할 뿐 미래가 없습니다. 전인적 관점의 의학, 환자중심적 치유의학, 자연친화적 예방과 섭생, 천연물 의약의 사용 등이 예로부터 한의학을 구성해 온 보편적인 보건의료적 가치가 있는 특징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한의사가 배우고 진료하는 내용이 곧 현대 한의학입니다. 현재 한의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과 한의사가 행하고 있는 한의진료의 측면에서, 한의사는 임상진료의 기본이 되는 의과학을 충분히 배운 physician 즉 의사 직종이고 한의사가 사용하는 한의학도 의학적, 보건학적 보편성이 있다는 것을 세계인들에게 합리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상태를 ‘세계 속의 한의학’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
레이저침·운동 병행 치료, 무릎 관절염 통증 및 환자 삶의 질 개선[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KMCRIC)의 '근거중심한의약 데이터베이스' 논문 중 주목할 만한 임상논문을 소개한다. ◇KMCRIC 제목 무릎 골관절염에 LLLT 경혈 조사의 유효성에 대한 RCT ◇서지사항 Al Rashoud AS, Abboud RJ, Wang W, Wigderowitz C. Efficacy of low-level laser therapy applied at acupuncture points in knee osteoarthritis: a randomised double-blind comparative trial. Physiotherapy. 2014 Sep;100(3):242-8. ◇연구설계 randomised, double blind, comparative trial ◇연구목적 무릎 골관절염 환자에게 LLLT 경혈 조사 치료와 운동 및 조언이 결합한 치료의 효과를 평가 ◇질환 및 연구대상 American College of Rheumatology criteria에 의해 무릎 골관절염으로 진단받은 환자 49명 중 레이저침 그룹 26명, placebo 레이저침 그룹 23명 ◇시험군중재 · 앙와위, 무릎 뒤를 받친 상태에서 환측 슬관절 주위 5개 혈자리에 830nm 파장 GaAlAs 레이저를 30mW 출력 직경 0.28cm² 프로브를 이용하여 피부에 밀착된 상태로 조사함. · 각 경혈당 40초씩 1.2J/point로 총 6J을 1회 치료에 조사함. · 에너지밀도는 4J/cm² · 총 치료횟수는 9회 · 레이저 조사에 추가로 일상적인 슬관절염 관리방법 조언과 매일 5회 하지 직거상 운동을 할 것을 지도함. ◇대조군중재 시험군과 동일한 방식으로 레이저 프로브를 부착하고 레이저는 켜지 않은 상태에서 붉은 빛만 나오게 함. ◇평가지표 · 동작 중 통증 VAS의 변화 (10cm 통증자를 이용), Saudi Knee Function Scale (SKFS): · 5점 리커트척도를 사용하는 28문항을 자가설문지로 8개의 통증, 2개의 마목감, 12개의 운동기능, 3개의 사회활동, 3개의 정신기능 영역 문항으로 구성됨. ◇주요결과 · 통증 VAS 점수가 레이저침군에서는 치료 전에 비해 마지막 시술 직후, 시술 종료 후 6주, 6개월까지 통계적·임상적으로 유의하게 낮게 나타났다. · placebo군에서는 마지막 시술 직후, 6주까지는 통계적으로 낮아졌으나 6개월 시점에서는 유의성이 없었다. · 군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시술 후 6주, 6개월에 있었다. · SKFS 점수에서 두 군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변화가 있었다. · 군간에는 레이저군에서 마지막 시술 직후 및 6개월 후에 placebo군에 비해 유의하게 더 큰 호전 변화를 보였다. ◇저자결론 경혈에 LLLT를 시행하면서 운동과 조언을 하는 것은 무릎 골관절염 환자의 통증 경감과 삶의 질 개선에 효과적이다. ◇KMCRIC 비평 본 연구는 반도체 레이저의 일종인 GaAlAs 레이저를 경혈 자극 도구로 사용하여 LLLT의 진통 및 염증 치료 효과를 확인한 연구이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슬관절염에 LLLT 경혈 조사가 추가적인 통증 경감에 효과적임을 보고하였다. 연구 기술과정에서 WALT에서 제시한 임상연구를 위한 보고 작성 기준에 의거하여, 시술 과정, 파장, 평균출력, 치료시간, 에너지용량, 적용 범위, 총에너지양의 레이저 parameter를 충실히 기술하였다. 그러나 자극지점의 명칭 (경혈명)과 치료주기에 대한 기술이 없으며, 저자들이 기술한 바와 같이 WALT에서 제시한 슬부 골관절염의 적정 레이저 용량인 point당 최소 4J 이상 사용, 회당 총 12J 사용 기준에 미치지 못한 용량을 사용한 데 대한 타당한 설명이 없다. LLLT의 경우 biphasic dose effect로 인해 적정 용량에 못 미치거나 과도한 용량을 사용한 경우 최적의 치료 효과를 거두지 못하므로, 본 연구에서 용량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 ◇참고문헌 [1] World Association for Laser Therapy. WALT recommendations. 2010. (Accessed: September 6 2017) http://waltza.co.za/documentation-links/recommendations/ [2] Huang YY, Chen AC, Carroll JD, Hamblin MR. Biphasic dose response in low level light therapy. Dose Response. 2009 Sep 1;7(4):358-83. doi: 10.2203/dose-response.09-027.Hamblin. https://www.ncbi.nlm.nih.gov/pubmed/20011653 [3] Huang YY, Sharma SK, Carroll J, Hamblin MR. Biphasic dose response in low level light therapy - an update. Dose Response. 2011;9(4):602-18. doi: 10.2203/dose-response.11-009.Hamblin. https://www.ncbi.nlm.nih.gov/pubmed/22461763 ◇KMCRIC 링크 http://www.kmcric.com/database/ebm_result_detail?cat=RCT&access=R201311007 -
“난임에 강점 있는 한의난임치료, 국가 지원 필요”서정욱 나음누리한의원 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지난 10일 제13회 임산부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된 서정욱 나음누리한의원 원장에게 소감과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Q. 제13회 임산부의 날에 장관 표창을 받게 됐다. A. 우리나라의 2018년 출산율은 현재 1.0명대가 붕괴될 정도로 심각하다. 다들 인구절벽의 위기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여전히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한의계도 이러한 문제해결에 동참하고 있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 이는 한의사 개인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한의 난임 치료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저희 충남한의사회 회원은 물론이거니와 각 지역에서, 학계에서 열정과 희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의사 여러분의 노고를 국가에서 치하한 것으로 생각한다. Q. 현재 진행 중인 난임 관련 사업은. A. 충남한의사회는 2013년부터 출산율 감소현상에 한의계가 기여할 방안으로 한의 난임치료 사업을 기획해 2015년부터 3년간 천안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전개, 그 효과를 입증했다. 지난 2017년 9월에는 한의 난임치료 지원을 명시한 충청남도 조례 개정을 이끌어 냈다. 그 결과 2018년부터 충청남도 전역에서 한의 난임치료 사업을 실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Q. 충남한의사회에서 난임치료사업을 이끌며 얻은 성과는. A. 그간 국가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 보조생식술 지원을 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을 높이지는 못 했다. 저는 한의사의 한 사람으로 우리가 잘 해왔었고, 잘 할 수 있으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치료의 한 부분으로 난임 치료를 생각해다. 그래서 천안시 한의사회 이남훈 회장님과 충남 한의사회 한덕희 회장님의 지원 하에 한의 난임치료 사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천안지역의 3년간 사업의 평균 임신 성공률은 25%을 웃도는 수준을 기록하게 됐다. 이 같은 결과 이면에 아이 갖기를 소망하는 부부의 눈물과 고통에 희망을 드리고, 임신과 출산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다. 출산율 저조는 의학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보육과 주거, 교육 환경 개선이라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고 있는 난임부부에게는 의료인으로서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이런 지원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Q.충남도 차원의 지원이 지역 난임 부부의 한의난임치료 참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A. 충남한의사회는 천안지역에서 2000여 만원의 소규모 시범사업을 실시하면서부터 이 사업을 토대로 충남지역으로, 더 나아가 국가적인 사업으로의 확대를 목표로 기획하고 진행해 왔다. 지역사업만을 위한 사업은 지역사업으로 그치기 쉽습니다. 단체장의 관심에 따라 언제든지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국가 차원의 지원이다. 국가지원 사업 내지는 건강보험 진입이라는 목표를 위해 충남한의사회는 물론이거니와 현재 중앙회 차원에서 진행되는 소위원회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난임 관련 활동 계획은. A. 우선 저 개인적으로는 충남지역의 난임치료사업이 안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진행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저희 뿐 아니라 부산, 익산, 경기 등 이제는 수많은 지자체에서 한의 난임치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출산율 저조라는 국가적인 문제 해결의 흐름에 우리 의학의 장점이 이해되고 사회적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에 각 지역의 열성적인 한의사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지한 바와 같이 이러한 부분은 결국 국가적인 제도화를 통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난임에 있어 한의 단독 치료 뿐 아니라 체외수정 등 보조생식술과의 결합, 만혼자의 생식 능력 보강을 위한 예방의학적 난임 치료 개념까지 한의학적 장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지만, 이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돼야 더욱 활발하고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실을 위해 각 지역의 한의사회와 중앙회, 그리고 사회단체, 정치권 등과 활발한 교류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Q. 난임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난임으로 진단 받은 환자의 대부분은 원인 불명이다. 여성은 물론 배우자인 남성에게도 특별한 원인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임신이 잘 되지 않으면 여성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난임은 부부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문제다. 난임 부부 분들은 보조생식술 등 인위적인 호르몬 치료를 생각하기에 앞서 부부 모두가 임신이 잘 될 수 있는 체내 환경을 만들고 생식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한의 치료를 먼저 고민해 보시기를 꼭 권유드린다. 임신이 잘 안되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동네 한의원에 들러 한약을 드시고 임신하여 세상의 빛을 본 아기들이 바로 지금의 난임을 호소하는 분, 그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난임은 불임이 아니다. 생활습관과 환경, 체내 불균형을 해결하면 극복 가능하다. 이는 여성, 남성이 아닌 부부가 모두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가정에 울려 퍼지는 꿈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