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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으로 나눈 마음, 오래 기억될 따뜻한 순간”[한의신문] KOMSTA(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는 1993년 한의사들이 설립한 단체로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제183차 WFK-KOMSTA 몽골 의료봉사에는 총 11명(한의사 4명·학생 단원 7명)이 참여해 몽골 울란바토르에 위치한 한-몽 친선병원에서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4일간 총 880명의 환자들이 진료소를 방문하였으며, 봉사단은 진료상담을 통한 침, 부항, 추나, 한약 과립제, 외치 연고 등 한의약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학생 단원들은 접수, 진료 보조, 처방 한약 제공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첫 해외 의료봉사, 설렘과 걱정을 안고 KOMSTA 해외 의료봉사는 평소 꼭 참여해보고 싶었던 활동 중 하나였다. 한의약 의료 서비스를 통해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배워온 한의학을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 나누고, 작은 도움이라도 보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번에 소중한 기회로 몽골 의료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설레는 마음이 컸지만, 처음 경험하는 해외 의료봉사인 만큼 환자분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함께 들었다. 언어를 넘어 마음으로 나눈 인사 진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진료소 앞에는 많은 환자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료소에 도착해 환자분들과 “Сайн байна уу(안녕하세요)”라고 서로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을 때에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보다 웃음과 친절함으로 봉사단을 대해주셨고, 차례를 지키며 질서 있게 기다려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진료가 끝난 뒤에는 “Баярлалаа(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돌아가시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비록 서로 사용하는 언어는 달랐지만, 전달하고자 했던 마음은 충분히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 더욱 감사했고, 봉사활동을 하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진료 보조를 하며 기억에 남은 순간들 진료 보조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인상 깊은 순간들이 있었다. 먼저 몽골 환자분들께서 습부항을 좋아하신다고 통역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실제로 환자분들이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치료받으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신장이나 췌장 등 장기를 언급하며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편, 스트레스로 인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분들께 원장님께서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와 같은 따뜻한 말씀을 건네시는 모습에서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씩씩하게 침 치료를 받고, 치료 후 괜찮냐는 질문에 맑은 눈으로 웃으며 대답하던 모습과 치료 후 엄마를 기다리며 함께 가위바위보를 하던 순간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분들이 한의약 치료를 잘 받으시고, 치료 후 “좋다”, “감사하다”며 밝게 웃어주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학생 단원으로서 큰 보람과 감사함을 느꼈다. 함께였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4일 이번 봉사활동이 4일간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11명의 단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의사 원장님들께서는 바쁜 진료 중에도 환자 한 분 한 분을 꼼꼼하게 살피며 맞춤 진료를 이어가셨고, 학생 단원들에게도 치료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통역사 선생님들께서 진료 내내 곁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도와주시고 환자분들과의 진료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해주셨다. 학생 단원들도 날마다 돌아가며 새로운 역할을 맡았지만, 서로 적극적으로 인수인계를 하며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지만 환자분들을 위해 한마음으로 움직였기에 880명의 환자분들을 진료하며 봉사활동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봉사를 마치며 이번 몽골 의료봉사를 통해 한의학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고, 앞으로도 내가 배운 한의학으로 많은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KOMSTA 해외 의료봉사는 환자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참여하는 활동이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분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오래 기억할 소중한 순간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어 해외 의료봉사를 고민하시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다. 소중한 경험을 함께 만들어주신 단장님, 대리님, 주임님, 한의사 원장님들, 그리고 학생 단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
마음을 잇는 따뜻한 손길, 몽골에서 배운 봉사의 의미[한의신문] 8월 6일부터 12일까지 일반 단원으로 제183차 WFK-KOMSTA 몽골 한의약해외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위치한 한몽친선병원에서 4일간 진행된 이번 봉사에서 9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진료소를 찾았다. 한의사 4명, 일반 단원 7명이 함께 현지 주민을 진료하며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걱정에서 책임감으로 국내 봉사활동이나 학교 봉사 동아리를 통한 봉사활동에는 여러 번 참여했지만 해외로 나가는 의료봉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렘도 커졌지만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또 내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도 커져만 갔다. 해가 질 무렵 도착한 현지 병원에서 정신없이 물품을 정리하고 초진 및 접수, 약재실, 진료실을 세팅했다. 현지 교육을 마친 후 숙소에서 워크북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기도 하고 어떻게 움직이고 말해야 할지를 머릿속에서 수없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진료 첫날이 다가왔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줄을 선 많은 환자들을 보았다. 언어도, 문화도 달랐음에도 한의학 치료를 받기 위해 많은 환자들이 찾아온 것에 놀라면서도 큰 책임감을 느꼈다. 콤스타 선서를 통해 이분들의 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도움과 진심을 전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없이 분주했던 진료 4일간 접수, 진료 보조, 약재실의 역할을 돌아가며 수행했다. 업무의 어려움과 정신없는 정도는 역할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역할에 적응하기 위해서 매일이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갔다. 물밀듯이 찾아오는 환자분들에 3시간가량 일어서지도 못하고 계속 초진을 보기도 했고 진료 보조를 할 때는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정말 정신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약재실은 모든 환자가 지나가는 곳이다 보니 앉으려고 하는 순간 바로 다음 환자분이 오셔서 그냥 계속 서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출국 전에 했던 걱정과는 다르게 익숙하지 않은 역할에도 수월하게 적응하고 수행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매번 달라지는 역할에 적응할 수 있도록 옆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큰 도움을 주었던 모든 단원분들과 통역사 선생님들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다. 각자 맡은 역할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바야를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해진 진심 봉사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마음의 연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과연 그 마음을 연결할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진료 마지막 날, 이 질문이 불현듯 떠올랐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 사이에서도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려운데 다른 언어를 쓴다면 얼마나 더 어려울지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바야를라.” 접수받는 곳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나에게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시던 환자분께서 손짓하시면서 건낸 한마디였다. 발음은 한글로 적힌 것과 조금 달랐지만 몽골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 모든 환자분들이 진료가 끝나고 나갈 때마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넸던 인사이기도 했다. 그 순간 언어는 다르지만, 그 한마디밖에 알아들을 수 없지만 우리가 그분들에게 드리고자 했던 마음이, 진심이 전달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치료가 끝났다는 말을 몰라서 양손으로 따봉을 날렸을 때도, 약을 건네드리면서 번역기를 이용하여 ‘하루 3번, 식후 30분, 따뜻한 물과 함께 드세요.’라는 문장을 보여드릴 때도, 아픈 곳을 몸짓으로 표현하면서 이 부위가 맞는지 다시 여쭤볼 때도, 환자분들께서 항상 보여주신 그 환한 미소가 우리의 진심이 전달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모여서 완성된 도움의 손길 단원의 대부분이 이번 봉사가 첫 해외 의료봉사였지만 첫날부터 톱니바퀴처럼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먼저 나서서 할 일을 찾고 무거운 짐이 있으면 본인이 더 들어주려는 모습, 본인의 역할이 끝났음에도 남은 역할이 있으면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는 모습, 모두가 한마음으로 환자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통해 결국 혼자였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도 함께하고 협력함으로써 큰 힘을 발휘함을 깨달았다. 이러한 협력의 힘이 이번 의료봉사가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봉사 기획부터 원활한 진료와 진행을 위해서 힘써주신 김주영 단장님과 최수연 대리님, 이승하 주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현지에서 큰 도움을 주신 문성호 원장님과 병원 관계자분들께도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환자를 위해 쉴 틈 없이 진료에 임하신 홍진호 원장님, 정재욱 선생님, 최홍욱 선생님, 박민령 선생님께도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분주한 일정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항상 옆에서 격려해주고 큰 도움을 준 일반 단원들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애써주신 통역사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봉사를 마치며 몽골에서 보냈던 일주일을 돌아보면 행복했던 순간들만 가득했던 것 같다.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많은 분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낼 수 있었던 만큼 그리움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처음에는 선한 영향력을 나누고 도움을 전하러 간 봉사였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고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이번 봉사를 통해 배우고 느낀 것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길 소망한다. -
한의학으로 전한 진심, 센베노부터 바이시테까지[한의신문] 내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출국 직전까지도 가졌던 고민이었다. 나는 한의학도도, 간호학도도 아니다. 그렇다고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어문 전공생 중 한 명이었다. 국제개발협력사업에 관심이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느낌에서 비롯되는 공헌감을 중요한 가치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껏 봉사에 임해왔고, 이번 파견 역시 그러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주변에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축하한다”와 “네가 거기서 뭐 해?”였다. 솔직히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 파견은 ‘한의학 의료봉사’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기에, 일반 단원으로서, 더군다나 유일한 비의료계열 전공자로서 나의 역할과 능력에 스스로 의구심이 든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총무 역할에 자원했다. 그리고 단원들에게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말자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출국장을 나섰다. 조금씩 그 답을 찾아가다 3시간의 비행 끝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한의사 4명과 일반 단원 7명으로 이루어진 제183차 WFK 몽골 한의약봉사단은 8월 6일부터 12일까지 7일간 울란바토르 현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보건 및 건강 증진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활동에 임했다. 전날 진료소 세팅과 현지 교육을 마치고 본격적인 진료 첫날. 병원 앞은 이미 3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였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정말 이 기간만큼은 의료진의 마음가짐으로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 첫날 진료 보조를 맡은 나는 종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초반에는 몰려드는 환자들에 정신을 놓아 재진증 배부를 잊기도 하고, 처음 만져보는 의료기구에 손이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원장님은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시며 용기를 주셨고, 통역사분을 비롯한 주변 분들도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임했다.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올 때 “센베노”(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진료를 마치고 나서는 “바야를라, 바이시테”(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를 잊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환자분들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고, 다음 날에도 병원을 방문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이후 진료일에는 접수처, 약제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진료 보조 역할을 수행하며 환자분들과 소통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점차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주변에서 많이 배려하고 도와주었기에 점차 나도 자신감을 가지고 활동에 임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능숙하게 환자를 응대하고 진료를 수행하는 나 자신을 보며 스스로가 조금은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억, 그리고 추억 셋째 날, 진료 마감 한 시간 전 방문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환자의 부항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의 실수로 피가 옷깃에 묻는 일이 발생했다. 괜찮다고는 하셨지만 마음에 걸렸던 나는 병원 문 앞까지 그분을 배웅해드렸다. 와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도와줘서 고맙다며 눈빛과 표정으로 말씀하였고, 그분이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네신 포옹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 한편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한 가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환자분들이 오랜 대기 시간에도 어느 누구 하나 불평이나 불만을 표하지 않았고, 순서를 새치기하는 일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따뜻한 눈빛과 표정으로 치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어떤 환자분들은 서툰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의료진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네기도 했고, 4일간 진료를 담당해주신 원장님께 마지막 날 선물을 건네는 훈훈한 장면도 있었다. 드리러 왔지만 오히려 받는, 마음이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봉사를 마치며 4일간의 활동을 마친 후, 총 880명의 진료 기록과 함께 우리는 몽골을 떠났다. 비록 우리는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머물다 떠나지만,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우리가 남긴 기억과 치료의 효과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국 전까지 품었던 ‘내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제는 조금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만은 아니었다. 환자를 맞이하며 건넨 “센베노”, 진료를 마치며 전한 “바야를라, 바이시테”, 그리고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건넨 작은 미소 하나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봉사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도움을 주러 간 사람인 동시에, 오히려 더 많은 마음을 받고 돌아온 사람이 되었다. 이번 몽골 파견은 나에게 ‘봉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짧은 7일이었지만,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과 포옹,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몽골에 전하고 싶었던 진심보다, 몽골에서 받은 진심이 훨씬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
뇌파를 읽고, 뇌를 훈련하다… 한의 임상에서의 실제 활용김정태 원장(제주 더아이맘한의원) 지난 편에선 뇌파의 기본 개념과 한의학적 해석 가능성, 뇌파검사 및 뉴로피드백의 임상적 의미를 살펴봤다. 이번 편에서는 실제 한의 임상에서의 뇌파검사와 뉴로피드백 활용을 소아 틱 환자 증례와 함께 살펴본다. 뇌도 훈련한다…‘자기조절력’을 높이는 뉴로피드백 최근 뉴로피드백은 정서 조절과 자기조절 능력 향상을 위한 비침습적 훈련 방법으로 연구되고 있다. 틱장애 역시 긴장과 스트레스, 각성 수준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만큼 뉴로피드백을 보조적 접근법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QEEG(정량화 뇌기능검사)는 환자의 뇌 기능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활용도가 있다. 예를 들어 검사 결과를 토대로 “현재 뇌가 과긴장 상태를 보이고 있다”, “집중을 유지하기 어려운 패턴이 관찰된다”는 식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환자의 치료에 대한 이해와 동기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방소아과 임상에서는 특히 ADHD, 틱장애, 불면증, 불안장애, 학습장애 등의 환자군에서 활용을 고려할 수 있다. 치료 전후 검사를 비교하면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 호소뿐 아니라 뇌 기능의 변화 양상을 함께 추적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의원에서 시행하는 뇌파치료인 뉴로피드백·두뇌훈련은 환자의 뇌파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목표로 설정한 뇌파 상태가 나타날 때 시각·청각적 보상을 제공하는 반복 학습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뇌가 훈련을 통해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학습하는 과정이다. 실제 임상에서는 게임이나 영상 시청 등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어 소아 환자의 치료 접근성도 비교적 높다. 필자의 임상에서는 주 1∼2회 정도의 꾸준한 반복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이때 침·한약·생활관리·두뇌훈련을 각각 분리된 치료로 보기보다는 환자의 전반적인 자기조절 능력 회복을 목표로 함께 활용하고 있다. 25번의 두뇌훈련, 틱과 뇌파에 나타난 변화 필자는 소아 틱 환자를 대상으로 뉴로피드백을 활용한 두뇌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다음은 훈련 전후 뇌기능검사 지표와 임상 증상의 변화를 함께 관찰한 두 증례다. 첫 번째 증례는 10세 남아다. 환아는 2021년 7월경 틱 증상이 발생했으며, 2022년 2월경부터 본원에서 침·한약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 후 증상이 상당 부분 호전됐으나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거나 눈·코의 알레르기성 염증이 재발할 때 틱 증상이 다시 나타나는 등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다. 이에 보호자와 상의해 2025년 9월부터 두뇌훈련을 병행했다. 2026년 3월까지 총 25회의 두뇌훈련을 시행한 뒤 뇌기능검사를 재검해 변화를 추적 관찰했다. 두뇌훈련 전후 검사 결과를 비교한 결과 세타파(θ)·알파파(α)·베타파(β)의 분포가 이전보다 정상 범위에 가까워지는 양상이 관찰됐다. 임상적으로도 틱 증상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현재 추가적인 두뇌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증례는 7세 여아다. 2024년 11월경 눈 깜빡임을 중심으로 틱이 의심되는 증상이 처음 발생했다. 이후 스트레스나 긴장이 심해지거나 눈 주변의 알레르기성 염증이 발생할 때 눈 깜빡임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2025년 7월 대학병원 안과 진료에서는 다른 특이 소견 없이 초기 틱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보호자가 뇌기능검사를 희망해 본원에서 검사를 시행했으며, 주의집중 및 각성 수준과 관련된 TBR(Theta/Beta Ratio) 지표의 상승이 관찰됐다. 이에 2025년 9월 말부터 두뇌훈련을 시작했다. 총 25회의 두뇌훈련을 시행했다. 초기 몇 차례의 훈련에서는 틱 증상에 뚜렷한 변화가 없었으나 훈련이 진행되면서 점차 발생 빈도가 감소했고, 후반부에는 틱 증상이 관찰되지 않아 치료를 종료했다. 두뇌훈련 전후 TBR을 비교한 결과 정상 범위보다 높았던 수치가 훈련 후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추적 뇌기능검사만을 기준으로 보면 추가적인 두뇌훈련을 고려할 수 있었으나, 임상적으로 틱 증상이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고 보호자도 추가 치료를 원하지 않아 현재 별도의 치료 없이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 두 증례만으로 뉴로피드백의 틱 치료 효과를 일반화하거나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임상 증상의 변화와 함께 뇌파 지표의 변화를 추적했다는 점에서 향후 임상적 활용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 생각한다. 한의사의 ‘눈’에 뇌파라는 지표를 더하다 지난 3회에 걸쳐 살펴본 것처럼 뇌파는 단순한 검사 결과를 넘어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관찰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뇌파검사만으로 특정 질환을 진단하거나 환자의 모든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QEEG에서 관찰되는 특정 패턴 역시 환자의 증상과 임상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뇌파검사는 기존의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 과정을 보완하고, 치료 전후의 변화를 추적하는 객관적 지표 가운데 하나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환자와 보호자가 현재 상태와 치료 과정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임상가는 증상의 변화와 뇌 기능 지표를 함께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에는 충분한 임상 연구와 근거 축적을 통해 어떤 환자군에서 뇌기능검사와 뉴로피드백이 유용한지, 적절한 훈련 횟수와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기존 한의치료와 병행했을 때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근거가 축적된다면 뇌기능검사와 두뇌훈련은 한의 임상에서 환자의 상태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치료 과정을 추적하는 보조적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79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고령 농민 잇단 폭염 사망, 지자체 대응 한계” “불볕에 덴 논밭... 밥상 물가까지 펄펄” “쿠팡 물류캠프 2명 폭염 속 작업 중 쓰러져” “소각장은 최고 60도 불덩이...에어컨도 너무 뜨거워 못 버텨” “살인 더위, 프로야구도 멈췄다” “42도 찜통 비닐집, 주민세 내지만 정부 지원 없어 한숨” “무더위쉼터, 숫자보다 중요한 것” “온열질환, 뇌 손상까지 부른다” “온열질환 사망자 21명, 작년 넘었다” “폭염이 재난이 될 때” “기후협정이 실패한 어느 미래” “기후위기 공론화의 선택, 국회는 외면 말아야” 8월 초, 단 하루 만에 쏟아진 폭염 관련 소식의 헤드라인들이다. 농가에서 야구장까지, 살림집에서 쉼터까지, 고온의 습격은 일상의 톱니바퀴를 일시에 멈춰 세운다. 폭염은 개별 질환을 넘어 종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환경적·의료적 재난이다. 범국가적 공론화와 국제적 협력이 시급한 이 시대의 핵심 과제임이 분명하다. BBC 기사 『Pressure on nature threatens many flowering plants with extinction』(2023년 10월)에 따르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로 전 세계 꽃식물의 45%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현대 의약품의 90%가 식물에서 유래함을 고려할 때, 식물의 급격한 멸종은 잠재적 치료제와 미래 의약품 자원의 대량 상실로 직결된다. 경향신문 기사 『기후변화 공격받는 한약 자원, 어떻게 살릴까』(2024년 11월)에서 한국한의약진흥원 이준혁 단장은 기후변화 시대를 이겨낼 한약 자원 공급 대책으로 스마트팜을 통한 재배, 환경 변화에 강인한 품종 개발, 대체 본초 개발 세 가지를 제안했다.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인삼의 국내 재배지는 향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며, 당귀는 36만 ha에서 1.5만 ha로, 천궁은 41.9만 ha에서 6.4만 ha로(2020∼2060년 전망) 재배 적지가 급감할 것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는 한약 시장이 이제 원재료의 공급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경고하는 지표다. 한겨레 기사 『약용식물도 기후변화에 멸종 위기… “세계 인구 80% 건강 위협”』(2025년 12월)에 인용된 논문 『The impact of climate change on medicinal plants and natural products: A scoping review』(Frontiers in Pharmacology, 2025년 11월)에 따르면, 파나마와 히말라야의 전통 약초는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전통의학 의존도가 높은 원주민 사회의 문화유산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 기후위기의 심화는 각국의 전통 의학 붕괴를 넘어 현대 의료 체계까지 흔들고 있다. 현대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화장품의 상당 부분이 자연의 천연물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국산 한약재의 재배지 소실, 약재 기원의 변종, 그리고 보건의료 체계 내 한의학 입지의 약화는 사실 기후위기 이전부터 한의계에 내재된 오래된 숙제였다. ‘천기(天氣)의 격노(激怒)’에 비유되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까지 더해진 이 급변의 시대에, 반만년 역사라는 시간의 축적이 과연 한의학의 존재 이유를 지켜줄 수 있을까? 전통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척결하려 했던 동아시아의 혹독한 근대화 과정을 이겨내고 오늘날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해 온 한의학은, 이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인류세: 인간의 시대』(최평순, 해나무, 2020년 9월) - 세계의 플라스틱 쓰레기 절반가량을 수입하던 중국이 2018년 1월부터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 금지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면서 재활용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 대한민국은 명백한 인류세 현장이다. 화석연료와 플라스틱을 쓰다가 이렇게 됐으니 한국 사람들은 이 상황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셈이다. - 인류세는 생물권, 수권, 암석권, 대기권 등 지구를 구성하는 여러 권역에서 인간의 활동이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음을 의미하는 용어다. - 지구의 정복자 인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인류세를 바라보는 관점은 개인과 사회의 입장을 결정한다. 『인간의 종말』(디르크 슈테펜스, 해리북스, 2021년 5월) - “부작용 없는 작용은 없다”는 의학의 명언은 생태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NASA에 따르면, 매년 800만 명 이상이 미세먼지로 인해 조기 사망한다. -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2년 제안한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기에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선언이다. - 종의 절멸이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존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브레이킹 바운더리스』(요한 록스트룀·오웬 가프니, 사이언스북스, 2022년 8월) - 팬데믹 사태를 지나며 깨달은 뜻밖의 사실은, 시장의 권능만큼이나 비상 상황에서의 정부 정책과 권능 역시 막강하다는 점이다. -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무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주관적 의견이 아닌 과학적 사실이다. -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의 식단과 소비 형태를 지구 환경의 한계에 맞게 조정하는 일이다. 『폭염살인』(제프 구델, 웅진지식하우스, 2024년 6월) - 더위가 심해질수록 지구 전체의 식량 체계가 망가질 위험도 함께 커진다. - 조만간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는 훨씬 풀기 어려운 복잡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이미 식량 생산 자체는 이미 기후변화 때문에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 더위는 지금 자연 세계의 틀을 다시 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행성 위의 질병 알고리즘까지 다시 쓰고 있다. - 더위에 따른 홍수나 가뭄 등의 기후 이변도 문제지만 말라리아, 한타 바이러스, 콜레라, 탄저병 등 수백가지 기존 전염병의 상황을 악화일로로 몰아넣고 있다. 『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제임스 후퍼, 인플루엔셜, 2025년 4월) - 정말 두려운 것은 영구동토층 깊은 곳에 얼어 있는 미지의 병원체와 곤충들이다. 지열이 오르면 이 미지의 병원균들이 깨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 열돔 현상으로 인한 이상 고온과 폭염은 온열질환자를 급증시키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 -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기록적 고온과 장기 가뭄이 산불 위험을 높이고, 이것이 산림 소실과 생태계 붕괴, 인간 건강 피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친정어머니와 두 여동생이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작년에 부분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러닝머신, 마사지 체어, 1인용 소파, 친정아버지께서 쓰시던 서예 도구와 국악기 일체, 이사 때마다 무거운 짐이 되던 편지 상자들과 학부 시절 모아둔 강의록까지 과감하게 버렸다. 필요할 것 같아서, 싸고 이쁘다는 이유로 다이소나 알리, 당근마켓과 아름다운가게 등에서 냉큼 사 들였던 그 많은 물건들이 결국 한순간에 무가치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몇 차례 분리수거를 마치고 돌아서며 자문해 본다. 이 수많은 쓰레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이사 한 번에 나는 또 지구에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것일까? 아무리 반성해도 부채감은 가시지 않는다. 환경 오염과 기후위기에는 국경이 없다. 비극의 도미노, 그 시작과 끝을 직시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인간이다. 폭염이 지나간 자리, 문득 등골이 서늘해진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국가와 지자체의 적응 정책을 체계화하기 위한 법안이 지난 8월 13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통과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중심의 현행 제도만으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폭염·가뭄 등 기후재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마련된 법안이다. 제도가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어 우리의 삶에 스며들기까지는 늘 시간이 걸리지만, 이 법만큼은 속전속결로 현실화되어 일상의 안전망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래본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23)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인공지능(AI)과 첨단 디지털 기술이 문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오늘날,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수백년 전 역사 속 지식인이었던 ‘儒醫’들의 발자취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필자는 일찍이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 儒醫列傳』(2011년, 들녘출판사)을 통해 조선 지식인들이 왜 醫學에 침잠하였으며, 그들이 추구했던 학문적 지향점이 무엇이었는가를 탐색한 바 있다. 유의란 유학적 理性과 修己治人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궁구했던 지식인 醫家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기술로서의 醫業에 머물지 않고, 格物致知의 학문적 엄밀함과 活人救民의 실천적 박애주의를 결합하여 한의학을 체계적이고 이성적인 학문으로 정립해 냈다. 우리가 중인 계층이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허준, 이제마 뿐만 아니라 유학자이면서 의학 연구에 매진한 정약용, 류성용 같은 인물들이 바로 ‘유의’의 범주에서 논의해야 할 한의사집단이다. 기계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고 빅데이터가 질병을 예측하는 AI 시대에, 유의의 정신은 현대 한의학이 나아갈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이정표를 제시한다. 첫째, AI 데이터 분석을 통한 ‘新儒醫的 한의학체계’의 정립이다. 조선의 유의들은 『東醫寶鑑』, 『醫方類聚』, 『鄕藥集成方』 등 방대한 문헌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당대의 경험지식을 집대성하여 독창적인 의학 체계를 구축했다. 현대의 한의학은 수천 년간 축적된 고전 의서와 임상 醫案을 AI 알고리즘과 데이터 마이닝으로 구조화해야 한다. 이는 옛 유의들이 수많은 의방을 절충하고 요점을 간추려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던 지적 작업의 디지털적 계승이다. 이를 통해 한의학 고유의 辨證論治를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데이터 모델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계적 추산을 경계하고 ‘인간 중심의 진료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草窓訣』을 지은 儒醫 尹東里는 運氣學說을 임상에 적용하면서 기계적인 추산을 경계하고 반드시 환자의 개별 증상을 살피는 辨證을 중시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처방 알고리즘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心醫’의 윤리와 인간에 대한 전인적 통찰은 오직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다. AI는 진단의 도구로 삼되, 치료의 주체로서 환자와 교감하고 생명을 보살피는 유의의 도덕적 책무를 한의사가 온전히 견지해야 한다. 셋째, 利用厚生과 K-컬처를 융합한 한의학의 글로벌화 및 지역 문화 활성화이다. 홍만선의 『山林經濟』나 서유구의 『林園經濟志』가 보여주듯, 유의의 의학은 일상생활 속에서 생명을 기르는 養生과 食治 중심의 실용주의였다. 이러한 유의의 생활의학 전통을 현대 K-웰니스(Wellness) 및 푸드, 문화 콘텐츠와 결합해야 한다. 나아가 상주 ‘存愛院’과 같은 유의들의 공동체적 애민 의료 유산을 지역 축제 및 치유 관광 자원과 연계함으로써, 지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고 한의학의 가치를 세계인과 나누는 K-컬처의 새로운 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으로 귀결된다. AI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 속에서 전통 유의들이 품었던 냉철한 지성과 따뜻한 활인의 마음을 되살려낼 때, 한국 한의학은 미래 의료와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할 것이다. -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7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만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다. 교수도 강의 평가라는 학생들의 성적표를 받는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준비하고 강의하고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한 뒤 받아보는 학생들의 평가는 때로는 예상보다 냉정하다. “설명이 이해하기 어렵다”, “시험 범위가 너무 많다”, “수업 방식이 지루하다”는 멘트 정도는 그래도 받아들일 만하다. 때로는 수업 자체보다 교수의 말투나 성격에 대해 인신공격에 가까운 평가가 적혀 있기도 하고, 정성을 들였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오히려 가장 큰 불만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낮은 성적이나 교수자에 대한 본인 화풀이의 도구로 강의 평가를 악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어려운 내용을 충실하게 가르치거나 학생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을 요구한 수업보다, 부담이 적고 성적을 잘 주는 수업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강의 평가는 학생들의 ‘인기 투표’가 되어 버릴 것이라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그런 사례들을 보면, 교수들 사이에서 강의 평가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대학의 질 관리 보고서…오류의 가능성 존재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교수 역시 사람이다. 한 학기 동안 애써 준비한 수업에 대해 날것 그대로의 비판을 접하고도 아무렇지 않기는 어렵다. 때로는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다고 하니 다음에는 알아서 공부하게 해야겠다”, “시험이 어렵다고 하니 오히려 제대로 공부하도록 더 엄격하게 하겠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학생의 피드백을 통해 수업을 개선하자는 제도가 역설적으로 교수와 학생 사이의 거리를 더 벌리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지난 학기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담은 교육과정 질 관리 보고서를 최근에 작성하면서 나 역시 이 문제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우리 대학의 질 관리 보고서는 학교에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일반적인 강의 평가와는 조금 다르다. 각 학년의 학생 가운데 일부를 선정하여 인터뷰를 진행한다. 지난 학기 각 교과의 수업에 대해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수업의 양과 속도는 적절했는지, 시험과 수업 내용은 잘 연결되어 있었는지 등을 학생들의 언어로 듣는다. 숫자 하나로 표시되는 강의 평가에서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이 과정에서 나온다. 물론 여기에도 명확한 한계가 있다. 소수의 학생이 인터뷰에 참여하기 때문에 듣게 되는 가장 흔한 이야기는 “몇몇 학생의 의견으로 전체 강의가 평가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것이다. 열심히 참여했던 대다수 학생은 별말 없이 지나가고, 특별히 불만이 있었던 학생 몇 명의 목소리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합리적인 의심이다. 모든 학생을 인터뷰할 수 없기에 본의 아니게 인터뷰 참여학생이 해당 학년의 대표성을 띠게 되는 오류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수업을 듣고도 학생마다 경험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매우 유익했던 수업 방식이 다른 학생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몇 명의 학생이 그렇게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수업에는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대표성이 부족한 의견과 가치가 없는 의견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명의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모든 환자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증상을 무시하지 않는 것처럼, 한 학생의 경험이 전체 학생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해서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판정’으로 받아들이느냐, ‘정보’로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학생이 원하는 것과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 구별 예를 들어 “강의 내용이 너무 많다”는 학생의 말만으로 강의량을 당장 줄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러 학생에게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면 수업 목표에 비해 내용이 과도하지 않은지 살펴볼 이유는 생긴다.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는 불만 역시 곧바로 시험의 난이도를 낮추라는 요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수업에서 강조한 내용과 평가 내용이 일치했는지, 학생들이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학습해야 하는지 충분히 안내되었는지를 되돌아보는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교육과정 질 관리 보고서의 활용법이 나온다. 질 관리 보고서에서의 학생 인터뷰는 학생이 교수에게 점수를 주는 과정이 아니다. 학생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수업을 편하게 만드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교수자가 자신의 수업을 다른 시선으로 한 번 바라볼 기회를 만드는 과정이다. 강의실 앞에 서 있는 교수는 자신이 무엇을 설명했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학생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교수에게는 명료했던 설명이 학생에게는 갑작스러운 비약이었을 수 있고, 충분히 안내했다고 생각했던 시험 기준이 학생에게는 모호했을 수도 있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르친 사람의 시선뿐 아니라 배운 사람의 경험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학생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만으로 질 관리 보고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의견을 맥락 없이 옮겨 놓으면 교수에게는 비난의 목록으로 읽히기 쉽다. 소수의 강한 의견인지, 여러 학생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난 경험인지 구분해야 하고, 학생이 원하는 것과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도 구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점과 개선이 필요한 점을 함께 살펴야 한다. 피드백은 상처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에게도 책임은 있다. 강의 평가는 소비자가 서비스에 별점을 매기는 일이 아니다. “재미없다”, “시험이 어렵다”, “과제가 많다”에서 끝나는 평가는 수업을 바꾸기 어렵다.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꼈고, 왜 그렇게 느꼈으며, 어떻게 바뀌면 학습에 도움이 될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피드백을 주는 능력 역시 학생이 배워야 할 교육의 한 부분이다. 질 관리의 목적은 더 나은 수업을 만드는 것 결국 우리에게는 학생의 목소리를 얼마나 많이 모았느냐보다 그 목소리를 어떻게 읽고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수업에는 완성본이 없다. 같은 내용의 강의라도 학생이 달라지고 교육환경이 변하면 다시 조정해야 한다. 그래서 질 관리 보고서는 한 학기 수업에 내려지는 판결문보다는 다음 수업을 위한 기록에 가까워야 한다. 학생의 한마디가 곧 강의의 진실은 아니다. 교수자의 판단 역시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시선이 만났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부분이 드러난다. 학생의 평가는 교수에게 주는 점수가 아니라 수업에 대한 하나의 관찰이어야 하고, 교수의 역할은 그 관찰에 상처받거나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질 관리의 목적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평가를 받는 수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난 학기보다 조금 나은 수업을 만드는 것. 아마도 우리가 매 학기 학생들에게 다시 의견을 묻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
기억은 흐려지지만 기록은 남는다배용원 대표변호사 •법률사무소 동촌(東村) •前 청주지검장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변호사 “말이 됩니까? 그게 기억이 안 난다고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흔히 듣는 말입니다. 각종 청문회에서도 자주 보는 장면입니다. 불과 얼마 전에 직접 경험한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뭔가를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기억이라는 것이 비디오처럼 모든 장면을 생생하게 입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그대로 재생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아침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사고 상황이나 신호등, 운전자의 옷 색깔을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 있을까요. 인간의 기억과 증언은 얼마나 불완전한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인간의 기억과 증언이 얼마나 불완전할 수 있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는 숲속에서 한 사무라이가 죽은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됩니다. 사건에는 산적 다조마루, 죽은 사무라이의 아내, 사무라이 자신, 그리고 현장을 목격한 나무꾼이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사건인데도 네 사람이 말하는 사건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점입니다. 다조마루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자신은 비겁한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는 사무라이와 정면으로 맞서 치열한 결투를 벌인 끝에 상대를 쓰러뜨린 용맹한 인물입니다. 아내의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산적에게 능욕당한 뒤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이 차갑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고,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해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깨어나 보니 남편의 가슴에 단검이 꽂혀 있었다고 말합니다. 죽은 사무라이도 무당의 입을 통해 증언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내가 오히려 산적에게 남편을 죽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에 산적조차 아내에게 환멸을 느끼고, 아내가 도망간 뒤 사무라이는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무꾼이 자신이 실제 싸움을 목격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산적과 사무라이는 앞선 이야기에서처럼 용맹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겁에 질려 실수를 거듭하며 볼품없이 싸우고, 결국 산적이 사무라이를 죽입니다. 그러나 나무꾼의 증언 역시 온전히 믿기는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사라진 값비싼 단검 때문에 나무꾼도 자신의 행동을 감추기 위해 사실을 다르게 말했을 가능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라쇼몽》은 같은 사건을 경험한 사람도 자신의 욕망과 체면, 이해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기억이 실제 사실과 달라지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라쇼몽》이 사람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받아들여 기억을 재구성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심리학의 여러 실험은 우리가 눈앞의 모든 것을 보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보았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 인지심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억의 과정을 부호화(encoding), 저장(storage), 인출(retrieval)의 단계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수많은 정보가 뇌로 들어가 저장되며, 나중에 필요한 순간 다시 꺼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눈앞의 모든 정보가 기억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주의를 기울인 정보를 중심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았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 pher Chabris)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입니다. 참가자들에게 사람들이 농구공을 주고받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특정 팀의 패스 횟수를 세어달라고 하자 화면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고릴라 복장의 사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참가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눈앞에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본 것을 모두 기억하지도 않고, 기억한 것을 언제까지나 그대로 보존하지도 않습니다. 수사와 재판을 하다 보면 사건 관계인의 기억은 있는데 기록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재산을 증여해 주기로 약속했다는 주장과 그 뜻이 서면으로 남겨져 있는 경우를 민법은 다르게 취급합니다. 기억과 기록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기억한다”는 진술과 당시를 기록한 내용이 충돌할 경우 법정에서는 보통 후자가 우선시됩니다. 의료 분쟁에서 진료기록이 갖는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사건을 다루다 보면 의료인은 당시의 상황을 분명하게 기억한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기록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년 뒤 분쟁이 발생하여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그런 증상이 있다는 말을 듣고 확인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진료기록이 없다면 그 기억만으로 당시 상황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료기록은 의료인을 보호하는 중요한 장치 반대로 환자의 병력과 증상, 진단 결과, 치료 내용과 경과, 의료진의 판단이 당시의 진료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의료행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거쳐 이루어졌는지를 사후에 입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재구성됩니다. 그러나 기록은 그때의 상황을 가장 가까운 시점에서 담아둔 그릇입니다. 기억은 흐려지지만 기록은 남습니다. 진료기록은 환자의 치료 과정을 이어주는 자료이면서 때로는 의료인을 보호하는 중요한 장치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진료기록은 환자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의료인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좋은 기록은 좋은 진료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
괜찮아요?, 그 한마디에 담긴 마음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단장 김주영·이하KOMSTA)은 8월 6일부터 12일까지 몽골 울란바토르 한몽친선병원에서 제183차WFK 해외의료봉사를 진행했다. 이번 봉사에는 일반단원 7명과 한의사 4명 총 11명이 참여했으며, 현지 주민 880명을 대상으로 침, 부항, 한약 처방 등 한의약 치료를 제공했다. 언어보다 먼저 통한 마음 첫 해외 의료봉사를 앞두고 가장 걱정했던 것은 언어였다. 현지에 도착해 배운 몽골어는 “센베노(안녕하세요)”와 “바야를라(감사합니다)” 두 마디가 전부였다. 그런데 막상 진료가 시작되자 언어가 생각만큼 큰 장벽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통역사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두 마디의 몽골어와 손짓, 표정으로 환자분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오히려 환자분들의 표정과 눈빛, 몸짓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3일 차에는 환자분들도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아프신가요?”라고 물으면 “아파요”라고 대답하고, “괜찮아요?”라고 물으면 “괜찮아~”라고 우리말로 답해주기도 했다. 짧은 단어 몇 마디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언어가 달라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만나면 소통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몽골에서 만난 환자들 현지에서의 진료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았고, 피부 건조나 알레르기, 변비 등 다양한 증상을 함께 이야기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특히 식생활의 차이가 인상적이었다. 육류 중심의 식사를 하고 채소 섭취가 많지 않은 생활환경 때문인지 변비를 비롯한 소화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현지에서는 채소를 가축의 먹이로 여기는 인식이 있다는 설명을 듣기도 했다. 가족 단위로 진료를 받으러 오신 분들도 많았다. 그중 식욕부진과 피부 건조를 호소하던 한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침을 무서워해 첫날에는 피내침도 다 맞지 못했지만, 점차 용기를 내더니 마지막 날에는 침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다. 침을 하나 놓을 때마다 잘했다고 다 함께 박수를 쳐주자 아이도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순간의 따가움을 잘 참아냈다. 한 가족이 함께 진료를 받고, 그 안에서 나 역시 어느새 하나가 되어 함께 웃었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부 환자분들이 통증의 원인을 장기와 연결해 설명한다는 점이었다. 허리가 아프면 신장이 좋지 않다며 함께 소변 문제를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고, 맥진으로 진단받기를 원하는 환자분들이 많았다. 환자분들이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한국에서 만나는 환자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진단이나 치료 방향을 한의학적인 언어로 설명했을 때 오히려 더 쉽게 이해하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포스트잇으로 전한 마지막 3일 차에는 다음 날까지 다시 찾아오지 못하는 환자분들이 많아졌다. ‘이분과는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인사를 건네는 마음도 달라졌다. 그날은 한 분 한 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리법까지 안내하며 평소보다 더 시간과 마음을 내어 진료했다. 짧은 기간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고, 하루의 진료를 마치고 단원들이 소회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다 또 목이 메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떠나기 전날에는 통역사 선생님들과 마지막 시간을 가졌다. 진료실을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벽에 기대어 작은 포스트잇에 짧은 글을 적어 건넸다. 긴 문장도, 완벽한 언어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함께 진료하며 쌓인 고마움과 아쉬움을 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다시 생각하게 된 ‘봉사의 의미’ 첫 해외 의료봉사였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진한 향으로 남았다. 이번 봉사에서 나는 수없이“괜찮아요?”라고 물었다. 환자의 통증이 괜찮은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한마디는 단순히 증상을 확인하는 말만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상태를 궁금해하고,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봉사는 치료받고 싶은 간절함에 응답하고, 누군가가 낫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봉사란 의료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모습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봉사를 통해 내가 의료를 하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환자의 아픔을 살피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잃지 않는 의료인으로 남고 싶다. 소중한 기회를 주신 KOMSTA와 한몽친선병원에서 봉사를 도와주신 문성호 원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이번에 나눈 마음과 경험이 한 번의 봉사로 끝나지 않고, 한국과 몽골의 의료 현장에서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몽골에서처럼 “괜찮아요?”라는 한마디를, 이제는 한국의 진료실에서도 오래 간직하고 싶다. -
“남성의학, 한의학의 새로운 시장”숫자가 말하는 한의계의 현재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한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이후 해마다 내려앉았습니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수가협상 자리에서 “10년째 최하위”라고 토로할 만큼 긴 정체입니다.1) 총액이 아니라 기관당 진료비로 보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 충격 이후 회복 국면이던 2021년, 의과 의원의 기관당 진료비가 전년대비 7.4%, 치과의원이 5.2% 늘어나는 동안 한의원은 2.9%에 그쳤습니다.2) 주력 영역도 조금씩 얇아지고 있습니다. 한의의료 외래 이용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75.1%에서 2022년 70.1%, 2024년 68.9%로 계속 줄어들었습니다.3) 원인 - 시장의 문제라기보다 콘텐츠의 문제 첫째, 진료 수단이 한약·침·약침·추나에 고정되어 있고, 그 위에 얹을 새로운 진료 콘텐츠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둘째, 한약과 약침의 제도권 진입이 지체되는 사이에 도수치료·체외충격파처럼 기능이 겹치는 양방 시술들이 실손보험을 등에 업고 비슷한 한의계 수요를 흡수했습니다. 비슷한 효용을 더 낮은 비용으로 살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면 기존 시장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셋째, 한약의 브랜드 파워가 내려앉은 자리를 건강기능식품이 채웠습니다. 2025년 국내 건기식 시장은 5조 9,626억 원, 최근 1년 내 구매 경험률은 83.6%에 이릅니다.4) ‘몸을 보하는 데 돈을 쓰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약이 그 선택지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한두 해 안에 뒤집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근골격계의 통증, 재활 진료와 내과 진료 양쪽이 동시에 어려워진 지금의 현실은 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으로서의 남성의학 20여 년 넘게 1만여 명, 3만여 건의 남성질환 진료만을 이어 온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영역의 기회 요인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1] 발기부전:비아그라, 시알리스로 대표되는 PDE5 억제제는 훌륭한 대증약이지만, 30∼35%는 처음부터 반응하지 않습니다. 반응했던 환자들도 시간이 지나면 이탈합니다. 처방 갱신율은 3∼4개월 시점 62%에서 6∼12개월 시점 50%로 떨어집니다.5) 발기의 핵심 병태는 뇌·성선 축의 쇠약성 변화와 음경동맥 내피의 손상성 변화인데, 대증약은 이 두 원인을 되돌려 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내 유병률은 60대 30.1%, 70대 41.1%이며6), 당뇨·고혈압·심장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2∼4배로 높아집니다.7) 고령화와 함께 커지고 있지만 대증약이 미처 닿지 못하는 수요, 바로 그것이 한의계가 받아낼 수 있는 숨은 의료수요라고 생각합니다. [2] 조루:현대의학의 두가지 접근 방식은 한계가 비교적 뚜렷합니다. 먹는 조루약 다폭세틴은 24주 시점 질내사정지연시간(기하평균)을 0.7분에서 2.3분으로 늘렸지만8), 국내 2년 추적 연구에서는 6개월 안에 79.1%가 복용을 중단했고 24개월까지 유지한 환자는 9.9%에 불과했습니다. 중단 사유의 1·2위는 비용, 그리고 “관계할 때마다 먹어야 하고 낫지는 않는다”는 실망이었습니다.9)배부신경 차단술 역시 AUA·EAU 가이드라인에서 권고되지 않고 있습니다.10) 다시 말해 ‘사정조절 기능의 회복’을 정면으로 겨냥한 치료가 비어 있는 셈입니다. 평생형 조루라 하더라도 대개는 특정 원인에 의한 2차적 변화라고 봅니다. 말초의 전립선 환경, 중추 과흥분의 조절, 발기력 개선이라는 세 원인을 한의학적 방법으로 동시에 다루고, 여기에 학습된 뇌의 조건반응을 교정하는 성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한다면 완치에 가까운 결과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3] 전립선:만성 전립선염과 골반통증증후군은 수십 년 동안 항생제·소염제·알파차단제 세 가지의 전통적인 치료방법 외에 의미 있는 진전이 없었습니다. 전립선비대는 수술적 수단이 꾸준히 발전해 온 반면, 이쪽은 사실상 답보 상태입니다. 알파차단제 단독요법은 통증 감소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메타분석도 나와 있기도 합니다.11) 반면 440명을 대상으로 한 다기관 무작위 대조시험에서 침 치료는 8주 반응률 60.6%(가짜침 36.8%), 치료를 마치고 24주가 지난 시점에도 61.5%(38.3%)를 유지했습니다.12)네트워크 메타분석에서도 전기침은 알파차단제보다 우월했습니다.13) 단순히 시장이 비어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공백을 메울 근거 있는 수단이 이미 우리 손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성의학 진료의 기저에는 대사질환 치료가 깔려 있습니다. 발기가 회복되기 전이라도 혈당·중성지방 같은 대사 환경의 개선을 혈액검사로 확인시켜 드릴 수 있기 때문에, 3개월에 이르는 긴 치료도 큰 무리 없이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결언 남성질환은 『황제내경』과 『동의보감』을 비롯해서 한의학이 오래도록 다뤄 온 영역입니다. 즉효를 겨루는 대증 영역에서 한의학이 경쟁력을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되돌리는 영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양방과 한방이 같은 시장을 놓고 겨루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증으로 해결되지 않아 남겨진 수요, 그 공백이 바로 한의학이 공략해야 할 새로운 시장입니다. 한의계의 오랜 침체와 불황에 마음 고생이 심한 한의사 선생님들께서 이 문을 두드려 보셨으면 합니다. 객관성 있는 결과로 만족도 높은 진료를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참고자료] ① 데일리팜, 2027년도 수가협상 관련 보도(2026.5) — 대한한의사협회 “10년간 건강보험 점유율 최하위”. ② 민족의학신문(2022),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주요통계』 인용 — 한의원 진료비 점유율은 2014년 이후 매년 감소(2021년 2.71%), 기관당 진료비 증가율은 의과 의원 7.4%·치과의원 5.2%·한의원 2.9%. ③ 보건복지부, 『2024년 한방의료이용 실태조사』(2025). ④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2025 건강기능식품 시장현황 및 소비자 실태조사』. ⑤ Medicine Today, “Erectile dysfunction Part 2: Management of ED unresponsive to PDE5 inhibitors” (2020). ⑥ 대한의사협회지, 「발기부전의 위험인자, 진단 및 치료 가이드라인」. ⑦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발기부전’. ⑧ McMahon CG, et al. Eur Urol 2010 — 22개국 다기관 3상 시험(N=1,162, 24주). ⑨ Park HJ, et al. Sex Med 2017 — 다폭세틴 치료 중단에 관한 2년 전향적 관찰연구(N=182). ⑩ AUA·EAU 가이드라인은 조루에 대한 수술적 치료(선택적 배부신경 절제술)를 권고하지 않음 — J Urol 2025 학회 초록 등에서 재확인. ⑪ 만성 전립선염/골반통증증후군에서 알파차단제 단독요법의 통증 감소 효과에 관한 메타분석(대조군 대비 유의한 차이 없음). ⑫ Sun Y, et al. Ann Intern Med 2021;174(10):1357-1366 — 중국 10개 3차 병원, N=440, 8주 20회 침 치료 후 24주 추적. ⑬ Qin Z, et al. Sci Rep 2016;6:35737 — 12개 무작위대조시험·1,203명 대상 네트워크 메타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