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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01일 (수)

전문의 제도 개선, ‘숫자’보다 ‘전문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전문의 제도 개선, ‘숫자’보다 ‘전문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의사가 의료체계 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규정짓는 핵심 과제
류소현 대한한의과전공의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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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소현 대한한의과전공의협의회 회장

 

대한한의사협회는 11월 중 첩약건강보험, 한의대 정원 조정, 그리고 전문의 제도 개선을 위한 회원투표를 앞두고 있다. 이 세 가지 의제는 한의학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한 전환점이며, 그중에서도 전문의 제도 개선은 한의사가 의료체계 내에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를 규정짓는 핵심 과제다.

 

신설 전문과 논의제도의 방향성과 실질적 타당성 고려해야

 

전문의 제도 개선 논의는 결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대의원총회에서 통합한의학전문의신설안이 논의되었지만 부결된 바 있다. 이 결과는 내부의 반대 여론뿐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제도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컸음을 방증한다. 통합한의학전문의는 명칭상 전문의지만, 실제로는 특정 전문분야가 존재하지 않으며, 체계적인 수련과정의 부재로 인해 전문성 확보가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신설 전문과를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제도의 방향성과 실질적 타당성이다. 수련의 깊이 없이 이름만 부여되는 전문의 제도는 분명히 낭비이며, 한의학 전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까지 위협한다. 전문의 신설이 추진된다면, 전문의협회 및 전공의협의회 등 관련 단체와의 충분한 의견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장의 수련병원, 지도전문의, 전공의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제도 개선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수련병원의 인력, 시설, 지도전문의, 교육 인프라를 고려할 때 한 번에 많은 전문의를 배출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문의 양산은 현장에서 묵묵히 진료 경험을 쌓아온 일반의들의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반의는 국민이 한의치료를 처음 만나는 진입점이자 한의학의 일차의료 기능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그러나 전문과 신설이 기능적 중복을 야기하면 일반의의 역할은 모호해지고 의료 전달체계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오랜 임상경험을 쌓은 일반의의 역량이 평가절하되고 한의사 자체의 전문성마저 흐려질 수 있다. 전문의 확대가 곧 일반의 가치의 축소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든다면 그것은 한의학의 생태계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전문의 제도를 논의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될 현실은, 한방병원의 환자군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군의 변화는 한방병원의 진료 구조를 바꾸고 있으며, 이는 곧 수련의 내용과 방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환자의 수요가 바뀌고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며 그 여파는 수련병원의 기능 약화로 직결된다. 수련병원이 약해지면 전공의의 수련 기회 역시 감소하고 전문의 제도의 뿌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병원이 환자 수요 변화에 적응하고, 수련병원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적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전문과 신설이 아닌 수련기관의 질 향상이 시급한 과제

 

결국 전문의 제도 개선의 본질은 얼마나 많은 전문의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된 수련을 통해 전문의가 만들어지는가에 있다. 진정한 전문성은 명칭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련의 깊이와 현장의 경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병원 환경에서 비롯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새로운 전문과 신설이 아니라 수련기관의 질 향상이다. 전공의들이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를 철저히 점검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한의과 전공의 교육과정은 제정된 이후 어언 25년이 흘렀으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면 개정된 적이 없다. 긴 시간 동안 환자군과 진료 환경은 급변했지만, 교육과정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 현실과 괴리된 수련 기준 및 교육 환경 속에서, 수련병원과 전공의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공의로서의 시간은 단순히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환자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며, 한의사로서의 책임감과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이다. 강의실에서 지식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던,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배움의 세계가 열린다. 밤새 근무하며 환자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학술의 장에서 증명해내는 모든 과정이 모여 한명의 전문의를 탄생시킨다. 이것은 기계적인 훈련이 아니라 가슴이 뜨거워지는 배움의 여정이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진심을 다하는 한의사들이 있기에, 한의학은 현장에서 자라나는 미래의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새로운 간판이 아니라, 그 간판을 지탱할 실질적 토대다. 전문의 제도는 한의학의 전문성과 사회적 신뢰를 재구축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숫자의 확대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본질을 수호하고, 수련의 질을 높이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한의학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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