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여의도 책방-68

기사입력 2025.09.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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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그 날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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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오십견으로 2주일에 한 번 오실까 말까 하셨던 국회 파견 외부 공무원 한 분이 “이번에는 종목이 바뀌었어요, 오늘은 허리입니다. 원장님”하고 인사를 하시며 오랜만에 내원하셨다. 언젠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한 분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른 한 분은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셔서 두 분 모시고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본인과 아내분이 각각 휠체어를 밀어야 해서 어깨가 아프고 보니 이런 일상 생활도 많이 힘들더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요통의 경위와 함께 두 어르신들 안부를 여쭈려던 찰라, 먼저 털어놓으신 요통의 히스토리는 다음과 같았다. 


    그 대단한 병들도 다 이겨내신 분들이 지난 초여름 차례로 폐렴을 앓으시더니 최근 한 달 간격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두 어르신들의 장례를 치루고 이런 저런 절차 다 밟고 나니 이번에는 두 분이 30년 넘게 사셨던 아파트 짐 정리가 남아 있더란다. 그 다음 입주민들의 이사 날짜가 정해진 터라 먼저 외부 청소업체를 부르고 온 식구들이 붙어서 같이 작업을 했지만 그 긴 시간 한 가족의 추억과 역사가 뒤섞여 있는 공간이었던 지라 당근 거래용과 폐기용으로의 버릴 것의 분류와 최종으로 남길 것의 선정에 있어서 가족들간의 의견이 엇갈렸으며 남길 것 중에서도 내 것이냐, 네 것이냐의 작은 갈등까지 조정하고 정리하자니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두 어르신의 짐정리를 하며 미니멀리스트를 결심하지 않기가 힘들더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신다. 


    세상을 떠난 이들과의 소중한 추억


    포장지만 살짝 뜯어서 선물 내용만 확인하신 듯한 수년 전 어버이날 선물해드린 속옷박스하며 세탁소 택도 뜯지 않은 드라이 완료된 패딩에 코트에 한 번도 신지 않으신 어르신용 운동화, 간편화가 들어있는 신발 박스들, 그 많은 화장품 세트는 왜 뜯지도 않으신 건지? 휠체어 타시느라 흙 한 톨 묻어있지 않은 꽤 비싸 보이는 지팡이 개수를 세며 ‘휴우,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이고지고 사신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란다. 어찌어찌해서 청소에 이사에 작은 집수리까지 그나마 어깨가 도와줘서 일 잘 마무리했다 생각했었는데, 앉았다가 섰다가를 수백번 하고 나니 한 번도 겪지 않았던 견디기 힘든 허리 통증이 발생했다는 기나긴 스토리. “큰 일 하셨어요. 장례에서 짐정리까지 만만치 않은 과정이셨겠지만 아내분이 얼마나 든든하셨을까요? 정말 귀한 일 하신 거예요. 이 요통은 좋은 일 하시다가 발생한 거라, 오래 안 갈 겁니다. 며칠 입원하셨다 생각하시고 중요한 업무만 처리하시고 바로바로 퇴근하셔서 댁에서 누워서 많이 쉬셔요. 며칠간은 날마다 제 진료실 들르십쇼.”


    생각해보니 친정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한참 전에 이런 상황을 미리 상상이라도 하셨는지 다섯 딸들 불러 놓으시고 당신이 수집하신 모든 애장품들을 공평하게 나눠주셨다. 수십권의 앨범도 한 곳에 쌓아두시고는 사진 한 장 또 한 장 꼼꼼히 들여다 보시며 각자의 독사진은 당사자들에게로 또한 서로 가져가겠다는 사진에 대해서는 토론을 붙이거나 가위바위보를 시키기도 하셨다. 그리고 선물받고 개시도 못한 셔츠들, 넥타이, 지갑과 벨트 세트, 카메라, 기타, 장구, 북과 북채도 사위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셨다. “죽은 뒤에는 죽은 사람 짐 처리하기가 애매해진다고 하더라. 버릴지 말지 너희들 마음 심난할까봐 미리미리 적재적소로 위치 이동시키는 거다. 아버지 죽을 준비하는 거 아니다. 지금 해둬야 내 마음이 좋을 것 같아서 그런다.” 아버지의 실행력 덕분에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들이 따로 정리할 짐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게 이렇게도 없었나... 너무도 깔끔해서 뭔지 모르게 죄송했고 뒤이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잔물결처럼 몰려들었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케이틀린 도티, 반비,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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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처럼 멋진 여자가 시체를 처리하는 이런 창고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스물세 살 여성이 장례업에 종사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어딘지 수상쩍었다. 

    - 심박조율기 속에 든 리튬 배터리를 화장 전에 미리 빼놓지 않으면 화장로 속에서 그것이 폭발한다고 한다. 

    - 집에서 죽은 사람을 데려오는 일을‘하우스 콜’이라고 부른다. 의사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해도, 장의사 직원들은 밤이든 낮이든 기꺼이 간다. 

    - 이제는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입회하는 사람은 의사이다. 생사 문제를 하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이 다루게 된 것이다. 

    -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면, 옛날에 적대시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일을 덜 하고 여행을 더 하고 사랑에 빠지고 싶어질 것이다. 

    -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적절히 돌볼 만한 자원이 우리에게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의학적으로 개입하여 그 노인들을 살리려고 한다. 

    - 죽음은 우리 삶에서 의미를 없애기 위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바로 우리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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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는 현대식으로 죽었다. 의학이 생명을 연장해 주었으나 그렇게 얻게 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질 때까지 몇 달을 살다가 병원에서, 가족 없이, 어느 간호사가 최후의 몇 분을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 현대 의학은 죽어가는 기간을 늘리는 것으로 유명한 유언을 양산하는 데 일조해 왔다. 

    - 몽테뉴는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 나는 인생의 의미가 죽음에 달려 있음을 이해한다. 먼저 붕괴하는 별들이 죽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행성도 없다. 

    - 우리는, 당신과 나는 아마 병원에서 죽을 것이다. 현대적인 죽음이며, 전통적인 관례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 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수명이 다하느냐, 돈이 다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코가지 사라, 윌스타일,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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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아버지는 이렇게나 제멋대로이고 자기중심적일까... 지금 여기서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더 안하무인으로 나올 것도 예상이 됐다. 

    - 노인 돌봄에 지쳐 일어난 사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술렁인다. 

    - 노인 돌봄 문제는 가족 혼자 끌어안고 있으면 금방 탈이 난다. 

    - “감정 제어를 못 하고 같이 사는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도 전형적인 치매 증상입니다.”의사는 치매 환자 가족이 놓여 있는 상황을 숙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곧바로 내 심정을 이해해 주었다. 

    - 어느새 딸인 나보다 덩치가 작아진 늙은 아버지의 굽은 등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의 노화에 제일 당황하고 있는 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돌봄 생활이 길어질수록 젊은 시절의 부모님 모습은 귀찮은 노인의 노습으로 바뀌어 즐거웠던 기억도 흐려지게 될 것이다.

    - 나이 많은 노인들로 넘쳐나는 병원 대기실에 발을 들일 때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치료가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 아버지 역시 딸이 종이 기저귀를 채워줄 때까지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죽는 날』(애니타 해닉, 수오서재,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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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가 죽음을 생각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바꿔놓은 건 분명하다. 

    - 환자는 일방적인 침습 의료 단계에 따라 움직이는“빠른 의료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졌다. 

    - 삶이 끝나가는 환자가 스스로 어떻게 임종할지 결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 의사와 의료 기관 개입은 의료 조력 사망에 사회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척도다. 

    - 현대 의학의 경이로운 연명 능력에도 불구하고 좋은 죽음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 의료 조력 사망은 인간이 삶의 마지막을 직접 결정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 삶의 마지막을 앞당기는 것은 의지력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본인의 죽음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눈을 똑바로 뜬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 삶의 마지막이 의료화되면서 죽음은 종종 삶의 당연한 단계가 아니라 실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

    (폴커 키츠, 김영사,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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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질병은 항상 언젠가는 발생한다. 그러나 치매는 교활하다. 피해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방심한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다. 

    - 최근 몇 년 동안‘요양의 필요성’이라는 개념이 좀 더 광범위해졌다. 이제는 침대에만 누워 있거나 겉으로 보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치매 환자만 요양 대상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 고령자를 돕고 싶은 사람들이 해야 할 과제는 남은 시간 동안 그들이 과거를 정리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노인학자 나오미 페일은 말한다. 

    -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살이 점점 빠졌다.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사람들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변화는 나를 두렵게 했다. 

    -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걷는다. 한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길 바라도 되는 건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중에는 아직 한동안 더 살아 있기를 바라도 되는 일인지 고민했다. 

    - 병이 진행될수록, 아버지가 우리의 세계에서 멀어져 자신만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는 모두 더 잘 지내게 되었다. 


    몇 주 전, 친정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라니... 시간은 늘 마음의 그것과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모양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전후의 많은 일들을 떠올려본다. 언니와 나는 세 동생들을 대신해 더 자주 만나 장례 관련 절차들을 미리 학습해야 했다. 전남 장성에 집안의 장지가 있지만 우리들이 모두 수도권에 생활하고 있기에 멀리 모시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가장 먼저 내렸다. 그 후 납골당과 수목장을 몇 군데 둘러보는데 이 분야도 장삿속으로 무장된 영업력 최강자들에게 이미 잡혀먹은 듯하다. 봉안 기간의 상한선이 30년이냐 그 이상이냐에 따라서, 납골당 공간이 얼마나 넓냐에 따라서, 로얄층에 해당하는 눈높이 안치단이냐 발밑이냐에 따라서 가격은 참으로 꼼꼼하게도 세분되어 있었다. 그저 흙에 묻히고자 하는 소박하고 친환경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주로 찾으실 수목장 또한 중대형 소나무에 돗자리를 깔 수 있는 절할 공간이 확보된, 주차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한 곳은 5천만원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보존 가능하냐는 질문에 초기 관리비 5년치만 선납이고 그 이후는 어차피 흙과 섞이는 거라 저 나무 밑에 아니 이 산 속에 부모님이 계신다 맘 편히 잡수시면 된단다. 물론 비석이나 표지석 같은 걸 따로 하고 싶으면 그 비용은 추가라며 옵션에 대해서는 더욱더 친절한 안내를 곁들였다. 


    초고령화로 인한 多死 시대 도래…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납골당도 수목장도 아니면서 가까이에 모시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한 의원님께서 하셨던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집안에 작고한 가족들의 위패나 영정을 모시는 방식으로 몇 해 전 돌아가신 선친을 집안에 모셨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가정 봉안”이었다. “언니야, 우리도 아버지 집에 모시자”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검색해보니 화장한 유골분을 스톤으로 만드는 장례는 처음에는 주로 반려 동물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추모석, 영혼석, 유골 보석, 메모리 스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고 가정 봉안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고려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경우 예약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장 근처에 관련 업체가 몇 군데 있었고 우리는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미리 마음을 정해 두었다. 


    그 결과, 아버지는 현재 당신이 평소에 자주 계시던 서재방의 책상 위에 생몰년도가 표기된 작은 이름표와 함께 교사 시절의 사진 속에서 우리를 향해 늘 웃고 계신다. 이런 저런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은 꽤 고통스러웠으나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또 있었을까?’ 생각하며 부모님 임종 이후의 절차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지인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 내가 겪었던 2년 전의 경험들과 그 결과로서의 가정봉안의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곤 한다.  


    2025년 1월 24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개정안에 따라 기존의 매장, 화장, 자연장(수목장)에 이어 산분장이 드디어 합법화되었다. 산분장(散粉葬)이란 바다와 육지의 일부 장소에 화장한 유골의 뼛가루를 뿌리는 장례이다. 『제 죽음에 동의합니다, 끝없는 안락사 논쟁』(KBS, 2024년 4월), 『봉안 시설까지 포화, 장례 문화 완전히 바뀌어야』(조선일보, 2024년 10월),『화장장 못 구해서 3일장 힘든 시대... 부산 21%, 서울 46% 그쳐』(동아일보, 2025년 4월) 등등 죽는 과정과 죽음 이후의 처리 방식에 대한 논의와 보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진정 초고령화로 인한 다사(多死)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아버지의 두 번째 기일을 보내며 인간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엄중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뇌어본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 글귀가 문득 신선하게 느껴진다. 가을을 머금은 선선한 바람 덕분이다. 짧아서 소중한 것은 인생일까? 아니면 가을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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