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이제 청진기는 한의사에게 낯선 도구가 아니다”
한의재택의료학회 특강에선 기침·객담·호흡음, 복부 이상음까지 구체적으로 구분해 응급상황을 감별하고, 한의치료로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진료 틀이 제시됐다.
한의재택의료학회(회장 방호열)는 12일 온라인(ZOOM)을 통해 ‘재택의료 대상 청진의 활용–한의사 영역 내 관리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월례 특강을 열고, 청진을 통한 응급상황 감별 등 한의재택 진단 영역을 모색했다.
이날 강사로 초빙된 김은혜 가천대 한의대 조교수는 “청진은 단순히 서양의학적 도구에 머물지 않고, 한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응급 상황을 감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은혜 조교수에 따르면 방문 한의사는 재택의료 대상자의 흉부에 있어 △공기량 자체 부족 여부 △기도가 좁아진 경우 △객담(분비물) 여부 △분비물은 없지만 폐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 등의 이상 징후를 살펴야 한다.
이러한 분류를 통해 환자의 호흡 상태를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한의사도 이에 맞춘 치료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김 조교수는 “객담이 없는 단순 기침 환자의 경우 기침약이나 호흡기 치료제를 활용할 수 있고, 객담이 주된 문제라면 한의치료로를 통해 객담 삭임을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으며, 천식이나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도 악화 여부를 청진으로 구분해 적극적인 한의학적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폐렴이나 폐섬유화처럼 폐의 움직임이 제한되는 경우에는 접근 방식이 달라진다. 김 교수는 “폐렴은 급성 염증으로 번질 위험이 있어 청진 등 직접적 검진 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이때 심전도 활용이 가능하다면 더욱 안전하지만 재택의료인 만큼 체온과 산소포화도로 위험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청진 1순위 목적은 '위험징후(Red flag)' 구분 및 상급병원 인계
김 조교수는 흉부청진에 이어 복부청진의 중요성도 언급했는데, 복부청진은 흉부와 달리 정상음과 이상음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으로, 대표적 정상음으로는 △공기만 지나가는 소리 △장 연동음을, 이와 반대로 △장염의 경우 과활동성 장음(Hyperactive bowel sounds) △장폐색은 고음성·금속성 장음이 특징으로 설명했다.
김 조교수는 “복부청진의 진단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재택의료나 한의원 일차진료 현장에서 응급 상황을 배제하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라면서 “장폐색·장염 등 비교적 한의사가 관리할 수 있는 질환 외에 급성충수염, 급성췌장염 등 응급질환은 반드시 신속하게 상급의료기관에 연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복부청진은 혈액검사와 병행 시 더욱 정확성이 높아진다고 언급했는데, 간 수치, 신장 수치, 아밀라아제 등 췌장 수치를 함께 확인하면 응급 상황 감별이 훨씬 용이해진다는 것.
김 조교수는 “간·신장·췌장 모두 복강 내 장기이므로, 혈액검사와 청진을 결합하면 한의사도 재택의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진단 틀이 마련된다”면서 “난소낭종이나 복수처럼 외형상 구분이 어려운 경우에도 청진과 기본 진찰을 통해 차이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한의사, 이상음 통한 응급 여부 감별 후 한의치료까지 시행해야"
김 조교수는 흉부·복부 청진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의사의 치료 적용 가능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예컨대 기침은 있지만 폐 이상이 없거나 단순 객담, 장염·장폐색 등은 한의사가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며 “천식·COPD 같은 만성질환 악화나 경미한 복수 등도 조심스럽지만 접근 가능한 영역”이라고 밝혔다.
특히 암 환자의 복수와 관련해 “심하지 않은 복수 환자에게 오령산 같은 한약을 투여하면 환자가 느끼는 복부 불편감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며 한의학적 개입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아울러 한의사가 재택의료에서 청진을 활용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로 △청진이 필요한 시점 알기 △청진 방법 숙지 △이상음 구별 △응급상태 감별 △한의학적 치료 적용 가능 여부 확인을 제시한 김 교수는 “청진기는 이제 한의사에게 낯선 도구가 아니다. 증상, 체온, 산소포화도 기준으로 청진 타이밍을 정하고, 이상 소리에 따라 응급 상황을 감별한 후 한의치료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한의사가 재택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한의학적 치료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방호열 회장은 “한의재택의료학회는 매월 일차의료·재택의료·주치의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정기 세미나를 진행해오고 있다”면서 “이번 주제는 한의사가 기존 한의학적 진단을 넘어 청진과 혈액검사 등 기본적인 의료 정보를 적극 활용해 응급 상황을 구분하고,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만큼 앞으로 현장에 투입될 한의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다음 특강은 오는 17일 권승원 경희대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교수가 ‘한의재택의료에서의 혈액검사 활용’을 주제로 발표한다. 강의신청은 https://forms.gle/xQ784WhKSPxp6pJ29를 통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