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동차 손해배상보장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이하 개정안)’에 대해 통계 근거에 오류가 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국토교통부(장관 김윤덕)가 9일 강남 포스토타워역삼에서 ‘자동차보험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가운데 상해 12~14등급 환자 치료 기간을 8주로 제한하는 핵심 조항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정부가 제시한 한의과 진료비 증가 문제에 대해 한의계뿐만 아니라 소비자·보험이용자 단체, 언론계에서 조사 및 통계 오류를 지적했다.
이날 제시된 수치는 제각각이었으며, 실제 연구에선 편타 손상 등 자동차 사고 후유증 치료에 8주 이상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아 국토부 추진 정책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전 정부서 논의된 사안, 과학적·의학적 근거 부재”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패널토론에서 곽도성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은 개정안에 대해 “법적 근거와 과학적 타당성이 부족해 피해자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면서 “자동차는 위험을 내포한 물건이므로 운행자가 책임을 지도록 입법된 것인데,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피해자에게 증명책임을 넘기는 것은 피해자 보호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해등급 기준과 치료기간 제한에 대해서도 “치아 손상 개수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기준으로 경상환자를 구분하는 것은 과학적·의학적 근거가 없고, 실제 회복 과정과 맞지 않는다”면서 “추진 과정이 대통령 탄핵 직후 비공개 회의에서 논의된 만큼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투명한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곽도성 팀장, 김영수 이사, 강정화 회장, 박근빈 기자, 김소연 교수
■ ‘치료 종결’ 아닌 ‘사고 합의’로 도출된 ‘8주’ 문제
이어 김영수 대한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상해 12~14등급 환자의 치료 기간을 8주로 제한하고 이후엔 보험사 심사를 받도록 한 기준의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경상환자의 90%가 8주 이내 치료를 종결한다고 밝혔으나 손해보험협회는 80%가 8주 내 합의, 감사원은 73%가 60일 내 합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치료 종결’이 아닌 ‘사고 합의’ 수치라는 점에서 정책의 신뢰성이 흔들린다는 것.
김 보험이사는 “편타 손상 등은 8주 이상 치료가 필요하다는 연구도 많다”며 “피해자를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취급하고 보험사에 판단을 맡기는 것은 권리와 존엄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과잉진료와 부정수급을 혼동하는 시각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과잉진료는 불법이 아니며 환자와 의료인만이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보험 진료가 이미 입원·외래·추나요법 등 대부분 항목에서 기간별 제한을 받고 있으며, 최근 5년간 진료비 증가율도 건강보험(33%)보다 자동차보험(17%)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보험사가 한의계에 책임을 전가한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전체 환자의 94%를 차지하는 상해 12~14등급 환자 150만 명의 치료를 일괄 8주로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정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개정안, 실제 치료 사례·진료 데이터 부재”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또한 “상해 12~14등급 환자 치료를 8주로 제한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만큼 산재보험과 단순 비교하기보다 실제 환자 치료 사례와 적정 진료 데이터를 토대로 기간을 정해야 한다”면서 “장기 치료 연장 여부를 보험사가 심사하도록 한 절차도 평가 기준이 불분명해 가입자와 피해자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감사원 지적을 이유로 환자를 일률적으로 향후 치료비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과잉 진료만을 근거로 삼을 게 아니라 피해자가 적정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치료 제한 보다 심평원 기능 강화·별도 위원회 필요”
박근빈 뉴데일리 기자는 “이번 개정안은 부정 수급 차단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경상 환자 진료 억제 성격이 강한만큼 나이롱 환자 비율, 의·한방 진료비 패턴 등을 근거로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면서 “진료 기간 제한보다 심평원의 기능을 강화해 과잉 진료를 걸러내는 것이 안정적이며, 한의과 진료비 급증을 일반화하지 말고, 세부 지표로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보는 피해자가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신속 회복을 지원하는 제도지만 과잉 진료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면서 “미국·영국 등은 보험금 지급을 제한하고 입증 자료 확보를 의무화했으나 우리나라의 선량한 의료인이 피해 보지 않도록 대안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보험사가 전문성이 부족한 부분은 제3의 기관 자문을 통해 보완하고, 지급 거절 시 위원회 구성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변지영 금융감독원 특수보험팀장은 “금융감독원에선 환자 8주 초과 치료 희망 시 별도 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제도 심의와 함께 향후 치료비 약관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백선영 국토교통부 자동차운영보험과 팀장은 “자동차 사고 환자가 자동차보험으로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험사 문제 등을 철저히 모니터링해 대응하고, 환자 편의를 위해 서류를 보험사가 대신 제출하도록 했으나,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엄격한 한의진료 심사 기준…보험사 중심 통계 오류 심각”
특히 이후 자유토론에서 이태연 대한의사협회의 부회장의 ‘5년 새 한의진료비 70%증가’, 주병권 손해보험협회 자동차보험부장의 ‘한의진료비 과다 청구 사례’ 주장에 대해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보험사 중심 통계 오류 문제와 국민 건강권 사이의 우선순위를 문제로 짚었다.
윤성찬 회장은 “한의과 진료는 이미 심사기준이 강화돼 입원은 초기에 5일, 외래는 사고 3주 이후 주 3회 이하, 첩약은 최대 20일 정도, 추나는 전체 치료기간 중 20회 이내로 제한되며 약침·물리치료·침·뜸·부항 등도 기간별 제한이 있다”면서 “이 기준은 심평원이 엄격히 심사해 초과분은 삭감되며, 보험사가 과잉진료를 의심할 경우 진료수가분쟁심의회에 청구할 수 있어 억제 장치는 이미 작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이어 “손해보험협회가 2014년 이후 한의진료비 증가를 문제 삼지만 이는 초기 진입 시 급증 현상일 뿐이고 최근 3년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건강보험은 급여만, 자동차보험은 급여와 비급여를 함께 포함해 단순 비교는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최근 한의원 자보 치료는 첩약 1회 처방단위도 기존 10일에서 7일로 제한을 받고 있으며, 8주 이후에는 고가 치료도 거의 없어 회당 진료비가 높지 않다”면서 “이에 따라 8주 이후 진료비 제한은 보험료 절감 효과가 없는 만큼 의료계·금감원·소비자단체가 참여하는 자동차보험 건전성 확보 위원회를 구성해 정확히 논의해야 한다”고 강력촉구했다.
한편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활동가는 “‘자동차 대인배상책임보험’은 ‘손해보험’이고, ‘자기신체사고보험’은 ‘개인보험’인데 이를 모두 ‘자동차보험’으로 통칭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손해보험인 대인배상책임보험의 피해자는 반드시 손해사정사를 선임해 손해액을 산정하고, 손보사에 손해배상금을 청구해야 함에도 손보사는 손해사정사를 통한 손해사정 기회를 피해자에게 주지 않고, 곧바로 심평원을 통해 자동차보험 요양급여 비용 심사를 받도록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김 활동가는 “‘자동차손배법’ 제정 목적은 피해자를 위한 법인데 약관에 근거한 손보사와 가해자의 계약 기준만 피해자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것은 입법 목적을 벗어나 피해자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피해자용 약관 개정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