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m 굴뚝농성은 삶의 절박함이었다”

기사입력 2018.01.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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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해고 맞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 진료 마친 오춘상 원장

    너비 1m 안 되는 꼭대기 통로서 ‘쪽잠’…“건강 우려스럽다”

    “빨리 땅으로 내려올 수 있어야”…국가인권위 역할 수행 기대

    [caption id="attachment_390336" align="aligncenter" width="767"]농성1 지난 14일 오춘상 원장이 파인텍 고용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해고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있다.[/caption]

    지난 14일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살피기 위해 75m 높이의 굴뚝을 올라간 한의사가 있었다. 굴뚝 중간 지점부터는 계단이 아닌 사다리에 의지한 채다. 그는 오춘상 원장(오씨삼대한의원)이다.

    노동자들은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 안 굴뚝에서 64일째(당시 기준) 고공농성 중이었다. 회사가 저버린 고용 보장을 이행할 것과 노동악법 철폐, 독점재벌, 국정원, 수구정당을 해체를 요구하는 농성이다. 이들은 파인텍이라는 회사에서 근무한 홍기탁 전 파인텍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다.

    이들은 왜 굴뚝에 올라가야만 했는지, 그리고 왜 아직 굴뚝에서 내려올 수 없는지 오춘상 원장을 만나 자세히 들어봤다.

    다음은 오춘상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이들이 굴뚝에 올라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분들은 한국합섬이라는 회사에서 근무 했던 분들이다. 그러나 2007년 한국합섬이 파산하자 스타플렉스라는 회사가 인수했다. 스타플렉스는 2011년 한국합섬의 명칭을 스타케미칼로 바꾼 뒤 회사를 운영했지만 곧 폐업했다. 그 과정에서 희망퇴직을 거부한 일부 노동자들은 사측으로부터 부당해고 됐다.

    그때 해고된 차광호 전 스타케미칼지회장이 부당함에 맞서 지난 2014년 5월부터 굴뚝 농성을 했다. 무려 408일 동안이었다. 결국 김세권 스타플렉스 회장은 2015년 자회사 파인텍을 만들고, 이들을 회사로 복직시켰다. 고용 보장과 노동조합, 단체협약 보장도 약속 받았다. 하지만 파인텍은 단협 체결을 미루다 지난해 8월 직장을 폐쇄했다. 같은 직장 동료인 홍기탁 전 지회장와 박준호 사무장이 굴뚝에 오른 이유다.

    Q. 부당해고라면 법에 기댈 수 있는 부분은 없는가.

    앞서 사주는 고용 보장과 단협 등을 해주는 조건으로 이들과 합의했다. 하지만 사주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노동법에 문제가 안 되도록 회사 폐업해버렸다. 폐업신고를 하면 법률적으로 문제는 안 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사주가 이 사람들과 당초 약속했던 부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caption id="attachment_390338" align="alignleft" width="232"]농성 지난 14일 오춘상 원장이 서울에너지공사 안 굴뚝을 오르고 있다.[/caption]

    Q. 일부는 농성을 통해 정치적 구호도 같이 외친다고 지적한다.

    우리 몸에서 팔 다리가 각기 따로따로가 아니듯, 내장들도 모두 서로 연계돼 몸이라는 전체 시스템을 운영한다. 노동 분쟁도 역시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에 노동문제와 정치적인 문제를 따로 구분 지을 수 없다. 파인텍 뿐만 아니라 노사 합의를 해놓고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사업장들이 많이 있다. 정치, 사회 문제와 연계해서 풀지 않으면, 노동 분규를 기업가들의 양심에만 맡겨야 한다.

    Q.올라갈 때 고소공포증 같은 건 없었나.

    왜 무섭지 않았겠나(웃음). 2012년에 성당 종탑 위에서 고공농성 하시던 학습지 교사들의 건강상태를 돌보러 종종 종탑위에 오르곤 했다. 그 때 종탑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청년한의사회나 길벗한의사모임에 대외 활동하는 훌륭한 후배 한의사들이 많이 계신데, 75미터 굴뚝 위에 올라가달라고 차마 부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올라갔다.

    Q. 직접 본 홍기탁, 박준호 씨의 건강 상태는 어떠했나.

    아직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다만 이분들이 40대 후반인데다 그동안 추운 날씨 때문에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또 이분들이 지내는 굴뚝 통로의 폭이 채 1m도 되지 않는다. 천장 용도로 비닐을 쳤다고 해도 높이는 겨우 120cm 정도나 될지 모르겠다. 날마다 새우잠을 자다 보니 점점 피로가 쌓이고 있다. 바닥은 얼어 있고 여러 겹 매트를 깔았는데도 발이 시릴 정도로 냉기가 가득해 동상이 우려스럽다.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을 내쉬는 등 화병 초기 증상도 있고, 잠을 자다깨기를 반복하고 있다. 서로 많은 대화를 당부하면서 준비해 간 쌍금탕을 전해드리고 왔다.

    Q.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도 함께 올라갔다.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는 독립적인 인권전담 국가기구다. 국가인권기구가 농성하는 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함께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무총장이 농성자의 인권을 직접 보기 위해 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국가인권위는 정부나 국회에 권고하는 역할도 한다고 하니 노동자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잘못된 법제도에 대한 의견이 나오면 좋겠다. 이게 파인텍노동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Q. 고공농성 중인 홍기탁, 박준호 씨를 대신해 한 마디 해달라.

    굴뚝을 올라가면서 과연 이 두 사람이 어떤 바람을 가지고 위를 향해 올라갔을까 생각해봤다. 결코 쉽게 내려오지 못하리라는 생각에도 절박한 현실 때문에 그리했을 것이다. 저 위에 있는 두 분이 밑으로 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아래에 있는 우리 모두가 깊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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