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법률 시행이 만 3년을 맞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10일에는 국내 웰다잉(Well-Dying)과 관련된 60개 단체의 협의체인 ‘웰다잉단체협의회’가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나 스스로가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 문화가 조성되도록 제도적·사회적 조성을 위해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주도한 원혜영 전 국회의원이 초대회장을 맡았다.
웰다잉이란 말 그대로 ‘좋은 죽음’을 말한다. 생애 말기에 이르렀을 때 병의 증상을 관리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삶을 마무리한다는 개념이다.
여기에 영국 보건당국이 제시한 생애말기 돌봄 전략에 따르면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친근한 환경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통증이나 여타 증상에서 해방 △존엄성을 지닌 개인으로 존경받는 처우를 등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도 지난 2005년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을 대상으로 운영비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2015년에는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입원형 호스피스 서비스에 건강보험수가를 적용했다.
그러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제도인 ‘연명의료결정법’도 지난 2016년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7년 10월부터 약 3개월 간 연명의료결정제도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이듬해 2월 이를 본격 시행했다.
아름다운 죽음 맞이할 시설 없어
‘두려움 없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중장년층의 바람과 달리 우리 사회는 임종을 위한 인프라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타 국가보다 낮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률로 인해 우리나라 대부분의 환자는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통계청 2017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전체사망자 28만5534명 중 21만7569명(76.2%)는 의료기관에서 임종한다. 암 사망자만 놓고 보면 7만8863명 중 92.1%(7만2635명)가 의료기관에서 임종한다. 주택이나 호스피스시설에서 임종하는 인원은 각각 4만1054명(14.4%), 1만2704명(4.4%)로 2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지난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원하는 임종 장소를 묻는 설문에서 국민 4명 중 3명은 ‘가정(57.2%)’과 ‘호스피스시설(19.5%)’을 꼽았음에도 임종장소는 현실과 큰 괴리가 있다.
국내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률이 낮기 때문이다. 국내 호스피스 이용률은 최근 10년간 10% 대에 머물다가 2017년 들어서야 비로소 22%로 올라섰다.
[출처: 국립암센터 중앙호스피스센터]
그 이유로는 호스피스 지정 전문기관이 부족하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시범사업 중인 요양병원 호스피스 제외)은 2018년 84개, 1358병상에서 2020년(5월 기준) 87개, 1402병상으로 3개 기관 44병상이 늘어나는데 그치고 있다.
암으로 한 해 사망하는 인원만 약 8만명인 상황과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한 수준. 이마저도 암 이외에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대상자인 후천성면역결핍증, 호흡기질환 등 환자 숫자를 합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가정형과 자문형 호스피스도 이제 시범사업 실시 단계다.
이에 호스피스 이용률을 영국(95%)이나 미국(48%), 대만(30%) 등 의료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도록 시설 지정·확충이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단체 대표는 “수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되는 환자와 가족에게 평안한 임종을 위한 돌봄을 제공해야 하지만 홍보와 시설 수가 부족한 현실”이라며 “지정 전문기관 증대를 통해 40%대 수준으로 이용률을 더욱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관련 예산 지원도 뒤따라야
호스피스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고보조금도 올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2005년부터 정부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을 대상으로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초기에는 호스피스사업에 대한 공급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고자 운영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호스피스·완화의료 특성상 서비스 대상자에 환자 가족도 포함되고, 성직자 및 자원봉사자 인력 운영비용이 소요되는 점 등 건강보험 수가체계로 보상하기 어려운 부분을 고려해 정부는 호스피스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에도 운영비 지원을 계속 하고 있다.
현재 호스피스센터 및 호스피스 전문기관 지원 사업은 복지부의 ‘국가암관리 민간 지원 사업의 보조사업으로 수행되고 있다. 그 중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 사업에 편성된 예산은 지난 2018년 기준 약 40억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는 2023년까지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을 통해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률을 복지부가 3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한 만큼, 이에 따른 충분한 예산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존엄사한 3명 중 2명 “자기결정권 행사 못해”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핵심은 “‘사전돌봄계획의 수립이나 함께하는 의사결정을 통한 연명의료 중단의 결정”이라며 “말기 환자에게 자신의 상태와 앞으로 예상되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 절차를 밟은 환자 약 3명 중 2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통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대부분은 본인 스스로가 아닌 가족의 의사추정이나 전원합의 형태를 띠면서 자신이 아닌 타인의 결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열린 웰다잉 문화조성의 현주소와 과제 국회토론회에서 김대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교수는 “임종기 전인적 돌봄에 대한 환자의 바람과 기대를 확인해가는 과정의 산물이 연명의료계획서여야 한다”며 “이러한 목적이 간과되고 과정이 생략된 채 연령의료계획서 작성 그 자체에만 주목하는 것은 이 법의 제정 취지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형욱 단국대 의과대학 의예과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 이행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결정 이행을 한 경우 이를 처벌하는 조항 또한 의료현실과 동 떨어져 있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연명의료 중단을 잘못 내린 의료인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는데, 이로 인해 의료현장에서는 형사처벌의 불안감이 커진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