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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한의사회, ‘2025 한의약 리더쉽 최고위과정’ 개강[한의신문] 경기도한의사회가 한의사의 전문성과 리더십 역량 강화를 위해 내달부터 ‘2025 경기도 한의약 리더십 최고위과정’을 개설, 김홍신 작가를 비롯한 각계 명사들이 초빙해 인문학·심리학·AI·경제 등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통찰과 실천을 겸비한 한의약 리더 양성에 나선다. 경기도한의사회(회장 이용호·이하 경기지부)는 다음달 17일부터 12월15일까지 매주 월요일, 경기지부회관과 온라인(ZOOM)을 통해 ‘2025 경기도 한의약 리더십 최고위과정’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경기지부는 한의사의 리더십 제고와 전문성 확장을 도모하고자, 올해로 4회째를 맞은 ‘한의약 리더십 최고위과정’(한의약미래전략위원장 민상준)을 통해 각 분야의 저명 인사를 초청해 통찰과 실천 역량을 갖춘 한의약 미래 리더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최고위과정은 시대 변화 속에서 한의사가 갖춰야 할 통합적 사고와 사회적 리더십 역량 강화를 위한 다섯 개 분야의 명사 강연으로 구성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겪어보면 안다(김홍신 작가) △역사로 보는 리더십(이성원 전남대 사학과 교수) △우리는 왜 미루고, 무엇에 움직이는가?(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한의사가 알아야 할 인공지능 필수 트렌드(이상훈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2026년 경제전망: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금융혁명(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을 주제로 진행된다. 먼저 내달 17일 개강일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소설 ‘인간시장’의 작가이자 방송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김홍신 작가가 강연자로 나선다. 그는 소설가, 국회의원, 방송인, 교수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체험이 지식보다 더 큰 깨달음을 준다”는 메시지와 함께 한의사들에게 인간의 상처를 통찰로 승화시키는 법을 문학적 언어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어 24일에는 ‘황하문명에서 제국의 출현까지’ 등 다수의 세계사 저서를 펴낸 이성원 전남대 사학과 교수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정치사를 통해 위기 상황에서의 결단, 공감과 도덕성, 집단 리더십의 조건 등을 분석하고, ‘권력보다 책임, 명령보다 설득’이라는 리더십의 본질을 재조명할 계획이다. 12월1일에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어쩌다 어른’ 등에 출연한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행동심리학과 뇌과학에 기반한 자기조절 전략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한다. 그는 실제 사례와 실험 데이터를 통해 개인의 의지력 강화, 습관 형성, 자기 동기 부여 방법 등을 심리학적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또한 12월8일에는 한의학과 인공지능 융합 연구의 선도적 연구자 중 한 명인 이상훈 연구원이 한의 임상과 연구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AI 진단 알고리즘의 원리, 한의 임상데이터의 디지털화, 생성형 AI의 의료 응용 등 한의사가 알아야 할 최신 AI 동향을 소개할 예정이다. 아울러 12월15일에는 KBS와 연합뉴스TV 등 주요 뉴스 프로그램에서 경제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 강연에 나선다. 그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안정, 금리 전환기, 블록체인 기반 금융 혁신을 배경으로 향후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전망할 예정이다. 이용호 회장은 “올해에도 리더십 최고위과정을 통해 전문성과 인문학적 소양, 디지털 감각을 두루 갖춘 한의사 리더를 양성하고자 한다”며 “급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 한의약의 미래 전략을 함께 설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리더로서의 통찰과 비전을 확장하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과정에는 각 분야에서 깊은 통찰과 실천을 보여온 명사들을 직접 모셨다”며 “바쁘신 일정에도 한의사들과 소통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신 강사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전국의 한의사 회원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매주 월요일 총 5회(강의 90분, 질의응답 30분)에 걸쳐 경기지부회관 2층과 온라인(Zoom) 동시 진행되는 이번 최고위 과정은 경기지부뿐만 아니라 전국 한의사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수강신청은 오는 27일부터 11월3일까지 QR코드 또는 구글 신청서를 통해 가능하며, 자세한 사항은 경기지부 사무처(☎031-242-1409)로 문의하면 된다. ▶ ‘2025 경기도 한의약 리더십 최고위과정’ 신청하기(클릭)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MAqQbsWPi4zD9mfnfe7icfCj5A8FsGm4iMFqfKhrhcYG3fw/viewform -
한의사가 카메라로 담아낸 제주마의 ‘생왕쇠멸(生旺衰滅)’[한의신문] 수년째 들판에서 제주마의 삶을 내밀하게 카메라에 담아온 김수오 원장(제주 늘푸른경희한의원)이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제주돌문화공원 내 갤러리 누보에서 ‘가닿음으로’를 주제로 개인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제주마를 주제로 한 김수오 원장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회에서는 제주마의 사계절과 생로병사의 서사를 담은 작품 35점을 공개,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서정성을 선보였다는 평을 얻었다. 제주도에서 한의사이자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김수오 원장은 낮에는 환자를 진료하고, 밤이 되면 카메라를 들고 제주의 오름과 들판을 다니며 방목된 제주마를 담아왔다. 특히 제주 오름을 담은 그의 작품 ‘신들의 땅’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은 제주의 자연과 평화를 위한 다수의 단체전에 공개돼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말들은 그에게 단순한 피사체가 아닌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경이로운 존재로, 제주마의 터전이 되어주는 제주 산야가 야생성을 잃어 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카메라 가방을 메고 들판으로 나서게 된 것. 김 원장은 제주 산야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더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깊은 밤 중산간 들판에서 제주마 곁에 앉아 그들의 시간들을 켜켜이 모았다. 특히 이번에 전시된 사진들은 제주마들의 사계절과 생로병사를 고스란히 담은 것으로, 들판에서 새 생명을 위한 짝짓기와 잉태, 분만의 순간부터 들판에서 서서히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담아냈다. 김 원장은 “들판에서 태어나 비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견디다 들판에서 생을 마감하는 제주마의 삶은 어린 시절 보았던 제주사람들의 삶을 떠올린다”면서 “사진 속 제주마는 척박한 제주섬에서 강인하게 삶을 일궈온 제주 민초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내게 곁을 내준 제주마들의 사계절과 생로병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어미젖을 먹으며 한창 뛰어놀던 어린 망아지가 하룻밤 새 앓다가 죽어 까마귀와 들개를 거쳐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과 한겨울 눈 속에 파묻혀 생을 다하는 늙은 말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다”고 표현했다. 2일 열린 오프닝에는 △작가와의 대화 △특별 공연(문지윤 첼리스트, 최창남 목사, 동백작은학교)이 진행됐으며, 오는 10일에는 고광민 제주생활사 연구자를 초청해 ‘산, 오름, 그리고 소와 말’을 주제로 특강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전시회에 대해 소설가 현기영은 “밤의 어둠 속에서도 그는 달빛과 별빛을 끌어모아 촬영한 것으로, 그의 사진들은 저마다 ‘생왕쇠멸(生旺衰滅)’이라는 자연순환의 절실한 내러티브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는 말을 기록하지 않고, 말을 그린 것으로, 밤 깊도록 말과 교감하며 나온 사진들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심미적 표현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아울러 “제주다움을 간직하며 제주마의 터전이 되어주던 제주 산야가 각종 난개발로 사라져갔고, 그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다”면서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섬의 자연환경이 더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카메라 가방을 메고 들판으로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오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제주돌문화공원 제2코스 입구(돌박물관 출구)에서 관람(오전 9시30분부터~오후 5시30분, 매주 월요일 휴관)할 수 있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5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향후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 ‘태국 길거리 음식의 재해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같은 인테리어를 갖춘 종로의 어느 태국요리 전문식당을 방문했었다. 예약은 필수였고 입장을 하고 나니 방문 계기를 묻기도 했고, 창맥주 대신 오늘은 태국요리에 딱 맞는 와인을 추천하고 싶은데 괜찮냐며 와인을 강매하려는 작전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직원들의 응대에서 뭔지 모를 불편감이 막 피어오르려 했으나 코스요리 말고 몇 가지 단품만 간단히 먹고 나가리라 다짐하면서 나는 그냥 얼음컵과 창맥주 한 병을 먼저 달라고 했다. 태국요리를 워낙 좋아하니 고수나 소스만 좀 넉넉하게 달라고 부탁했고 주문한 요리들이 줄지어 서빙되었다. 지름이 2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밀짚모자 엎어놓은 형상의 널따란 접시의 정 중앙에 너무도 소박해 보이는 양의 팟타이가 올려져 있었다. 휙휙 집어드니 두어번의 젓가락질만에 바닥이 바로 보인다. 똠양꿍은 따뜻한 국물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신선로 모양의 고유 그릇이 아닌 은색 쟁반 위의 은색 국그릇 세트에 담겨져 나왔다. 고수는 파슬리처럼 한두어개 올려져 있었던가 고수가 아예 없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똠양꿍은 뜨거운 온도가 생명인데, 나오자 마자 식어버렸다. 그 흔한 로띠마저 가장 파삭할 지도 모르는 상하좌우의 네 면을 잘라내어 버리고 정중앙을 직사각형으로 6조각 내어두고 위에 별모양으로 만든 바나나를 살포시 올려놓았는데 그 터프하면서도 진득한 로띠의 맛이 아니었다. 이런 수준의 로띠에 만 오천원을 받는 걸 보고 ‘이런 미친!’, ‘Oh, shit!’이 입 속에서 메아리쳤다. 실망 가득했던 종로에 위치한 태국요리집 이 집은 태국 길거리 음식의 재해석이 아니라 태국 외식물가의 한국적 가격 올려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성비도 가심비도 기대 이하였던 이런 집에는 별점테러가 약이겠지만 나쁜 이용후기는 쓰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인지라 ‘나만 다시 안 가면 되지 뭐…’라며 사장의 또 오시라는 90도 인사를 애써 무시한 채 쓩 나와버렸다. ‘저런 실력으로 어떻게 식당을 열었을까? 인테리어가 고급지고 오픈주방이라 깔끔해 보이고 와인 몇 병 가져다놓으면 사람들이 마음과 입과 지갑을 열 수 있을거라 생각했을까? 어림없지. 절대로 오래갈 수 없는 식당이야. 저런 식당은 벌 좀 받아야 해!!’하는 저주의 화살을 마음 속으로만 수백개 날려본다. 가성비 최악이었던 종로의 그 태국음식점 때문이었을까? 6월 초에 3박4일의 여행이 가능한 일정이 나오자마자 ‘가자, 방콕으로!’를 실천에 옮겼다. 저가 항공 비행기 예약 완료, 지상철인 BTS 수라삭역과 호텔 3층이 연결되어 있다는 편한 접근성에 인피니티 풀까지 갖춘 가성비 만점 호텔도 예약 완료! 3박4일 일정에 맞춰 택시나 툭툭이가 아닌 대중교통으로 도달할 수 있는 식당, 카페, 쇼핑몰, 마사지샵, 공원 위주로 나만의 일정과 동선도 꼼꼼히 짜보았다. 야시장이나 노점상 대부분은 ‘위생은 개나 줘버려’와 ‘파리와 나눠 먹으렴’ 혹은 태국의 평균 기온을 감안할 때 ‘이거 먹다 더위를 함께 먹어도 우린 책임 음슴’의 3대 원칙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열려있는 곳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의 식사를 포기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가성비였다. 또한 ‘한 번 뿐인데, 여기 오가는 비행기표값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감당해야 여행이지! 이게 낭만이지! 이게 로컬 갬성이지!’라는 난데없는 낭만 제일주의는 여행자들의 마음의 빗장을 해제시키는 가끔은 위험한 징조이기도 하다. 실내인지 실외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후텁지근한 공기, 그 습도 가득한 무더운 뿌연 공기와 바깥 매연이 섞여서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직화구이가 되고 있는 건지 지금 내가 통구이가 되고 있는 건지 혼동스러움의 절정, 연신 땀을 훔쳐가며 끝도 없는 고깃덩어리들을 구워내던 덩치 큰 남자직원의 현란한 손동작, 식당 입구 쪽의 커다란 고무통 얼음박스 안에 얼음주걱과 얼음 덩어리들이 함께 뒹굴고 있었던 놀라운 광경, BBC에도 소개되었다던 방콕 맛집 영상 속의 그 유명한 쏨땀 할머니가 방금 온갖 재료들을 넣고 주물주물 했었던 일회용 장갑을 그대로 돈통을 휘적휘적 거리시더니 거스름돈을 직접 내어주신던 그 과감한 친절함. 직화구이 화로가 식당 안에 위치하는 에어컨 따위는 없는 그 정신없고 시끄럽고 비위생이 철철 넘치던 식당을 가득 채운 손님들을 그리로 이끈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쏨땀의 장인으로 소개된 분의 식당인데도 비싸지가 않았고 사람들이 바글대는 유명한 맛집에 일단은 착석을 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땀뻘뻘 흘리면서도 얼음컵에 넘치게 따라마시는 맥주가 목구멍만큼은 더위순삭이니 가성비와 가심비 다 챙기고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도 식사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무덥기는 매한가지라 초월적 고온다습이 특징인 방콕에게서는 뭐랄까 ‘불평할 거면 오지마!!’라는 자신감마저 느껴진다. 현재 한의의료기관의 가성비는 어떨까? 6월이라 그런지 한여름 대비 몸짱 준비기라 그런지 유독 라켓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 과정에서의 과사용으로 어깨통증 환자분들이 많이 오신다. 오른쪽 어깨 오십견으로 2∼3년 전 고생하셨다가 우리 진료실에서 잘 나으셨던 한 직원분이 최근에 다시 오셨다. 외부 파견으로 국회를 떠나 있었는데 그 와중에 보고서 쓰다가 이번에는 왼쪽 어깨에 통증이 생겨서 일요일도 진료하는 집 근처 통증의학과 다녀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장사보다는 치료를 하는 병원을 찾기 드문 요즘 정말 좋은 곳을 한 군데 우연히 알게 되어서 원장님 혹시 양방으로 의뢰할 일 있으시면 이 쪽으로 해보셔도 좋을 것 같다고 병원을 알려주시는데 너무 고마운 정보였다. 골절 의심되는 급성 손상의 경우 의뢰서를 써서 바로 전원을 시켜야 하는데 여의도역까지 나가면 모를까 국회의사당역 근처에는 그야말로 보낼만한 병원이 없다. 정기적으로 의뢰를 하는 곳은 선유도역 쪽인데 당장 이동수단이 애매한 경우에는 국회 건너편 횡단보도 건너서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작년엔가 젊은 남자의사들 세 명이서 공동 개원한 재활의학과 한 군데가 문을 열기는 했다. 그런데 다녀온 직원들 대부분이 실비보험으로 돌아가는 병원이라 그런지 입장하자마자 보험 가입 여부를 묻고 손목 통증으로 골절 여부나 알아보려고 들어갔다가 28만원을 내고 나왔다는, 다른 직원은 무릎이었는데 도수치료까지 120만원을 부르길래 그냥 돌아섰다는 등의 후기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장사가 아닌 진짜 치료를 하는 병원 정보라니!! 원장님 한 분, 간호사 한 분 계시는 시장통 옆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한 곳으로 엘리베이터도 없고 주차는 불가하단다. 초음파 진단 후 주사치료 회당 2∼3만원, 주 1회, 3회 연속이 원칙. 체외충격파나 도수치료실 없고 갈 때마다 환자들은 대기실에 1∼2명, 대기 없이 바로바로 치료 가능. 예약은 불필요. 이 병원 없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었지만 본인처럼 그 원장님의 진정성과 실력을 맛본 사람은 계속 갈 병원이라고 평가했다. 한방 병의원들의 가성비는 어떨까? 종로의 겉보기에만 멀쩡했던 태국 식당처럼 외양만 유독 번지르르한 곳도 있을 테고 방콕의 로컬 맛집처럼 위생이나 시설은 그저 그렇지만 맛 하나만큼은 분명한 곳도 있을 것이다. 실비보험으로 유지되는 곳은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테고 간호사 한 명과 제한된 시공간에서 사투를 벌이듯 가성비 최고의 치료를 해내며 하루하루 버티는 곳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은 고액의 비보험 치료비에 대한 수납저항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수납 이후 병의원을 오가는 환자들의 만족도가 기대 이하일 때 자칫 컴플레인이나 악플테러로 혹은 유사 의료사고 비슷한 의료진-환자가족간의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 하다. ‘약값, 치료비 그 값어치를 제대로 하고 있나?’ 입원환자들을 보던 시절 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질문이었다. 그랬다가도 큰 문제 없이 호전되었다는 상호간의 교감 후에 무사히 환자를 퇴원시키는 그 날 아침의 회진만큼 마음 편한 순간은 없었다. 개운한 맛, 그렇다. 그보다 더한 깔끔한 맛은 없다. 『인생의 맛』 (앙투안 콩파뇽, 책세상, 2014년 9월) 2012년 여름 프랑스의 국영 라디오 채널의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방송 대본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대본을 쓰고 방송을 진행한 앙투안 콩파뇽은 프랑스의 대표 지성이다. 몽테뉴의 사상을 짧지만 밀도 높게 소개하고 있다. 직무를 수행한답시고 변하다 못해 새로운 존재, 새로운 얼굴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자들이 있다. 간과 창자 속까지 고관대작이 되어 화장실에 갈 때조차 직위를 끌고 가는 자들 말이다. 나로서는 그런 자들에게 자연인으로서의 그들에게 보내는 경례와 그들의 직무나 수행원들 혹은 허울에 보내는 경례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칠 재간이 없다. 이들은 자신의 행운을 과신한 나머지 본질을 잊는다. 그런 자들은 영혼과 본연의 말투까지 관직의 높이에 따라 부풀리고 과장한다. 『쓴 맛이 사는 맛』 (채현국, 비아북, 2015년 2월) 채현국(1935∼2021)님이 구술하고 정운현님이 기록한 책. 효암학원(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 경남 양산 소재)의 무급 이사장으로 <창작과 비평>의 영원한 후원인이었던 ‘시대의 어른’으로 불리웠던 채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 삶이란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깨우치는 과정이다. 처음엔 누구도 삶을 알 수 없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이다. 삶이란 삶을 사랑할 줄 알게 되는 과정이다. 다만 그저 아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갈등과 반복, 그 과정에서 피 터지게 싸운 결과, 우리는 삶을 사랑하게 된다. 삶이 때로 공허하고 저주스러운 것은 그만큼 사랑할 가치가 있다는 반증이 된다. 삶을 사랑할 줄 알게 되면 이제 운이 트인다. 단맛이든 쓴맛이든 삶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실패를 연속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과정이다. 국문학자 구중서 선생은 친구 채현국의 일화에 대해 책 『면앙정에 올라서서』의 ‘서울의 뒤안길’ 챕터에서 “어떤 친구가 빙판에서 넘어져 팔꿈치에 물집이 생기고 쉽게 낫지 않으면 팔을 끌고 저 장위동 넘어가는 고갯마루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어준다. 그 약을 달여 먹으면 이상하게 쾌유가 된다” 라고 기록했다. 『어른의 맛』 (히라마쓰 요코, 바다출판사, 2016년 9월) <취중만담>, <바쁜 날에도 배는 고프다>, <혼자서도 잘 먹었습니다>,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손때 묻은 나의 부엌> 등 작가의 다른 책 제목들만 훑어보아도 작가의 주된 관심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4시 정각. 일하러 가기 전에 가볍게 맥주 한 잔.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에 흥분한 나머지 찌는 듯한 더위가 단번에 물러간다. 아직 해가 높이 또 있는데 술을 마시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번듯하게 일하고 계시는데 이런 시간에 벌써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헤헤. 이것 참 죄송하네. 딱히 어려워할 사람도 없는데 왠지 모르게 죄송스러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감정은 우월감이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 사치를 부리고 있다는 특별함이다. 캬. 좋다. 기가 막힌 술맛에 자랑스러운 기분이 더해진다. 『나이 드는 맛』 (존 릴런드(John Leland), 웅진지식하우스, 2018년 11월) 기자 존 릴런드가 <New York Times>에 연재한 6부작 시리즈 <85 & Up>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으로 85세 이상의 노인 여섯 명과 1년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그 나이가 되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기록하고 있다(“가끔 나는 내가 아흔한 살이라 기뻐, 다 끝났쟎아.” 루스 윌리그 91세, “희망이 없는 일은 없어. 나는 희망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요나스 92세). 초고령자들은 더 나은 뭔가를 찾아 애태우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꼭 붙잡으라고 알려준다. 그들은 헛된 꿈을 꿀 시간이 없다. 아직 시간이 있다는 믿음도 헛된 꿈이다. 초고령자들은 모두 자신이 젊었던 시절을 동경하는 대신 스스로를 가장 자기자신답게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다시 말해 자신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모든 순간은 행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초고령자들은 자신을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몸이 아니라 할 수 없는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전략을 가진 몸으로 간주했다. 초고령자들과의 대화는 점점 죽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한 토론이 되어갔다. 『요즘 사는 맛』 (김겨울 외. 위즈덤하우스, 2022년 2월) 밥심으로 산다는 12명의 작가들의 최애 음식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집. 끌리는 제목 덕분일까? 모두가 좋아하는 읽는 먹방이어서일까? 2023년에는 『요즘 사는 맛 2』 도 이어서 출간되었다. 가족과 이렇게 살다보니 가장 기본적인 존중은 식성의 존중이며 가장 멋진 공유는 식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강요받지 않음과 동시에 강요하지 않을 것. 그리고 다채로운 식탁을 인정하는 것. 요즘 시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채식이 불편하지 않게, 눈치 보이지 않게, 내가 먹고 싶은 걸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환경 말이다. 우리에게는 먹을 권리와 먹지 않을 권리가 함께 있으니까. (소설가 천선란) 나는 늦은 만큼 열심히 하는 타입이라서 이제야 나를 너무나 좋아하기 시작했다. 살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너무 좋다. 구운 버섯을 씹으며 내일은 발사믹 비네거를 뿌려서 구워보자고 중얼거린다. 먹는 기쁨은 이렇게 아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쌓여 간다(삽화가 임진아). 한의학적 접근법에는 가성비보다는 가심비를 충족시켜주는 치료들이 많다. 이렇게 환자들에게 정성스러운 대화와 맞춤과 배려와 사랑과 따뜻함과 보살핌과 애정과 시간을 들이는 치료는 없다. 그 어디에도 없다. 가성비, 갓성비에 이어 이젠 가심비까지 챙겨야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하니 의료를 포함한 모든 분야가 만만치 않은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 후배는 “선배, 우린 너무 친절해. 그게 탈이야. 환자들이 얕보고 별거별거 다 요구하고, 의사들한테 못 다한 이야기 다 터놓고 물어보고 우릴 도대체 뭘로 보는걸까?”라고 푸념한다. “그게 한의사 역할일 수도 있지. 일차진료 아니면 양방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는 경우에 비로소 부여되는 뒤치다꺼리같은 역할이어도 골목골목에서 요소요소에서 한의사들은 분명 요긴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해.” 방콕에서 구입해 온 HOTTA 생강차와 말린 망고를 먹으며 우린 그후로도 긴 대화를 이어나갔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52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향후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있다. 2023년 11월9일 민주당과 정의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제2·3조 개정안을 말하는 해당 법안은 2014년 법원이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시민들이 이를 돕기 위해 성금을 모아 노란봉투에 전달하면서 ‘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이 법은 하청노동자 노동 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지닌 원청으로 단체교섭 대상을 확대하고, 쟁의행위(파업)를 이유로 한 회사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설가 김훈은 ‘생명안전 시민넷’의 공동대표를 맡으며 산재사고 사망자 문제에 무감한 정부와 사측을 비판하는 강연과 시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매년 산업현장에서 2300명이 죽어나가는 이 사태를 해결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없다. 이 거듭되는 무수한 죽음을 계약의 자유나 경영의 합리화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는 논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노란봉투법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거부권’이라는 단어가 동시에 연상되었다면 2024년 5월, 이 법의 처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의 외주화’라는 표현도 최근 더 자주 들린다.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에 대해서 2022년 12월 현 서울시장이 그 필요성을 제기한 이래 최근까지도 그 실효성을 두고 각계각층의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月 200만원에 ‘동남아 이모님’? 외국인 가사도우미 ‘뜨거운 감자’』(동아일보, 2023년 5월18일), 『간병·육아 ‘외국인 도우미’ 도입, 사회적 공론화 나서야』(연합뉴스, 2024년 3월5일) 돌봄의 순서와 중요도에 어찌 선후를 따지랴마는 나이 쉰을 앞두고 보니 육아 돌봄은 내게는 과거의 일이라 잠시 차치해두고 어르신들의 돌봄에 마음이 쏠린다. 이는 당장 내 앞에 닥칠 문제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 가족돌봄의 방향은? 경향신문 칼럼 <김택근의 묵언>에서 시인 김택근은 “다시 어버이날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다. 설 쇠고 며칠 후 낙상하여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결국 며느리와 아들이 갈아주는 기저귀를 차야만 했다. 누구의 손길도 마다하고 혼자 죽을 힘을 다해 당신의 몸을 씼었건만 이제 움직일 수 없다. “왜 이리 안 죽냐, 무슨 죄가 많길래.. 참말로 이런 날이 올지는 몰랐다.” 마른 몸에도 욕창이 생겼다”라고 어머니의 투병기를 기록했다. 또 한겨레신문 칼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서 한양대 의대 신영전 교수는 “그래도 힘들었던 것은 기저귀 수발보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시는 어머니의 몸과 행동에서 얼마 후 내 모습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 밖에서 멍하니 기다려야 할 때였다. 그때 한 청년 간병인이 만든 “이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는 주문을 반복해서 읊조렸는데, 도움이 되었다”라는 간병일지를 기고하기도 했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처음으로 친정 아버지께서 부재하신 가운데에서 가족 모임을 했다. 작년 9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경미한 당뇨와 심박조율기 착용 중이라는 짧은 두 줄이면 아버지를 설명하는 병력으로는 충분했다. 멤버 대부분이 40, 50대였던 장가계 패키지 여행을 칠순 연세에도 거뜬히 소화하셨던 체력 짱짱한 어르신이셨다. 우리 아버지야말로 백세를 사실만한 분이라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 확신했다. 그러던 아버지께서 두 번의 코로나와 원인불명의 고열을 몇 차례 겪으시더니 몸무게의 앞자리가 7에서 6으로 다시 6에서 5로 쪼그라들며 쇠약의 내리막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계셨다. 가장 가까이 사는 거기에 한의사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는 내게 유독 큰 부담과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지금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출근을 하든 퇴근을 해서든 24시간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듯 했다.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아버지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한 내 차원에서의 한양방협진과 여러 치료법들의 콤비네이션을 쏟아부었다. 아버지 상태에 따라 나의 감정 또한 일희일비 되는 그러한 일상이 1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2023년 중순까지는 그래도 간단한 산책과 외식이 가능하셨던 아버지께서 2023년 7월 말 기침과 고열이 지속되셨다.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으로 모셨고 진단명은 흡인성 폐렴이었다. 2주 후 열은 잡혀서 퇴원 권고를 받았지만 엘튜브를 뺄 수 없는 상태라 폐렴 재발의 위험이 있었기에 집 근처 폐렴 관리가 가능하다는 요양병원으로 다시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공동 간병인 제도를 운영하는 곳이라서 가족들은 주 1회만 면회가 가능했다. 어머니는 서운함과 미안함에 연신 눈물을 닦아내셨지만 어머니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다음 주 면회 순번을 정하는 어느 일요일의 가족 모임, 바로 그 다음 날은 아버지 입원이 5주차에 접어드는 월요일이었다. 그 날 새벽, 당직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임종에 임박하신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내달렸고, 막내동생과 어머니가 이어서 도착했다. 임종의 순간은 나와 어머니가 지켰다. 9월4일 새벽 4시57분이었다. 아버지 없이 처음 보낸 어버이날 그렇게 아버지는 78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방 고등학교 교사의 얇은 월급봉투로 한 아내와 다섯 딸들을 지켜내신 나의 아버지. 점진적 쇠약의 기간은 1년이었으나 병원 생활은 딱 6주 하신 셈이었다. 몇 년 전,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셨고 장례식에 대해서도 딸들, 사위들, 손자손녀 이외의 다른 친척들을 포함한 일반 조문객들을 받지 말라는 당신 바람을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밝히신 바 있으셨다. 아버지 뜻에 따라 우리는 인근 장례식장의 가장 작은 방으로 아버지를 모셨고 “아빠의 다섯 딸”이라는 조화 화분 하나만 세워둔 채, 우리 가족들만의 조용한 장례를 치루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돌봄 노동으로 인한 고생 혹은 갈등, 그 맛도 보지 못했다. 아버지를 그리 보내드리고 나니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의 부모님 이야기가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15년째 요양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2주에 한 번씩 뵈어야 해서 격주로 영주에 다녀와야 한다는 직원분은 지방을 다녀온 다음 주의 월요일에는 요통이 도져서 꼭 진료실에 들르신다. 20년째 치매와 암으로 집에서 돌봄을 받고 계신다는 어머니를 둔 보좌관 한 분은 여동생이 직장을 그만두고 요양보호사와 교대로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간병비와 동생 수고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을 아직도 모르겠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끝까지 잘 모시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자주 눈물을 흘리곤 한다. 『누구도 홀로 외롭게 병들지 않도록』(줄리안 아벨, 린지 클라크, 남해의 봄날, 2021년 7월) 영국 사회를 뒤흔든 프롬(Frome) 마을의 컴패션 프로젝트의 기록. 의사가 개입하지 않으면 환자가 죽는다는 신념은 의료진을 영웅, 곧 해결책을 아는 유일한 존재로 여기는 생각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수와 관련해서는 친밀한 관계가 건강에 미치는 유익이 의사가 처방하는 그 어떤 약보다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컴패션 공동체 의료 서비스 모델은 질병을 개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독립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질병은 일련의 사건과 결과가 축적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현재 하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만으로는 여러 국가의 의료 서비스가 맞닥뜨린 조직적 남용과 과밀화, 급격한 비용 증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노년 끌어안기』(로르 아들레르, 마음산책, 2022년 3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로르 아들레르의 저서로 “저자가 일흔에 써내려간 노화에 대한 우아하고 창조적인 탐구”이다. 부모의 죽음을 보는 건 자신의 종말을 전보다 훨씬 강도 높게 느끼는 일이다. 이제는 자신이 ‘맨 앞줄에’서는 것이다. 이 느낌은 이후 우리 경험의 일부가 될 것이다. 20세기의 큰 진척은 노화와 건강이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무한히 늙을 수는 없다. 왜 의학은 우리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지 않기를 바라도록 가르칠까? 물론 죽음을 멀리 물리치는 것이 의학의 의무이긴 하지만 그러면서 의학은 죽음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삶의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퍼뜨린다. 어떤 이들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초인적 완벽이라는 유령을 멀리하고, 취약하고 상처 입은 존재들을 칭송하고, 우리의 감각과 감정을 훈련하고 삶의 한계를 내몰고 죽음을 실패로 내몬다고 믿는 일부 의학의 홀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우리의 유한성을 받아들이자. 『어머니를 돌보다』(린 틸먼, 돌베개, 2023년 10월) 미국 소설가 린 틸먼의 저서로 11년에 걸친 어머니의 투병과 간병에 대한 기록. 그것은 가혹한 의무이기도 했다. 그 11년은 좌절의 연속이었고 배움의 과정이었으며 이상하게도 깨달음의 시간, 일종의 병적인 깨달음의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계속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으므로 의식적으로 불침번을 서야 했고,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도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체만큼이나 무거운 짐이 되었다. 어머니의 곤경은 내게는 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짐이 되었다. 우리 자매들은 서로를 놓지 않았고 우리의 목표는 어머니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최대한 건강하게, 이 세상에 살아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생명력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존재하고 있었다. 겨우 존재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1년이라는 짐, 어머니라는 짐이 떠났다. 『돌봄, 동기화, 자유』(무라세 다카오, 다다서재, 2024년 3월) 자유를 빼앗지 않은 돌봄이 가능할까? 요양시설의 한 어르신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차라리 죽고 싶어. 하지만 스스로 죽는 건 못 해. 죽지 못하니까 밥은 먹어야 해. 하지만 밥을 먹는 것도 힘들어. 어차피 밥을 먹어야 한다면 맛있는 걸 먹고 싶어”라고 호소한다. 인지장애 고령자들의 자유와 인권을 우선하여 당사자가 본래의 생활 리듬대로 살다 평온하게 임종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요리아이’노인 요양시설의 총괄소장 무라세 다카오의 돌봄 현장에 대한 속 깊은 사색의 생생한 기록. 돌봄에서 동기화는 ‘둘이 함께 지금 여기를 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배설됩니다. 그 과정 속에 나는 살아 있습니다. 먹고 배설하는 것 만으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은 그 과정을 마지막까지 돕는 일입니다. 오늘날 돌봄은 직업으로서 인기가 없습니다. 힘든 일이라는 인상만이 두드러져 있습니다. 『OLD, 올드』(홍승우, 트로이목마, 2024년 5월) 한겨레 신문에 가족만화 『비빔툰』을 14년간 연재했던 만화가 홍승우의 작품으로 80대 노부모와 50대 아들의 동거를 다룬 네이버 웹툰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지금 아버지의 노환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어머니는 지금, 그런 초고령 노인을 먹이고 기저귀 가는 노인요양보호사 역할을 하고 계시다. “그 일을 자식한테 맡기면 내가 속이 편하겠니? 남편이 요양원에 있으면 내가 속이 편하겠니? 내가 여력이 되는 한 내가 할 거야.” 아버지가 60대 중반쯤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을 때도 어머니는 끝까지 아버지 병수발을 감당하셨다. 뇌경색으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버지를 회복시키고 40년간 당뇨병을 앓아도 합병증 없이 살게 해 준 사람. “네 엄마 덕에 인생을 두 번 산다. 네 엄마 아니었으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야.” 평생 외로움과 전쟁과 실패로 점철된 인생을 사신 아버지. 그런 사람을 끝까지 한 가장으로 지켜 준 어머니. 나는 아버지도 이해되고 어머니도 이해된다. 단지 지독히도 힘들었던 인생의 막바지, 늙음과 서러움 사이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2025년 대한민국은 인구 5명 중 1명이 만 65살 이상의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현재 1인 가구 비율은 34%에 도달했다. 이들이 노년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돌봄 인력은 충분할까? 신규 한의사들을 반기는 곳은 요양병원이 유일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 요양병원 봉직의 자리도 많지 않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나를 고용해주는 곳이 없길래 그냥 좀 무리해서 병원을 차렸다는 후배도 있다. “요양병원이 꿀(?)이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지만 뭐 어쩌겠어요? 그래도 한의원보다는 수익이 나을 것 같아요!”라며 곧 70대 중반의 내과 의사 한 분과의 인터뷰가 잡혀 있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80대 후반의 건강한 어르신도 봉직의 면접에 나타나는 게 요즈음이라 연봉 협상만 잘 되면 그래도 70대라면 완전 땡큐인 입장이라고 한다. 환자 1명이 1년에 첩약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범위는 2개 질환, 각 질환별로 20일까지(기존 10일)로 늘었다는 『오늘부터 알레르기 비염 한약도 건보 적용』(한겨레, 2024년 4월 29일) 소식에 한의계에 숨구멍 좀 트이나 싶다. 그러다가 애플 비전프로의 수술 적용(『‘애플 비전프로’ 쓰고 실제 척추 수술 진행한 英 의료진』, AI포스트, 2024년 3월13일)과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임상실험(『“한번 써보면 멈출 수 없어” 사지마비 환자 뇌에 칩 이식‥결과는?』, MBC, 2024년 5월18일) 같은 뉴스를 동시에 읽고나니 호흡이 빨라진다. 한의계의 오밀조밀한 현안들이 시대를 그리고 세계를 뒤흔들 획기적인 기술의 발자국에 밟혀 사라지기 일보직전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위기의 칼날 위에서 화끈한 존재감은 아닐지라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어찌어찌 버텨오고 있기는 하다. 1993년 한의대에 갓 입학했을 때부터 2024년 오늘날까지 한의계는 늘 위기였다. 이 위기의 칼날 끝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5월을 보내며 아버지의 부존재의 날들을 지나치며 놀라운 속도로 끝을 향해가는 모든 존재들의 흥망성쇠를 떠올려본다. -
“劉以泰와 柳義泰, 진실은 무엇인가?”300 수십년 산음(현재의 산청)에서 병마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환자에게 인술을 펼쳐 심의(心醫)라고 불리었던 의원이 있었으나 지난 1999년부터 그의 이름과 사적(事迹)은 왜곡됐고, 빼앗겨 졌다. 그 인물은 조선시대 홍역 치료 태두로서 숙종 어의를 지낸 유이태(劉以泰)이며, 유이태에서 이름이 조작되어 실존인물로 만들어진 이름은 유의태(柳義泰)다. <조선의 히포크라테스 유이태(출판 삼부시스템)>는 이러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자 출간됐다. 이 책의 공동 집필자인 경희대 한의사학박사 출신의 유철호 저자와 KBS 역사스페셜 이순신 2부작 <영웅의 선택>, <철저분석 한산대첩>을 집필한 윤영수 방송작가는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에서 이 책을 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유철호 박사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고, 명의 유이태의 사우와 제자이며, 산음의 선비들이고, 병을 치료하여 주었던 환자, 그리고 어의 시절에 만났던 인물들”이라면서 “이 책이 널리 읽혀져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히길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조선 숙종 임금 시절에 경상도 산음현(지금의 산청) 생림에 조선 8도에 의술이 널리 알려진 이름난 선비 의사 유이태(劉以泰, 1652-1715)가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죽음의 공포에 살아가는 환자가 의사를 잘 따르게 하여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료하는 심의(心醫)로 불러지면서 수많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였고, 나라로부터 두 번의 부름을 받아 임금 숙종의 환후를 고쳤는데 청나라 건륭제를 치료하였다는 전설로 <산청군지>와 <산청향교지>에 기록되어 있다. 숙종 어의를 지낸 유이태는 1965년에 발간된 한 논문에 허준의 스승 유의태(柳義泰)로 바뀌어 등장했으며, 유이태에서 이름이 바뀐 유의태는 소설가 이은성에 의하여 1975년 MBC 드라마 <집념>, 1984년 부산일보 연재소설 <동의보감>, 1990년 창작과비평의 <소설 동의보감>, 1991년 MBC 드라마 <동의보감>, 최완규가 집필한 1999년 MBC 드라마 <허준>과 2013년 MBC 드라마 <구암 허준>에서 살신성인의 스승으로 묘사되기에 이르렀다. 350년이 지난 후 그의 향리 산청에서 이름, 저서, 서실, 유적지, 전설, 각종 사적 등이 비슷한 이름으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허구 인물 유의태·류의태(柳義泰)로 뒤바뀐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또한 산청군청은 허구 인물 유의태를 산청 의학 인물로 만든 후 유의태의 출생지, 생몰년도, 활동지를 지어내어 가묘를 조성했고, 묘비 및 동상과 기념비를 세웠으며, 신의정을 건립했고, 약수터 조성, 유의태가 실존 인물이라는 책까지 간행했다. 또 산청에 온 적도 없는 허준이 산청에 와서 허구 인물 류의태로부터 의학을 배웠다고 알리는 동상, 기념비, 구암루와 허준이 류의태를 해부했다는 해부동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유철호 박사는 “조작된 역사를 바로잡아 유이태가 걸어온 길을 올곧게 밝혀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아갈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전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유철호 박사는 현재 서울에서 IT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劉以泰 생애와 痲疹篇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데 이어 <기억하고 싶은 조선의 참 의원 유이태>, <조선의 名醫 유이태와 허준의 스승 柳義泰는 누구인가?>, <說話 속에서 現實로 나온 산청의 神醫 유이태(劉以泰·劉爾泰)> 등을 저술했다. 윤영수 작가는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 기획 및 대본작업에 참여했으며, KBS <역사스페셜> 이순신 2부작 <영웅의 선택>, <철저분석 한산대첩> 등 다수의 이순신 관련 프로그램을 집필한데 이어 <KBS 차마고도>, <한국사를 바꿀 14가지 거짓과 진실> 등을 저술했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32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추석연휴가 시작되던 첫 날(9월9일) 기어이 영접하고야 말았다. “물 많이 드시구요. 소금물로 인후부 안쪽까지 자주 가글하세요. 인후통이 제일 심하다고 하셨죠? 5일분 처방 드릴테니까 고양시청 홈페이지나 포털 들어가셔서 검색하시면 주소지 근처에 당번약국 리스트 뜰 겁니다. 귀갓길에 약 받아가시면 됩니다. 일주일만 고생하시면 뭐 거의 괜찮아지실 겁니다. 격리기간 꼭 지키시구요.” 내과 전문의로 추정되는 의사 한 분과 짧게 전화 통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환자로서의 첫번째 일정, 바로 비대면 진료체험이었다. 일산서구 보건소의 명절 당직 직원은 몹시 친절하고 신속했다. 키목신캅셀, 록스펜정, 페니라민정 3가지 약제 5일분을 받아들고 귀가했다. 1개월 전 코로나로 고생했던 동생 때문에 집에는 이미 삼소음 스틱 10개와 만성 기침에 잘 듣는 한약 20팩도 준비되어 있었다. 인후에 직접 분사하는 소염제 스프레이와 목캔디까지 갖추고나니 든든했다. 가족들과 추석연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연휴와 격리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국회 진료실에 휴진으로 인한 피해를 덜 주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쉬면서 그간 미뤄왔던 옷정리도 하고 시간이 없어서 못 보고 있었던 넷플릭스 시리즈물도 몰아봐야지 싶은 마음에 코로나 확진 직후의 당황스러움은 잠시나마 평정심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코로나 확진, 다양한 증상으로 인한 힘든 시간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헛꿈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가 직후부터 묘하게도 ‘이제부터 코로나 환자 역할 시작이야!’라고 몸에 오더가 입력된 것처럼 인후통과 고열로 인한 두통, 몸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청소도, 영화도 코로나 환자에게는 모두 사치스런 일이었다. 시간 맞춰 약을 먹는 데도 증상은 고만고만했고 1층 사시는 친정 어머니께서 문 앞으로 올려다주시는 각종 명절 음식들에도 도통 손이 가지를 않았다. 천돌혈 부위에 왕호두알 하나가 박혀있는 것 같은 이물감이 느껴졌고 물을 넘기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동안 진료실에서 환자분들과 나누었던 그 많은 코로나 토크들이 파노라마처럼 샤샤샥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고생을 하셨건 거였구나…정말 힘든 시간이었겠구나…” 코로나 진단 여부에 대한 질문을 건넸을 때 체감상 5명 중 4명은 “나도 확진이었소”라고 대답했다. 일일 확진자수가 62만명까지 치솟았던 지난 3월에 확진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상당히 많은 분들이 다양한 후유증을 호소하시며 진료실에 들르셨고 삼소음, 소청룡탕, 갈근탕, 패독산 등의 보험처방을 내어드렸다. 주변에 걸릴 사람들은 다 걸렸고 나를 뺀 모든 친정 식구들이 코로나로 인한 짧은 고생을 하고 지나간 터라 지금까지 안 걸린거 보면 난 백퍼 무증상 코로나 환자였음이 분명하다고 자신했었다. 도대체 누구에게서 받은 코로나일까? 확진일 이전의 일정을 돌이켜 보니 짧은 추석연휴를 앞둔 9월 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마음으로 와인이나 한 잔 하자는 즐거운 저녁 모임이 릴레이로 잡혀있었다. 3명만 입장하는 룸 좌석의 식당부터 양쪽 통창을 통해 맞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테라스 좌석, 쉐프님 서빙을 직접 받는 카운터 좌석의 식당까지 그 모든 모임에서 나와 다른 참석자들 모두는 침을 튀기며 열띤 토론을 벌였고 술잔이 부딪히는 쨍그렁한 사운드는 경쾌하기만 했다. 그 어드메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스르륵 내게 전달되었을 터이다. ‘이제 와서 동선을 역추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했었던 모든 지인들에게 나의 확진을 알리고 그들의 증상 유무를 체크하며 추석 안부를 챙겼다. 다행히 모두 코로나 확진의 과거력을 가지고 있었고 나 빼고는 모두 별무증상이었다. 나의 코로나 막차 탑승을 걱정해 주면서도 격리해제가 되면 그 때 또 축하주를 마셔야 한다고 웃어대며 10월의 어느 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한 환자 내원 ‘지속’ 지난 8월 21일부터 9월 18일까지 『헬쓰조선』에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와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의 공동 취재로 코로나 후유증에 대한 기사가 5주 연속 실렸었다. “코로나 19에 감염되면 발열, 인후통, 기침, 콧물, 코막힘, 가래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보통 감염 후 3∼4주가 지나면 증상은 개선된다. 그러나 4주가 지나고 나서도 코로나 증상이 계속되거나 4주가 지난 후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면 이를 ‘long COVID’ 즉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진단한다. 롱코비드는 적어도 2∼3개월 동안 다른 진단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롱코비드는 다양한 장기에서 발생하며 지금까지 알려진 후유증은 코, 귀, 호흡기, 혈액, 심혈관, 정신적인 문제, 콩팥, 피부 등에서 발생한다. 코로나 확진자의 22∼40%가 한 가지 이상의 롱코비드 증상을 경험하며 가장 흔한 롱코비드 증상은 기침, 목소리 변화, 후각 저하, 난청, 어지럼증, 이명 순이다.” 격리 첫 날 극심했던 증상은 5일차를 정점으로 점차 잦아들었고 7일차 아침부터는 거의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했다. 한약, 양약 복합 투여에 내가 가진 기본적인 면역력의 총합 덕분이었으리라!! 9월 15일 목요일 24시 드디어 격리가 해제되었다. 꼭 누군가가 “이제 당신은 자유의 몸입니다”라며 방에 드리워진 암막 커튼을 제껴주는 듯했다. 극적인 그리고 짜릿한 해방감을 만끽하고자 집앞 편의점으로 달려나가 벤엔제리스 하프 베이크드 아이스크림을 한 통 사들고야 말았다. ‘그래, 이 맛이야, 자유의 맛!’ 롱코비드의 후유증들은 다행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지만 금요일 출근을 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도 롱코비드의 다양한 불편함으로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다. ”원장님, 코로나 걸리셨었다면서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역시 건강하신 분이네요. 이렇게 바로 회복되시고.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쓰기 시작하면서 콧물이 싹 말라붙길래 그 고질적인 비염이 세상에나 마스크 때문에 다 사라졌구나 생각했었는데, 지난 4월엔가 코로나 걸리고 나서부터 그전보다 비염 증상이 더 심해졌어요. 그 때 주셨던 소청룡탕 좀 받아갈 수 있을까요? 그 약 먹고 코세척하면 그나마 증상이 많이 덜해지더라구요.” 소설가 정대건은 9월 15일자 한겨레 신문의 『삶의 창』이라는 코너에 “미각을 잃은 사례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본인의 코로나 체험기를 투고했다. “8월 초에 목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왔다. 2년 동안 익히 들어왔던 증상과 같았다. 나도 걸렸구나. 마침내, 이틀은 정신이 혼미했다. 의자에 앉아있을 힘도 없었다. 그러나 많이들 겪은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다. 일주일을 앓고 나자 잔기침은 계속 났지만 괜찮아졌다. 그런데 미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레몬즙 원액이나 엄청 매운 떡볶이를 먹어도 양치할 때 치약 맛도 나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내게는 너무 가혹한 후유증이었다. 이전과 다른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어디에는 스테로이드 치료를 권하는 의사들이 있었다. 다른 곳에는 스테로이드로 효과를 못 본 사람에게 강황이 좋다는 말이 있었다. 보아하니 한의원에서 낸 기사였다. 둘 다 이해당사자들의 광고였다. 의료진의 전언도 신뢰할 수 없게 된 나는 블로그의 생생한 체험기들을 검색해 봤다. 10개월째 미각 상실이라는 글이 있었다. 스테로이드 치료도, 한의원 치료도 소용 없었다고 한다. 조만간 신경과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동병상련의 마음과 동시에 나도 미각이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절망적이었다.” 뚜렷한 해법 보이지 않는 코로나 후유증 소설가는 글 말미에 향은 다행히 맡을 수 있게 되었으나 단맛은 아주 조금 느껴지는 정도에 머물러 있음을 고백하며 미각을 잃은 상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다면 이 또한 장애로 분류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롱코비드의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처방으로 본인의 컨디션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환자분들부터 정대건 소설가처럼 상당한 수준의 미각을 잃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증상들. 이 다름에 최적화된 맞춤 처방이 가능한 의학이 한의학의 특장점 같기도 하다가도 심각한 수준의 부작용에는 어찌보면 의학도, 한의학도 한없이 무기력한 것이 사실이다. 롱코비드도 그 정의만 내려져 있을 뿐, 환자 개개인의 지속적인 개인 방역과 증상 관찰 권고 이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롱코비드의 독한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환자분들의 억울함과 불편함을 가까이에서 목도하면서도 깊이 공감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환자로서의 7일을 보낸 후 유난히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출근을 하여 진료실 책장을 살피던 중 연초에 흥미잔잔(!)하게 읽히는 제목들과 귀여운 문고판 사이즈에 이끌려 세트로 구비해 두었던 도서출판 은행나무의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물이 눈에 들어왔다. 원색의 북커버 디자인 또한 마음에 들어 한꺼번에 주문을 해서 쌓아만 두고 섣불리 펼쳐들지 못했던 책들이다. 그 중 어린 시절 자주 아팠던 경험 때문에 자연스럽게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의학적, 사회문화적 해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인문학 강의를 하게 된 최은주 작가의 『질병, 영원한 추상성』(2014)은 환자 입장에서의 질병, 의료, 의료문화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 주는 좋은 책이다. 같은 해에 출간된 『죽음, 지속의 사라짐』에도 의미있는 글들이 꽤 보이는데, 이 책은 다른 죽음에 관한 책들과 묶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의학이 신종 질병을 발견할 때마다 질병은 유행한다. 이전까지는 불투명해서 불치로 방치해 두었던 질병이 치료 방향을 찾게 된다면, 개인은 신종 질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렇듯 대세와 유행은 질병을 초기에 근절한다는 달콤한 약속과 더불어 앎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킨다.” “질병 또한 신체의 부위에 나타난 비정상적인 것으로, 제거 대상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질병에 대해 ‘엄마 손은 약손’이나 ‘아브라카다브라’의 주문은 철없는 어린아이나 하는 것으로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 전 나는 각막염을 앓았다. 병원 검사와 치료를 받았지만 눈물이 나고 가려울 뿐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동네 병원이라서 제대로 진단을 하지 못했나 싶어서 대학병원까지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으나 알레르기성이라고만 말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의 시력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눈물이 날 때는 눈물 약을 사용하고 눈을 쉬게 할 도리밖에 없었다. 오래 일하면 생기는 시력 저하와 눈물의 증상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만 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비정상적이거나 질병 상태에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병원 치료로도 아프기 이전의 몸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완치의 개념은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해지는 것이지 아프기 이전과 똑같은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몸은 나의 의식을 건드리면서 어떤 조치를 위하도록 요구하지만 증상을 불가피하게 내 몸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따르는 것이다.” “눈부신 의료기술의 발달과 반대로 여전히 의학 분야에서 놓치거나 간과하는 구멍들이 있다. 그 구멍들은 의학 개발이 지향하는 방향성과도 관계가 있다. 생명 구제의 지평이 질병 자체의 제거 및 절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거기에 달라붙는 부작용이나 합병증은 부수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종양을 떼어 내는 수술만 받고 항암 치료는 포기했다. 그가 수집한 정보 중에는 주류적인 의학의 입장 뿐만 아니라 그에 불일치하는 대안적 입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쪽이 옳은가?’의 문제에서 그가 내린 결정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삶에 미칠 직접적 영향과 관련한 위험의 전망은 지식을 놓고서 의심과 맹신이라는 문제를 한층 복잡한 층위에 올려놓는다.” “완치가 어려운 질병으로 고생한 환자는 좋다는 여러 가지 치료를 경험한다. 상이한 접근법을 가진 다양한 주장들을 저울질하면서 어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지만 어떠한 압도적인 권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수고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경쟁적인 치료법을 찾는 중에 환자의 행동 양식이 갖춰지는데, 이 속에는 라이프스타일과 존경과 같은 것들이 결합하면서 추천받은 의사에게 결정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 속에도 여러 위험 요소들이 숨겨져 있다. 전문가들 또한 불일치하기 때문에 최종적 권위자가 없는 체계에서 전문가 체계를 뒷받침하는 가장 선호되는 신념들조차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각 환자들에게 알맞은 치료법을 찾아 주기 위해 객관적인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을 기적을 발견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의사의 권위와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고 싶은 마음, 또 그만큼 가까이에 달라붙어 있는 의심 간의 투쟁은 소비 시장이 부추기는 개인적 불충분함에 대한 공포, 불안, 고통에서 기인하는 또 다른 문제이다.” “자신의 고유한 삶에 대한 책임은 의사보다 개인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의 고통에 먼저 관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엔 약사나 의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아는 체를 한다. 반면 그 상태를 벗어났을 때 불안에 떨며 완전히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 이 양극의 행동이 한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어느 쪽도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약의 효과 이전에 내게 부과된 고통을 먼저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극복할 정도의 고유한 차원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의학기술이 명명하기 전까지 모호한 상태의 병은 병으로 의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매개되는 지식 주장들이 권위와 진실성을 부여받아 언어적으로 결정되면(진단), 일상 전체가 위험 분위기에 놓인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이 분위기에 맞춰져 제한된다. 신화가 그렇게 결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에 대한 편집증 때문에 질병 보유자가 되고, 행복에 대한 편집증 때문에 불행에 도취된다. 그것에서 빠져나와 바라보라. 내가 도취된 내 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가 보일 것이다. 그것은 어떠면 '조성된' 위험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 한의사는 항상 국민 곁에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대한의사협회는 국민들에게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한약 복용을 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하며 『Nature』와 『Lancet』에 기고된 코로나19에 검증되지 않은 중국의 전통의학 치료 조장에 대한 중국 전문가의 비판글을 인용했다(『코로나19 한방 치료 급여해달라고? 의료계, 한의계 규탄』, 의협신문, 2020.09). 그 후로도 의협은 지속적으로 코로나19에 비대면 한의치료는 위험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까지 한의협의 비대면 진료 시도를 반대해왔다(2021년 12월). 그러나 불굴의 의지의 한국인들로 구성된 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 한의진료접수센터를 운영해왔고 2021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센터를 통해 진료받은 8423명을 대상으로 한의진료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재택치료자의 약 94.4%가 진료에 만족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2022년 6월). 서울역 중앙광장에는 “코로나19, 한의사는 항상 국민 곁에 있습니다”라는 대형 광고판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한의사 너네들이 설마? 코로나를?’ 혹은 ‘한의원 아니었으면 이 코로나 기침 안 나았을거야…’ 등등 그 광고판을 본 일반인들은 코로나의 맛을 겪은 각자의 경험을 근거 삼아 여러 다채로운 반응을 쏟아낼 것이다. 내 몸이 아파보니 환자란 그런 존재였다. 그저 쉬고 싶고 보호받고 싶으며 위로받고 싶은 나약한 존재. 만사가 귀찮아서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모두 짐스럽게 느껴지는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진 상태. 민생 앞에 여야의 다툼이 볼썽사나운 뻘짓으로 여겨지듯이 허약해진 심신으로 방황하는 환자들 앞에 한·양방의 상호비방은 소음일 뿐인 것이다. 두 개의 태풍과 짧았던 추석연휴가 코로나 투병으로 금세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퇴근길의 여의도에는 부쩍 차가워진 가을이 도착해 있었다.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맨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시선나누기-14] 이것은 사람의 아이다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열 마디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어지는 때가 있는데, 이 사진을 보았을 때가 그러하였다.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무대(?)의 뒷면을 죄다 노출 시켜 찍은 사진 속 장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생겨난 무대와 객석과 관객의 차마 어찌할 수 없는 생생한 예술 현장을 그대로 전달한다. 극단 동숭무대의 ‘고도’를 관람하고 난 뒤풀이에서였다. 말하자면 모든 것은 ‘고도’ 때문이었는데,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제 예술의 한 원형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고도’는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손끝에서 놓아버릴 수는 없는 희미한 희망 같은 것이겠는데, 뜻도 형체도 없는 그것을, 막연히 올 것이라고만 믿는, 믿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인류가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는 묘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그것의 상징은 깊고도 커서 여러 작품을 잉태하는 자궁과 같았는데, 철학자이자 예술가인 수잔 손택은 1993년 직접 보스니아 내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사라예보에서 연극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일명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동숭무대는 수잔 손택의 실화를 바탕으로 다시 작품을 만들었는데, 전장 한복판에서 연극을 올리는(물론,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극단의 두 배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포성이 울리고 전기 공급이 끊기는 폐허의 공간에서 바닥 모를 허무와 싸우는 주인공은 그럼에도 상대역의 배우를 독려하며 연극을 계속해 나갈 것을 권한다. 공연이 끝나고 목을 매려는 그 앞에 실종되었던 아내가 임신한 몸으로 나타난다. 전쟁으로 아이를 잃은 골 깊은 원망과 분노의 폭발 끝에 아내는 극장을 벗어나며 피 토하듯 외친다. ‘이것은 사람의 아이다!’ ‘이것은 사람의 아이다!’ 적군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이를 배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그것마저 실패해서 생명의 버둥거림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여자의 외침. 비유인 듯하지만 사실의 적시이기도 한 말. 관객이 듣기에 그럴싸한 말장난이 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말. 여성에게는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 그러나 배우는 깊은 내공으로 작품 속에 누적된 고뇌와 시간을 축약해서 그 대사를 토해낸다. 그 말은 얼핏 ‘나는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소리 같다. ‘우리는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소리 같다. ‘사람’이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가슴을 울린다. 사람은 무엇인가? 죽음과 삶을 양손에 그러쥔 채 전쟁터를 기어서 살아남은 자가 외칠 수 있는 숭고한 경지. 여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할 변명으로써 저 말을 외친다 한들, 누가 그 말에 반박할 것인가? ◇예술이란, 전쟁이란 무엇인가? 폐허에서도 작품을 올리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사진 속 황량한 돌 더미 사이에서 판자 하나로 무대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그렇게 하찮은 조건에서도 태어나고야 마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아이들이 보고 들어야 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평화란 무엇인가? 아무 일 없음이란 무엇인가? 어른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올해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후보로 언급되던 드미트로 쵸니는 동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커튼콜에서 우크라이나의 상징인 해바라기 꽃다발을 받아 안았다. 그는 ‘이 전쟁에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메달은 안나 게니쉬네에게 돌아갔다. 러시아 출신인 그는 ‘우리는 국제적인 음악가들이고, 서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기자회견에서 조국의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시상식 무대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자 2013년 우승자인 바딤 콜로덴코가 엄숙하고도 절절하게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했다. ◇사람들은 포탄을 피해 몸을 숨긴 채… 콩쿠르 영상에는 무수한 댓글이 달렸는데, 누군가 이렇게 썼다. ‘1위:휴전 국가. 2,3위:전쟁 국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무엇인가? 사라예보에서는 1992년 5월 27일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시민들 22명이 포탄에 목숨을 잃고 100여 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사라예보 필하모닉 첼로 연주자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22명의 사람들을 기억하며 22일 동안 그곳에 나와 첼로를 연주했다. 사람들은 포탄을 피해 몸을 숨긴 채 그가 연주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들었다. 영국의 작곡가 데이비드 와일드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무반주 첼로곡을 작곡했다. 첼리스트 요요마는 1994년 맨체스터 국제 첼로 페스티벌에서 그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객석에 있던 스마일로비치와 깊게 포옹했다. 캐나다 출신 소설가 스티븐 갤러웨이는 사라예보의 폐허에서 아다지오를 연주한 스마일로비치에 관한 기사를 읽은 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2019년 3월 27일 시리아 북서부 사라키브에서 아이들이 폐허가 된 건물 잔해에 앉아 인형극을 보고 있다. 이 공연은 시리아 예술가 왈리드 아부 라쉬드가 2013년부터 시리아 난민촌을 돌며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인형극이다. -
[시선나누기-13] 미쳤다는 말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최근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 모임을 토요일 5시로 정했습니다. 공연 예정인 극장에서 시연을 하기로 했으니 준비해 오기 바랍니다. 장소는 삼선교 근처 4호선 한성대입구역입니다.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 일을 조금 앞당겨 마치고 간당간당하게 도착할 것 같습니다. 늦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장소를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시면...... 극단 ‘하땅세’ 맞나요? - 성북동칼국수 지하입니다. 지금 극장을 꾸미고 있는 중입니다. 모임 시간을 6시로 늦추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공간을 칠하는 사람 휴대폰 지도를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한창 내부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지하 소극장이었다. 새로 바른 칠 냄새, 자르고 붙인 목공 냄새, 말라가고 있는 타일 냄새 같은 것들이 지하 특유의 서늘함과 함께 코끝으로 몰려왔다. 조금 어수선하지만 들떠 있는 새집의 기운이 느껴진다. 계단 아래로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는 목례를 한다. “여기가 극단 하땅세인가요?”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바닥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 춘천, 진주에서 모인 사람들이다. 유진규 선생은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오셨다고, 며칠간의 피로가 얼굴에 묻어난다. 그렇구나...... 두 사람 모두 춘천 사람. 오랜 지기이다. 한 사람은 소설로, 한 사람은 마임으로, 나란히 한 시대를 걸어왔다. 그를 떠나보내고 오는 마음이 어떠했을 것인가.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자 벽에 기대 서 있던 의자를 둥글게 펼쳐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 공간을 마련해 이사 중인 극단의 자부심이 공간 안내와 자랑으로 이어진다. 자랑이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자기 집 자랑하는 것과 좀 달랐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거 우리 극단 배우들이 직접 자르고 붙인 거예요. 칠도 직접 다 했어요. 이거는 소품으로도 쓸 수 있고 보관함으로도 쓸 수 있는데 이것도 직접 만들었어요. 공구 정리함도 되는데 보여드릴까요? 여기 공간이 좁고 불편했는데 이렇게 벽을 세워 정리했어요. 공연 때는 저기도 관객들을 앉힐 거예요. 객석을 여기서 여기까지, 사방으로 블랙박스처럼 무대를 꾸밀 수 있어요. 전기를 쓰지 않는 공연장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몇 가지 어려움 때문에 포기했어요. 여기서 여기까지 검은 커튼을 치면......” 연출가는 들떠있다. 어떤 작품들을 펼쳐낼지, 관객이 어떻게 감동할지, 빛과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창문 하나, 계단 입구까지 어떻게 작품에 이용할지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무궁무진하게 일어나는 상상과 기대와 흥분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무언가를 함께 준비하는 집단만이 가질 수 있는 기운. 그것은 창작하는 인간만이 만들어내는 아우라일 것이다. 그는 극단 하땅세의 연출가이자 우리 공연의 연출을 맡게 된 사람이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 - 공연 자리는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오세요.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1980년 5월 전남도청과 그 건물에 얽힌 칠장이의 이야기다. 이 공연은 아시아 최대 블랙박스형 공연장인 ACC 예술극장에 움직이는 객석을 만들어 관객이 작품의 흐름과 배우의 움직임, 이야기를 따라 극장 내를 여행하듯 관람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유진규 선생의 배려로 극단 하땅세의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우리 작품을 연출할 사람의 공연을 미리 보아두자는 것, 관람을 마치고 우리도 우리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자는 것.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우리 공연이 아닌 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어서 설레었다. 우리는 출연자가 아니라 관객이다. 공연은 실로 어마어마했는데, 무엇보다도 예술극장의 공간 탓이었다. 체육관을 넘어서는 크기에 무대 세트를 세웠는데, 말하자면 ‘장면1: 도청 3층 사무실’이라면 실제로 3층 높이의 세트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 3층의 벽에 매달려 칠을 하는 수직 동선의 관람이 조금 있다가는 앉은 객석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끼기긱 돌아가는 수평 체험으로 바뀐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런 방향 전환이나 앞뒤로 이동하는 객석의 움직임은 배우들이 직접 손으로 몸으로 밀어서 만든 것이었다.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극단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품은 시간을 되돌리며 5월 광주 이야기를 세대에 걸쳐 펼치는데, 그것을 360도 회전하는 객석으로 물리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천장에서 바닥까지, 심지어 바닥 아래까지 물 샐 틈 없이 이용하는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한다. 공연을 마친 뒤 무대 철거까지 끝내고 온 연출가는 땀에 젖어 있었다. “저는 작품 하나를 하면, ‘우와! 미쳤다!’ 소리를 듣고 싶어요.” 미쳤다는 말. 그게 예술하는 인간이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세상에 없는 것을 창작하고 싶다는 그의 달뜬 얼굴이 생기로 넘쳤다. “이 작품을 야외에서 할 거예요. 서울, 밀양, 진주, 광주. 순회공연이에요.” 이걸 야외무대로 옮긴다고? 어떻게? 입이 벌어지는 우리 앞에서 그는 연신 싱글거리며 부푼 계획을 이야기한다. -
동신대 한의학과 김선종 교수 '제65회 전라남도문화상' 수상동신대학교 한의학과 김선종(49) 교수가 지역 문화 분야 최고 권위의 '제65회 전라남도 문화상'을 받았다. 김 교수는 지난 2003년부터 18년 동안 동신대 목포한방병원에 재직(병원장 6년)하면서 지역사회의 한의보건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또 임상에서 퇴행성관절염과 관련한 다수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을 게재했으며 장흥국제통합의학박람회 조직위원, 중국 중화중의약미창학회 해외상무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외에 한방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한편 '전라남도 문화상'은 1956년 제정 이래 지난해까지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허백련 화백, 오지호 화백, 조방원 화백, 김현승 시인, 조태일 시인, 한승원 소설가, 문순태 소설가 등 368명이 수상 영예를 안았다. -
민족 주권 위해 투항한 한의사 이미지, 좀비 퇴치 역할에 중대한 영향[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모바일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제생의원:한성좀비록’을 쓴 정명섭 작가에게 한의사를 주인공으로 세운 이유와 한의사에 대한 이미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한의사는 민족의학을 수호하기 위해 애쓰셨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 의학이 대세를 이룬 지금도 한의사와 한방이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곁에 오랫동안 존재했기 때문이고요. 1919년, 경성역에서 사이코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열사 역시 한의사 출신입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한의사들이 앞장섰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3일 웹소설 ‘제생의원:한성좀비록(이하 제생의원)’이 모바일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절찬리에 연재 중인 가운데 소설을 지은 정명섭 작가는 한의사에 대한 평소의 이미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생의원은 주인공인 한의사 송천명이 일제강점기 시절 치료를 위해 종두법 등 새로운 의술을 배우기 위해 찾은 병원에 나타난 ‘불생인’, 즉 좀비를 퇴치하러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작가는 ‘상해임시정부’,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등 굵직한 역사소설을 출간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과정에는 식민지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활약과 투쟁이 담겨 있다.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각색된 등장인물 여운형은 후손에게 광복 후 좌후합작운동으로 암살당한 인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정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3.1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물로 재탄생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얘깁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현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망각하고 잘못 생각한 과거가 끊임없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죠.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저는 미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과거의 지나간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정 작가가 직접 경험한 한의사는 어린 시절 아프고 병든 환자의 편에서 인술을 펼쳤던 할아버지가 처음이다. “군인 시절, 휴가 나오기 직전 축구를 하다가 발목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동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금방 나았던 기억이 납니다. 인자한 할아버지 한의사가 침을 몇 번 놔줬고, 그걸로 부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어요. 치료가 끝난 후에 군인이라면서 따로 비용을 안 받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대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의원은 문을 닫았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카카오페이지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접속해 쉽고 편리하게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소셜 플랫폼이다. 서점에 가지 않고도 한 번의 클릭으로 소설, 만화를 보거나 드라마, 영화 등을 시청할 수 있다. “종이책의 소비가 계속 줄어드는 반면, 웹소설은 계속 성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소설가 입장에서는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데, 플랫폼이 다르기 때문에 연령대와 소비방식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늦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었고, 좋은 기회가 되어서 이번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모바일에 친숙한 세대가 좀비를 퇴치하는 한의사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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