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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강우규 의사 의거 107주년 기념식 개최[한의신문]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가 2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강의실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107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로,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신임 조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 시도를 했다. 우리나라 침략자를 처단하여 진정한 자유를 찾고자 했던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단순한 일제 침략에 대한 응징을 넘어, 불의와 침략 압박에 맞서 세계 평화를 지키려 했던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쾌거였다. 비록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을사늑약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대한민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는 계기가 됐다. 강우규 의사는 순국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바 있다. 이날 기념식은 강우규 의사를 비롯한 조국 광복을 위해 희생, 헌신한 독립 의사, 열사들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고 희생당한 서대문 형무소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과 평화 통일의 길을 걷고자 마련됐다. 장원호 회장의 내·외빈소개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에서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의 기념사 대독을 통해 “강우규 의사님을 비롯한 선열들의 헌신으로 우리 민족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으며,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며 “오늘의 이 자리를 통해 강우규 의사님의 의지를 받들어 더욱 강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의 기념사를 대독한 정유옹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은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로서 사람의 병을 치료했고, 또한 교육자로서 학교를 세워 민족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을 가르치고 길러내셨다”며 “아울러 독립운동가로서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다”고 말했다. 또한 정 수석부회장은 “대한한의사협회 3만 한의사들은 강우규 의사를 한의계의 자랑스러운 선배이자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시대의 어른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의계도 많은 역할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정경조 평안남도지사가 각각 영상기념사와 기념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의 업적을 기리고, 보훈 문화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 기여할 것을 다짐했다. 이어진 기념식에서는 △해방 후 강우규 의사 추모사업(황영인 덕천군민회장) △강우규 의사 독립정신 탐색(이종후 시민운동가) △독일 시민들의 독립운동 투쟁사(이광 재독화가) 등을 주제로 한 시민 발언대 시간을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 및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한혜선‧이일규‧박은정 국악인이 ‘발탈 팔도유람-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를 만다다’를 주제로 강우규 의사의 의거와 일대기를 신명나는 국악과 함께한 발탈공연을 통해 보여줘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강우규 의사의 숭고한 뜻 기리고 밝은 미래 만들어 갈 것”[한의신문]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가 29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순국 105주기 추모식’을 개최,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다시 한번 상기하고 그 의미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추모식이 진행되기 앞서 장원호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현충원에 안장된 강우규 의사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면서 그의 애국·애민 정신을 기리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장원호 회장의 내·외빈 소개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추모식에서 지수윤 준비위원장(서울 남대문JCI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국을 위해 투쟁했던 그날의 헌신을 기억하며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그분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후손으로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또한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의 추모사를 대독한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정부는 강우규 의사님을 비롯한 선열들을 예우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오늘의 이 자리가 강우규 의사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더욱 강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뜻깊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께서는 한의사로서 일제강점기에 억압과 고통에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헌신하셨다”며 “끝까지 당당하고 의연한 자세로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위한 뜻을 굽히지 않으셨으며,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우셨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또 “강우규 의사와 수많은 선열들이 이루고자 했던 자주 독립의 꿈이 현실이 된 지 80년, 우리에게는 그 정신을 더 깊이 가슴에 새기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줘야 할 책무가 있다”며 “대한한의사협회 3만 한의사도 선배 한의사이신 강우규 의사께서 몸소 보여주신 애국·애족의 숭고한 정신과 백절불굴의 의지를 본받아 국민건강을 지키고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더욱 헌신해 나갈 것임을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종찬 광복회장(이규중 광복회 부회장 대독), 정경조 이북5도위원장(평안남도 도지사) 등이 추모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평화통일을 기원했다. 이어진 추모식에서는 고용석 기념사업회 이사가 강우규 의사 순국 105주기 추모시 ‘희망의 빛이여, 찬란하라’를 낭송했으며, k.fly의 추모공연과 추모자 일동이 강우규 의사의 영정에 헌화·분향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편 강우규 의사는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 한의사로 활동했으며, 의술이 뛰어나 많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고, 경술국치 후 길림성 요하현에 광동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통한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특히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을 시도했으며, 비록 실패했지만 을사늑약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대한인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는 무장 의열투쟁의 계기가 됐다. -
강우규 의사 의거 106주년…기념 강연 및 공연 등 선보여[한의신문]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가 2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대강의실에서 ‘광복 80주년 겸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제106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로,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신임 조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 시도를 했다. 비록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을사늑약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대한민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강 의사는 순국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바 있다. 장원호 회장의 내‧외빈소개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에서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의 기념사 대독을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와 순국은 수많은 애국 청년들을 독립운동에 투신토록 함으로써 1945년 이룩한 광복의 소중한 씨앗이 됐다”며 “살신성인의 길을 걸으신 강우규 의사를 기억하고 남겨주신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책무이며, 국가보훈부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되새기고 강우규 의사를 비롯한 선열들을 예우하기 위해 만잔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기념사에서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로서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넘어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분”이라며 “오늘날 3만 한의사들은 선배이신 강우규 의사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희생 정신과 민족애를 마음깊이 새기며 환자의 몸을 돌보는 것을 넘어 국민의 삶과 건강, 나아가 나라의 미래를 지켜내야 한다는 소명을 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어 “존경하는 선열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룩한 광복 80년의 역사가 헛되지 않도록 대한한의사협회는 앞으로도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그리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늘 앞장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종찬 광복회장(이규중 광복회 부회장 대독), 정경조 이북5도위원장 등이 기념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와 숭고한 정신을 되새겼다. 특히 이날 기념식에서는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이사장의 ‘강우규 의사의 민족운동’을 주제로 한 강연이 진행했다. 박환 이사장은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오늘날 서울역인 당시 남대문역에서 사이토 총독을 저격한 우리나라의 의열투쟁의 대표적인 화신”이라며 “강우규 의사의 의열투쟁은 이후 모든 항일 독립운동의 큰 배경과 저력이 됐다”고 밝혔다. 또한 박 이사장은 “특히 당시 한의원은 독립운동의 연락거점이자 자금조달 등을 맡으며 한의사들이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며 “향후 한의사들과 강우규 의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박 이사장은 “강우규 의사는 의열투쟁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한의사로서도 일반 개인뿐 아니라 민족의 아픔을 보듬으셨던 분”이라며 “누구보다도 동양의 평화를 강조하고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신 위대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기념식에서는 고용석 기념사업회 이사가 ‘광복 80주년, 푸른 노인을 만나다’를 낭송했으며, 황지영 국악인이 ‘민들레’, ‘배뛰워라’, ‘아름다운 나라’ 등의 신명나는 국악을 독창하며 강우규 의사의 의거 106주년을 기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 추모[한의신문]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이하 기념사업회)가 29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순국 104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독립운동 시 만주, 노령 등지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블라드보스토크로 이동해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 다양한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특히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신임 조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을 시도했으며, 이는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의 의거는 한일병합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했으며, 무장 의열투쟁의 계기가 됐다. 이밖에 강우규 의사는 길림성요하현에 광동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통한 후학 양성에도 힘쓴 바 있다. 이날 추모식에서 장원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대한인의 독립 의지의 불을 다시 지피시고, 젊은이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갖게 해주신 왈우 강우규 의사의 순국 104주기를 맞이하는 해”라며 “우리 기념사업회가 꾸준히 강우규 의사의 업적을 기릴 수 있도록 항상 헌신하고 봉사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의 추모사를 대독한 서만선 부회장은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로서 일제강점기에 억압과 고통에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헌신하셨다”며 “대한한의사협회와 3만 한의사들 또한 그분이 몸소 보여주신 애국 정신을 이어받고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국민 건강증진은 물론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더욱 헌신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추모식에서는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정경조 평안남도 도지사 등이 추모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의 업적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조국 통일을 염원했다. 이어진 추모식에서는 고용석 기념사업회 이사가 강우규 의사 순국 104주기 추모시 ‘나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를 낭송했으며, k.fly 추모공연과 추모자 일동이 강우규 의사의 영정에 헌화‧분향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편 이날 추모식 전에는 장원호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강우규 의사의 묘소를 찾아 참배를 하면서 그의 애민‧애국정신을 기리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
한의사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 추모[한의신문=기강서 기자]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이하 기념사업회)가 2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순국 103주기 추모식’을 개최, 강우규 의사의 공적과 업적을 조명함과 더불어 항일 투혼의 넋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로 길림성 요하현에 광동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통한 후학 양성에 전념했으며, 1919년 3월1일에는 만주·노령 등지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특히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신임 조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 시도를 했으며, 이는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을사늑약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대한민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는 계기가 됐다. 강 의사는 순국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됐다. 이날 추모식에서 장원호 회장은 “올해는 일제 총독 사이토를 암살하려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순국 103주기를 맞이하는 해이며, 그의 의거는 세계평화를 지키려 했던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쾌거이자 청소년들에게 자주독립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일깨우는 기폭제였다”며 “강우규 의사를 추모하면서 올바른 역사인식 공유와 더불어 평화통일의 길을 함께 기원하자”고 밝혔다. 또한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은 “한의사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활약하다 순국하신 강우규 의사에게 깊은 감사와 함께 추모하는 마음을 바친다”며 “한의협에서도 지난 5월 ‘강우규: 푸른 노인’이라는 책을 추천도서로 선정한 바 있으며, 앞으로도 강우규 의사를 기리고, 독립을 위해 애써주신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적극 발굴하고 조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황만기 한의협 부회장도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우리 민족의 절박한 독립의 의지를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됐다”며 “오늘 추모식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우규 의사를 추모하고, 그의 애민‧애국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어진 추모식에서는 나치만 서울지방보훈청장, 최용호 평안남도중앙도민회장, 조명철 평안남도지사, 김중위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등이 추모사를 낭독하는 한편 고용석 기념사업회 이사의 강우규 의사 순국 103주기 추모시 ‘민족의 빛, 강우규 의사’를 낭송했으며, 이어 k-fry의 추모공연과 추모자 일동이 강우규 의사의 영정에 헌화‧분양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이날 추모식이 진행되기 전 장원호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강우규 의사의 묘소를 찾아 참배를 하면서 그의 애민·애국정신을 기리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
홍주의 회장,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관계자 미팅 -
강우규 의사 의거 100주년…역사적 위상 재조명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왈우 강우규(曰愚 姜宇奎, 1855~1920)선생 의거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위상과 성격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사단법인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주최로 지난달 29일 이북5도청에서 진행된 ‘강우규 의사 의거 100주년 학술회의: 강우규 의거의 역사적 위상과 성격’에서 장원호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강우규 선생 의거 백주년을 맞이하는 해”라며 “의사의 순국과 독립정신, 애족정신을 기리는 학술대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문석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강우규 의사께서는 한의사로서 일제 강점기에 억압과 고통에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헌신하셨다”며 “아울러 교육자로서 우리의 얼과 정기를 계승하고자광동학교를 설립하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쳐 후학을 양성하였을 뿐 아니라 1919년 9월 2일, 65세의 나이에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하고자 폭탄을 던지고 99년 전 오늘 순국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오늘날 우리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에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강우규 의사와 같은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노력 덕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왈우 강우규 의사의 후학인 대한한의사협회 2만 5000명의 한의사들 또한 선생이 몸소 보여주신 애국애족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고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국민건강 증진은 물론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더욱 헌신해 나갈 것임을 이 자리를 빌려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명우 평안남도 도지사는 “강 의사 의거는 무기력한 청년들에게 독립운동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무장 투쟁의 시초가 됐다”며 “의술을 통한 제민활동과 후진 양성에 평생을 바치신 선생의 탁월한 정신이 재조명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 박환 수원대 교수는 ‘강우규 의거의 역사적 성격’과 관련해 강 의사의 투쟁 정신이 ‘동양평화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일반적으로 동양평화론 하면 안중근 선생을 생각하는데 강우규 선생이 가장 존경한 인물이 안중근이었다”며 “단순히 활동가 이전에 동양평화라는 사상을 해치는 인물이 사이토이기 때문에 저격할 수밖에 없다는 확실한 사상적 토대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옛날에는 한의업이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직업이었다”며 “병의원은 누가 들락거려도 크게 의심을 안 받기 때문에 한의사를 하면서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한약방이 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강우규 평전’의 저자인 은예린 씨는 “우리나라의 4·19 운동이 십대들이 이룬 혁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강 선생 의거는 아주 고령으로 전세계에서 최초일 것”이라며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 실존인물 중 토사곽란을 치료한 한의사 강우규 선생이 나온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강우규 선생 의거는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거지만 많이 안 알려진 느낌”이라며 “윤봉길 선생만큼 대중적이진 않았다. 당시 60대 고령의 나이였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덜 알려진 이유에 대해선 여전히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환 교수는 “강우규 선생은 평남 출생으로 북한 지역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료가 거의 없어서 민족의식 형성의 계기나 고향 등에 대해 알 수 없다”며 “또 주요 활동 지역도 러시아였는데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국가 수교를 한지 30년이 채 안 된 상황이라 러시아 문서에 대한 해독 능력도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주된 활동지역이 러시아다보니 답사나 자료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강우규 연구는 동아일보와 매일신보, 일본 신문 자료 기록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 측 자료만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러시아 자료 발굴이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고 부연했다. 김형목 독립기념관 책임 연구원은 ‘강우규 의거에 대한 오사카아사히 신문을 중심으로 일본 언론의 반응’에 대한 주제발표에서 “아사히신문은 대부분 해당 사건을 부정적으로 다루고 사이토의 의연함을 부각시켰다”며 “우리는 이런 자료를 조심히 보고 강 의사의 활동이 묻히지 않도록, 강 의사의 활동이 일본 관리들에 경악할 만한 사건이란 것을 반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거 백주년을 맞아 좀 더 튼튼한 연구를 하기 위한 빅데이터 작업이 이뤄진다면 강 의사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기존 연구도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더 나아가 강 의사의 삶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남북 통일의 기초 자료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한의사 출신 ‘강우규 의사’ 의거 95주년 기념식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강인섭)는 2일 서울역광장 강우규 의사 동상 앞에서 이석현 국회 부의장,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김중위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명예회장 등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강우규 의사 의거 95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한의사 출신인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2일 현재의 서울역인 당시 남대문역에서 제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 일제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대한인의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독립유공자다. 또한 65세의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폭탄의거에 나선 점은 일제의 통치에 대한 저항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더 큰 의미가 담긴 의거로 평가되고 있다.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대부분의 의거들이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그것도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에서 이뤄져 3·1운동 후 독립의지의 불을 다시 지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 이후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청산리대첩 등 무장독립전쟁과 의열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편 강우규 의사의 유해는 서대문감옥 공동묘지에 있다가 해방 이후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되었고,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추서되었으며, 독립기념관에 어록비가 제작되면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하기 직전에 유언으로 남긴 한시가 적혀 있다. 또한 지난 2011년에는 국가보훈처의 지원과 각계의 성금을 모아 서울역 앞 의거현장에 마코토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지기 직전의 강우규 의사의 모습을 담은 동상이 건립된 바 있다. -
한의약 100년사를 조망경기도한의사회(회장 정경진)는 지난 14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한의약 100년사를 조망한다’를 주제로 ‘한방의 날 기념 세미나’를 개최해 역사적 인물 및 제도 변천사를 중심으로 지난 한의약 100년사를 돌아보고, 한의약의 미래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도 변천사를 중심으로’ 지난 한의약 100년사를 조망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강연석 교수는 △국가기관의 변천 △의사제도와 교육기관의 변천 △국가제도로의 재진입 노력 △탄압과 극복의 역사, 그리고 미래비전 등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강 교수는 “한의약이 제도권으로 재진입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이나 한방상품 개발보다는 ‘사람’과 ‘장소’를 늘리는데 집중해야 한다”며 “기존의 장소에 정원을 확충하거나 새로운 장소를 개발해 새로운 인원을 확보하는 것이 제도권으로의 재진입을 위한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또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김남일 교수는 근현대의 한의학 관련 인물을 △궁중에서 활동했던 어의 △한의사단체의 조직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 △한의학 교육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 △한의학 교육으로 이름을 빛낸 인물들 △한의학 연구로 이름을 빛낸 인물들 △한의학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활동한 인물들 △한의사제도의 설립을 위해 힘쓴 인물들 △일제의 각종 탄압에 맞서 한의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 △독립운동가 한의사 등으로 구분해 각 인물의 연혁 및 업적 등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독립운동을 했던 한의사들의 활동에 대해 한의계 자체적으로 연구된 바 없다”며 “강우규 의사를 비롯한 방주혁, 노병희, 심병조 등 독립운동가 한의사들이 갖고 있던 한의학적 관념과 독립운동과의 연관성 등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윤한의원 윤성찬 원장,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강인섭 회장, 한겨레신문사 권복기 기자 등의 토론이 이어졌다. 한편 이날 개회식에서 정경진 회장은 “한방의 날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세미나는 한의계의 지난 100년을 돌아봄으로써 당면한 현실을 파악하고 다가올 10년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다가 올 미래에는 한의학이 21세기 의학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대한한의사협회 김정곤 회장은 축사를 통해 “한의약의 역사와 한의약 100년사를 조망하는 이번 세미나가 우리 한의약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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