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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과 국민에게 한의약 우수성 적극 알리겠다”[편집자주]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은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전설이다. 그는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우리나라 최초로 헌액된 유일한 선수다. 이처럼 화려한 경력의 현 부회장도 부상을 피할 수 없었고, 그때마다 한의진료를 통해 경기력을 유지하며 실력을 발휘했다. 현 부회장으로부터 한의약이 스포츠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효과 등을 들어봤다. Q. 대한탁구협회 수석부회장직을 맡고 계신다. 선수 육성, 대회 운영, 대외 협력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지만 간략히 표현하자면 탁구인 들은 대표해 외부와 소통하고 탁구협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탁구인 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Q. 부상 치료에 한의약의 도움을 받은 경험은? 물론이다. 선수라면 부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피한 일이다.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결릴 때 한의원을 찾아 부황이 나 뜸, 침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한의약을 경험할 때마다 몸이 따뜻해지고 활력이 돋는 느낌을 경험했다. 필요한 부분만 치료되는 느낌이 아닌 원인을 찾아 보강하고 몸을 튼튼히 만들어줘 본질적인 치료가 된다고 생각해 한의학을 찾는다. Q.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한의약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신체적 회복, 부상 예방, 컨디셔닝, 정신적 안정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탁구처럼 민첩성과 집중력이 요구되고, 반복적인 관절 사용이 많은 종목에서는 한의악의 보완적 접근이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예로 뜸이나 부항 그리고 침 치료를 받을 때 그 특유의 차분하고 진정된 분위기가 선수들의 기분을 고양시켜 주기도 한다. 또한 한약이나 한방차는 체력 회복 및 면역력을 강화해 주고 체질 맞춤형 치료를 통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Q. 현재 탁구 선수들이 한의약을 활용하는 이용률은? 구체적인 통계를 알고 있지 못하지만 탁구인들 또한 한의학의 이용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탁구는 손목, 어깨, 팔꿈치 등 특정 관절 부위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누적 피로가 쌓이기 쉽다. 또한 각각의 선수가 체질이 다르고 이에 따라 맞춤형 회복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의약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많은 탁구인들이 한의약을 사랑하고 찾고 있지만, 한의약을 찾지 않는 일부 선수들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언뜻 떠오르는 생각은 잘못 형성된 한의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홍보를 좀 더 강화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서양 의학에 비해 과학적 근거 부족하다는 잘못된 편견이나 한약을 복용하면 체중이 불어난다던지 도핑에 악영향을 미친다던지 하는 부작용에 대한 괜한 걱정을 덜어줄 인식 개선 등의 홍보가 수반된다면 한의학의 진가를 더 많은 스포츠인이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Q. 선수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선수생활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각 종목 금메달을 모두 획득하는 것을 뜻하는 ‘풀-하우스’도 완성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아무래도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 코리아의 일원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때가 아닐까 한다. 남북 선수단이 하나 돼 작은 통일을 이뤄냈고 그 힘이 원동력이 돼 결국 세계를 제패했다. 대회 기간 동안에는 일본의 재일거류민단이나 조총련처럼 남북의 관계자들도 하나가 돼 열정적으로 응원해 줬던 기억이 난다. 대회 후 헤어진 북측 동료 선수들에 관한 기억이 아직 까지 또렷하다. Q. 진천선수촌의 한의진료실 운영이 선수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회복 속도가 크게 향상되고 부상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덕분에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탁구는 신체의 한쪽의 다리나 팔이 축이 되어 힘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편측운동(한쪽운동)이기 때문에 체형의 불균형이 큰 편이지만, 한의진료실을 설치함으로써 체형을 교정하고 어깨, 팔꿈치의 무리를 감지하고 조기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Q. 한의계와 탁구계의 협력을 위해 제언한다면? 탁구인을 넘어 더 많은 스포츠인 그리고 국민들께서 한의약을 지금보다 더 많이 경험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실 수 있도록 많은 분께 한의약의 우수성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한약재 ‘동조’의 탈모 예방 효과 ‘확인’[한의신문]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원장 김용관)은 국내 자생식물인 보리밥나무가 모발 강화 핵심 세포인 모유두세포를 강화해 탈모 예방에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상록 활엽 덩굴나무인 보리밥나무는 해안 지대에서 잘 자라며, 작은 가지에 은백색과 연한 갈색의 비늘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의학에서는 ‘동조(冬棗)’라는 한약재로 불리며 천식, 기침, 가래, 당뇨 등에 약재로 활용돼 왔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는 2022년부터 모발 건강에 효과적인 산림바이오자원을 찾기 위해 170여 종의 산림자원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모유두세포 강화 효과가 가장 우수한 보리밥나무를 선별했다. 보리밥나무 추출물을 10ug/ml 농도로 처리했을 때 모유두세포 활성이 150%, 30ug/ml에서는 175% 증가하는 등 모발 강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모유두세포 강화와 관련된 바이오마커 역시 처리 농도에 따라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피부 안전성 평가에서 무자극 등급을 받아 원료의 안전성을 확보했으며, 보리밥나무 추출물을 함유한 앰플 시제품을 제작해 활용성과 안정성까지 검토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해당 연구 결과에 대한 특허 등록을 마치고, 현재는 인체 적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임상 효력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 최식원 박사는 “보리밥나무는 모유두세포를 직접적으로 발달시키는 우수한 국내 자생 산림자원”이라며 “산업체 기술이전을 통해 임·농가의 소득자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직업은 어른 취미는 그림책》[한의신문] 그림책에 빠진 어른 다섯 명이 한 해 동안 모두 스무 권의 평화 그림책을 읽고 나눈 이야기를 가려 뽑은 책 《직업은 어른 취미는 그림책》(보리출판사)이 출간됐다.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저자들은 소리 내어 그림책을 읽으며 일상과 감정, 내면을 들여다보고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자기와 마주한다. 이들은 평화에 대한 물음을 그림책에서 찾았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자연과 둘레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길, 전쟁과 기아, 폭력으로부터 되찾는 평화까지 이들이 스무 권의 그림책에서 찾아낸 평화가 알알이 빛난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마법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이 책은 《우리 동네 한의사》, 《텃밭에서 찾은 보약》을 저술한 파주시 소재 래소한의원 권해진 원장을 비롯 홍천에 그림책으로 둘러싸인 '꼬마평화도서관(49호)'을 연 김영주 수필가, 《한글꽃을 피운 소녀 의병》, 《내 말 사용 설명서》 등을 저술한 변택주 작가, 고양시 도서관의 사서로 재직 중인 이선화 기록물관리사, 《아버지의 도시락》, 《우리 동네 당신》을 저술한 이승희 국어교육가 등의 공저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들 다섯 명의 작가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고, 어른의 언어로 마음을 나누고, 그 시간을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번에 출간된 ⟪직업은 어른 취미는 그림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평화에 대한 물음을 그림책에서 찾았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자연과 둘레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길, 전쟁과 기아, 폭력으로부터 되찾는 평화까지 스무 권의 그림책에서 찾아낸 평화가 알알이 빛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고 ‘1부 참다운 나 찾기’에서는 △여행하는 맛 《어느 멋진 여행》 △아이들한테는 보여 주지 마세요 《딴생각 중》 △우리는 모두 병아리였습니다 《병아리》 △누구에게나 오두막이 필요하다 《나의 오두막》 △심심함이 주는 힘 《심심해서 그랬어》 △끝끝내 놓을 수 없는 것 《달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말이 없는 세계 《바람의 우아니》 등이 수록돼 있다. ‘2부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기’에서는 △쓰임과 쓸모 《안젤로와 곤돌라의 기나긴 여행》 △살아가다와 스러지다 《우리 마을이 좋아》 △기다리면 별이 된다네 《큰 늑대 작은 늑대의 별이 된 나뭇잎》 △할머니는 커다란 엄마 《할머니의 뜰에서》 △부모는 아이의 눈 《우리 아빠는 흰지팡이 수호천사》 △목숨은 다 귀하다 《생명을 먹어요》 △그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것 《여름에 만나요》 △우리가 함께 살아가려면? 《펭귄의 집이 반으로 줄었어요》 △나를 살리는 사람들 《누가 진짜 엄마야?》 등이 소개돼 있다. ‘3부 이제 전쟁을 그치자’에서는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지속 가능하게 가꾸어 나갈 보금자리 《기이한 DMZ 생태공원》 △제대로 사랑합시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전쟁을 바라는 이들을 더 이상 내버려두지 않기 《적》 등이 기술돼 있다. 저자들은 한목소리로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림책은 짧은 문장 안에 담긴 뜻과 그림에 녹아든 결을 찬찬히 곱씹는 맛이 깊은 문학 작품이다. 그림책을 연주하다 보면 쉰 살, 예순이 넘은 어른들도 살아온 시절을 반추하고 어릴 적 마음을 떠올리며 울컥한다. 어떤 중년 남성은 연주마당에 몇 번 나온 뒤 직접 그림책을 사 들고 올 정도로 그림책에 푹 빠졌다고 한다. 이들에게 그림책은 취미를 넘어 삶의 방향을 비추는 경전 같은 존재다. 물리학자 김상욱이 “세상은 떨림으로 가득하다”고 말한 것처럼 이들은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가 마음속 떨림을 울림으로, 그리고 어울림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이라 여긴다. 책을 눈으로만 읽지 않고, 귀와 몸으로 함께 느끼다 보면, 결국 마음이 열린다. 삶이 조금 느려지고, 서로를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들은 말한다. “그림책에는 ‘어울려 살림’이 소복해요. 함께 읽으면 그 맛이 살아납니다.” ※ 이 코너는 한의사 회원이 집필한 책을 간략히 소개하여, 회원들의 다양한 활동과 한의학의 저변 확대를 함께 나누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서평이나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으며, 특정 도서에 대한 광고나 추천의 의미는 아님을 안내드립니다. -
[시선나누기-42] 붓과 그림자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문저온 원장의 ‘시선나누기’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캄캄한 무대에 웅크리고 앉아 한 사람이 먹을 간다. 벼루 옆 촛대에 꽂힌 작은 촛불 하나가 바닥을 비춘다. 벼루에 먹이 갈리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공간에 번진다. 그는 먹을 놓고 곁에 놓인 붓을 들어 벼루를 쓰다듬듯 먹물을 적신다. 촛불 하나로 비추는 이 광경은 보일 듯 말 듯 눈앞에 있다. 먹을 쥘 때도 붓을 쥘 때도 두 손은 맞대어 모은다. 숙인 얼굴에 불빛이랄지 그림자랄지 어슴푸레한 것이 비친다. 그는 이제 천천히 오른손에 붓을 들고 왼손에 촛불을 들고 일어선다. 종이 뒤로 들어간다. 종이는 무대 가운데 펼쳐져 있다. 엄밀히 말하면 두루마리 종이가 양쪽 기둥에 감겨 고정된 채로 공중에 펼쳐져 있다. 그는 촛불을 들고 무대 한쪽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너무 작은 불빛이어서 움직이는 그가 겨우 보일 뿐이었다. 촛불을 든 그가 널따란 종이 뒤로 걸어가자 불빛이 그의 그림자를 만든다. 길게 가로 펼쳐진 종이가 일순 환해지며 그림자 극장이 생겨난다. 그가 종이에 붓을 찍는다. 검은 먹물 자국이 종이 위로 번져간다. 말하지 않고 생각을 전하는 방법은? 처음 보는 광경이다. 종이 위가 아니라 종이 뒤에서 찍는 붓 자국. 종이를 투과하는 촛불의 아련함이 한지 위로 번지면서 그가 그리는 붓 그림을 생생하게 만든다. 선 하나, 점 하나, 선 하나, 점 하나. 붓 그림을 그리며 그가 종이 뒤에서 말한다. “장자가 잠을 잔다.”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된다.” 다시 선 하나, 점 하나. “나비가 잠을 잔다.” “나비는 꿈속에서 장자가 된다.” 종이 위에는 겹겹이 장자와 나비가 포개진 커다란 꽃 하나가 피어난다. 그림을 마친 그가 자리를 옮겨 선다. 제 얼굴 뒤에 초를 갖다 대었는지 새까만 그림자 하나가 나타난다. “스승님!” 머리를 길게 땋은 옆모습이 종이 가득 나타나서 동자는 노스승께 배움을 구한다. 장자 우화 몇 장면이 연이어 나타나고 사라진다. 붓은 수월한 몸짓으로 선 하나를 긋고 선 두 개를 긋고 화폭에는 산이 나타나고 배가 나타나고 까치와 사마귀와 매미가 나타나고 그가 천천히 하늘 천 따지를 읊는다. 두루마리를 힘주어 말아 당긴다. 무대 한쪽에서 북을 치던 고수가 두루마기 옷소매로 종이를 푼다. 검을 현 누를 황을 함께 읊는다. 오래된 서정이 종이 위로 지나간다. 어둑한 무대 위로 숨소리가 고여 든다. 팽팽한 종이를 그가 붓으로 내리칠 때 종이는 찢어질 듯 찰랑이면서 견디는 소리를 냈다. 쾌감이 일었다. 붓이 종이와 만나는 소리가 이렇게 낯설었다. 찰싹 소리를 내며 붓이 손바닥을 그리고 모기를 잡을 때 객석의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장자가 아이들을 웃게 했다. 공연 막바지, 그가 생경하게 이렇게 물었다. “말하지 않고 생각을 전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뀌어버린 지금 상황이 녹록지가 않네” 나는 순간 마임이스트 선생을 떠올렸다. 그가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해서도 안 되지만, 그는 말하지 않고도 전한다. 큰 질문에 이렇게 쉬운 답을 떠올리면서 나는 빙그레 웃었다. ‘선생, 이것이 인연을 함께한 저만의 특권입니다.’ 말을 마친 그가 종이 뒤에서 붓 그림을 그린다. 집을 그리고 달을 그리고 사과를 그린다. 갑자기 보이지 않는 칼이 종이를 가른다. 집을 긋고 달을 오리고 사과를 오린다. 종이와 부딪치던 붓 소리. 이제 종이를 베어 버리는 소리. 칼날이 종이를 긋는 소리가 선득하게 귓가를 긋는다. 뚫린 종이 뒤에서 그가 손바닥에 올린 사과를 베어 문다. 겨울을 뚫고 봄인가.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광복 80년, 을사늑약 120년, 그리고 자이니치! 강제 연행 및 징집에 의해, 혹은 현실적, 사회적 이유로 자의 혹은 타의적 유배를 선택했어야만 했던 우리의 선조들과 역사의 질곡 속에서 외롭고 고된 이민자의 삶을 이어 나가야 했던 우리의 동포들에게로, 그들의 후손들에게로 떠납니다.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작년 초봄의 ‘신유배기행’이 올해는 일본으로 간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있는 예인들의 혹한기 예술 유랑-디아스포라 일본 편’이라고 적혀 있다. “재일조선인의 ‘재일’이 ‘자이니치’야. 간단하게 줄여서 재일조선인을 자이니치라고 부르는 거지. 간편하지만 멸시하는 말이기도 해. 이번 공연에서는 그분들을 초청해서 무대를 만들려고 해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 몇 군데를 찾아가서 현지 예술가들 몇 분과 함께 무대를 꾸릴 거예요.” 예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조선인학교 영화 얘기를 하자 선생은 안타까워했다. “안 그래도 조선인학교를 찾아가 보려고 했는데,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도록 바뀌어버린 지금 상황이 녹록지가 않네.” 말하지 않고도 전해지는 그 무엇 공연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는 사이트에 선생은 후원금 달성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시 한 편을 써서 올려놓았다. 새삼 그는 몸으로 글을 쓰는 시인이다. 꽃은 어머니/ 꽃은 아버지/ 꽃은 나// 살아서 다행이라는/ 질곡(桎梏) 속에서/ 스러지지 않고/ 조선의 꽃으로/ 환하게 피어있는 당신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속으로 떠나가신/ 겨레의 넋들 불러 모시고/ 우리 한판/ 신명나게 놀아봅니다 ―‘자이니치 앞에 바치는 꽃’ 아토는 선물이라는 뜻이라 했다. 아토는 순우리말이라 했다. 아토는 인형극 극단이라 하고, 아토는 1인 극단의 1인이라고 했다. 머리를 땋은 어여쁜 사람이 선배 연기자의 유작(遺作)을 이어받게 되었노라고 공손히 말했다. 장자와 도덕경을 읽고 있다고 했다. 촛불과 그림자, 그리고 붓그림. 그림자로도 전해지는 것이 있다면 색(色)은 무엇일까... 말하지 않고도 전해지는 그 무엇을 들고 선생은 그늘진 곳으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
[시선나누기-41] 시와 시나리오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보고 싶다고 말하는 동안,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동안 전쟁이 터졌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버둥거릴 때 전쟁이 벌어졌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유튜브 영상을 넘기고 있을 때, 헬기가 뜨고 심야의 도로를 탱크가 달렸다. 마음속에서, 지구 저편에서, 그리고 우리의 도시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일상이 무너졌다. 그리고 신문에서 기사 하나를 읽었다. 그는 수학자다. 수학자는 칼럼에서 수학 이야기가 아닌 연극 이야기를 한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그는, 정서적인 흥분이나 감동 없이도 음악의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고 첼리스트에게 물었던 것 같다. 작곡가를 잘 알지 못해도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지 않느냐고, 화성의 구조를 분석해 가면서 그는 수학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탐닉하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전쟁은 누가 일으키고, 보호는 누가 하나? 기사에는 눈썹이 짙고 눈이 커다란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실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레바논 전쟁이 진행 중인 2024년 11월 레바논 베카 밸리의 난민 보호소 아이들이 자선단체 ‘시나리오’가 연 연극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여남은 명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옆에 선 아이들을 붙안고, 햇빛을 가리거나 손짓으로 친구를 부르면서 해맑게 웃고 있다. 사진 아래 붙은 설명이 아니라면, 저기가 ‘전쟁이 진행 중인’, ‘난민 보호소’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진 위로 ‘전쟁’과 ‘난민’이라는 단어가 이물질처럼 둥둥 떠다닌다. ‘보호’라는 말이 낯설다. 전쟁은 누가 일으키고, 보호는 누가 하나... 그럼에도 난민은 발생하며, 그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생각이 뒤엉킨다. 한쪽에서는 폭격하고 살인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또 한쪽에서는 그런 사태를 수습한다. 인간 세계는 그렇다. 인간은... 그러한 존재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인 난민촌에서 더불어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아이들은 자라니까. 시간이 흘러버리면 아이들은 더는 아이가 아니니까. 다섯 살과 열네 살에는 다섯 살이 배우고 열네 살이 느껴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어른들은 전쟁터 한쪽 구석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셈을 가르치고 언어를 가르친다. 그리고 ‘연극’을 가르친다. 놀이와 연극을 통한 평생 교육! 수학자는 자선단체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가자 전쟁의 여파로 주위 국가 중의 하나인 레바논도 미사일과 드론 폭격으로 수천 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 ‘시나리오’는 레바논을 중심으로 요르단, 팔레스타인, 시리아를 포함한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극 단체다. ‘사회 약자층 중에서도 특히 위기에 처한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예술 치유와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놀이와 연극을 통한 평생 교육! 이 멋진 말이 그들의 구호다. 전쟁터에서, 난민촌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연극 공연을 보여주는 것만도 놀라운 일일 텐데, 이 단체는 ‘참여자들이 스스로 각본을 쓰고, 연출하고 연기함으로써 일깨워지는 창의력과 자아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어느 예술보다도 연극은 참여자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효율적으로 표현해 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어린 딸과 남편과 함께 난민촌을 누비는 단체 대표의 모습이 그려진다. 고개가 숙여진다. 집을 잃은 아이들이 난민촌에서 모여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역할을 분담하고, 연출가를 뽑아 연기를 지도하고, 의상을 마련하고, 무대를 만들고, 그 모든 것이 헐겁고 엉성할지라도 끝내는 자신들의 ‘연극 작품’을 만든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의견과 합의와 연습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말’과 ‘몸짓’이 있었을까. 포탄과 폐허를 훌쩍 뛰어넘는 상상력이 언 땅위로 돋아나는 새싹처럼 얼마나 무궁무진 푸르렀을까. 그러는 동안 저 아이들은 진정 평화로웠을 것 같다.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탈출해서 눈빛과 웃음으로 어우러지면서, 인간이 나눌 수 있는 가장 풍성한 것들을 각자의 안에서 발견했을 것 같다. 꺼내어 서로 확인했을 것 같다. 사진 속 웃음이 그것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 기사에는 사진 한 장이 더 실려 있었는데, 레바논 베이루트 주변 건물들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무너진 폐허의 모습이었다. 불에 타서 무너진 잔재가 검은 그림자에 파묻혀 있었다. 사진 끝에는 게티이미지뱅크라고 출처가 표기되어 있었는데, 그걸 보는 기분이 이상했다. 이미지뱅크에는 전쟁 사진도 있다. 당연한 일일지 모르는데 문득 그것이 낯설다. 이미지를 사고파는 인터넷 거래에 ‘전쟁’도 있다. 기록하고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이미지’로 ‘거래’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도 정보 공유의 한 방식이겠다. 세계는 무서운 속도로 변한다. 궁핍한 시대에 시인이 무슨 쓸모인가? ‘놀이하는 이모네’라는 단체의 대표 배우가 말한다. “학교에 가서 연극 체험 수업을 하는데, 장애아이들은 두세 번의 체험으로도 나아지는 게 보여요. 표현력이나 상상력을 키워주는 놀이를 하지요. 소꿉놀이, 연극 놀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이걸 어떻게 풀어 나갈까를 연극으로 표현하니까 문제해결력이 생기고 또래끼리 사회성이 길러져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면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어서 담임 선생님이 놀라기도 해요. 예전에는 학교 수업에서 연극을 다뤘는데, 요즘은 거의 없어져서 아쉬워요.” ‘궁핍한 시대에 시인이 무슨 쓸모인가?’. 수학자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구절을 언급한다. 시와 연극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는 ‘빵과 포도주’라는 시를 찾아 천천히 읽는다. (...)허나 친구야! 우린 너무 늦게 왔어. 신들은 살아 계시나,/우리의 머리 위 저 세상 높이 머물고 있을 뿐이야./(...)더욱이 그들은 천둥치며 온다. 그러는 동안 나는 가끔/친구 없이 혼자 있고, 더욱 잘 잔다고 생각한다./그렇게 학수고대하며,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말할지를,/궁핍한 시대에 시인들은 왜 존재하는가를 나는 모른다./허나 그대는 말한다, 시인은 마치 성스러운 밤에 여러 나라를/배회하는, 포도주 신의 성스러운 사제들과 같다고. -
[시선나누기-40] 열아홉 순정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거울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매미 허물 같은 내 껍질을 벗어 둘 곳이란 어딜까. 그것이 거울 앞이 아니라면 또 어딜까. 나를 벗어 둘 곳이란, 피부가 되어버린 가면을 비로소 벗을 수 있는 곳이란, 거울 앞이 아니고 또 어디일 수 있을까. 튀어 오르듯이 발랄하게 춤추던 여자아이는 거울 앞으로 걸어간다. 무대에 놓인 소품 하나. 이 공연이 연극이 아니라 춤이라 하고 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소품 하나. 타원형의 커다란 전신거울이 무대에 놓여 있다. 거울 앞에는 등받이 없는 낮은 의자. 이 소품 하나로 인해 이 공연은 춤이자 극이 될 것이다. 무용수는 마치 배우였던 것처럼 머리에 썼던 탈을 벗는다. 마임을 하듯 거울 앞에 서서 말없이 겉옷을 벗는다. 드디어 객석을 향해 돌아서는 무용수를 보고 나는 놀란다. 세상에! 춤꾼은 초로(初老)의 고운 사람이다. 객석에서 연달아 탄성이 터져 나온다. 저럴 수가 있나! 조금 전만 해도 저고리에 깡총한 치마를 입고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무대를 누비던 여자아이였다. 그는 늙었고, 춤춘다 ‘보기만 하여도 울렁~’ 새침하고 날렵한 손끝이 지구를 얹어 놓아도 퉁기고 놀 것처럼 가벼웠다. ‘생각만 하여도 울렁~’ 풀밭을 스치며 날아오르는 것처럼 발끝이 가벼웠다. ‘수줍은 열아홉 살 움트는~’ 고개를 까딱이고, ‘첫사랑을 몰라 주세요~’ 팽그르르 돌아서고. 아이는 열아홉에서 아홉 사이 그 어디여도 좋을 만큼 생기가 넘쳐서 잠시라도 눈을 떼면 놓쳐버릴 것 같았다. 마치 살아있는 공처럼. 아이는 제 춤과 노래에 신이 난 관객들을 마음대로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거울 앞에서 돌아서는 저 춤꾼은 주름지고 다소곳하다. 몸의 곡선이 조용히 아래를 향했다. 춤사위가 고요하고 손짓이 조용하다. 어깨와 팔에 세월이 얹힌 것 같다. 몸을 숙이며 꺾으며 춤꾼은 지난 시간을 다 그러안는 것 같다. 눈빛이 잔잔하고 먼 데를 본다. 발은 단단하게 무대를 디딘다. 무대 한쪽에서 나이 든 아코디언 연주자가 수염 난 얼굴을 중절모로 덮고 서서 음악을 연주한다. 춤이 음악과 함께 고이고 흐른다. 그는 자신의 열아홉을 잘 개켜서 거울 앞에 놓아둔 사람이다. 열아홉의 얼굴을 떼어내서 거울 앞에 둔 사람이다. 저만치서 열아홉 살의 그가 무구한 얼굴로 지금 춤추는 그를 바라보게 하는 사람이다. 열아홉으로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사람. 그는 늙었고, 춤춘다. 하얀 통옷을 내려 입은 그의 가슴팍에 보라색 꽃이 그려졌다. 그는 하얀 화폭처럼 춤춘다. 그는 자신을 순정의 댄서라고 불렀다. 공연 팸플릿에 적힌 것이 ‘창작무: 순정의 댄서’였다. 순정이라는 말과 댄서라는 단어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는데, ‘댄서의 순정’이라는 통속적인 노랫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뒤로 단어를 바꿔 놓자, 말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생경한 느낌을 주었다. 춤꾼은 댄서가 맞고, 순정이란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이라고 사전은 풀이하는데, ‘댄서의 순정’은 왜 이렇게 낡고, ‘순정의 댄서’는 왜 이렇게 낯설까. 순정이라는 예스런 말을 곱씹는다. 나에게는 무엇을 향한 순정이 있나. 그는 지금 온전히 그 자신이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서 나는 그가 왜 이런 제목을 자신의 춤에다 붙였는지 알아버렸다. 소녀와 노년을 단박에 건너뛰는 무대를 펼치면서, 1막과 2막을 가르듯 그야말로 손바닥 이쪽과 저쪽을 뒤집듯 하면서, 그는 인생을 다 보여주었다. 시작과 도착을, 과거와 현재를 각각 보여주었는데, 마치 뚝 잘라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것이 다라는 듯이. 이것이 전부라는 듯이. 전부란 처음과 끝이고, 처음과 끝을 관통해 온 그 자체이고, 나는 지금 그 전부를 살고 있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이것을 순정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거울 앞에 선 그가 주름진 얼굴로 천천히 뒤돌아설 때, 그는 수줍게 자신을 관객에게 내보였다. 그랬다. 얼마간의 수줍음을 나는 보았다. 지금 이렇게 나이 든 춤꾼. 조용한 반전을 마련해 놓고 이만치 거울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그의 춤사위는 나직하고 고요했다. 그는 춤꾼으로서의 자신을 춤으로 펼쳤다. 이따금 거울을 향하여, 거기 벗어놓은 열아홉을 향하여 온몸을 기울이는 그의 춤은 어떤 제의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열아홉을 건너다본다. 수십 년을 걸어 이 자리에서 그의 열아홉에 말을 건다. 그의 열아홉이 그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이것을 순정이라 부른다. 그리고 다시, 자기 인생을 춤으로 내놓을 때, 순정이라고 이름 할 때, 창작하는 예술가의 수줍고 당당한 몸이 무대에 놓인다. 그는 지금 온전히 그 자신이다. 온몸의 표정을 읽느라 눈을 뗄 수가 없는 한 편의 모노드라마가 조용히 끝난다. 갈채가 쏟아진다. 배우와 희곡이 그의 몸 안에 다 들어 있다 전체 공연이 끝나고 출연자들이 커튼콜을 하고 사진을 찍으러 무대에 나올 때, 나는 춤꾼을 찾는다. 공연 뒤의 얼굴. 무대에 자기를 다 풀어놓고 그 매듭 끝에 서 있는 사람. 이제 서늘해진 표정으로 이 부차적인 무대에 담담히 걸어 나오는 사람. 나는 춤꾼에게 매료되었다. 행사를 준비한 분께 부탁해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사진 속에서 춤꾼은 엷게 웃고 있다. 손 그늘이 살짝 드리운 아래로 촉촉한 눈빛이 아스라하다. 저만치서 둥근 탈의 검은 눈구멍이 또렷이 춤꾼을 본다. 무한한 듯 검은 배경. 차고 푸른 마룻바닥. 휘청이듯 꺾였으나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무릎의 각도. 그리고 두 발. 이 모든 것을 지탱하는 춤꾼의 두 발. 배우와 희곡이 그의 몸 안에 다 들어 있다. 그리고 사진 속 다시 보는 거울에는 거울이 없다. 타원형 테두리 안, 거울 속은 그저 검다. 무엇도 비춘 적 없다는 듯이. 무엇도 꺼내볼 것 없다는 듯이.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286)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李麟宰는 1912년 쓴 『袖珍經驗神方』의 자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학에 모범처방전이 있는 것은 바둑에 기보가 있는 것과 같다. 마음을 스승으로 여기는 사람은 기보를 없애버리고, 처방에 구애되는 사람은 모범처방전에 얽매이니, 그 그릇됨은 한가지이다. 주단계가 말하지 않았는가. 옛날 처방과 새로 생기는 병이 어찌 서로 맞아 떨어질 수 있겠느냐고. 이 말은 믿을 만하다. 설사 유완소, 장종정, 이고, 주진형을 한 학당에 모아 놓아도 주장이 모두 같지 않고 처방이 다르지 않은 경우가 없지만, 그 사람을 치료함에 있어서는 한가지이다. 그 남과 북의 기후와 풍토의 강약과 옛과 지금의 같고 다름에 두루 통하는 것이 시중의 도이다. 그대는 어찌 중도를 잡지 않고, 옛 것은 공부하면서 지금 것을 모범으로 삼지 않는가. 제나라와 노나라의 변화가 도에 있어서 풍속의 변통으로 말미암지 않은 경우가 없다. 근래에 동서의학이 매우 성하여 혹 서양의학을 모범으로 삼고 동양의학을 배척하기도 하고, 동양의학을 모범으로 삼고 서양의학을 배척하기도 하는 것은 비록 사람 마음의 나가는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지만,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은 수레의 바퀴나 새의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하나를 놔두고 다른 하나를 없앨 수 없는 것이다. 내과와 외과를 본다면 알 수 있다. 오호라. 내가 고루하지만 옛 것(동양의학)을 바탕으로 새 것(서양의학)을 받아들여 방서를 수집하여 2권으로 된 책을 만들어 『수진경험신방』이라고 이름을 붙여 책상에 놔두어 가정에서 사용하였다. 이에 친구 이철주, 조영교가 다음과 같은 말로 깨우쳐 주었다. ‘이 책을 어찌 휘장 속에 감추어둘 수 있겠는가. 주어 인쇄하여 보리(모든 법을 다 깨쳐 정각을 얻는 일)를 구하는 마음(이를 ‘보리심’이라 함)으로 마음만을 스승으로 여기는 자들로 하여금 사색으로 번뇌하지 않도록 하고 표본완급의 이치를 얻게 하고, 처방에 구애되는 자들로 하여금 그 새로운 것을 알고 옛 것을 익히도록 하여 진주를 잃어버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한탄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게’라고 하였다. 내가 말했다. ‘글이 어찌 말을 다 담아낼 수 있을 것이겠는가. 방법은 정해진 것이 없으니, 단지 마음으로 풀어 이해할 따름일세.’ 친구가 듣고 깨닳아 내게 명하여 앞머리에 서문을 붙이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저자 이인재의 ‘서양의학’에 대해 개방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친구 이철주는 1913년 작성한 序에서 이 책에 대해서 “이군이 일생의 돈독하고 믿을 만한 경험을 숨김없이 스스로 편찬하였으니, 의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 보면 이군과 더불어 그 법을 같이 할 것이다”라고 극찬하였다. 이 책은 四診門, 婦人門, 小兒門, 男婦通治門으로 되어 있다. 사진문은 望色法, 聞聲法, 問症法, 切脈法의 望聞問切, 부인문은 經候, 崩漏, 帶下, 積聚, 虛勞, 胎孕 및 産前諸症, 産後諸證, 소아문은 세부증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부통치문은 諸症通治, 中風, 傷風寒, 痼冷症, 瘟疫 등 64종의 항목을 두고 세부증상들을 기술하고 있다. 이인재는 이 서문을 쓸 무렵까지 濟蒼醫院이라는 한의원을 20여 년 개원하고 있었던 한의사로, 서양의학과의 공존을 어떤 형식으로든 도모하고자 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서양의학에 대한 포용적 연구는 당시의 거대한 과업이었으며 그는 이러한 과업을 하나의 커다란 숙제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
[시선나누기-39] 보이지 않는 경계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당신의 눈에 어느날 이런 글귀가 들어온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안내문이다. <내가 바로 국민배우 시즌8> 시민연극배우 교육생 모집 ―연극 관람을 너무 좋아하나요? ―한 번쯤 배우가 되기를 꿈꿨나요? ―연기,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나요? ―언젠가 무대에 서는 꿈을 꾸셨나요? ―연극에 관심과 열정이 있는 성인 누구나! 시민. 배우. 연기. 그리고 ‘관심’이라는 말과 ‘누구나’라는 말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선다. 이 너그러운 단어들은 흐릿하고 열린 경계로 당신을 맞이한다. 당신은 당신을 짚어본다. 나의 관심은 무엇인가... 내가 눈 둘 데를 찾는 그것. 거기 마음이 함께 가닿는 그것. 나는 이쪽인가, 저쪽인가? 그리고 당신은 ‘시민연극배우 교육생’이 되기로 한다. 1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두 시간을 바치며, 11월에는 발표회를 겸한 공연을 올린다는 거대한 계획에 발을 담근다. 그것까지를 다 헤아리기에는 당신의 상상력이 부족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구체적인 두려움과 부담감이 엄습하지 않으므로. 안내문에는 신청서 작성을 위한 큐알 코드가 첨부되어 있고, ‘면접 후 개별 통보’라는 문구도 있다. 면접...을 신청한다. 이 모든 과정이 단 몇 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혹은 몇 주. 그 시간 동안 당신의 심장은 빠르게 뛴다. 가슴이 설렌다. 무모하다...고 느끼며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육박하는 열차처럼 열 달이 흘러간다. 극장 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라는 글귀가 비춰지고 있다. 연극의 제목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무대. 글자의 한가운데를 칼로 베듯 지나는 흰 선이 있다. 저 한 줄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게 된다. 문자로만 된 ‘보이지 않는 경계’와 ‘보이지 않는 경계’는 다르다. 그 뜻을 생각하게 만드는 문자와는 다르게, 그 위에 그어진 선명한 저 줄은 그 자체로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선이 되며,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부정하는 의미로까지 나아간다. 나는 이쪽인가, 저쪽인가. 혹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심 그 자체인가. 색색의 조명과 더불어 문자이미지가 주는 맛을 천천히 음미한다. 극은 80분 동안 가열차게 전개된다. 무대에 동시에 등장한 배우들은 한순간도 무대를 벗어나지 않고 극 전체를 지탱한다.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원작을 각색한 연극은 여덟 명의 배심원을 무대에 세우고 단출한 육면체 나무 의자로 배우들의 동선을 바꾸어 가면서 80분 내내 탁구공처럼 대사를 쏟아내게 한다. 살인사건을 심판하는 배심원들은 어린 소년부터 귀부인, 가난한 노파, 소심한 중년남자와 지식인 여성 등 다양한 캐릭터로 자기주장을 펼친다. 문제는 이 심판이 만장일치여야 한다는 것.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여겨지는 사건을 두고, 그러나 오직 한 사람의 배심원이 그 ‘충분한 증명’에 대해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것은 말 그대로 충분한가? 증거라는 것은 말 그대로 믿을 만한 것인가? 혹여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일말의 의혹이라도 남기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근거 있나? 만장일치를 위해 배심원들은 의견을 피력하고 유죄 찬성과 반대를 투표한다. 처음의 7대1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린 소년만이 반대하던 초반의 분위기는 배심원 각자가 살아온 인생을 토로하고 세계관을 피력하면서 분노와 악다구니로 범벅된다. 우리가 본 것은 얼마나 정확한가. 우리가 들은 것은 얼마나 확실한가.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근거 있나. 우리는 이미 누군가를 적대시하고 있고, 이미 피로하며, 이제까지 믿어온 것을 이제 와서 바꿀 여력이 없다. 세상은 뻔하며,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그러하며, 다들 그렇다고 하는 것에 손드는 것이 다수에게 좋다. 나에게도 손쉽다. 칼부림으로까지 치달은 무대는 소년 배심원의 차분한 논리에 말미암아 차근차근 정리된다. 배심원들은 각자 고집하던 주장을 꺾을 수밖에 없는 어떤 지점을 맞닥뜨리며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경계를 넘는다. 7대1은 1대7로 바뀌고, 만장일치여야 한다는 대전제 하의 인간들은 자신의 치부까지 쏟아낸 허탈과 스스로를 설득한 평화로 새 국면을 맞이한다. 자신을 주장하는 논리와 자신이 정한 경계를 뒤집을 수 있는 인간의 훌륭함이 거기 함께 있다. ‘관심’과 ‘꿈’을 떠올렸던 한순간 “다들 초보예요. 열 달 연습했죠. 네, 완전 초보들이 연습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일주일에 하루 하다가 막바지에는 이틀도 하고 사흘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특히 소년 배심원 저 친구요. 아뇨, 여자예요. 성별을 지정한 건 아니고요. 원작에 소년이라고 나와서 저 친구가 남자아이처럼 차려입은 거예요. 목청이요? 연습할 때 제가 말해요. 에너지를 크게 가지라고. 제일 뒷줄에 앉은 할아버지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대사를 말하라고. 기분 좋죠. 다들 너무 잘해줬어요. 잠시라도 무대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80분을 쉬지 않고 같이해야 해요. 주고받는 리듬도 좋아야 하고요. 칭찬을 많이 해줄 거예요. 저요? 저는 1기예요. 2기부터 연출을 맡았죠. 아뇨, 그전엔 해 본 적 없어요. 저희를 가르치신 극단 연출께서 ‘너희들 힘으로 서야 한다’ 하시면서 연출을 맡기셨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됐죠. 네, 기쁩니다. 우리 배우들 너무 잘했어요.” 벅차게 무대를 바라보는 연출가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도 처음 멈춰서서 안내문을 읽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관심’과 ‘꿈’을 떠올린 한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
[시선나누기-38] 꽃씨 뿌리다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소는 죽음이 닥치모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다. 그래서 두려움을 없애줄라고 은어를 쓴다. 소 잡기 사흘 전부터 천도를 위해 관음기도를 하는데 이거를 ‘관음찜질’이라 부른다. 적어라.” 그 연극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말이 있다. ‘To be or not to be’는 <햄릿>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죽느냐 사느냐’로 간단하게 번역되었지만, 존재에 대한 깊고 근원적인 물음을 지닌 대사라고들 한다. 백정 이야기와 설화를 맛깔나게 버무린 연극 <강목발이>에는 대대로 소 잡는 일을 해온 노인의 낯선 대사가 등장한다. 대물림이 싫어 반항하는 아들과, 발골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젊은이를 모두 품어야 하는 노인의 입장이 서글픔과 비애를 몰고 오는 연극이다. 그런데도 소 잡는 일을 설명하는 저 장면에는 신명나기까지 하는 생동감이 있다. 소 몸 주위에 정화수 뿌리는 건…, 하노인 : 산영감. 지 환 : 산영감. 하노인 : 소가 도살장에 들어올 때 ‘산영감, 어서 오시오’ 아니면 ‘어사님, 어서 오시오’, ‘신령님, 어서 오시오’ 한다. 소가 영물이니까 높이는 기다.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난생처음 듣는 말들이 무대에 퍼진다. 하노인 : 백정이 도살장에 들어오는 건 ‘날감투’, 도살장 문에 휘장을 내리는 건 ‘쪽바가지’. 지 환 : 날감투, 쪽바가지. 하노인 : 소 눈을 가리는 건 ‘귀신 감투’, 소 몸 주위에 정화수 뿌리는 건 ‘꽃씨 뿌린다’. 꽃씨 뿌린다... 저렇게 아름다운 말을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소를 위해 소가 못 알아듣는 말을 약속해서 쓰고,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인지 소의 눈을 가리고, 그리고 정화수를 뿌린단다. 그 정화수를 꽃씨라고 부른단다. 이런 꽃씨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리고 인간이 소에게 말하는 것이다. “산영감님! 그간 잘 지내셨소? 좋으시겠소. 인자 이승에 맺힌 한(恨) 다 풀고 저승만 가시모 되겄네. 내 잘 가시라고 꽃씨 뿌려드릴 테니 마음 준비 단단히 하소. 먼 길 가니까.” 대사를 듣자 하니 가슴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게 있다. 하노인 : 소 잡을 때 쓰는 칼을 ‘신팽이’, ‘족보’, ‘무당꽃’이라고 한다. 지 환 : 신팽이요? 하노인 : 신의 지팽이. 지 환 : 아- 하노인 : 백정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칼은 ‘족보씨’라 했는데, 백정이 죽으면 쓰던 칼을 관에 넣는다. 그거를 ‘족보캐다’라고 했다. 그라고 소 잡을 때 쓰는 도끼를 ‘촛대’, 심줄을 끊을 때 쓰는 칼을 ‘김정승’이라고 했다. 지 환 : 김정승. 하노인 : 소의 발을 묶는 건 ‘기둥 다듬는다’. 소를 죽이는 건 ‘게딱지’. 죽은 소에 붉은 보를 씌우는 건 ‘해골탕’. 그라고 붉은 보를 벗기는 건 ‘널짜다’. 목을 자르는 건 ‘돌맞춘다’. 지 환 : 뭐가 많네요. 하노인 : 그라모 대충하는 줄 알았나? 요즘에는 안 하지만 옛날에는 신성하게 했다. 망자 염하드끼...장례식하고 비슷하다. 내 그 한 푸시면 평생 잊지 않고…, 나는 노인이 말할 때마다 입술을 움직여 따라 해 본다. 칼을 물에 씻는 거는 ‘깃발 날리다’. 모든 수고가 다 끝나모 ‘꺼졌다’. 촟불처럼 생명이 꺼졌다. 영혼은 저승으로 가고 정육만 남았다. 동네 꼭대기에 사는 이유를 묻자 노인은 껄껄 웃는다. “소심한 복수다. 세상 사람들한테 대대로 손가락질받고 안 살았나. 내 최고의 정육을 만들끼다. 세상 최고로 맛있는 고기를 만들어서 이 높은 곳까지 힘들게 사러 오게 만들끼다. 그래서 평생 받은 수모 갚아 줄끼다.” 노인은 웃지만, 신분해방운동이 일어난 뒤에도 골은 깊어 노인은 파혼당했고, 아들은 어미 없이 자라느라 병들고, 산동네는 재개발로 스러져간다. 극의 한 축은 강목발이 이야기인데, 절름발이였으나 차별받는 세상에 의적으로 살다가 죽임당한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인간의 몸에 깃들었다는 설화다. 노인의 아들은 강목발이의 영혼으로 때때로 발작한다. 극의 마지막, 장엄한 의례가 펼쳐진다. 백정의 임무로 강목발이를 처형했던 조상을 대신해 노인은 예를 갖추어 절한다. 늙고 구부정한 몸이 두 팔을 치켜들었다가 바닥에 엎드릴 때 뼛속까지 서린 한이 우렁우렁 흘러나온다. “우리 할배도 백정이어서 어쩔 수 없었던 거 아입니꺼? 그래도 목 벨 때 원한 갖지 말라고 제사 지내고 안 했습니꺼. 내 그 한 푸시면 평생 잊지 않고 모시고 살겠습니더.” 꽃씨 뿌리자아-. 그리고 한판 굿을 연다. 객석에 앉은 내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관음찜질한다- 날감투 열어라- 쪽바가지 내려라- “강목발이님 오시오. 그간 잘 지내셨소? 좋으시겠소. 부잣집 털어 가난한 사람 도와주니 의적이라면서요? 이제 이승에 맺힌 한 다 풀고 저승만 가시믄 되것네. 내 잘~ 가시라고 귀신 감투 씌우고 꽃씨 뿌려드릴 테니 맴 준비 단단히 하소. 먼 길 가니까.” 하노인 : (정화수를 뿌리며) 꽃씨 뿌리자아-. (도깨비들, 붉은 꽃잎을 날린다.) 하노인 : (크게) 신팽이 들어라. 기둥 다듬자아-. 하노인 : (크게) 널짜자아- (도깨비들, 저승길을 만든다.) 하노인 : 깃발 날리자! 도깨비들 : 깃발 날리자! 하노인 : 꺼졌다-. (붉은 꽃잎이 계속 날리며, 암전.) -
[시선나누기-37] 나의 연출가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오래된 지하 카페다. 벽돌로 쌓은 실내 벽면이 세월을 견딘 힘을 보여주듯 버티고 있다. 쳇 베이커의 트럼펫 소리와 걸쭉한 목소리가 흐른다. 나는 연출가를 인터뷰한다. ―인간은 거짓말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쪽으로 진화를 해 왔대요. 연기는 사실은 거짓말이죠. 완벽하게 남을 속이고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게 연기죠.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 않죠. 그런데 사람들은 연기한다고 하면 이상하게도 초보자든 오래된 배우든 무의식적으로 습득이 된 연기 형태를 가지고 와요. ―말하자면… ‘이게 연기야’라고 정형화된 연기요? ―네. 이미지적으로 왜곡된… 전업 배우들한테도 그게 꽤 오래가요. 10년 이상 가기도 해요. 그게 에고인데, 끊임없이 그쪽으로 가려고 하죠, 용수철처럼. ―그럼, 흔히 말하는 자연스러운 연기, 연기하지 않는 연기는 정말 고난이도겠네요? ―그게 굉장히 어렵죠. 단계가 계속 있는 거죠. ―시를 쓸 때도 시같이 쓰지 마, 그럴싸하게 쓰지 마, 그러는데 연기도 마찬가지군요. “설명하지마. 판단은 독자 몫이야” ―희곡을 쓰는 데도 문장을 잘난 척 꾸민다던지… 사실은 이면을 느껴지게 하는 거거든요. 연기에도 설명하지 말라는 얘기를 계속해요. 갖고 있으면 되지 감정을 왜 설명하려고 하나. ―시도 그래요. 설명하지 마. 판단은 독자 몫이야. ―그런데 또 연기는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설명하게 나와요. 또 다른 자아가 계속 나와요. ―자기가 아닌 어떤 역(役)을 한다고 생각하면 더하겠네요. 설명하려고 하는 게. ―그렇죠. 거기에 눌리기도 하고. 그래서 수없이 많은 얘기를 하죠. 그가 속한 극단은 이제 50년이 되었다. 1994년에 배우로 입단해서 활동하다 연출로 전향했다. 그는 1세대, 2세대 선배들의 뒤를 이어 ‘전업 1호’로 들어왔다고 했다. ―배짱이요? 공명심 같은 게 있었어요. 나는 연극반 출신이니까 연극을 직업으로 선택할 거야! 이런 게 좀 있었죠. 보이기 위한. 어릴 때 뭐가 있었겠어요? 하하하. 그가 통쾌하게 웃는다. 이만큼의 세월을 걸어온 사람이 꺼내 보일 수 있는 솔직함과 힘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연극이다!” ―이윤택 선생께 있을 때 독일에 공연하러 간 적이 있는데, <햄릿>의 레어티즈 역을 했어요. 오필리어 장례식에 오필리어 귀신이 나타나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죠. ‘오필리어, 이 무덤가에 오랑캐꽃이 피어났습니다.’ 이런 대사를 하다가, ‘무덤을 쌓아 올려라!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똑같이…!’ 하고 울분을 터뜨리면, 무대에 진짜로 흙을 퍼부어요. 오필리어를 안고 있는데 사방에 흙먼지가 날리고… 연출의 요구가 ‘절대 눈을 감지 말라’였어요. 하하하. 그때 햄릿이 ‘오필리어!’ 외치면서 와요. 그럼 내가 칼을 뽑아서 ‘이 찢어 죽일 놈!’하고 달려들어 찔러야 하는데, 있어야 할 칼이 없는 거야. 무대 밑에 대고 ‘칼, 칼!’ 하는데 스탭들이 못 들어. 그 순간 무덤지기가 들고 있는 삽이 눈에 띄었어요. 그 삽을 뺏어서 찔렀죠. 뒤늦게 스텝들이 칼을 찾은 거야. 누워 있는 오필리어가 ‘칼 찾았어, 칼 찾았어!’ 그래서 어떡해. 한 손은 삽으로 막으면서, 칼을 받아서 찔러 죽였죠. 끝나고 나서 연출한테 엄청 혼나겠다 싶었는데, 이윤택 선생이 너무 좋아하시는 거야. ‘이게 바로 연극이다! 살아있는!’ 하하하. 뒷날 베를린 신문에 기사가 났어요. ‘너무나 훌륭한 무대였다. 칼과 총과 농기구를 이용한!’. 그가 신명이 나서 이야기를 한다. 내가 아는 그는 극단의 연출가인데, 그는 이미 오랜 경력을 쌓은 배우였다. ―무대공포증에 걸렸어요. 알고 봤더니 내 안에 문제가 있었어요. 욕심이 많았던 거지. 배우를 하고 싶은 욕망은 있고, 극단은 운영과 연출을 원하고… 결국 일이 너무 많으니까 배우를 놔야겠다 싶었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시야가 넓어졌어요. 배우를 하고 싶은 욕심은 항상 있죠. 근데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연습하는 우리 배우들을 보면서, 내가 연기를 하면 지금 쟤들만큼 할 수 있을까? “그는 ‘평생 연극쟁이’다” 그는 서른여섯에 ‘극단의 원리’라는 것을 정했다. ‘극단현장의 단원들은 무대 위에서의 깨달음을 일상으로 가져가고, 일상에서의 경험을 무대 위로 가져가는 순환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해 나가고, 그걸 바탕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계획서를 쓸 때마다 그걸 쓴다. 그는 사람 사이는 소리를 나눠야 한다고 했다. 무대에서도, 무대 위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 일상에서도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제일 행복할 때는… 연습할 때요. OO이가 정확하게 타이밍을 잡고 들어올 때 나도 웃음이 나거든. 내 역할이란 건 싫어도 끊임없이 얘기하는 거예요. ‘너 안다고 하는데 모르는 것 같아.’ 같은 얘기를 십 년 이상 반복해요. 하하하하. 이 행복한 연출가가 나의 삶에 지금처럼 깊게 연루될 줄 몰랐던 그때, 벌써 5년이 지난 어느 겨울날, 나는 긴 시간을 들여 그의 배우 인생, 연출 인생을 묻고 듣는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묵직하고 단단하다. 스스로 말하듯이 그는 ‘평생 연극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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