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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강우규 의사 의거 107주년 기념식 개최[한의신문]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가 2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강의실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107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로,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신임 조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 시도를 했다. 우리나라 침략자를 처단하여 진정한 자유를 찾고자 했던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단순한 일제 침략에 대한 응징을 넘어, 불의와 침략 압박에 맞서 세계 평화를 지키려 했던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쾌거였다. 비록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을사늑약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대한민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는 계기가 됐다. 강우규 의사는 순국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바 있다. 이날 기념식은 강우규 의사를 비롯한 조국 광복을 위해 희생, 헌신한 독립 의사, 열사들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고 희생당한 서대문 형무소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과 평화 통일의 길을 걷고자 마련됐다. 장원호 회장의 내·외빈소개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에서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의 기념사 대독을 통해 “강우규 의사님을 비롯한 선열들의 헌신으로 우리 민족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으며,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며 “오늘의 이 자리를 통해 강우규 의사님의 의지를 받들어 더욱 강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의 기념사를 대독한 정유옹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은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로서 사람의 병을 치료했고, 또한 교육자로서 학교를 세워 민족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을 가르치고 길러내셨다”며 “아울러 독립운동가로서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다”고 말했다. 또한 정 수석부회장은 “대한한의사협회 3만 한의사들은 강우규 의사를 한의계의 자랑스러운 선배이자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시대의 어른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의계도 많은 역할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정경조 평안남도지사가 각각 영상기념사와 기념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의 업적을 기리고, 보훈 문화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 기여할 것을 다짐했다. 이어진 기념식에서는 △해방 후 강우규 의사 추모사업(황영인 덕천군민회장) △강우규 의사 독립정신 탐색(이종후 시민운동가) △독일 시민들의 독립운동 투쟁사(이광 재독화가) 등을 주제로 한 시민 발언대 시간을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 및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한혜선‧이일규‧박은정 국악인이 ‘발탈 팔도유람-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를 만다다’를 주제로 강우규 의사의 의거와 일대기를 신명나는 국악과 함께한 발탈공연을 통해 보여줘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강우규 의사의 정신과 사상, 온 국민에게 전달되길”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 <편집자주>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의 일생을 다룬 ‘한의사이자 교육자 왈우 강우규 평전’이 출간됐다. 본란에서는 책을 저술한 박환 작가에게 강우규 의사의 의열투쟁의 의의, 한의사이자 교육자로서의 행보 등에 대해 들어봤다. 박환 작가는 역사학자로서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러시아지역 한국사 연구를 지원하는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독립운동사 전공으로 그 중에서 특히 만주·러시아 지역의 한인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일조각, 1991)’, ‘동방 김세환평전(선인, 2025)’ 등 독립운동사 관련 50여 권이 있다. 특히 잊혀진 항일영웅들의 발굴에 관심을 갖고 있어 이회영, 최재형, 최봉준, 문창범, 임면수, 김세환, 정이형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또한 대종교 2대 교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김교헌의 동생인 독립운동과 더불어 한의사로도 활동한 김교준에 대해서도 연구한 적이 있다. Q. ‘한의사이자 교육자 왈우 강우규 평전’을 저술하게 된 계기는? 강우규(1855∼1920)는 1919년 9월2일 오후 5시 일제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기 위해 폭탄을 투척했다. 강우규 의사가 던진 폭탄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신임총독 사이토를 환영나온 일제 관헌 및 그 추종자들 37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그의 의거는 일차적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신임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했다는 측면에서 제2의 안중근 의거로서 한국과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특히 이 사건이 젊은이도 아닌 65세의 노인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큰 주목을 받았으며, 더욱이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위축돼 가던 한의사에 의해 이뤄진 점은 더욱 주목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로서 동양평화론을 주장한 사상가이자, 참 교육자였음에도 이점 또한 그동안 간과되고 있었다. 특히 학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욱 안타까웠고,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강우규 의사 탄신 170주년이라 강우규 의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 책자를 저술하게 됐다. Q. 특히 강조하고자 한 내용이 있다면? 강우규 의사는 그동안 의열투쟁을 전개한 행동가로만 주로 알려져 있었다. 강우규 의사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계승해 조선의 독립을 넘어 동양평화, 세계평화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주장한 평화사상가였음을 보다 널리 알리고 싶었다. 당시 국제정세와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분명한 시각을 갖고 있던 보편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지성인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강우규 의사는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누구보다도 미래세대인 학생들에게 근대적인 민족의식을 심어주고자 한 참 교육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강우규 의사의 사상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측면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다. 이와 함께 그동안 강우규 의사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리의 전통의학, 민족의학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에 분개했던 한의사였다는 점이 등한시 되었음에 주목해 책 제목을 ‘한의사이자 교육자 왈우 강우규평전’이라고 지어 특별히 한의사인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내 주변의 학자들 조차도 강우규 의사가 한의사였다는 점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Q. 강우규 의사의 의열투쟁에 대한 의의는?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열투쟁으로써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에게 큰 경고가 되었음은 물론 국내외의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강우규 의사는 의거는 물론 재판과정과, 수형생활, 처형과정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한인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고 할 수 있다.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이처럼 민족운동선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의거 후 국내외 민족운동의 큰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1920년 2월16일 오후 9시30분경 경성부 남대문역 대합실에서 한 청년이 백여 명의 민중들에게 “강우규는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고 조선민족을 위해 희생되었음을 알아야 하며, 따라서 우리 청년은 더 한층 분기해 조선독립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취지의 연설을 끝낸 다음 “대한독립만세”를 10회 정도 연거푸 외쳤던 일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1924년 5월19일 만주의 참의부 독립군은 압록강을 순시하던 사이토 총독을 습격하기도 했다. Q. 한의사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강우규는? 강우규 의사는 한의업에 종사했다. 그의 손녀 강영재의 회고에 따르면 “30여 세에 함경남도 홍원으로 이사하기 전 그는 고향에서 한의의술을 배워서 어느 정도 시술을 했던 것으로 짐작되니 전하는 말에 의하면 홍원으로 이사한 후 그는 동리사람들의 간단한 병은 손수 고쳐주며 의원 노릇을 하였다 한다”, “좌우간 그는 한미한 농가의 막내둥이로 태어나서 10여 세에 한학을 배우고 이후 한의의술을 익혀 한의원으로 주업을 삼았으며”라고 증언하고 있다. 강우규 의사는 어려서 한의 공부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고향 평안도를 넘어 함경도 그리고 만주, 러시아 지역에서도 한의사로서 동포들의 질병치료에 만전을 기하였다. 특히 치료차 왕진하는 과정에서 동포들의 어려움을 직접 목격하고, 조국의 독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강우규 의사는 한약방을 독립운동 거점으로 활용했으며, 한의업을 통해 번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는 한편 폭탄을 구입해 사이토 총독을 처단하고자 했다. 아울러 자신이 치료한 최자남의 부인과의 연계를 통해 자신의 의열투쟁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고자 했다. 특히 강우규 의사는 조국의 독립과 해방된 조국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사형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잊지 않았다. 의술로 모은 돈을 모아 함경도와 만주, 러시아 등지에 여러 학교를 세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참다운 실천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세운 대표적 학교로는 함경남도 홍원군 영명학교, 북만주 요하현(현 헤이룽장성 라오허현)의 광동학교, 러시아 이만(현 달네레첸스크)의 협성학교, 밋가루시카학교(하바롭스크 소재로 추정)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손녀 강영재씨가 1969년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새로 세운 학교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행상의료업에 나섰다”고 회고할 정도로 학생 교육에 강한 집념을 보였던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Q. 이번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는지? 강우규 의사는 노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자, 동양평화를 주장한 사상가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근대적인 민족교육을 시키고자 한 참 교육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강우규 의사의 정신과 사상이 저서를 통해 넓게는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가까이는 한의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 특히 한의학도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한다. 강우규 의사의 경우 한의사로서 개인들에게 인술을 베푸는 것을 넘어 민족을 치유하고, 나아가 동양과 세계의 미래와 인류보편적 가치를 추군한 분이므로 우리 한의계의 좌표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Q. 평소 한의약에 대한 생각은? 한의약은 우리의 생활 속에, 또한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온 영원한 친구이자 동반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 동포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준 것이 바로 한의약이다. 그 당시 한약방은 독립운동의 연락거점으로, 강우규 의사와 같은 한의사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독립운동의 원천과 동력으로서 또는 독립운동가로서도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잊혀진 한의사들의 독립운동도 정당하게 평가받고, 새롭게 부활되기를 기대하며, 나 역시 노력할 것이다. -
“강우규 의사의 숭고한 뜻 기리고 밝은 미래 만들어 갈 것”[한의신문]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가 29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순국 105주기 추모식’을 개최,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다시 한번 상기하고 그 의미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추모식이 진행되기 앞서 장원호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현충원에 안장된 강우규 의사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면서 그의 애국·애민 정신을 기리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장원호 회장의 내·외빈 소개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추모식에서 지수윤 준비위원장(서울 남대문JCI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국을 위해 투쟁했던 그날의 헌신을 기억하며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그분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후손으로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또한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의 추모사를 대독한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정부는 강우규 의사님을 비롯한 선열들을 예우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오늘의 이 자리가 강우규 의사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더욱 강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뜻깊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께서는 한의사로서 일제강점기에 억압과 고통에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헌신하셨다”며 “끝까지 당당하고 의연한 자세로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위한 뜻을 굽히지 않으셨으며,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우셨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또 “강우규 의사와 수많은 선열들이 이루고자 했던 자주 독립의 꿈이 현실이 된 지 80년, 우리에게는 그 정신을 더 깊이 가슴에 새기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줘야 할 책무가 있다”며 “대한한의사협회 3만 한의사도 선배 한의사이신 강우규 의사께서 몸소 보여주신 애국·애족의 숭고한 정신과 백절불굴의 의지를 본받아 국민건강을 지키고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더욱 헌신해 나갈 것임을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종찬 광복회장(이규중 광복회 부회장 대독), 정경조 이북5도위원장(평안남도 도지사) 등이 추모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평화통일을 기원했다. 이어진 추모식에서는 고용석 기념사업회 이사가 강우규 의사 순국 105주기 추모시 ‘희망의 빛이여, 찬란하라’를 낭송했으며, k.fly의 추모공연과 추모자 일동이 강우규 의사의 영정에 헌화·분향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편 강우규 의사는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 한의사로 활동했으며, 의술이 뛰어나 많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고, 경술국치 후 길림성 요하현에 광동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통한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특히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을 시도했으며, 비록 실패했지만 을사늑약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대한인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는 무장 의열투쟁의 계기가 됐다. -
자보 심사 사례, 보수교육규정 개정 등 주요 현안 논의[한의신문]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윤성찬·이하 한의협)는 지난달 29, 30일 한의사회관 대강당에서 제30·31회 임시이사회를 개최해 ‘자동차보험 무균·멸균 약침액 가이드라인’ 마련 경과를 비롯 불합리한 자동차보험 심사 사례 및 대응 계획, 교통사고 환자 8주 초과 치료 제한과 관련된 후속조치 진행 상황 점검, 보수교육규정 개정안 작성, 회원투표, 재택의료 사업 등 한의계의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이날 이사회에서 윤성찬 회장은 “오늘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왈우 강우규 의사 순국 105주년 추모식에 다녀오면서 그 분의 나라를 위한 헌신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됐다”면서 “오늘 이사회도 선배 한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면서 회의에 집중해 좋은 결과를 이뤄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유옹 수석부회장은 “한의사들의 X-ray 사용을 위한 의료법개정법률안이 많은 국회의원들의 동참아래 발의될 수 있도록 각 지역에서 큰 도움을 주신 시도지부장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힌 뒤 “오늘 회의에서 논쟁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안 대의원총회 부의장은 “협회 회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사회 방청을 위해 참석하신 여러 회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면서 “현재 개원가가 많이 어려운 실정인데, 내년에는 회원들이 보다 더 웃을 수 있는 한의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상해등급 12~14급 교통사고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통상의 치료기간(8주)을 초과하는 장기 치료를 희망하는 경우 보험사에 치료 필요성과 관련한 추가 서류를 제출토록 하는 등 지난 6월 입법 예고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과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규칙’의 철회를 위한 그간의 과정을 점검한데 이어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한의협은 특히 지난 9월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자동차보험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여해 교통사고 환자의 8주 초과 치료 제한과 관련한 의학적 근거의 불분명 등 개정안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와 더불어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의 잇따른 면담을 통해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철회를 위한 협력을 요청해왔다. 또한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교통사고 환자가 8주 이후 추가 치료를 받으려면 보험사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구조는 매우 잘못됐다는 점이 지적됐으며,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 장관은 8주 초과 기준과 보험사 결정 등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개정안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 이를 재검토해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한의협은 국토교통부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일부개정안의 전면 재검토와 관련해 ‘자동차손배법 하위법령 개정안 관련 협의체’를 운영할 것이라는 내용을 확인하는 등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규칙’의 일부개정안 입법 철회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회의에서는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불합리한 자동차보험 심사 사례 및 대처 방안도 보고됐다. 교통사고환자 진료수가의 인정범위는 ‘자동차보험진료수가에 관한 기준’에서 정하고 있음에 따라, 심평원은 의료기관의 청구 내역 심사 시 이에 적합한지를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심평원은 자동차보험에서 소아 환자에게 투여된 첩약의 경우, 첩당 정액수가를 적용하지 않고 공개심의사례에 근거해 심사하는 것을 비롯 한의사의 지도·감독 하에 간호조무사가 핫팩을 이용한 한방물리요법 시행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간호조무사의 온냉경락요법 실시 사례가 확인되는 경우 이를 부적정 청구로 간주해 환수 조치하고 있는 등 불합리한 심사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한의협은 심평원에 소아 환자에게 투여된 첩약에 대해서도 실제로 투여한 첩수를 기준으로 심사해 줄 것과 함께 한의사의 지도·감독아래 간호조무사의 진료보조행위로 이뤄진 온냉경락요법에 대한 심사도 보건복지부 고시 및 유권해석을 준용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불합리한 심사 사례의 개선에 지속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한 ‘자동차보험 무균·멸균 약침액 가이드라인’ 마련에 따른 경과도 보고됐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적용기준에 따르면 약침술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객관적으로 입증된 무균·멸균 약침액은 과학 또는 의학계에서 인정하는 무균·멸균 과정을 거친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며, 특정 기술의 채택이나 인증여부에 한정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7월 진료 분부터 보건복지부가 인증한 원외탕전실의 조제 약침액을 사용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약침술의 진료수가가 인정돼 왔다. 이와 관련 한의협은 약침술의 진료수가 인정에 따른 불합리성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했고, 이에 국토교통부는 자동차보험 무균·멸균 약침액 관련 사회적 협의체를 운영해 지난 9월 ‘자동차보험 무균·멸균 약침액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이 같은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 이를 충족하는 약침조제 원외탕전실에서 조제된 약침액도 자동차보험 약침술에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한의협은 향후 4년간의 운영기간 동안 가이드라인이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데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회의에서는 또 10월31일부터 11월1일까지 경주시에서 개최된 ‘APEC 2025 KOREA’에서 운영했던 ‘K-한의 헬스케어관’의 기대 효과도 보고됐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주최하고, 경북한의사회·대한스포츠한의학회·경주시한의사회가 주관하고, 옥천당·한풍제약·아이웰니스·E&S헬스케어(필립스초음파)·KM몰·AJ탕전원·자황원외탕전·동방메디컬·오우재건축사사무소 등의 협찬아래 운영된 ‘K-한의 헬스케어관’에서는 10월27일부터 11월1일까지 6일 동안 내외국인 관계자들의 건강을 돌봤다.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라는 슬로건 아래 운영된 ‘K-한의 헬스케어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한의사 3명과 통역 및 안내 지원자 2명이 배치돼 한의약 검진-치료-홍보로 이어지는 연계 시스템을 통해 K-Medi의 저력을 미국·프랑스·대만·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에게 널리 알렸다. 실제 ‘K-한의 헬스케어관’을 찾은 환자 수 집계에 따르면 총 이용인원 수는 523명, 총 진료 건수는 472건(일 평균 78건·초진 82.7%, 재진 17.3%)에 이르며, 진료 만족도 또한 매우 만족 91%, 만족 8% 등으로 높게 나타났다. 회의에서는 또 한의약 폄훼와 관련한 민원, 고소·고발 및 불법의료 행위 근절에 나서고 있는 클린-K특별위원회의 활동 경과보고와 더불어 금년도 한의의료기관의 온라인 개인정보보호 자율점검 시행 결과(자율점검 참여 기관 수:1만1610개소)도 보고됐다. 계속된 회의에서는 회원들의 보수교육 수강 기회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보건복지부의 시정 명령에 의거해 ‘보수교육규정’ 제8조의2(보수교육 실시방법 등) “②제1항의 ‘e-러닝 교육’은 회비 완납회원만 수강할 수 있다”는 조문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또한 정길호 (사)소비자와함께 대표(한국소비자단체연합 부회장·글로벌 관광객 1억 명 시대 범국민추진위원회 대표)를 홍보 자문 위원으로 위촉하는 것도 승인했다. 정 대표는 소비자 권익 증진 활동과 공정한 시장 환경 조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 제안 및 홍보 등의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있어 한의협의 주요 사업 홍보 및 소비자 소통 전략 수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이날 이사회에서는 또 한의방문진료, 재택의료센터, 한의장애인주치의, 한의노인주치의, 한의사의 X-ray 사용을 위한 의료법개정법률안, 한의대정원 감축·한의사전문의제도 개선·첩약건강보험 시범사업 등 회원투표, 보훈 대상자 한의과 진료 확대,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 운영 현황, 지역의사 양성법 등 다양한 한의계 현안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
[신간] 한의사이자 교육자 왈우 강우규 평전[한의신문]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의 일생을 다룬 ‘한의사이자 교육자 왈우 강우규 평전’이 출간됐다. 이 책을 저술한 박환 작가는 “우리에게 ‘윤봉길’, ‘이봉창’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강우규’라는 이름은 어떠한가? 비인기 연예인을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마주쳤을 때에 느끼는 애매함처럼 대부분은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낯설음을 느낀다”면서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아이러니한 일이며, 강우규는 어찌 보면 위의 인물들을 우리가 지금까지도 익숙하게, 또는 영웅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작가는 이어 “1919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향한 강우규의 의거는 이러한 의거가 탄생되는데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으며, 강우규 의거는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열투쟁으로서, 이를 시작으로 이들의 의거를 비롯한 많은 의거로 이어지게 됐다”며 “강우규가 던진 폭탄은 안타깝게도 목표했던 사이토 마코토에게는 닿지 못했지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여 신임 총독을 환영 나온 일제 관헌과 그 추종자들 37명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 작가는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단순히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주목되는 것만은 아니며 이는 당시 그의 나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며 “그가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한 당시 나이는 65세로 우리가 잘 아는 안중근·윤봉길·이봉창의 의거 나이가 각각 20·24·32세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노인에 의해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흥미롭고 대단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박 작가는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이와 같이 우리 민족운동 선상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일반에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학계에서는 비교적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며 “하지만 여전히 한의사 강우규라는 인물과 그의 항일운동의 전체적인 모습이 제대로 조명되고 밝혀졌다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작가는 “이 책은 강우규라는 인물과 그의 의거를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밝혀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드러낸다”며 “그의 의거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면서 학계, 나아가 일반에도 그의 이름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함이 이 책을 쓰는 작은 목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작가는 “올해는 광복 80주년, 강우규 탄생 170주년이 되는 해 임에도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잊혀진 전설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며 “이에 그동안 절판됐던 ‘강우규의사평전(선인, 2010)’을 수정·보완해 보았으며, 이 책의 간행을 통해 강우규 의사의 진면모가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깊은 감동을 주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목차 책을 내며제1장 강우규의 민족의식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이동휘를 만나기 전이동휘를 만난 이후제2장 강우규, 민족운동에 뛰어들다만주·러시아로의 이주와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노인동맹단에 참여제3장 신임 총독 사이토, 조선에 오다사이토의 서울역 도착과 환영 준비조선인 기자의 시선으로 본 그날의 모습제4장 65세의 노인,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지다강우규의 폭탄 투척과 『매일신보』의 보도 논조여러 시점에서 본 의거의 순간제5장 강우규 의거의 탄생 비화의거까지의 전 과정 살펴보기폭탄은 어떻게 구입하였는가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였나의거에 참여한 인물들은 누구인가의거의 ‘숨은’ 배후는 누구인가 - 이동휘, 김규면, 정재관제6장 의거후의 이야기의거 직후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과정재판광경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제7장 강우규의 상고취지서 분석의열투쟁의 배경최자남의 무관성 주장공의(公議)에 따른 심판요구1, 2심 법원의 처사에 대한 비판동양평화론을 주장제8장 강우규를 의거로 이끈 힘청년교육기독교에 바탕한 독립사상동양평화론으로 평화론을 주창제9장 강우규의사가 남기고 간 것들강우규의 순국 이후민족운동사적 의의부록 강우규의사의 손녀 강영재 증언 ※ 이 코너는 한의사 회원이 집필한 책을 간략히 소개하여, 회원들의 다양한 활동과 한의학의 저변 확대를 함께 나누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서평이나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으며, 특정 도서에 대한 광고나 추천의 의미는 아님을 안내드립니다. -
[자막뉴스] 한의사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 의거 106주년 기념식(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대강의실에서 ‘광복 80주년 겸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제106주년 기념식’을 개최했습니다. -
'광복 80주년 겸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제106주년 기념식' 개최 (2일) -
강우규 의사 의거 106주년…기념 강연 및 공연 등 선보여[한의신문]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가 2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대강의실에서 ‘광복 80주년 겸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제106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로,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신임 조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 시도를 했다. 비록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을사늑약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대한민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강 의사는 순국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바 있다. 장원호 회장의 내‧외빈소개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에서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의 기념사 대독을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와 순국은 수많은 애국 청년들을 독립운동에 투신토록 함으로써 1945년 이룩한 광복의 소중한 씨앗이 됐다”며 “살신성인의 길을 걸으신 강우규 의사를 기억하고 남겨주신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책무이며, 국가보훈부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되새기고 강우규 의사를 비롯한 선열들을 예우하기 위해 만잔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기념사에서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로서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넘어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분”이라며 “오늘날 3만 한의사들은 선배이신 강우규 의사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희생 정신과 민족애를 마음깊이 새기며 환자의 몸을 돌보는 것을 넘어 국민의 삶과 건강, 나아가 나라의 미래를 지켜내야 한다는 소명을 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어 “존경하는 선열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룩한 광복 80년의 역사가 헛되지 않도록 대한한의사협회는 앞으로도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그리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늘 앞장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종찬 광복회장(이규중 광복회 부회장 대독), 정경조 이북5도위원장 등이 기념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와 숭고한 정신을 되새겼다. 특히 이날 기념식에서는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이사장의 ‘강우규 의사의 민족운동’을 주제로 한 강연이 진행했다. 박환 이사장은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오늘날 서울역인 당시 남대문역에서 사이토 총독을 저격한 우리나라의 의열투쟁의 대표적인 화신”이라며 “강우규 의사의 의열투쟁은 이후 모든 항일 독립운동의 큰 배경과 저력이 됐다”고 밝혔다. 또한 박 이사장은 “특히 당시 한의원은 독립운동의 연락거점이자 자금조달 등을 맡으며 한의사들이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며 “향후 한의사들과 강우규 의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박 이사장은 “강우규 의사는 의열투쟁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한의사로서도 일반 개인뿐 아니라 민족의 아픔을 보듬으셨던 분”이라며 “누구보다도 동양의 평화를 강조하고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신 위대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기념식에서는 고용석 기념사업회 이사가 ‘광복 80주년, 푸른 노인을 만나다’를 낭송했으며, 황지영 국악인이 ‘민들레’, ‘배뛰워라’, ‘아름다운 나라’ 등의 신명나는 국악을 독창하며 강우규 의사의 의거 106주년을 기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
진주시한의사회, 초·중학교 66개교에 한의약 도서 전달[한의신문] 진주시한의사회(회장 이창훈·이하 진주시분회)는 12일 진주교육지원청 3층 교육장실에서 ‘진주교육지원청 도서 전달식’을 갖고, 540만원 상당의 한의약 도서를 기증했다. 이번 기증은 진주시분회와 진주교육지원청이 함께 진행하는 ‘교육복지안전망 지역연계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내년 새학기에 관내 초·중학교 66개교에 진주시분회가 선정한 한의약 홍보 도서가 전달된다. 이번 기증에 따라 초등학교 43개교에 △한의사는 어때?△맥을 짚어 볼까? △푸른노인-강우규 △키성장의 일급비밀 △술술 동의보감을, 중학교 23개교엔 △우리 동네 한의사 △성적도 치료가 되나요? △이것이 체질이다 △MT한의원 △사람잡는 약초부가 각각 전달된다. 이창훈 회장은 “이번에 기증되는 도서들은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한의약에 대해 알기 쉽고, 작품성·창의성 면에서도 훌륭한 작품들로 선정했다”면서 “한의약이 국민의료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초·중학생들은 아직 이를 낯설게 느끼고 있고, 잘못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만큼 이번 기증 도서를 통해 학생들이 한의약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고 접근성이 제고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한편 진주시분회는 지난 2012년 교육지원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관내 취약계층 초등학생 70명, 중학생 70명을 대상으로 한약을 지원해오고 있으며, 더불어 경남서부보훈지청과의 협약을 통해 국가 유공자 대상 한방지원사업을 펼쳐오고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 나서고 있다. -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 추모[한의신문]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이하 기념사업회)가 29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순국 104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독립운동 시 만주, 노령 등지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블라드보스토크로 이동해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 다양한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특히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신임 조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투척해 암살을 시도했으며, 이는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의 의거는 한일병합이 우리 민족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던 일제의 흉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했으며, 무장 의열투쟁의 계기가 됐다. 이밖에 강우규 의사는 길림성요하현에 광동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통한 후학 양성에도 힘쓴 바 있다. 이날 추모식에서 장원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대한인의 독립 의지의 불을 다시 지피시고, 젊은이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갖게 해주신 왈우 강우규 의사의 순국 104주기를 맞이하는 해”라며 “우리 기념사업회가 꾸준히 강우규 의사의 업적을 기릴 수 있도록 항상 헌신하고 봉사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의 추모사를 대독한 서만선 부회장은 “강우규 의사는 한의사로서 일제강점기에 억압과 고통에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헌신하셨다”며 “대한한의사협회와 3만 한의사들 또한 그분이 몸소 보여주신 애국 정신을 이어받고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국민 건강증진은 물론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더욱 헌신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추모식에서는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정경조 평안남도 도지사 등이 추모사를 통해 강우규 의사의 업적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조국 통일을 염원했다. 이어진 추모식에서는 고용석 기념사업회 이사가 강우규 의사 순국 104주기 추모시 ‘나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를 낭송했으며, k.fly 추모공연과 추모자 일동이 강우규 의사의 영정에 헌화‧분향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편 이날 추모식 전에는 장원호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강우규 의사의 묘소를 찾아 참배를 하면서 그의 애민‧애국정신을 기리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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