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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9일 (금)

박순환 역사편찬위원장 “한의신문은 역사의 우물”

박순환 역사편찬위원장 “한의신문은 역사의 우물”

“역사의 기록자···기록이 없었다면 협회사도, 회관건립사도 부재”
‘한의신문’의 사료(史料)에서 ‘기록의 부재’와 ‘기록의 파편화’ 해결
‘정확한 기록’이라는 본질은 불변···한의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길”

[한의신문]대한한의사협회 가양동 시대의 막을 연 ‘한의사회관’. 회관의 개관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발자취를 꼼꼼하게 기록한 <대한한의사협회 회관건립사(2006년 刊)>와 113년이라는 협회의 어제와 오늘을 집대성한 <1898~2011 대한한의사협회사(2012년 刊)>. 이 두 권의 위대한 기록물 뒤에는 늘 박순환 위원장이 있었다.

 

박순환 회장님1.jpg

 

박순환 원장(성남시 여래한의원/사진)은 대한한의사협회 회관건립사 발간 위원장과 역사편찬위원장을 각각 맡아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가 방대한 자료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역사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사료(史料)의 탐색이 주효했고, 가치 있는 사료의 상당 부분은 <한의신문>에서 길러 냈다고 했다. 그에게 한의신문은 곧 역사의 우물이었다. 그로부터 한의신문과 함께했던 기록의 여정을 들어봤다.

 

<회관건립사>와 <대한한의사협회사(이하 협회사)>가 발간된 지도 벌써 각각 20년과 14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현재의 관점으로 그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던 소회를 물었다.

“지나고 보니 참 감개무량하다. 신축 한의사회관 건립은 전 회원의 염원이 깃든 역사적 대사(大事)였고, 협회사(協會史)를 새롭게 정리하는 과업은 한의학의 뿌리를 제대로 찾기 위한 험난한 탐험 같았다. 방대한 역사의 기록을 묶어 책으로 펴내는 일은 후대를 위한 사명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다시 생각해도 두 권의 책을 발간할 당시의 벅찬 감동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박순환님.jpg

<대한한의사협회사 역사편찬위원회 회의>

 

그는 또 <회관건립사> 발간위원들과 <협회사> 편찬위원들의 아낌없는 협력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회관건립사 발간 소위원회의 이수완·이종안·위성현·정기영·하재규 위원과 협회사 역사편찬위원회 김남일·박왕용 부위원장을 비롯한 안상우·김선제·이종안·위성현·김은기·강연석·정기영·하재규 위원 등 많은 분들의 열정 덕분에 내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기록의 부재와 기록의 파편화

 

두 권의 책을 발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떤 자료는 너무 방대했고, 또 어떤 자료는 매우 부재했다. 이에 더해 각각의 자료들 대부분이 파편화돼 있어 어디서, 무엇부터 정리할지가 무척 막막했다.

 

“책을 펴낸 분들은 알 것이다. 에세이를 펴내고자 하면 대주제와 소주제를 분리해 살을 붙여 나가면 되지만, 역사책은 그럴 수 없다. 분명한 사실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큰 어려움은 ‘기록의 부재’와 ‘기록의 파편화’였다.”

 

기록물이 아닌 말로 풀어낸 증언들은 편향과 왜곡되기 쉬웠고, 개인들이 소장한 자료는 마치 숨바꼭질하듯 쉽게 찾아 낼 수가 없었다. <회관건립사>는 치열했던 건립 회의 과정, 기금 모금 현황, 시공사의 역할 등 세세한 타임라인의 정확한 고증이 필요했고, <협회사>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고증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가 뒷받침돼야만 했다.

 

“그때 매우 큰 도움을 준 게 ‘한의신문’이었다. 한의신문의 기록은 그 자체가 한의계 역사의 타임머신이자 깊은 우물과도 같았다. 그곳서 물을 길러오듯 필요한 자료를 건져 올리면 됐다. 기억의 한계에 부딪히거나 자료의 공백으로 골머리를 앓을 때마다 한의신문의 옛 기록들은 명쾌한 내비게이션이 돼 주었다.”

 

박순환 회장님.jpg

<대한한의사협회사와 회관건립사>

 

그는 <회관건립사>를 집필하면서 한의신문 기사 중 회관 건립 기금 모금에 동참한 회원들의 명단과 그에 얽힌 미담 인터뷰들을 십분 활용했고, <협회사>를 만들 때는 <대한한의사협회 사십년사(1989년 刊·편찬위원장 한대희)>의 기록과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던 한약분쟁사를 비롯해 한의계 질곡의 세월을 낱낱이 기록한 한의신문의 옛 기록들을 활용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객관적 사료는 사명을 완수하게 한 고마운 대상"

 

“한의신문의 기록은 가장 신뢰할 만한 1차 사료였다. 1994년 4월27일 회관이전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한 때부터 시작해 성금모금, 부지매입, 시공과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고,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른 한의사들의 투쟁 역사가 실시간으로 기록돼 있었던 덕분에 두 권의 책이 객관성과 신뢰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회관건립사 발간위원과 협회사 역사편찬위원들의 헌신, 그리고 한의신문을 비롯한 각종 객관적 사료는 그의 사명을 완수케 한 고마운 대상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못내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협회사>를 힘들게 발간해 놓고도 공개적인 출판기념회조차 갖지 못했던 점이다.

 

“<협회사>가 완성됐던 2012년 당시 회원들의 관심사는 온통 천연물신약 백지화에 쏠려 있었다. 투쟁은 투쟁대로 하되 이 건은 별개로 봐주길 기대했다. 한의학이 외세(外勢)에 밀려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발전을 거듭한 113년의 협회 역사를 널리 알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출판기념회는 당시 중앙비대위와 시각이 달라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일지만 그 역시 우리 한의계 역사의 일부이다.”

 

이학호회장묘비 (2014년9월).JPG

<대한의사총합소 제2대 이학호 회장 묘소>

 

그는 <협회사>를 저술할 때 특히 기억나는 점으로 1898년 10월 결성된 대한의사총합소(大韓醫士總合所)가 대한한의사협회(大韓韓醫師協會)의 모체란 사실을 확인하고, 초대회장 최규헌(崔奎憲/의생면허 97번)과 제2대 회장 이학호(李鶴浩/의생면허 113번)의 공로가 대단했다는 것과 그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 것을 꼽았다.

 

“두 분의 업적은 찬연(燦然)한데 사후(死後) 행적이 묘연(杳然)했다. 최 회장은 각종 기록을 검토하고 문중에게도 문의했지마 유감스럽게도 마지막 연고지를 찾을 수 없었다. 이 회장은 수소문 끝에 증조부가 한국천주교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李承薰/베드로;1756~1801)이란 사실을 <평창이씨 익평공파> 문중에서 알아냈고 어렵사리 증손자인 이대균(李大均/경기산본 거주)씨를 만났다. 그를 통해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 177번지 <평창이씨 익평공파> 선산(先山)과 이학호 회장의 산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는 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역사를 증명"

 

그는 요즘 들어 <회관건립사>와 <협회사>를 가끔씩 펼쳐 보곤 한단다. “그럴 때마다 한의사협회와 한의학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 선후배 동료들이 참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두 권의 기록물에서 한의계 투쟁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 기록물은 한의사협회와 한의사들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고증하는 역사의 보고(寶庫)다. 역사는 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그 역사를 증명한다.”

 

박순환 회장님3.jpg

<대한한의사협회 역사편찬위원회 주관 학술발표회>

 

<한의신문>, <회관건립사>, <협회사> 등 기록물이 갖는 특징은 특정한 시대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데 있다. <회관건립사>와 <협회사>는 그에게 자식과도 같은 애정의 대상이다. 그 자식들의 산파이자, 삼신할미인 한의신문. 한의신문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건넬 좋은 말을 부탁했다.

 

“한의신문은 한의사들의 일기장이자 역사서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물론 앞으로 걸어갈 10년 뒤, 30년 뒤의 발자취를 기록할 사서(史書)인 셈이다. 독자들께서 더욱더 관심 가져 주시고, 아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의신문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는가. 젊은 독자나, 연륜이 오래된 독자나 그 바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왔겠지만 어찌됐든 한의사협회를 대변하는 대변지의 역할은 변할 수가 없다. 거기에 더해 한의계의 올바른 여론을 모으고, 전달하는 정론지(正論紙)로 중심을 잘 잡아가야 한다. 시대의 흐름상 인터넷신문의 중요성이 부각되더라도 ‘정확한 기록’이라는 본질은 변할 수 없다. 좋은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늘 한의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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