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윤 제주 명가한의원장(제주도한의사회 명예회장)
[편집자 주]
제주도한의사회 회장과 제주한의약연구원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김태윤 원장은 일생을 약재로서의 귤을 연구하는데 전념해 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제주학연구센터의 제주학총서 68번째 책으로 발간된 ‘박람귤기’는 그 결과물의 일환으로, 방대한 고문헌과 자료 조사를 통해 약재로서의 귤의 효과는 물론 각각의 약성과 가공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연구서로서, 감귤을 통해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한의사이자 연구자로서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Q. ‘박람귤기’를 집필한 계기는?
한의학에서 가장 다양하면서도 많이 사용되었던 감귤속(柑橘屬;Citrus) 약재들이 너무 소홀히 다뤄져 유통되고 있는 현실이다.
감귤농사를 오래 전부터 친환경으로 시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귤(橘)과 기(枳)를 연구하고, 공부하게 됐다. 이어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귤에 대한 책들을 박람하게 됐으며, ‘박람강기(博覽强記)’라는 사자성어에서 모티브를 얻어 ‘박람귤기(博覽橘枳)’라는 제목을 짓게 됐다.

Q. ‘박람귤기’는 어떤 책인가?
‘박람귤기’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설립한 공공연구기관인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올해 제주학총서 68번째 책으로 선정돼 간행된 책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감귤속 약재를 한의학적 측면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해 총망라한 것으로, 분량과 내용이 두껍지만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한의학의 원리를 상세히 서술해 구성된 부분도 있으며, 전문가만 볼 수 있는 원서에 근거해 주를 달아 한의사들에게 도움되도록 했다.
특히 그동안 감귤속 약재들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1000년 가까이 이어져온 풋귤과 청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도록 했다.
이 중 청피는 ‘향약집성방’에서 제주청귤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듯이 감귤의 미숙과가 아니고, 제주에서 자생하는 청귤의 껍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 예전부터 제주에서 나는 ‘산물(山橘)’, ‘동정귤(洞庭橘)’, ‘기(枳)’, ‘탱자(枸橘)’, ‘감자(柑子)’, ‘귤(橘)’, ‘유(柚)’, ‘등(橙)’의 다양한 감귤류에 대해 한의약학 사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해당 감귤류의 정확한 명칭을 확인해 잘못 전해져온 것들을 바로 잡았기에 이 책을 통해 한의약의 고전들도 접할 수 있어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밖에도 문헌에 기록된 약재로서의 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보고, 각각의 약성을 비롯해 그 가공법을 살폈다.
귤피의 효능과 가치에 주목했고, 더 나아가 현대산업의 관점에서 감귤산업에 대한 미래 전망과 제언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누구나 바라는 건강한 삶을 위한 감귤의 효능과 가치를 재발견하고, 현실적인 활용 방안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서재에 두거나 부엌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으면서 참고하기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본문 中 좌측부터 감귤류 전파 경로, 신농본초경의 귤유조문
Q. 한의약에서 귤피와 진피의 효능은?
조선시대에 임금이 제주에서 진상으로 귤이 올라올 때면 성균관 유생을 모아 ‘황감제(黃柑製)’라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보게 할 정도로 제주의 감귤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제주 감귤이 중앙정부로 보내는 진상의 필수품목이었던 것은 당연히 궁중에서도 진피를 귀한 한약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문헌들에는 귤피와 진피의 효능에 대해 참으로 다양한 기록이 남아있다. 크게 나눠보면 기(氣)를 다스리는 이기(理氣)작용, 습(濕)을 제거하는 조습(燥濕)작용, 소화기를 편안하게 하는 화중(和中)작용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명나라 의원인 이시진은 귤피가 온갖 병을 치료한다고 해 마치 만병통치의 약재인 것과 같이 거론할 정도였다. 따라서 현재의 질병 상황에 비추어보면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이나 호흡기감염, 소화기질환, 간신(肝腎)의 이상으로 인한 유선(乳腺) 증식과 유방암, 지방간, 부종질환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평소에 조금씩 먹으면 체지방을 분해해 대사증후군인 비만치료와 혈압과 고지혈증에 좋고, 암·심근경색과 뇌출혈을 예방하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Q. 제주도민들에게 귤이 갖는 의미는?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의약에서 말하는 감귤류를 이용한 약재는 과육(果肉)이 아닌 과피(果皮) 중심의 활용이 더 일반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는 감귤의 과육보다 그 껍질이 약효에 있어 훨씬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제주의 1차 산업인 감귤산업은 과육 위주의 산업으로 발전했다.
귤은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한의약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필요불가결한 생명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귤은 한때 고혈을 짜내야 했던 진상품의 하나이기도 했고, 대학나무라 불리며 가정 경제를 책임졌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귤은 제주를 대표하는 과일로,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상품으로 재탄생하고 있으며, 더욱 발전·연구되고 있다.

Q. 앞으로 제주 자원에 대한 간행 계획이 있는지?
하늘에 매달린 감귤열매는 제주도에서 널리 재배하고 있고, 또 재배해 구할 수 있는 3가지 보물 중 하나로, 이제 책으로 출간됐다.
나머지 2가지는 땅에서 나는 ‘지황(地黃)’,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海藻類)’다. 이에 대한 연구가 완성되고, 임상에 보다 활발히 활용하게 된다면 다시금 책을 써내 알리고 싶다.

▲지난 2018년 국제와이즈멘 제주지구 제14대 총재 취임 사진
Q. 기타 하고 싶은 말은?
옛것을 익혀야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듯이 한의학도 과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연구·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한의계는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약재는 다양하게 많은 데도 불구, 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지 못하며, 본초학을 깊이 공부하지 못해 ‘단방약(單方藥)’에 대한 깊이 또한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처방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또 현재 인삼(人蔘)만 보더라도 그 연구가 계속해서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단방약을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만 그 기반 위에 복방(複方)으로 처방할 수 있게 되며, 그것들을 응용해 많은 처방이 만들어져 환자들에게 적절히 활용되어질 것이다.
물론 현대 의료기기 사용도 중요하지만 임상에서 우리만이 가진 치료도구인 ‘1침(鍼) 2구(灸) 3약(藥)’에 대한 활용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이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현대 과학을 한의학의 발전에 응용하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고, 한의사로서의 자부심으로 진료와 연구 등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