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인지심리학, 역사학 분야 세 학자가 동의보감에 대해 모든 학문 분야를 집대성한 '인간학(人間學)의 역작'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2023 산청세계전통의약항노화엑스포’ 개최를 맞아 황만기 한의학 박사(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서강대학교 겸임교수),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태성 한국사 강사가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tvN ‘어쩌다 어른’ 제작진)’의 ‘역사 읽어드립니다-동의보감의 비밀 편’에 출연해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을 각각의 시선에서 분석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세계 속의 동의보감
지난 2009년 7월 30일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 바베이도스에서 열린 제9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동의보감 초간본’이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되면서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최태성 강사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가 동의보감에 대해 △이론적인 측면에서 매우 독창적인 의학 체계 △역사적 측면에서 동아시아 의학에 끼친 영향력 △보건학적 측면에서 서양의학 도입 전 동아시아인 수백만명의 건강에 기여한 점 △미래적 측면에서 지속 발전 가능성을 인정했으며, 이는 유네스코 사상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의학서를 세계기록유산으로 결정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경일 교수는 “당시 중국이 한국의 한의학을 ‘조선족 의학’으로 부르면서 중국 의학의 한 부분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세계 의학서 중 단독으로 등재됐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황만기 박사는 “한의과대학에도 전통 한의학의 기초 파트와 임상 파트 모두 동의보감 원문을 사전에 학생들이 파악한 것을 전제로 강의한다”며 “실제 임상에서도 동의보감에 나오는 소아청소년들의 각종 호흡기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는 한약재 5가지(감초, 갈근, 길경, 오미자, 맥문동)를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모두 현대 과학적 근거를 갖춘 항바이러스 한약(Antiviral herb)이자 가정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이라고 설명했다.
황 박사에 따르면 ‘길경(桔梗)’은 폐기를 다스리고, 폐열로 숨이 가쁜 것을 치료하며, 항염증 작용이 있는 ‘감초(甘草)’와 함께 달여 복용하기도 한다.
‘당귀(當歸)’는 현대 과학적 연구 논문을 통해 뼈세포 증식 효과, 골다공증 치료 효과 및 골절의 신속하고 완전한 회복 효과를 비롯해 생리불순과 난임 치료에 유의미한 임상적 효과가 있음이 이미 명백히 밝혀졌으며, ‘진피(陳皮)’는 만성 식욕부진, 헛구역질, 복통 등과 소화기계 허약 체질 개선에 도움을 준다.
최 강사는 “지난 2021년 서구에서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과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약 10만명이 사망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양의학에서는 진통제 오남용 등의 해법을 동의보감을 비롯한 한의학에서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현대 과학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박사는 최근 ‘네이처(Nature)’지에 게재된 마추푸 하버드 의대 신경생물학 교수 연구팀의 논문을 소개하면서 “수행한 침술 관련 연구에서 경혈을 침으로 자극하면 어떤 신호 경로를 거쳐 염증이 완화되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했는데 코로나 위중증 증상 중 하나인 ‘급성 전신성 염증(사이토카인 폭풍)’도 침술을 활용해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연구를 통해 신종 감염병 치료법이 꼭 개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성을 살리는 우리의 약재···동의보감의 ‘향약’
동의보감 서문에서 무엇보다 강조했던 것은 ‘향약(鄕藥)’으로, 우리나라 향토에서 산출된 우리의 약재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교수는 “이는 아플 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인데 대중화된 약초 지식을 통해 ‘의료의 권력화’를 방지코자 했던 것”이라며 “동의보감은 허준 선생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의술이 권력화가 되지 않도록 애쓰고, 고민한 흔적”이라고 강조했다.
황 박사는 “실제로 좋은 한약재를 쓰는 것은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현재 우리나라 모든 한의원과 한방병원에서는 식약처에서 품질과 안전성을 충분히 인정받은 규격품 한약재(hGMP 한약재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인 전문한의약품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미 법제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최 강사는 우리 역사 속에서 약초로 유명했던 곳으로 경상남도 산청을 꼽으며 “지리산의 정기로 1000여 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곳, 뫼 산(山) 맑을 청(淸), 산이 맑은 곳”이라며“조선시대에는 28종의 명품 약초를 진상했던 고장”이라고 소개했다.
황 박사는 “산청은 한자 지명 뜻 그대로 산이 수려하고, 물이 맑은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지리산, 꽃봉산, 정취암, 대원사 일대, 내리저수지, 수선사 등 청정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고장”이라며 “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의 기운을 받고 자란 한약재는 전국 최고 수준의 품질”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문가들은 건강 키워드로 ‘웰니스(Well-being과 Fitness의 합성어)’와 ‘항노화’를 꼽았는데 김 교수가 공개한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자료에 따르면 실제 전세계 항노화 시장은 2017년 기준 625.3억달러(76조원 이상)이며, 연평균 6.5%씩 성장하고 있어 올해 100조원 이상의 수익이 추정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이에 산청에서는 지역 자원인 약초를 분석해 항노화 기능성 식품 및 기능성 원료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람을 향한 정신...동의보감의 ‘애민’
최 강사는 “동의보감의 탄생 배경은 애민(愛民)으로, 이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다급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의서이자 의학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황 박사는 한의학을 △동의보감을 비롯한 ‘전통 한의학’ △전통 한의학을 현대 과학적으로 재검증한 ‘현대 한의학’으로 분류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한의사들은 동의보감의 내용을 기본으로 충분히 공부하고, 더 나은 현대 과학적 최신 연구를 통해 계속 혁신하고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의학, 심리학, 사회학, 행정학, 생물학 등 모든 분야는 인간을 다루는 공통된 ‘인간학(人間學)’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동의보감은 단순한 의학서적이 아닌 인간학을 대변하는 역작으로, 허준 선생의 인간과 연민에 대한 오랫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라며 “이 부분을 이해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보감 속에서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역사 읽어드립니다-동의보감의 비밀 편’은 공개 보름 만에 40만 뷰를 기록했으며,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에서 시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