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N ‘어쩌다 어른’ 제작진이 론칭한 유튜브 채널인 ‘사피엔스 스튜디오’를 통해 공개된 ‘역사 읽어드립니다-동의보감의 비밀 편(공동제작 산청군)’ 영상은 보름 만에 40만 뷰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23 산청세계전통의약항노화엑스포’ 개최를 맞아 황만기 한의학 박사(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를 비롯해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태성 한국사 강사는 이번 콘텐츠를 통해 기존 매체에서 보여줬던 동의보감 이야기에서 벗어나 의학적·인지심리학적·역사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최태성 강사에 따르면 1718년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최고 권력자이자 8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는 “조선에는 있고, 일본에는 없는 것들을 모두 조사해 바쳐라”는 내용의 비밀지령을 내렸으며, 3년 뒤인 1721년 이를 실행하기 위해 조선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각종 질병이 창궐해 무려 8만명이나 사망했던 17세기 에도(江戸) 시대에서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가장 주목한 것은 동의보감이었다.
황만기 박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학서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정보로 꼽히며, 국가 간의 기밀문서로 취급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면서 “동의보감은 엄청난 개발 잠재력을 갖춘 소중한 원천 기술의 출발점이라는 데에서 일본에게 매우 간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일 교수는 “진시황제, 바토리 에르제베트 등 당시 절대 권력자들이 특히 집착한 것은 ‘불로장생’을 위시한 건강 관리법이었기에 동의보감은 일종의 판타지와도 같은 매우 훌륭한 의서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조선에서 엄청난 의서가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의 영주는 이후 사절단을 통해 조선에 동의보감을 보내줄 것을 꾸준히 청원했으며, 간행된 지 50년 후인 1663년에서야 판본을 제공받아 도쿠가와 요시무네에게 바칠 수 있었다.
황 박사는 “당시 일본은 전염병이 창궐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절대적으로 간절했던 시대였다”며 “동의보감이 세상에 나온 지 115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 25권이 모두 번역됐으며, 일본이 근대적 의료 개혁을 이루는데 동의보감이 바탕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1724년 동의보감에 훈독을 달아 간행한 ‘관각 정정동의보감(官刻 訂正東醫寶鑑)’의 서문에는 “동의보감 25권은 조선의 국의(國醫) 허준이 편찬한 것으로, 고금의 모든 학설을 손바닥 보듯 정리했으니 의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기재되기도 했다.
전란과 질병 그리고 동의보감의 탄생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전란에 빠진지 4년 후인 1596년 선조는 허준을 비롯한 어의(御醫) 양예수, 이명원, 김응탁, 정예남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의(儒醫) 정작 등 당대 최고 명의들을 급히 불러 모아 “중국의 의서를 보니 모두 조잡한 것을 초록(抄錄)하고 모은 것이어서 별로 볼만한 것이 없으니 여러 의서들을 모은 의학서를 편찬하라”면서 “향약을 종류별로 나누고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명칭을 병기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을 명했다.
이에 편집국(編輯局)을 설치하고, 책을 편찬하기 시작하기 위한 체계(肯肇)를 세웠지만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면서 의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1608년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당시 내의원 최고 책임자였던 허준 선생은 관직이 삭탈되는 한편 의주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후 허준 선생은 유배지에서 동의보감의 집필을 이어나가 1611년 동의보감을 광해군에게 바쳤으며, 같은 해 귀양이 풀리고 신원(伸冤)되면서 선조의 염원을 14년 만에 이룰 수 있었다.
시대를 이어가는 가치···동의보감의 의미
동의보감은 △내경편(內景篇) 6권 △외형편(外形篇) 4권 △잡병편(雜病篇) 11권 △탕액편(湯液篇) 3권 △침구편(鍼灸篇) 1권으로, 총 25권(목차 2권 포함)으로 구성된 의서다.
황 박사는 “이러한 동의보감의 편집 명칭을 통해 실제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임상적 도움을 제공하는 한의사로서 실용주의와 애민정신을 최우선의 사명으로 생각한 허준 선생님의 면모를 재확인할 수 있었으며, WHO(세계보건기구)가 언급한 건강의 정의인 ‘좋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상태’의 개념을 17세기 초반에 확립한 그의 의학적 선견지명은 세계 의학사(醫學史)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강사는 동의보감이라는 명칭에 대해 “기존 조선에 없었던 ‘동의(東醫)’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의학이 꽃피웠음을 천명한 것이며, ‘보감(寶鑑)’은 ‘보배스러운 거울’을 뜻하는 것으로, 동의보감은 모든 것에 귀감이 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동의보감에서는 인간의 몸의 균형이 깨졌을 때 병이 찾아온다고 보는데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Homeostasis(항상성)’으로, 감정과 반대의 언행으로 정서적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개념에 해당된다”며 “동의보감이 현대 심리학이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는 개념과 상통하는 점이 매우 놀랍다”고 말했다.
동의보감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특히 황 박사는 동의보감에 대한 ‘가짜 뉴스’들이 매우 많이 유포돼 있다고 지적하며, 그중 ‘투명인간 되는 법’이 기재된 설을 예로 들었다.
황 부회장은 “투명인간 설은 잡병편의 ‘은형법(隱形法)’을 매우 잘못 해석한 것으로, 이는 ‘안중농수(眼中膿水)’ 즉 눈에 고름이 차서 안 보이는 안과 질환에 대한 한의학적 치료방법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철저한 실용 정신에 입각해 편찬된 동의보감에 투명인간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런 오해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동의보감은 누구나 들어봤지만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사례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내용만 취해 발생한 것으로, 앞으로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역사 읽어드립니다-동의보감의 비밀 편’ 콘텐츠는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에서 시청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HATUdQaU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