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무헌 학술이사(부산광역시한의사회)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정부 과제로 유전자를 AI로 분석해 개인의 인체대사를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강무헌 부산시한의사회 학술이사로부터 과제에 대한 소개 및 한의학과의 접목 등에 대해 들어봤다.
Q.현재 진행하는 정부 지원 과제의 내용은?
유전자를 AI로 분석해 개인의 인체대사를 예측하는 연구다. 예를 들어 식후 혈당은 당뇨뿐 아니라 비만·심혈관 질환 등에도 아주 중요한 지표인데, 음식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개인별로 차이가 많이 나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데 한계가 있어왔다. 즉 어떤 사람은 바나나를 먹고 혈당이 많이 오르는데 쿠키는 그대로인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쿠키를 먹고 오르는데 바나나는 변화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기존의 획일적인 혈당 관리법 대신 개인별 맞춤기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수행 중인 과제에서는 인체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유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품 섭취 후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등 개인별 고유의 대사반응을 도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Q.이번 과제에 신청한 계기는?
한의사라면 대부분 공감할 내용일 텐데, 같은 증상이라도 사람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며, 그렇게 해야만 효과가 좋다는 걸 임상에서 자주 느꼈다. 그런데 이런 개인 맞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인체대사 유형을 감별하는 과정에 대한 객관화·계량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더 이상 임상의 발전이 어렵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지난 2013년부터 유전자를 타겟으로 관련 연구를 개인적으로 진행해 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 임상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데 이왕에 시작한 연구를 더 확대해서 진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지난 2022년 초부터 여러 정부 부처기관에 과제 제안서를 제출하게 됐고, 다행히 그 중 2곳에서 지원을 받게 돼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게 됐다.
Q.이번 과제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기대효과는?
유전자가 인체 해석에 매우 중요한 빅데이터인 데도 불구하고, genotype(유전형)와 phenotype(표현형) 간의 상관관계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의료나 영양 분야에서 잘 활용되지 못해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수행 중인 연구에서는 ‘metabotyping’이라는 최신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 유전자를 분석해 인체대사의 개인별 다양성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비유를 하지면 OTT 산업에서 넷플릭스는 초개인화 알고리즘인 ‘시네매치’를 이용해 개인취향 맞춤 영상을 제공해 시청시간을 20배 증가시켰다. 의료 분야에서 현재 개발 중인 기술을 활용한다면 개인별로 맞춤 식단 추천을 통한 정밀한 혈당 및 체중 관리가 가능해지고, 이는 대사증후군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Q.개발 중인 기술과 한의학의 접목 방안은?
한의학에서 이 기술을 활용한다면 보다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의학과 서양의학, 혹은 여타의 동아시아의학과의 차이점은 질병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임상을 전개한다는 것인데, 이런 측면이 개인맞춤 기술과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의학을 활용해 축적된 임상경험을 이 기술을 활용해 객관화·계량화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결과로 증명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Q.AI를 활용한 한의약적 연구 전망은?
이제 모든 학계와 산업에서 AI를 빼고는 무엇인가를 논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추세는 한의학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인공지능에서 가장 핵심은 ‘데이터’다. 이번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양질의 풍부한 데이터가 인공지능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 한의학이 빅데이터가 부족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향후 AI를 활용한 한의약 관련 연구 발전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다.
Q.포항공대를 졸업한 공학도에서 현재는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이렇나 이력이 한의사로의 활동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정부기관에서 과제 선정을 위한 사업계획 발표시 생긴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한 심사위원이 “이 연구를 발표자인 저말고 다른 팀에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길래 “그 팀에서 저를 초빙하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순간 딱딱하고 엄숙했던 발표장에 웃음이 번졌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러한 무모한 자신감의 표현이 지원과제로 선정된 이유 중이 하나라고 하더라. 사실 그 순간에는 굉장히 심각하게 말한 것인데 말이다.
지금 수행하고 있는 과제 연구는 △유전공학 △임상의학 △인공지능, 이 3가지 분야에서 동시에 일정 정도 이상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제 경우에는 대학원에서 생물공학을 전공했고, 늦은 나이에 한의대에 들어가 현재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또한 부산시한의사회 학술이사로 활동하면서 치매예방사업을 수행 중 통계 처리를 위해 인공지능을 접하는 등 다양하면서도 특이한 이력이 이 과제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것이 과학기술이 고도화되면서 IT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분야가 융합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한의계도 보다 적극적으로 다른 학문 분야와의 교류에 나서야 할 것이며, 의학 이외에 다양한 학문을 경험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Q.앞으로의 연구계획은?
현재 수행하는 과제는 장기연구로 1∼2차년도는 한국인 유전자를 대상으로, 또한 3∼5차년도는 미국인 유전자를 대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최근 정부에서 요구하는 것은 △딥테크 △글로벌이다. 결국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한국인 유전자의 경우 풀이 좁아서 연구가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어 유전자 다양성이 매우 큰 만큼 매우 난이도 높은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궁극적으로는 80억 세계인구 모두에게 개인맞춤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Q.기타 하고 싶은 말은?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젠 음반을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음악산업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성장했다. 음반에서 음원으로 매개체가 바뀌었을 뿐이다.
한약의 시장규모도 2000년 초반 3조원대에서 이젠 1조원대로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건강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 것은 아니다. 요즘 해외 트렌드를 살펴보면 의료가 치료 중심의 ‘healthcare’에서 예방 중심의 ‘lifecare’로 전환되고 있고, 그 키워드는 ‘proactive’와 ‘personalized’라고 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의학이 강점을 지니고 있는 분야다. 학문적 특성이나 구성원의 우수성을 봐도 한의학은 미래의학을 선도할 충분한 잠재적 역량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은 녹록치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제 한의계의 전략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