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사면허시험(USMLE)의 3가지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뿐만 아니라 의학 전문 지식을 뽐내며 논문을 작성해냈다. 한 천재가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출시 두 달여 만에 1억 명 이용자를 확보한 인공지능(AI) 챗GPT의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된 챗GPT는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에서는 챗GPT에 이어 더 진보된 'GPT4'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현재 수준에서도 의사면허시험을 대체하고, 의학논문을 작성할 정도인데 어느 정도 수준까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IT업계의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챗GPT가 ‘진료’의 영역까지 침범할지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의료소송 판결문 대신 작성한 챗GPT
최근 콜롬비아에서는 후안 마누엘 파디야라는 판사가 자폐아의 의료권 소송 관련 판결문을 작성하는 데 챗GPT를 사용하면서 논란이 생겼다.

파디야 판사는 심리 과정 중 “자폐성 아동은 치료비 지급 의무가 면제되는지”를 챗GPT에게 물었다. 챗GPT는 콜롬비아 법규에 근거해 “자폐 미성년자는 치료를 면제받는다”고 말하며 파디야 판사의 질문이 옳다는 답변을 내놨다.
파디야 판사는 챗GPT가 판사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챗GPT가 기존에 비서가 하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며 "이는 판사들에게 시간 부족 문제를 개선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보다 윤리적인 판결 논리를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사 찾지 않고 챗GPT 통해 치료 시도
콜롬비아 법정에서 일어난 사례처럼 의학의 영역에서 챗GPT와 대화하면서 진료하는 의사가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환자가 의사를 찾지 않고 챗GPT를 통해 치료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의학 분야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할 시 앞선 사례보다 문제는 더 심각하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챗GPT가 임상에 참여해서 만약 의료사고가 발생한다면, 책임 소재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문제도 있다.
자율주행기술의 경우 현재에도 차량의 자동화된 시스템이 상황을 인지 및 판단해 운전하고, 비상시에도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의 ‘레벨4 자율주행’ 기술이 개발돼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교통사고 발생 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한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사고 상대방이 100% 잘못했다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 이상 사고 책임자가 운전자일지, 자율주행시스템 개발자일지, 완성차 업체일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자율주행기술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챗GPT의 진료에 대해서 사고 발생 시 책임질 주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법의 테두리망을 벗어나 있는 셈이다.
챗GPT 한의계에 나쁘기만 할까?
하지만 챗GPT가 한의계에 문제만을 가져올 거라는 지적에 대해서 반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오히려 챗GPT가 한의원 진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누베베한의원에서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반의 로봇인 ‘누베베봇’을 도입해 내원객을 대상으로 진료 접수를 받고, 진료 관련 영상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게 하고 있다. 진료의 전 단계 과정을 로봇을 통해 효율적으로 개선한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챗GPT가 일선 한의원에 도입된다면 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챗GPT가 진료 전 내원객과 대화하면서 어떤 점이 불편해서 내원했는지를 파악하고, 진료 시 해당 정보를 한의사에게 요약해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챗GPT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들은 챗GPT를 둘러싼 관심이 오랜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교육현장에서는 챗GPT로 인한 부작용과 이후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이러한 와중에서 한의계 또한 챗GPT로 인한 위협과 대안 마련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챗GPT를 비롯한 AI 시장의 성장은 이미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없게 돼버렸다”며 “챗GPT가 의학 및 법률을 비롯한 전문영역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업계에서도 대안 마련에 빠르게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