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최근 ‘마음 병을 처방해드립니다’ 신간을 간행한 수선 사랑방한의원 이상우 원장에게 출간 소감과 계기, 독자들에게 기대하는 바 등을 들어봤다. 대구한의대를 졸업한 이 원장은 여행차 들렸다 매력을 느낀 경주에 터를 잡고 10년 넘게 한의원을 경영해 오고 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한의대에 입학해 경주에 한의원을 개원했다. 넉넉히 개원할 형편이 되지 않아 9평으로 시작했는데, 운 좋게 개원 초기부터 환자분들이 많이 오셨다. 이 때 친구가 자신의 한의원을 흔쾌히 정리하고 달려와 줬다. 덕분에 이후에도 부원장님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4년 뒤에 인근으로 확장 이전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한의쉼터> 카페에 ‘9평의 행복’과 ‘최소의 비용으로 운영하기’라는 제목으로 각 10회씩 쓴 적이 있다. 진료는 단순하고 경영은 소박하지만, 즐겁게 진료하고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Q. 책을 출간하게 된 소감과 계기는?
간소한 삶에 대한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물건이 책이었는데 폐지로 처분하기에는 아까웠다. 한의원 한 켠에 책장을 두어 천 원씩 중고책으로 처분하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좀 더 제대로 하고 싶었다. 괴산에서 ‘숲속작은책방’을 운영하는 백창화님의 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을 읽고 괴산에도 가고,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이면서 통영에서 작은 서점도 운영하는 ‘남해의 봄날’에도 가 봤다. 이 인연으로 서점도 운영해보고, 이 분들과 북스테이 네트워크 활동을 함께 하다가 책까지 쓰게 됐다. 다만 이번 책에서는 진료에서 있었던 일들만 담고 서점이나 북스테이에 대한 얘기는 적지 않았다.
Q. ‘희로애락’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이 아이디어도 김명근 한의사님이 쓴 책, <애노희락의 심리학>에서 얻었다. 한의원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몸의 통증 때문에 오시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음의 괴로움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정의 다양한 모습에 따라 우리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런 감정은 나의 주인이 아닌데 때로는 지나친 감정에 내가 통째로 잠식되기도 한다. 슬픔과 분노도, 기쁨과 즐거움도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슬픔과 분노는 거부하고 기쁨과 즐거움만 쫓기도 한다. 모든 것에는 음양, 양면성이 있으니 슬픔과 분노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고, 기쁨과 즐거움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이를 살펴서 적절하게 감정을 겪으면 병에 이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를 보는 이런 점은 제 스승이기도 한 황웅근 한의사님이 쓴 책, <마음세탁소>에서 크게 배웠다. 나보다 앞서 경험한 이들이 있고, 나보다 훨씬 현명하게 문제를 푼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배우면 되는 수월함은 후학자로서 갖는 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Q. 한의원을 운영하며 겪었던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지방 소도시 한의원의 특성일텐데, 관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서 온 일가가 다니는 경우도 흔하다. 다른 어떤 업종들보다도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집안의 갈등을 대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일가이지만 서로 마주치지 않게 시간을 예약해드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진료할 때 넌지시 상대방의 칭찬을 건넨다. 무겁지 않게, 티 나지 않게 몇 년에 걸쳐서 한다. 제 노력 때문인지, 시간이 약이 되어서 그런지 멀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관계가 또 틀어지면 처음에 했던 일을 다시 한다.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다시 힘들게 친하게 되어 몇 년째 같이 다니던 할머니 자매분이 사이가 틀어져 다른 시간에 오고 계셨다. 곁에서 보기에 안타까워 동생 분께 슬쩍 훈수를 두었더니 불쾌하셨는지 다음날부터 한의원에 오지 않으셨다. 10년 동안 다니신 분인데 많이 노여우셨던 것 같다.
한 달쯤 지나서 동생 분께 전화를 걸어 그냥 언니분과 다른 시간으로 예약해드리겠다고 하니 당장 음료수를 사들고 오셨다. “저한테는 많이 안 삐지셔서 다행이에요. 하하” 유쾌하게 농담을 건넨다. 지금도 두 분은 한 시간 간격을 두고 따로 오신다. 쉽게 노여워하는 성격이 스스로를 외롭게 하고 몸도 아프게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불완전함이 갈등을 만들고, 어쩌면 그래서 삶의 재미가 만들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제게는 두 분이 귀여워 보인다.

Q. 독자에게 기대하는 바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쓴 책은 아니다. 글을 먼저 쓴 것이 아니라 저와 잘 알게 된 출판사 대표의 권유로 쓰기 시작했다. 제 스승에게 출판사의 제안에 대해 여쭤보니 좋은 기회이니 해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생각보다 집필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 글을 쓴 후에 편집자가 제 글에 손을 댈 때는 마음도 많이 상했다. 서점을 하며 알게 된 책의 유통구조, 마진율, 인세에 대해 알고 있던 터라 책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기도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 스승은 내게 왜 책쓰기를 권했을까가 화두였다.
책을 쓰고 나니 함께 공명하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이구나 싶다. 예전에 한의쉼터에 글을 쓴 이후에 여러 동료 한의사분들을 만났고, 그 분들의 도움으로 시작한 한의학 공부도 있다. 지나고 보니 글을 쓴 것이 동료를 찾고 교제하며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책을 통해서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Q. 앞으로의 진료 계획은?
10년 동안 작은 변화들을 시도했다. 환자분들의 편의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위해 부원장님과 교대로 진료하며 연중무휴로 한 적도 있었고, 매출 증대를 위해 부원장님과 동시에 진료한 적도 있었다. 2020년에 안식년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준비과정으로 2019년 부원장님 독립 이후에 하루 4시간씩 주 6일 진료했다. 4개월간 테스트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인한 후에 안식년을 보냈다. 공교롭게 코로나 확산 시기와 맞물려서 계획했던 일은 못 했지만 덕분에 온전히 휴식시간을 가졌다.
시간과 체력에 여유가 생기니 공부와 상담진료도 즐겁게 한다. 삶의 만족도를 최대로 올리는 게 제게도 좋고, 저를 만나는 환자분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지속 가능하다. 함께 일했던 부원장님들도 다들 잘하고 계셔서 제가 도움을 많이 받는다. 이렇게 10년을 준비하면 60대에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겠구나 싶어 기대된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책을 낸 뒤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쉽게 읽었다, 위로가 되었다는 말씀이 많았다. 노안 때문에 돋보기를 써야했지만 다 읽었다는 환자분도 계셨다. 디자인 문제 때문에 글자를 더 키우지는 못했는데. 책이 잘 판매되어 특별판을 인쇄할 기회가 생긴다면 큰글자판을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