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1974년 11월에 나온 “鍼師法 提案에 對한 反對 陳情書”
아마 7~8년은 됨직하다. 어떤 헌책방에 들어갔다가 근현대 한의학 서적 책갈피에 숨겨져 있는 “鍼師法 提案에 對한 反對 陳情書”라는 제목의 6쪽짜리 문서를 발견하였다. 나는 이 자료가 탐이 나서 여러 책을 사면서 책방 주인이 부르는대로 돈을 주고 이 진정서를 입수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연구실에 가져가서 펼쳐보니 이러한 진정서를 내게 되었던 곡절이 그 안에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국회의원 강 모씨 외에 52명이 鍼師法案을 국회에 청원하여 이에 반대하여 陳情書가 작성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진정서를 작성한 인물로 金德煥, 金鍾昇, 金元祚, 文達玉, 文性珪, 朴尙東, 裵明稷, 卞廷煥, 安榮基, 尹錫崇, 李濟原, 李正華, 鄭時雨, 趙暻濟, 池禹遠, 河焌鎬, 洪用範 등의 이름이 뒷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1974년은 침구사법안으로 시끄러웠던 해였다. 비단 이 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1962년 3월20일 醫療類似業者에게 신규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법 조항인 국민의료법 제59조가 삭제되어 사실상 按摩士, 鍼灸士 등 유사의료업자는 없어지고 이미 면허를 취득한 사람만 기득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1914년 10월29일 일제에 의해 “按摩術, 鍼術, 灸術營業取締規則”이 제정되어 태동한 이 제도가 폐기됨으로서 신규배출이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침구사제도를 부활시키려고 각종 법안들이 제출되게 된다. 1964년 8월26일 제6대 국회에 제출된 “醫療法中 改正에 관한 請願”으로부터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법률안”, “接骨士, 鍼士, 灸師, 按摩士에 관한 法律案”, “鍼士, 灸師, 按摩士에 관한 法律案”, “鍼師法 制定에 관한 請願” 등이 이어진다. 1972년 1월11일, 1973년 9월27일 發議된 바 있는 “鍼師法 制定에 관한 請願”은 鍼師의 면허는 4년제 대학정도의 양성기관을 수료한 자가 국가시험에 합격한 자가 받도록 하고, 不正鍼灸行爲는 결격사유, 면허의 취소, 감독, 벌칙 등을 엄격히 규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침사법안이 계속 진화를 거듭한 것이다.
1974년 11월에 나온 “鍼師法 提案에 對한 反對 陳情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침구요법은 한방의학에서 분리할 수 없다. 한의학은 경락학설을 바탕으로 하여 침구와 약물요법에 의한 학문체계와 이론에서 확립된 민족의학임을 역사적으로 증명되는 바이다. 세계의학으로 발전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침구학이 한의학과 별도의 학문이라는 청구인의 주장은 언어도단의 역설에 불과하다.”
“둘째, 침구사법은 현재의 의사, 한의사 二元制度에서 三元化의 의료제도라는 기현상을 초래하여 의료질서를 문란케 할 것이다. 현재 한의과대학의 과정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필과목이며 한의사국가고시의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다. 현행 의료법상 한방진료표방과목의 하나로 침구과가 명시되어 있고, 한의과대학 석사·박사 과정까지 있음에도 침구사법을 별도로 제정한다면 의학의 數多한 전문 분야별 대학이 亂立制度化하여야 한다는 이론이 될 것이며 이와 같은 학술의 난맥이 어찌 용납될 것인가?”
“셋째, 침사법의 타당성을 주장함은 결국 短期 技能工 養成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時代的 遺物에 불과하다. 이 법안에서는 4년제 鍼士 양성기관을 두어 이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며 습득시킨다고 되어 있으나 일취월장하여 발전일로에 있는 한방의료인의 자격을 격하하려는 결과로 時代性을 망각하고 단기 기능공 양성을 방불하는 부당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넷째, 무자격침구사들의 職業補導策의 救濟立法은 국민의 생명의 존엄성을 경시하고 의료행정의 악순환을 초래케 할 것이다. 일제시대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서 총독부령으로 一時 했었으나 정부 수립 후 국민의료법이 의료법으로 개정되면서 폐지된 것이다. 만약 새로이 침사법이 제정될 경우에 과거 폐지 이전의 원점으로 후퇴하는 모순은 물론 무자격자를 위한 신분보장책으로 의심되는 법 제정은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의료질서의 역행되는 결과가 될 뿐이다.”
<- 1974년에 나온 침사법 제안에 대한 반대 진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