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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9일 (토)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27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27

御醫의 溫補論에 경종을 울린 儒醫



李惟聖은 1518년에 출생한 후 선조 39년인 1606년에 丙午 增廣試에서 生員 3등 12위를 하여 찰방을 지냈고, 光海君 8년인 1616년에 丙辰 增廣試 乙科에 3위로 합격하여 관리로서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1603년에 형인 이유홍이 영천군수로 부임하였을 때 이유홍을 따라 芝山 曺好益(1545~1609)에게서 『周易』을 배우기도 하였다. 曺好益은 李滉의 門人으로 관서지방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었던 인물이다. 曺好益이 죽자 그를 위하여 李惟聖이 祭文을 지은 것이 曺好益의 문집인 『芝山集』에 실려 있다.



李惟聖이 의학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음은 『承政院日記』의 인조대의 기록을 통해 검증된다. 李惟聖은 이때 中殿의 질환에 대해 御醫들과 토론하고 있다. 御醫인 趙興男 등은 中殿의 傷寒後遺症에 補藥을 쓸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李惟聖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 증상은 오로지 血虛로 말미암아 生熱한 것입니다. 下部의 寒冷의 증후는 모두 熱氣로 인한 所致이니 반드시 먼저 @血治熱의 약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 곧바로 補藥을 사용하면 熱氣가 흩어지지 못해서 補血의 功도 또한 작아질 것입니다.”(『承政院日記』1627년 인조 5년 5월17일 기록)



이것은 熱氣@鬱로 인한 寒冷證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목으로서 한국 한의학의 학술유파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발언이다. 이 발언은 御醫인 趙興男의 溫補를 위주로 하는 치료법에 대한 경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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