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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9일 (토)

김인범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김인범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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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보는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 下



동의보감의 등재 추천을 확인하다



Nomination No.:2008-23

Title: Donguibogam: Principles and Practice of Eastern Medicine

Country: Korea

5분 정도 자료를 뒤적이다가 동의보감에 대한 Assessment Form을 발견했다. 3페이지로 작성된 위윈회 문서를 재빨리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페이지에서 전문가 평가가 매우 긍정적으로 나온 것을 보고 등재를 확신했는데 마지막 줄을 읽으면서 필자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Register Sub-committee Final Recom mendation: Agrees with the assessment

Recommends inscription on the International Register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회의장에서 나가 당장 한국에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의제로 상정되지도 않았고, 지난번 우리나라가 신청한 조선시대 ‘의궤’가 회의 끝날 때까지 위원들간에 논쟁이 오간 적이 있어 이 평가보고서만 가지고 등재된 것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등재소위가 추천한 건이 부결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내심 등재를 기대해도 좋은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동의보감에 대한 전체회의 심사과정에서 별다른 이견이 나오지만 않는다면 등재는 확실시 되는 것이다.



비공개회의



우리 일행은 기쁨에 들뜬 상태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러나 다른 국가의 참가단이나 위원들에게 표정 관리를 해야 했고, 만약에 대비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오후 2시부터 속개된 회의는 기록유산과 직접 관련 없는 위원회 자체 의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 규정 개정과 세계기록유산의 로고를 선정하는 문제를 회의의 의제로 삼아 회의가 진행되었다.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국제기구의 회의를 참가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위원들의 논의를 경청하며 옆에 있는 위원들과 가끔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오후 4시 논의하던 의제를 뒤로 미루고는 갑자기 기록유산에 대한 사정에 들어간다고 선언하고는 위원을 제외한 모든 참석자는 퇴장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일행 중 유일하게 남을 수 있는 분은 서울대 서경호 교수님 밖에 없었다. 비공개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참가단은 회의장 밖에서 초조하게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에 동의보감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구하거나 문제 제기가 있으면 바로 들어가서 질의응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의 상황이 생긴다면 참가단 중에서 권오민 박사와 필자가 들어가 설명하기로 했다.



초조하고 지루한 시간은 한 시간 이상 계속 되었다. 5시20분 위원들이 회의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필자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 교수님에게 뛰어갔다.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천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네스코 본부 사무총장의 최종 승인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등재가 확정되었다고 발표할 수는 없습니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와는 시차가 있고 또 행정적인 처리 시간이 필요해서 이 과정이 최소 12시간에서 최장 3주가 걸린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최단 시간에 총장의 결재가 떨어지기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무총장이 현재 휴가 중이어서 일본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축배를 준비하며



일단 현재로서는 최선을 다한 상태이고 현지에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맥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고 사무총장의 승인 과정에서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들어갔다.

과거에 위원회의 등재 추천이 탈락된 사례의 수집에 들어갔고 그 경위와 사유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또한 일본인 사무총장의 선입견이나 계속 신경 쓰여 온 중국측의 반응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축배를 미루고 결국 또 마지막 전략회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30일 아침이 밝았다. 10시경 회의가 시작 되자마자 회의에 참가한 위원들과 참가단에게 전 의장이 경고의 메시지를 시작했다.

그 요지는 이랬다. ‘등재 결정에 대한 어떠한 예측도 하지 마라. 특히 언론에 등재가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회의장 주변에서 심지어 복도 앞에서도 등재 예측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도 마라. 추천은 추천일 뿐이다. 공식 발표까지는 일체의 논의를 하지 마라.’



마치 우리 참가단에 대한 경고인 것 같아 내심 가슴이 뜨끔했다. 사실 우리 참가단이 제일 부지런했고 관심도가 제일 높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우리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참가단 일행은 모두 일순간에 침묵을 지켰고 마지막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행동으로 말미암아 등재 결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까 노심초사를 했다. 회의는 다시 국제자문위원회 자체 의제로 돌아가 어제 진행했던 세계기록유산의 로고 결정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즐거운 비명들



지루한 회의를 뒤로 하고 필자는 12시30분경 회의장을 빠져나와 회의장 앞의 쇼파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10여분 쯤 지났을까 회의장 문이 열리면서 위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회의장에 남아있던 서경호 교수님 등 우리 일행이 밝은 표정으로 나오면서 의장이 등재 결정을 공식 발표를 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셨다. 휴가 중이던 사무총장이 일본에서 직접 사인을 해서 모든 절차가 끝났다는 것이다. 그토록 애타게 듣고 싶었던 결과를 듣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참가단 일행 모두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국이 새벽 2시경인데도 불구하고 각 기관과 단체 그리고 언론사에 이 소식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게 된 것이다.

각자 일단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느라 여기저기서 즐거운 비명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숙소로 들어가 현장 분위기 등 관련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을 작성하고 인터넷으로 송고를 하는 등 마치 프레스센터가 된 것 같았다.



필자는 점심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 KBS 제1라디오에서 한국시간으로 31일 아침 7시 40분 생방송 ‘홍지명입니다’라는 프로에 8분간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어 있어 원고 정리를 해야 했다. 원래는 등재가 결정이 안된 상태로 인터뷰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등재가 발표난 시점이라 원고를 다시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 한국이 워낙 깊은 밤이라 담당 PD와의 통화가 되질 않았다. 필자 나름대로 질문지의 원고를 수정하고 답변을 준비했다. 방송 20분 전에 겨우 통화가 되었는데 이미 원고 수정에 대해 상의할 시간을 놓친 상태라 등재 결정이 된 것을 가지고 원고 없이 즉문즉답을 하기로 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큰 실수 없이 방송을 잘 마쳤다.



맥도날드가 없는 나라



방송 인터뷰를 끝내고 우리 참가단 일행은 근처 중식당에서 축배를 들었다. 정말 작은 나라인데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다는 중식당은 정말 있었다. 모처럼 우리 입맛에 비슷한 식사를 즐길 수 있었고, 이제는 다들 편히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피로를 다 잊을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이 31일 오전은 이번 회의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바베이도스 관광청에서 수도인 브릿지타운 관광을 진행했다. 수도라고 해봐야 한국의 작은 항구도시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솔직히 별로 볼 것은 없었다. 물가도 별로 싼 편이 아니고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쇼핑을 할 것도 없었다.

필자는 평소에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일행들과 잠시 헤어져서 뒷골목 정서를 보고 싶어 변두리의 작은 골목길과 주민들의 실제 거주지와 시장 등을 돌아봤다. 필자가 6년 전에 2년간 살았던 아프리카의 빈민지역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낙후된 정도가 우리에 비하면 약 20년 정도 뒤떨어진 것 같았다.



점심때가 되어 요기할 것을 찾던 중 필자는 어느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의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어보는 습관이 있다. 가격과 맛을 비교해 보면 그 나라의 음식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맥도날드를 찾을 수 없었다. 가장 번화한 시내 중심지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쇼핑가에도 맥도날드는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인지 문화적인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30개국 이상을 여행해 본 필자로서는 약간 충격적이었다. 거기가 그래도 백인이 지배했던 서구문명권인데도 말이다.

이제 바베이도스는 우리 민족 그리고 한의학의 역사 속에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정된 뜻 깊은 곳이 되었다. 아마도 다시 가보지는 못하겠지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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