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는 역시 사치재인가?
귀락당 낙우재 편지-5
2007년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의료현실을 풍자 고발한 마이클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 (sicko)’가 상영된 일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는 미국인들이 쿠바 해안에 보트를 띄우고 받아달라고 마치 난민들처럼 손 흔드는 장면은 코믹 압권이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이 광경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어느 날, 50세의 중년 부인이 추돌교통사고로 속이 미식거리고 허리가 아프다하면서 병실을 찾아왔다. 진찰을 해보니 골절은 없었다.
그래서 침 치료와 물리 치료를 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그 환자는 한 일주일 쉬게 1주일간의 안정을 요하는 진단서를 끊어 달랜다. 원칙상 이 경우에는 일주일 진단을 끊을 수 없다. 골절이 없다면 일반적으로 급성기 3일만 입원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의 경우, 병원은 자동차 보험회사에 직접 청구하고 지불받게 되므로 보험회사의 가이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심사 및 삭감 등에 관해 전권을 행사한다. 즉, 보험회사에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병원이 우겨서 치료하기란 쉽지 않다. 이 경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의료 결정권은 보험회사가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국민건강보험보다 사보험이 확대되면서 돈 있는 사람은 모두 사보험으로 몰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돈 없는 사람만이 국민건강보험에 남아 민망한 보험이 돼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의료비가 싼 외국으로 몰려 나갈 수 있는 코믹한 현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53세의 여자 환자가 왼쪽 어깨가 약 3개월 전부터 불편하다고 호소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진찰을 해 보니 관절 운동 범위가 약간 감소되어 있어서 브래지어끈 맬 때 힘들고, 잠 잘 때 많이 결리고 저리기도 하며, 가끔 목 줄기부터 손끝까지 아프다고 한다.
일반 엑스레이 검사상, 어깨관절에 특이한 사항이 보이지 않고 경추사진에서 4번과 5번 사이 간격이 다소 좁아져 보인다. 그런데 그 환자는 자기가 어느 날 TV에서 회전근개파열에 관해 방영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내용이 자신의 병과 같다면서 자기가 지금 그 병에 걸린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며, 매월 9만원씩 내는 실비보험에 들어 둔 게 있다며 그 보험으로 MRI를 찍어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다 며칠 뒤에 다시 와서 하는 말이, 보험회사에 알아보니 MRI 찍으려면 외상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제가 생각해 보니 3개월 전에 넘어진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그렇게 상해진단서 하나 떼어주세요”하지 않겠는가. 사실은 넘어져 다친 일이 없는데. 만일 이런 경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떼어 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떼어주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이 때 떼어준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가? 떼어주지 않은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가?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몇 년 전에 요실금(소변을 참지 못하고 자주 보는 병) 수술이 갑자기 성행한 때가 있었다. 우리 환자들 중에도 이 요실금으로 수술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아마 여러분들의 부인 중에도 이 수술을 받은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만일 모른다면 오늘 저녁에 밤에 자면서 이불 속에서 넌즈시 물어 보아라. 그러면 그 때 이 요실금 질환이 갑자기 증가해 그런 것인가? 아니다. 그건 어느 보험회사에서 요실금을 실손 해주는 보험을 만들어 많이 팔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요실금 수술을 받았다. 그 수술기구를 만들어 팔던 회사는 신이 났다.
그렇다고 그 수술이 공짜가 아니다. 자기가 부은 보험금(사보험)에서 지출된 것이다. 환자들은 가격에 민감하다. 마치 의료를 쇼핑하듯 한다. 여기가 싸다하면 이리로 몰리고 저기가 싸다고 하면 저리로 몰린다. 꽁돈으로 될 때는 소비가 왕창 늘고 자기 돈이 들어가게 되면 금방 줄어 든다.
이러한 ‘가격 민감성’은 경제학적으로 사치재의 한 특징이다. 즉,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꽁돈이니까 한번 해보는 것이다. 현장에서 볼 때, 의료의 많은 부분이 의외로 이러한 가격 민감성을 보인다. 그걸 노린 것이 보험회사 상품이다.
-김포 허산자락 귀락당 낙우재에서 포옹 한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