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촌 한의학 旅行 18
사람들은 모두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며 그 과정에서 늙고 병이 든다. 또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통도 겪어야 한다.
필자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라 매일 이러한 고통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긴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훨씬 짧은 여행에서도 그런 고통은 매일, 그리고 매 순간 마주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여행을 하면 언제나 익숙하지 않은 장소들을 전전하기에 그에 따른 많은 변수가 생기게 되는데, 이런 제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례로 다른 도시에 위치한 명상센터로 이동하기 위해 필자는 새벽 5시에 숙소를 나섰다. 목적지는 기차로 4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고, 오후 4시까지만 도착하면 되기에 시간은 넉넉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10시간 이상 기차가 연착된다는 방송을 들어야 했고, 필자는 어두운 새벽에 3시간 가까이 버스를 찾아 무거운 짐을 메고 헤매야 했다.
인도인들은 모두 횡설수설 각자 다른 이야기만 해댔고, 버스터미널 직원에게서는 아예 버스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팔다리에 힘이 다 빠졌지만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찾아냈고, 아침 8시에는 마침내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차장이 5시에 도착한다는 말을 5시간 걸린다는 식으로 잘못 말했다는 것을 알고서는 다시 몇 분간 절망하게 되었지만, 5시에라도 도착하면 감사하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찰나, 버스가 사람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사는 그 마을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았고, 버스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으며, 필자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다른 버스로 두 번 더 갈아타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자 하는 갈망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혐오 등이 겹쳐서 그날 하루는 정말 한달처럼 길게 느껴졌던 것 같다. 변수가 넘쳐나는 여행, 그리고 우리네 인생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고생 끝에 도착한 명상센터에서 필자는 어떻게 하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필자가 10일 동안 수련했던 비파사나(Vipassana) 명상법은 고타마 붓다께서 35세의 나이로 깨달음을 얻으실 때 사용하신 방법이다. 예로부터 고통으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많은 성인들과 성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이유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과 원하는 일에 대한 갈망, 그리고 원치 않은 일에 대한 혐오 때문에 발생한다고 이야기했다.
붓다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다른 성인들이 군중들을 ‘이해’시키거나,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함으로서 집착과 갈망, 혐오를 떨쳐내게 하였다면, 붓다께서는 그들 스스로 ‘느끼게’ 하셨다. 수행자들은 코스가 진행되는 10일 동안 몇 마디의 질문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다른 수행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제스쳐로 대화하는 것도 금지된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끊고 그저 눈을 감고 앉아서 자신의 호흡과 몸의 감각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감각을 느끼게 되는데,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가만히 ‘평정심’을 지키는 훈련을 받게 된다. 감각이라는 것은 우리의 무의식과 같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의 무의식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세상의 수많은 자극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또한 ‘반응’하고 있다.
기분 좋은 감각은 끝없이 원하게 되어 ‘갈망’의 감정을 일으키게 되고, 기분 나쁜 감각은 끝없이 싫어하게 되어 ‘혐오’의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 이 무의식적인 감각에 대한 중독이 사람들을 끝없는 고통에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 명상법은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을 성인들의 말씀과 여러 지식을 통해 다스리려고 하지만 이는 오직 표면적인 의식 차원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직 무의식적인 차원 즉, 감각적 차원에서 그것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반응을 하지 않을 때’ 그들은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감각들에 어떻게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무상(無常)함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눈을 감고 감각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기분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모두 생겨났다 사라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감각들, 그리고 이 감각들의 집합체인 자아(自我)의 무상함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열반에 이르게 되며,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온 존재에 대한 자비심이 넘쳐나게 된다고 한다.
이 수행법은 불교적이지만, 전혀 종교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붓다를 신으로 숭배한다거나 제물을 바치는 등의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타마 붓다께서는 나를 숭배하여 종교를 만들지 말라고 하셨고, 일생동안 열반에서 얻은 자비심으로 사람들에게 비파사나 명상법을 전파하는 데만 전력을 다하셨다고 한다.
고타마 붓다께서 이르렀던 열반의 경지는 멀고도 높지만, 필자는 작은 열반의 경지라도 올라서 스스로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타인을 마음으로부터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호흡과 감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