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꾸밈이 없는 삶이 주는 自由를 누려라”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物或惡之. 故有道者, 不處也.
기(其)는 위에서 말한 ‘기’, ‘과(跨)’, ‘자현(自見)’, ‘자시(自是)’, ‘자벌(自伐)’, ‘자긍(自矜)’을 가리킨다. 이런 것들은 도(道)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餘食]요, 쓸데없는 행동[贅行]에 지나지 않아 자연인 도(道)는 언제나 그런 것을 싫어한다. ‘물(物)’은 자연이라고 해도 좋고, 도라 해도 좋고, 하느님이라 해도 좋고, 부처라고 해도 좋다.
‘혹(或)’은 ‘상(常)’의 뜻으로 ‘언제나’라고 읽는 것이 좋겠다. 그러므로 도를 지닌 사람(有道者)이나 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不處也). 도(道)에는 안팎이 없다.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밥찌꺼기[餘食]’는 먹다 남은 밥을 말한 것이요, ‘군더더기 행동[贅行]’은 쓸데없는 짓을 말한 것이다.
‘췌(贅)’는 ‘군더더기 췌’, ‘혹 췌’자로 쓸데없는 것을 뜻한다. 이런 행동은 자기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도 괴롭히는 행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더라도 체하는 삶,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삶, 위선적인 삶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고달프게 한다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뭔가 보여 주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뭔가 자기만 옳다고 외쳐대고, 뭔가 자기만 위대하다고 거들먹거리고…. 언제나 남의 눈치를 봐야하고, 언제나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고, 남과 자기를 비교하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고…. 그러나 이렇게 온갖 애를 다 쓰는데도 기대한 만큼 좋은 결과는커녕 오히려 남의 비웃음만 사고 만다.
이렇게 되면 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잘난 체 하고, 목에 힘주고, 그러기에 더욱 남의 빈축을 사게 된다. 그러면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그러다가 결국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이 불가능한 삶, 그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사는 ‘비교급 인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삶은 차분하고 홀가분한 삶의 담백한 맛을 모르고 사는 비참한 삶이다. 이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식의 삶은 또 남을 괴롭게 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하는 삶, 스스로 외롭다 하는 삶, 스스로 자랑하고 뽐내는 삶은 주위에서 이를 보는 사람에게도 불쾌감을 준다.
이런 사람 주위에는 밝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있을 수 없다. 일종의 ‘정신공해’라고나 할까. 그뿐 아니라 이런 삶은 필연적으로 남을 정죄하고, 모함하고, 질시하고, 헐뜯는 삶이 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자기가 남보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남을 내리누르거나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정을 받고, 자기가 한 일의 공이 알려지고, 그래서 딴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원하는 것은 일반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본능적 욕구이다.
따라서 일반사람의 이런 심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공로나 훌륭한 일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일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드러내려고 거들먹거리거나 교만하고 자긍하는 태도는 이렇게 우리 스스로도 괴롭고, 남도 못살게 하는 고달픈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도의 입장에 선 사람은 이런 일이 어차피 모두 ‘밥찌꺼기’나 ‘군더더기’같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도를 지니고 사는 사람은 자기를 들어내는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남이 칭찬을 하거나 오해하여 비난을 하는데 신경 쓰지 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소박하고 충실하게, 그리고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이런 삶이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삶이 가져다주는 자유(自由)와 청복(淸福)을 누리며 살아가는 진정한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