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촌 한의학 旅行 11
잉글랜드 서부에 위치한 바스(Bath)라는 도시는 ‘목욕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Bath’의 어원이 된 로마시대 목욕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기하게도 그 욕탕에서는 아직도 기포가 보글보글 솟아오른다. 욕탕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옛 건축물들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의 북쪽에는 ‘크레센드’라는 반원형의 긴 건물이 있다. 놀라운 것은 아직 사람들이 그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 역사가 오래된 건물이라면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옛 용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사실 옛 것을 보존하고 전통을 유지해 나가는 모습은 바스에서 뿐만이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런던이나 에딘버러 같은 대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도 내가 중세시대나 산업화 시대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옛 것을 보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것을 현대적인 요소와 접목시켜 관광상품화 시키는 기술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필자는 걸어다니면서 그 도시에 대한 설명을 듣는 투어를 많이 이용하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때면 어찌나 곳곳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은지 한 번 놀라고, 그런 유물·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또 한 번 놀라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와 비교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옛 것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 없애버리고 빨리 새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발전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새 것’은 대부분 서양의, 특히 미국의 문화인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본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에게 서양 탈을 씌워놓는다고 해서 서양인보다 더 서양인 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한국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닌, 어느 방면에도 뛰어나지 못한 애매한 존재가 될 뿐이다. 필자는 서양인처럼 되지 못하는 것보다 한국인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들에게 소개할 만한 한국다운 것이 많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개인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도 얼마나 고유의 문화를 아끼고 돌보지 않았는지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스스로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은 ‘자기 개조’ 열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점에 들러보면 가장 북적이는 곳들 중 하나가 처세술 코너이다. 즉, 자신을 뜯어 고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필자는 스스로를 ‘뜯어 고친다’는 자체에 반대한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남들이 좋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남는 것은 심적인 괴리감과 갈등, 그리고 결국 아무것에도 능하지 못하게 된 애매한 자기 자신뿐일 것이다.
또한 스스로의 전통을 사랑하지 않는데, 자신의 나라의 전통을 사랑할 수 있을까? 처세술 코너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한옥들을 모두 철거해 버리고 고층건물을 짓는 모습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사람은 가장 자신다워졌을 때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턱대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만 휩쓸려 다니기 보다는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그것을 어떻게 변형시켜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 원리는 한의학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이 정체성을 잃고 무비판적으로 서양의학의 탈을 쓰게 될 때 위와 같은 실수는 되풀이 될 것이다. 동양의학적인 마인드가 없는 서양학자들의 연구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적인 문화를 체득해 온 우리가 그들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디 자연·인간 친화적인 한의학적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 창조적으로 현대 패러다임과 접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