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님이 우리 한의원을 찾은 것은 2월 말입니다. 손발이 차갑고 저린 증상을 치료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손발이 너무 저려서 자다가 깰 정도로 힘들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난감한 일이었지요. 손발이 차가운 증상은 대개 비위(脾胃)가 약해서 온다고 판단하고 있고, 비위(脾胃)를 튼튼히 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P님의 증상을 호전시키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된 것입니다.
P님께서 빨리 낫게 해달라고 재촉을 하거나 엄포를 놓으신 것도 아닌데 저 혼자 부담을 느꼈던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P님의 상태를 보니 손발이 차가운 것을 치료하려면 녹용보약을 써야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녹용보약은 상당히 고가이기 때문에 P님이 경제적으로 힘들어 할까봐 고민이 되었습니다. 비용이 부담되어 치료를 포기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 혹시라도 저의 진찰을 불신하셔서 “저 한의원 갔더니 비싼 약을 먹으라고 하던데…”라는 말씀을 하셔서 동네 주민들에게 우리 한의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심으실까봐 불안했던 것입니다.
이 환자에게는 이런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권유함에도 불구하고 환자분들이 오해하고 안 좋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선배원장님들께 들었기 때문에 참으로 불안했던 것입니다. 낫기 위해 꼭 필요한 진료방법을 선정하였으나 환자의 주머니 사정이 허락치 않아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배를 채우려고 비싼 진료를 권하는 괘씸한 상황이라고 오해받을까봐 걱정하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고 슬픕니다.
결국 망설임의 근원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분을 치료해 드리기 위해서는 녹용보약을 써야만 하겠는데, 혹시 오해를 하고 거절을 하시면 어떻게 하나? 오해를 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한의원에 대한 안 좋은 말씀을 하고 다니시면 어떻게 하나? 만약 내 진찰 결과를 받아들여 치료에 임한다 하더라도 별다른 차도가 없다면 난감해서 어떻게 하나? 나는 아직 임상 초보인데,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면 어떻게 하지? 등등의 불안함이 제게 고민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P님은 제가 처방한 녹용보약을 열심히 복용하셨고, 더욱 다행히도 3일만에 다리가 저리는 증상이 호전되었습니다. 게다가 처방을 복용하신지 보름만에 손발이 차갑고 팔다리가 저리는 증상이 말끔히 사라지셔서 저는 P님께 치료종결을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다 나으셨으니 이제 한의원에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어찌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야호!!!”하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었던 부담감과 불안감이 말끔히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더욱더 뿌듯했던 것은 그로부터 1달 반 뒤였습니다. P님이 운영하던 식당에서 일하는 L님께서 건강 관리를 해달라며 찾아오셨습니다. 큰 교통사고를 당하신 뒤 온 몸이 불편해지신 L님께서는 자신의 컨디션을 관리해 줄 의사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P님의 호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에 대한 신뢰가 생긴 L님께서는 6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제게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치료라기보다는 전반적인 건강 관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던 와중 2도 화상을 입는 사고도 겪으셨고, 그 화상조차도 제게 치료를 받으신 L님. 저조차도 놀랄 정도로 빨리 화상이 치료되신 L님.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한 원장을 깊이 신뢰해 주시는 것도, 아직 남아있는 큰 불편함보다는 조금씩 컨디션이 나아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주시는 것도, 제가 정해 드린 치료 간격을 어기지 않고 내원해 주시는 것도,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고 있으신 것도 감사하기만 합니다.
나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뢰하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