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로 원장
천안 약선당한의원<한의학당 회장>
한의학 발전 위해 ‘폐쇄·신비’이미지 탈피해야
명확한 언어·반증가능한 ‘한의학’탈바꿈 필요
여러 해 전 어떤 학생의 글을 보았습니다. ‘한의학은 음양오행을 언어로 삼음으로써 죽어버렸다’ 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의 제목이었지만, 그 학생의 고민을 일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음양오행 또한 한의학을, 인체를,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방법의 하나일 뿐인데, 당시 그 학생의 눈에는 더 이상의 교정을 불허하는 완성된 이론으로서의 음양오행과 한의학이 보였던가봅니다.
‘진리’의 속성으로 개방성, 미완결성, 잠정성을 이야기합니다. 진리란 새로운 이론의 다양한 도전과 반증에 항상 개방적이어야 하며, 어느 순간이라도 완결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현재의 진리도 잠정적인 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학생이 ‘한의학은 죽었다’라고 표현한 것은 새로운 이론의 등장과 보완을 거부하는 한의학에 대한 사형선고였을 것입니다. 지난 칼럼에서 한의학의 내부, 외부적인 사정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안주해버린 이유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한의학의 이런 모습을 보았던 것이겠지요. 한의학이 진리이기 위해선 결코 폐쇄적일 수 없습니다. 또한 신비적이어서도 안됩니다.
어느 한의사가 있습니다. 새로운 침법을 제시합니다. 그 침법의 근거는 오랜 동안의 수련으로 자신의 몸을 ‘관(觀)’하여 얻은 깨달음입니다. 혜안이 열려 보게된 경락입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스승이시여, 어찌하여 백내장에 이런이런 혈자리를 취하라 말씀하시는지요’. 그는 제자들에게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과연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내가 느끼는 경락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한 명의가 있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보았던 그 약초를 찾아야겠다며 산을 오르는 명의와 뒤따르는 제자들... 왜 그 약초이어야만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 명의는 제자들에게 약만 남기고 갔습니다. 어느 제자도 그 스승의 경지를 다 보지 못하였고,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도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진리로서의 한의학을 보완할 새로운 이론은 당연히 진리의 속성을 가져야합니다. 위의 두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지만 만약에 실재한다면 치험례로서의 의미가 있을 뿐, 한의학에 덧붙여질 이론이 될 수도 없고, 진리에 반하므로 한의학이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
다시 학생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학생은 음양오행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음양오행으로 무엇이든지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즉 반증의 가능성이 없는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그러한가요? 그 학생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음양오행에서 한의사가 취해야 할 것은 관계론적 시각이지 그 언어나 규칙이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면 그 언어는 보다 명확해야하며, 규칙은 반증 가능해야한다’
한의학의 장점이며, 서양의학의 한계를 명확히 꼬집을 수 있는 것은 한의학의 관계론적 생명관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한의학 순환구조론 또한 그와 같은 관계론적 생명관으로 한의학을 바라보는 또 다른 언어체계입니다.
한의학 속에 녹아있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체의 모습을 인체구조라는 바탕 위에 좀더 사실적인 언어로 재현해 보고자하는 이론입니다.
이제 순환구조론이라는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바닷바람 한번 쐬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