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로 원장
천안 약선당한의원<한의학당 회장>
해부생리학과 한의학의 만남
전체론적 시각서 최신서적, 인체 이론 등 선점
과거 돌아보고 미래 준비해 확고한 영역 구축
한의학과 해부생리학은 언뜻 보면 전혀 동떨어진 관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학사를 통해서 한의학을 되돌아보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도 인체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구조물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개 장부의 길이와 무게, 모양이 기술된 ‘난경 42難과 43難’, 그리고 중국의 명나라 때에 제작된 해부도인 ‘歐希范五臟圖’를 보면 한의학에서도 해부를 통해 인체구조물을 인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의학은 더욱 구체적인 해부를 통한 인체의 구조를 인식하는 쪽으로 발전하기 보다는 인체의 내부에 있는 구조물의 상호 연관관계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발전합니다.
인체 구조물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진 서양의 해부생리학 지식과 한의학이 만날 수 있었던 기회가 2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명말(16세기) Terretitus의 人身槪說과 DiegoRho의 人身圖說 등이 번역되어 소개되면서 서양의학이 유입된 때입니다. 그러나 당시 질병을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 서양의학은 전통의학(한의학)에 비해 미비하므로 명말에 유입된 서양의학은 일부 지식인층에게만 소개되고 한의학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두 번째 기회는 청말(19세기) 선교사, 외국인 의사 등을 통하여 서양의학이 유입되는 시기입니다. 이때의 서양의학은 현미경의 발명에 힘입어 미세해부학과 외과 수술법이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서양의학이 기존 한의학에 비하여 넓은 치료범위와 한의학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신속한 치료효과를 제공하게 됩니다.
명말 서양의학이 유입되었을 때와는 달리 청말 서양의학의 유입은 당시 한의학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청대 말에는 전통의학자들 중에서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관계를 고민하는 중서회통학파가 출현하게 됩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인체를 다루는 기술을 가진 서양의학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주류학문이었던 한의학이 서양의학에 의해 위태롭게 된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중서회통학파들은 의학적인 일정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역사의 일부분으로 사라진 것처럼 인식될 수 있지만, 이들이 고민한 성과들은 현대 중의학의 발판으로 마련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당종해, 왕청임, 장석순 같은 중서회통학파 의가들의 고민은 한 세기를 건너뛰어 아직까지 이 땅의 한의사들에게까지 커다란 짐이 되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한의학을 누구나 쉽게 접하고 인정해주는 상황이라면 고민하지 않았어도 되는 일일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서양의학이 밝혀놓은 해부, 생리학적 정보들을 가지고 한의학이 가지는 인체관을 재조명하여 장중경의 인체관, 허준의 인체관, 이제마의 인체관 등 역대 의가들의 인체관들을 치열하게 고민하여 과거의 한의학을 돌아보아야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 한의학의 영역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전체론적인 시각에서 인체를 다루는 최신 서적, 이론들을 한의사가 주도하는 한의학이 선점하여야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을 통하여 물질물명 중심인 서양 학문 사이에서 표류할 것만 같은 한의학의 위치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