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구조론의 탄생 2
이학로 원장
천안 약선당한의원 <한의학당 회장>
인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해부생리학은 하나의 방법이며, 한의학역시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인체를 이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해부생리학을 바탕으로 좀 더 빠르게 인체 전체의 밑그림을 그리고 이해한 후 거기서 한발 나아가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테두리를 넓히는 일이 후학들이 할 일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서양의 과학이 밝혀놓은 구조를 가지고와서 한의학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죽어있는 해부학에 생명의 순환을 불어넣는 일이죠. 한의학 순환구조론 역시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서양의 과학이 밝혀놓은 인체의 구조에 한의학의 이론을 대입시켜서 생동하는 4차원의 전체를 재구성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먼저 한의학 순환구조론이 눈을 돌린 것은 각각의 구조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줘서 생명현상이 일어나게 해주는 순환체계입니다. 인체에는 크게 혈관계, 림프계, 신경계의 3가지 순환체계가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혈관계와 림프계를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즉, 체액순환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이야기입니다. 물은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현상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물을 빼놓고 인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한의학의 이론 전체를 인체에 분포한 물을 다루는 기술로 포장할 수는 없지만, 한의학의 치료법들은 대부분 물을 다루게 됩니다. 汗, 吐, 下 법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순환구조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의학의 치료법이 체액순환체계를 다루는 것이라면, 우리 몸의 증상도 결국은 체액 순환의 어그러짐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인 것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구조를 기능과 연관시켜서 알 길이 없었으므로 체표에서 드러나는 증상을 열심히 관찰해서 인체내부의 상황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시각각 변화하는 증상의 카테고리를 하나의 묶음으로 엮어서 한의학 고유의 ‘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처방 역시 이와같은 배경에 근거해서 투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체를 구성하는 70%에 달하는 체액은 구조를 타고 움직입니다.
체액이 순환하는 대표적인 통로(구조물)는 바로 동맥과 정맥을 포함하는 혈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우리가 익혀야 할 것은 해부학속의 혈관계입니다.
그중에서도 정맥계의 순환을 잘 보면, 우리가 막연하게 열린계라고 생각하기 쉬운 혈관계가 철저히 폐쇄순환계이며, 각각의 장기들은 방들로 나뉘어 있고 혈관계는 방에 보일러의 호스를 깔아놓은 것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띄게 됩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上中下와 해부학의 정맥순환계의 폐쇄순환경로가 일치(上과 두면, 상지부의 혈액순환, 中과 폐순환의 일부, 소화기순환의 대부분, 신장순환의 일부, 下와 하행결장, 일부 골반강내의 혈액순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의 거대순환체계와 한의학의 연관성입니다. 서양의학이 해부생리학만을 다루지 않는 것처럼 한의학의 이론이 단지 체액순환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순환구조론은 서양의학이 해부생리학이라는 인체의 구체적인 사실을 토대로 의학을 전개하는 것처럼 전통적인 한의학을 체액생리라는 인체의 구체적인 사실을 토대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