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로 원장 천안
약선당한의원 <한의학당 회장>
순환구조론의 탄생 3
서양의학에서 해부학은 크게는 육안해부학과 현미경해부학으로 나누고, 다시 육안해부학은 계통해부학과 국소해부학으로, 현미경해부학은 조직학과 세포학으로 분류합니다. 육안해부학은 한의학의 上中下와 연관지을 수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현미경 수준의 미세순환체계가 있습니다. 미세순환체계에서 인체를 구성하는 생리학적인 기본단위는 세포이며, 세포대사를 유지하기 위해 혈액순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혈관과 세포사이, 세포와 세포사이에 조직액이 있어서 완충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미세순환체계 또한 한의학에서 말하는 內外中과 연관(外와 혈관의 혈액이동, 中 과 간질액 또는 조직액의 작용, 內와 세포대사의 작용)이 있습니다. 거대순환체계와 미세순환체계는 인체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신경, 호르몬, 면역 등의 다양한 기전에 의해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생리기전들은 외부의 조건에 맞추어 반응하고, 그 결과로 혈관을 수축시키거나 확장시켜서 각 장부의 기능을 조절합니다. 이때 어느 부분은 혈액의 증가에 따른 압력의 증가현상이 나타나거나 반대로 혈액의 감소로 인한 압력의 감소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경우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우리가 四診으로 관찰하는 증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환구조론에서는 질병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압력의 편차입니다. 압력의 편차는 체액의 편중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체액의 편중을 해소하는 방법은 한의학의 대표적인 치료법인 汗吐下법입니다. 거대순환체계의 한 부분에 속하는 특정 부분의 미세순환체계의 어그러짐으로 인해서 전체 순환의 불균형이 생기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압력의 편차가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압력의 편차와 체액의 편중에 의해서 나타나는 질병의 대부분은 기질적인 이상을 초래하기에 앞서 거의 반드시 기능적인 이상을 발현합니다. 이처럼 나타나는 기능적인 이상은 체액의 흐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구조를 따라 움직이며 압력과 관련된 증상을 드러냅니다.
증상이 구조를 따라 발현된다는 것은 그 증상이 일정한 규칙성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며, 이들 증상이 하나의 묶음을 이루어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 한의학은 ‘證’이라 하였고, 이들 ‘證’은 체액이 순환하는 구조물을 따라서 나타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異病同治와 同病異治의 이론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국소적인 병변의 부위가 다르더라도 체액의 편중이 같은 방향으로 이루어지면 같은 치법을 쓰고, 병변의 부위가 같다하더라도 체액의 편중 방향이 다르면 치법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미세순환체계를 형성하는 모세혈관과 세포막은 삼투압과 능동수송에 의해서 물질이 이동합니다. 국소부위의 병변은 삼투압과 능동수송에 영향을 주어 체액의 흐름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체액의 흐름장애는 혈액순환의 장애를 일으키게 되고, 나아가 각각의 장기에 공급되는 체액 량에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내부에서 일어난 이러한 체액의 변화는 외부적으로 각장기가 위치한 영역에 압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압력의 변화는 체액의 편중이며 체액은 혈관과 림프관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증상은 혈관과 림프관의 분포를 따라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구조물을 벗어나는 체액의 흐름은 상상할 수 없으며, 따라서 증상은 일정한 패턴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질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발자국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