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 한의대 한방내과 교수 장인수
‘능력·노력·지원’ 갖춰진 하버드 의대 역량 몸소 느껴
NEJM측, ‘한국 연구자에 균등한 기회 보장’ 밝히기도
필자는 지난 9월에 심포지엄에 참석차 출국하여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의대를 방문했다. 그 때 세계적인 의학저널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이하 NEJM)의 편집실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필자는 저명한 의학저널인 NEJM의 편집실을 방문한 경험을 지면을 통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알게 된 재미난 점은 하버드 의대는 부속병원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신에 보스턴 시내의 6~7개 정도 되는 유명한 병원이 연결되어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의 이름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으며, 이 병원들은 하버드 의대의 어엿한 한 식구로 함께 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 병원의 진료 교수나 인턴, 레지던트 등의 전공의도 모두 하버드 의대 소속이다. 그렇지만 이들 병원과 하버드 의대의 재정 구조는 각기 다르다고 한다. 하버드 의대 학부 학생들(MD)은 711명, 치과대학(DMD) 학생은 137명, Ph.D 과정은 590여명 정도라고 한다. 하버드 의대는 전세계 연구비의 블랙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세계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연구 지원을 받고 있다.
하버드 의대의 또 다른 재원은 동창들의 기부금이다. 미국 사회의 주류층을 형성하는 하버드 의대 동문들이 모교에 기탁하는 기부금도 이 대학의 든든한 재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창회의 위상도 대단해 막강한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 의대 학장이 있는 본부건물의 제일 위층에 동창회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점도 한국 사회와 다른 차이점일 것이다.
하버드 의대 건물을 둘러보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보스턴의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다. 도서관은 원래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공간인데, 박종배 박사의 힘(?)을 빌려,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도서관 6층에 NEJM 편집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정작 6층에 올라갔을 때에는 편집실을 알리는 안내 표지가 하나도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 다시 출입구를 알아낸 다음, 약간 복잡한 출입구를 지나 편집실로 들어섰다.
조용한 편집실 입구에는 여직원이 자리에 앉아있다. 박종배 박사가 여직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기다리니, 잠시 후에 키가 크고 잘 생긴 백인 남자가 나타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NEJM의 편집 실무책임자이자, 편집실의 제3인자인 Senior deputy editor로 Campion이라는 사람이었다.
박종배 박사는 그에게 NEJM에 관심이 많이 있으며, 여러 가지 호기심에서 여기 왔다고 의사를 밝혔고, 그는 친절하게도 우리를 편집실 여기저기를 구경시켜주었다. 세계적인 저널인 NEJM의 권위에 비해서 편집실은 예상외로 작고 조용했다. 거대한 규모와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신문사 편집실 분위기를 예상했던 필자에게는 다소 뜻밖이었다. 그는 일반 사무 Business를 담당하는 부서와 직접적인 출판을 담당하는 부서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이곳의 규모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NEJM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의학저널이다. NEJM이 얼마나 대단한 저널일까? 과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흔히 Science나 Nature, 또는 Cell과 같은 저명한 저널에 논문이 게재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친다. 저널의 순위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피인용지수(Impact factor : I.F.)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논문의 척도로 삼고 있다.
NEJM은 2003년을 기준으로 Thomson ISI에서 관리하고 있는 SCI(Science Citation Index)에 등재된 국제학술지 중에서 피인용지수(I.F.)가 34.833으로 NATURE (30.979), SCIENCE (29.162), CELL (26.626)보다도 높고, 미국의학회가 발간하는 저널인 JAMA(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21.455)보다도 월등하게 높다.
Campion은 NEJM에 대해서 1차 원고의 게재율은 7% 정도이며, 전체 논문의 58%가 미국이외의 지역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또 논문 1편당 평균 12회 정도의 정밀한 교정을 거친다고 알려주었다. 아울러 전세계에서 기고되는 각 나라의 영어표현을 미국식 영어로 다듬는 작업도 같이 한다고 한다.
NEJM은 특히 편집방침이 보수적인 편이며, 게재가 어려운 저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연구자들에게도 균등한 기회가 있으니, 기고에 주저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편집실 방문을 마치고 도서관 건물을 빠져나오니,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다. 하버드 의대의 건물은 마주보는 네 동이 있고 이를 Quadrangle라고 부른다고 한다. 100여년 전에 지어진 대학 본관건물 6층 로비에서 Lipton 홍차 한잔을 마시는 동안에 복도에 걸린 족자가 눈에 들어왔다. 족자에는 한문으로 “繩鋸木斷 水滴石穿 學道者,須加力索(새끼줄 톱으로 나무가 잘리고, 물방울이 떨어져 돌을 뚫는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힘써 구하라)”라는 채근담(菜根譚)의 유명한 구절이 쓰여 있었다. 여기가 하버드 의대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한 족자의 글귀를 읽으면서 또다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오늘날 미국이 왜 전 세계의 학문을 주도하고 있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학교는 쉬지 않는 절차탁마의 노력으로 세계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능력과 노력과 뒷받침의 삼박자가 이끌어내고 있는 하버드 의대의 힘을 보면서, 11개 한의과대학이 모두 사립대이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 한의학의 연구 환경을 생각할 때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환경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발은 지면(地面)에 붙이되 시선은 하늘을 향하라”는 말이 있다. 주어진 현실과 여건 속에서 큰 이상을 품고 노력하라는 뜻일 것이다. 이번 하버드 의대와 NEJM 편집실 방문은 필자에게도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