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교과과정 특성화 가장 시급”
안 규 석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장
의료시장 개방은 언제부터 이루어지느냐가 문제이지 개방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농산물이 개방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우리가 현 시점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의계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합해서 대처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의료시장 개방의 대처를 위해 그동안 한의사협회에서는 WTO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세계 각국의 교육 평가 방법들을 참고하여 ‘한의과대학 평가 지침’을 마련하였으며, 이런 것을 바탕으로 지난 6월23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재단법인인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이 설립인가를 받았다.
평가원 원래의 목적인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한의사협회, 전국한의과대학, 한방병원협회, 한의학회, 개원한의사협의회 등이 모두 힘을 합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해야할 과제들은 무엇인가 알아보자. 우선 중국이나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우리의 한의학 교육과정을 흉내 내기를 시작하고 있으므로 교과과정의 특성화를 이루는 것이 시급하다.
이것은 우리의 내부 역량 강화 및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초가 될 것이다. 교과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다뤄야할 문제는 한의학의 창조적 계승을 위해 정체성을 잘 반영하면서도 현대의 새로운 지식을 지혜롭게 접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게 하고, 기초와 임상의 가교역할을 하는 과목이나 과목 상호간의 연계나 전체를 종합할 수 있는 지혜를 줄 수 있는 과목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특성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동의보감, 방약합편, 동의수세보원, 사암침법 등의 특징적 의학관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분야는 실력 있는 한의사를 배양할 수 있는 임상실습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침의 경우만 하더라도 정경침법, 사암침법, 동씨침법, 체질침법 등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게 교육내용에 포함시키는 등 변화를 시도할 때로 보인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미 전공선택과목으로 포함시켜 강의가 되고 있다.
서양의학과목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수과목으로 이수하게 하여야만 한다. 그 이유는 외국의 어떤 나라도 아직까지는 전부 필수로 채택하지 않고 있으므로 외국에서 한의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한국에서 한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할 자격을 심사할 때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일부대학에서 서양의학과목을 전공선택으로 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있다고 하니 이것이야 말로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사안인 것이다.
교육 연한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현행 6년제보다는 4+4의 한의학 전문대학원 체제로 가야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현재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교도 받아들이지 않는 제도이고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매우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전체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이 4+4로 간다면 우리도 고려해야하나 지금의 경우처럼 선택적이면 고교 졸업 후 바로 갈 수 있는 길을 일부러 둘러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도 기초연구를 위해 남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4+4로 간다면 더욱 없어지고, 더구나 예과과정이 없어져서 한문 의학사 등 한의학 수학을 위한 준비과정이 대부분 없어지게 될 것이다.
대학의 경우 앞서 말한 교과과정을 충실히 교육하고 세계적인 연구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교육 여건은 시설과 교수요원이 중요하다. 시설에서는 교수와 교수요원들의 연구실, 실험실 및 기타 부대설비 등이 갖추어져야 하고, 교수는 교실별 5명이상이라야 A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평가 지표는 대학교육협의회와 의학계열 평가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항이다.
다시 말해서 현행 의과대학 평가 지표를 대부분 그대로 한의과대학에 적용될 것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되겠지만 지금까지 별 투자하지 않고 지내왔던 타성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모든 국민들에게 그 대학의 실정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이는 먼 장래를 위해 당분간 감수해야할 고통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에는 한의사 국가고시에 관한 것으로, 국가고시문제의 방향은 바로 대학의 교육 방향 및 우리의 의권과도 직결되므로 신중히 접근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나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합의해서 진행해야 할 분야는 잠깐 논의되었다가 중지되어 있는 한방 진료행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진료지침서를 검토하고, 그것이 합의되면 그에 따른 국시의 방향도 바꿔야 할 것이다. 물론 임상 실기나 현대의료기기에 관한 이해 등과 연계된 문제들도 자연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며, 점진적으로 지금보다 수준이 높은 문제들이 많이 첨가되어야 하고 합격률도 지금보다 떨어질 것을 예상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한의사가 된 후의 재교육 문제 즉 보수교육, 전문의 교육 등에 관한 것은 한의사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아울러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될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의 임무가 막중하다고 하겠다. 평가원은 협회, 대학, 병원, 학회 등 한의계 전체의 단합된 힘의 결집에 힘입어 이 어려운 의료시장 개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