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예담한의원 정원조 원장
실제로 나는 전직(前職)으로 신발을 팔았던 한의사 한 분이 운영이 잘 안 되자 결국 한의원을 접고 다시 신발가게 주인으로 돌아 간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정식으로 한의대를 나온 한의사들이 미국에 진출한 경우 매우 뚜렷한 차이점으로 부각되어 실력을 인정받는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본인의 경우, 한국에서 한의대를 졸업하고 개업하다 온 경력 때문에 이 지역에서 유일한 진짜 한의사라는 말을 듣고 있다.
시카고에 한국서 한의대를 나온 한의사가 한 명뿐이기 때문이며 한국서 한의대 나온 사람은 실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교민사회에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인건비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여기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여직원 한 명을 풀타임으로 쓰려면 한국의 부원장 월급을 주어야 한다. 그러니 두 세 명의 직원을 쓴다는 것은 영세한 한의원으로서는 꿈도 못 꾸는 일이 된다.
한편 미국은 아직 한방의료가 보험으로 커버되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한의원의 내원고객을 크게 감소시키는 원인중 하나가 되고 있다. 침 수가도 일회에 70불 받는 한의원으로부터 덤핑으로 10불 받는 한의원까지 다양하다. 듣기에 LA 전체 한의원 중 6~70%가 월 페이먼트도 제대로 못 내는 수준에 있으며 이는 미국 한의원의 영세성을 매우 극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미국으로 진출하려는 한의사들로서는 실망을 안겨주는 정보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글의 목적은 후배 한의사들의 미국진출을 재고케 하기 위함이 아니고 오히려 포화상태에 있는 국내 한의사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무하려는 것이다.
본인은 일 년 전 미국에 진출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하였으며 하루라도 빨리 시작한 한의사로서 나와 같은 길을 가려는 후배 한의사들에게 미국 진출에 관한 몇 가지 유용한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미국이나 해외에 진출하려면 현지 한국교민만 상대하는 한의원이 아니라 본토인을 고객층으로 삼는 현지화 한의원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이라면 미국인을 주 고객 타겟으로 하는, 미 주류층을 뚫고 들어가는 한의원을 개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포화상태인 좁은 교민사회에서 피차 나눠먹는 또 하나의 한의원으로 가세할 것이 아니라 무한히 열려 있는 주류시장에서 날개를 펴겠다는 뜻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 등 외국어는 필수적인데 미국진출을 고려하는 한의사라면 한국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현지에 와서 많은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언어는 단시간 내에 습득되지 않으며 특히 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할 정도의 영어는 몇 달 열심히 공부한다고 되지 않는다. 영어가 안 되면 결국 교민 환자만 상대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 경우 영세 구조 속에서 결코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미국 진출을 계획하는 한의사들이 유념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임상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술한 바처럼 이곳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의료인으로서의 자질이 낮고 전문화된 실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구조 속에서 어느 정도의 임상능력을 갖춘 한의사는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한의대를 나온 한의사라면 희소성으로 인해 기존 한의사들과 차별성이 부각되어 임상 능력을 인정받는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미국엔 한국처럼 진료기술이나 진료과목, 진료대상 등에 특화를 내세우는 한의원이 아직 거의 없으므로 이 방면에 눈을 돌리면 매우 유리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다.
한국에는 사상의학, 체질침, 추나 등 진료기술을 특화하거나 아토피, 비만, 비(鼻)질환 등 특정질병을 전문으로 하는 특화단계를 지나 소아나 부인 층 등 진료대상까지 특화하는 단계로 발전되고 있지만 미국엔 아직 한의원의 이런 전문화 단계까지 와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원간 미국 내의 한의원 시장도 한국 내 상황을 닮아가게 될 것이란 점이다. 한국 한의원들의 특화현상은 결국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서 미국으로 진출하려는 한의사는 영세한 미국의 기존 한의원 상에 대해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최고학력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 갈 수 있는 한국 한의대를 졸업하여 양의사와 어깨를 나란히 경쟁했던 한국 한의사라면 미국의 열악한 한의원들과 비교대상이 되거나 경쟁대상이 되는 것조차 거부해야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황이 영세할수록 이곳으로 진출하려는 한국 한의사들에게는 그만큼 가능성이 더 넓고 크게 열려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이것은 실제적인 사실이다.
좁은 국내 땅에서 나날이 증가하는 동료 한의사들과 의사, 약사 심지어 건강원, 건강식품점까지 가세한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국내 한의사라면 아직 이 곳 미국은 그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 있다 할 수 있다.
자랑 같아서 본인의 말을 하기 어렵지만 본인은 작년 2월에 도미, 익월인 3월에 개업하였는데 한국에서 직원 5명을 두고 개업했던 한의원 수입을 개업한지 불과 수개월 만에 따라 잡고 개업 만 일 년 후인 현재는 국내에서 개업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높은 진료 매출을 올리고 있으니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진출한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
미국 속담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더 많이 줍는다고 말도 있고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다.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굳이 한국 땅만 고집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55세의 나이에도 결단하여 성공하는 마당에 큰 뜻과 젊음을 함께 가진 한의사라면 보다 넓고 큰 세상에 눈을 돌려 자신의 원대한 뜻을 펼칠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