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초 선생님은 본적이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82번지이며 출생지는 경기도 가평군이다. 부친께서 위장질환으로 다년간 병상에 계셨을 때 한약을 다려드리면서 여가가 있을 때마다 의서를 보기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되어 한의학에 취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1943년경에 숨은 한의학자로서 명성이 가장 높았던 李副尉昇翊(副尉=현 군인 직위로 중위를 말함) 선생님으로부터 한의학 수학 후 비로소 의학의 경로와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1950년에 東洋大學館(전 서울한의과대학)을 제1회로 졸업하였으며, 1952년 5월에 서울한의과대학 교수로 피임돼 10여년간 봉직하였다.
1956년 3월 한의사국가시험 위원을 10여년간 역임하였으며 1957년 11월8일에 문교부로부터 제2회 한의과대학 교수 자격증을 金長憲·朴性洙 선생님과 함께 받았다.
문교부 대학 교수 자격 검정위원회에 통과된 논문은 ‘문헌상에 나타난 고대 위생학의 동양의학적 고찰’이었다.
東洋醫藥大學 漢醫學科에서 한방진단학 脈診강의를 하였다. 1959년에 동양의약대학 동창회 제2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홍성초 교수님은 서울한의과대학 창립초부터 교수로서 한의학 강의에 종사하다가 1960년에 와서 교수직에서 퇴임하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자택에서 仁壽堂漢醫院(첫개원은 1922년 5월)을 개원하여 왔으며 1973년 8월9일 상오 10시 자택에서 85세로 별세했다. 장례식은 8월11일 상오 9시에, 장지는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구암리 선영하이다.
李副尉昇翊 선생으로부터 처방을 받아 洪性初 선생님이 임상에 활용한 것을 소개한다.
①香朮散 (蒼朮 陳皮 半夏 厚朴 白茯령 只實 三稜 逢朮 柴胡 各一돈. 玄胡索 丁香 各八分. 白頭久 草果 各七分. 生薑三片.
治 胃痙攣, 膽石症, 膵腸染 등. 劇痛疾患에 特效의 效率을 나타내는 藥이다.
②淸肝消毒飮(香附子二돈. 益母草 山査 各一돈五分.
當歸 瓦松 柴胡 澤瀉 各一돈 木通 車前子 赤茯령 生地黃 黃芩 山梔子 草龍膽 甘草 各五分 治 子宮癌 初期 及 一切 子宮炎症痛治方 이다.
洪性初 선생님은 治驗을 통하여 후배들에게 주의시키고 싶으신 말씀은 初驗을 통하여 임상을 하고 있는 분에게 警鍾이 될만한 古醫 李정翁의 習醫規格中에서 一部 訓辭의 文句를 紹介하면
「欺則良智日以 蔽塞, 而醫道終失, 不欺, 則良智日益發揚, 而醫道愈昌, 欺, 不欺之間 非人之所態與也」
「거짓이 있으면 良智가 날로 蔽塞하여 醫道를 마침내 잃을 것이오.
거짓이 없으면 良智가 날로 發揚하여 醫道가 더욱 빛날 것이니
거짓이 있고 없는데 있을 따름이오.
사람이 能히 할바는 아니니라.」
洪性初 교수님의 漢方診斷學脈診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체질이 허약하여 건강하지 않으신데도 후학도를 위해 열심히 강의하시는 모습에서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홍 교수는 소년시절부터 先天的으로 體質이 虛弱하여 모든 질환에 신음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藥物의 常服과 攝生의 주의를 얻은 효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60세 이후로는 점차적으로 건강이 小康狀態에 있었다고 한다.
홍 교수는 周到錦蜜한 思考와 硏究力을 지닌 德望과 흠모받는 元老學者로 고매한 仁格者로 斯學界의 師表로서 존경을 받았다.
필자는 50여년전 대학시절에 서울시 종로에 있는 종로예식장 근처 옆골목에 위치하고 있는 仁壽堂漢醫院 홍 교수님을 새해 인사차 방문하였다.
한의원은 전통 한옥집이었다. 종사자의 안내를 받아 진찰실에 들어서니 홍 교수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큰절을 하니 밝은 표정과 환하게 미소짓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스승님께서는 名醫가 되기 위해서는 한의학 전과목을 열심히 공부를 하여야만 하며 기초의학의 學理體系와 臨床實際에서 교량역할을 하는 것이 診斷인바 四診法은 물론이지만 특히 脈診과 腹診 舌診의 重要性을 강조하시었다. 또 醫者는 높은 人格을 갖추고 禮儀를 지켜야만이 患者로부터 신뢰와 존경받는다는 말씀을 下敎하여 주시었다.
한의신문에 한의학 개척자 기사를 보고 멀리 미국 LA에서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뜻밖의 전화라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재차 ‘李貞圭 한의사입니다’ 라고 하여 알아보았다. 이정규 선배님 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반갑고 기쁜 마음이었다.
在京회원으로서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한성단한의원 개원중 뜻한바 있어 미국으로 이민가시었다.
1989년도에 미국로얄 한의과대학 엄한광 학장의 초청으로 변정환 경산대학교 총장, 조용안 대한한의사협회장, 필자와 함께 개교 10주년 기념 동양의학 국제학술대회 참가하여 전야제 석상에서 이정규 선배님을 만난 이후 전화로 육성을 들으니 너무나 반가웠다.
李貞圭 선배님은 한의신문에 ‘한의학 개척자’ 기사를 보고 朴鎬豊 학장, 金長憲 한의학과장, 洪性初 교수님의 존함을 보고 옛스승님을 회상할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리움과 반가운 마음에서 전화를 걸었다며 한의사협회일도 보랴 의료봉사도 하고 바쁜 가운데 글도 쓰랴 참으로 좋은일 많이 한다면서 격려와 칭찬을 하여 주시었다.
홍성초 선생님의 脈診과 臨床지도를 많이 받았다며 존경을 하고 있으며 1950년대 학창시절을 회고하였다. 이역만리 미국에서 한의학 세계화에 앞장서고 계시는 李貞圭 선배님의 건강장수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