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19.5℃
  • 맑음13.5℃
  • 맑음철원13.3℃
  • 맑음동두천15.1℃
  • 맑음파주14.9℃
  • 맑음대관령11.8℃
  • 맑음춘천13.1℃
  • 맑음백령도14.8℃
  • 맑음북강릉18.4℃
  • 맑음강릉19.2℃
  • 맑음동해19.6℃
  • 맑음서울16.2℃
  • 맑음인천15.6℃
  • 맑음원주13.6℃
  • 맑음울릉도17.0℃
  • 맑음수원15.5℃
  • 맑음영월13.4℃
  • 맑음충주14.5℃
  • 맑음서산14.5℃
  • 맑음울진19.3℃
  • 맑음청주15.1℃
  • 맑음대전15.5℃
  • 맑음추풍령14.1℃
  • 맑음안동13.6℃
  • 맑음상주16.8℃
  • 맑음포항17.0℃
  • 맑음군산14.9℃
  • 맑음대구16.9℃
  • 맑음전주16.2℃
  • 맑음울산17.3℃
  • 맑음창원18.6℃
  • 맑음광주14.8℃
  • 맑음부산17.9℃
  • 맑음통영17.4℃
  • 맑음목포14.0℃
  • 맑음여수15.6℃
  • 맑음흑산도16.7℃
  • 맑음완도17.9℃
  • 맑음고창15.0℃
  • 맑음순천15.9℃
  • 맑음홍성(예)16.8℃
  • 맑음14.4℃
  • 맑음제주18.0℃
  • 맑음고산17.8℃
  • 맑음성산18.1℃
  • 맑음서귀포18.9℃
  • 맑음진주14.9℃
  • 맑음강화16.5℃
  • 맑음양평13.5℃
  • 맑음이천14.6℃
  • 맑음인제12.6℃
  • 맑음홍천12.7℃
  • 맑음태백13.5℃
  • 맑음정선군10.4℃
  • 맑음제천12.0℃
  • 맑음보은13.1℃
  • 맑음천안14.6℃
  • 맑음보령17.1℃
  • 맑음부여13.4℃
  • 맑음금산13.6℃
  • 맑음14.7℃
  • 맑음부안15.7℃
  • 맑음임실13.5℃
  • 맑음정읍16.1℃
  • 맑음남원13.0℃
  • 맑음장수12.3℃
  • 맑음고창군15.4℃
  • 맑음영광군15.3℃
  • 맑음김해시17.1℃
  • 맑음순창군13.3℃
  • 맑음북창원17.6℃
  • 맑음양산시17.9℃
  • 맑음보성군17.1℃
  • 맑음강진군15.8℃
  • 맑음장흥15.5℃
  • 맑음해남15.8℃
  • 맑음고흥17.9℃
  • 맑음의령군15.5℃
  • 맑음함양군14.4℃
  • 맑음광양시16.6℃
  • 맑음진도군16.2℃
  • 맑음봉화14.0℃
  • 맑음영주14.1℃
  • 맑음문경16.2℃
  • 맑음청송군15.5℃
  • 맑음영덕17.1℃
  • 맑음의성14.9℃
  • 맑음구미17.5℃
  • 맑음영천16.0℃
  • 맑음경주시17.7℃
  • 맑음거창13.9℃
  • 맑음합천16.7℃
  • 맑음밀양16.4℃
  • 맑음산청14.3℃
  • 맑음거제17.9℃
  • 맑음남해15.4℃
  • 맑음18.4℃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9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20

김남일의 儒醫列傳 120

B0112009021736123-1.jpg

醫術로 堂上官까지 오른 儒醫



1487년 7월 12일자 『成宗實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金興守는 醫術로 지위가 堂上이 된 것이 이미 그 분수를 넘었는데, 이제는 同知가 되기도 하고 僉知가 되기도 하여 장상 줄에 끼었으므로 名器가 지극히 외람되니, 改正하여 朝廷을 높이소서.”



이것은 성종 20년 司諫院正言인 趙球가 당시 醫官出身인 金興守가 堂上官에까지 올라가 高官의 부류와 같이 된 것에 대해 지나침을 간언하는 것이었다. 醫官出身으로 堂上官에 올라간 것은 당시의 조정 분위기에서는 파격인사였기 때문이다.



金興守에 대한 기록은 성종년간에서부터 중종 때까지 나온다. 그리고 철종년간에 작성된 『太醫院先生案』에도 그에 대해 “昌原金興壽資憲知樞”라고 기록되어 있은 것으로 보아 그는 昌原金氏이며 관직이 資憲大夫 僉知中樞府事까지 올라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의술이 뛰어나 1488년(성종 19)에 堂上醫官에 올라가게 되었고, 1489년에는 세자의 瘡疹을 치료하여 이 공적으로 말 한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僉知中樞府事에 오르게 된 것은 1491년이다. 1494년에는 우의정이었던 許琮의 치료를 전담하였고, 그 해에 嘉善大夫로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렇듯 그는 단순히 醫官으로서만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높은 견문과 학식으로 당시 조정에서 실력자로 인정받은 것이었다.



1498년(연산군 4) 가을에는 尹弼商, 洪貴達, 鄭眉壽 등과 함께 『救急易解方』을 편집하고, 다음해에 언해까지 하여 출판하였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