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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9일 (토)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2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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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大韓醫道會의 창립10주년 기념호 “80년대를 논의하자”



1981년 10월10일에 大韓醫道會라는 한의사 단체에서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醫道』라는 제목의 학술지를 발행한다.



大韓醫道會는 1971년 6월에 몇몇 한의계의 뜻있는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 시작하면서 발족되었다. 이 모임의 목적은 학술 연구와 임상경험에 대한 상호 교류, 친목 도모 등이었다. 초대 회장은 池時金益이었고, 이후로 朴炳昆, 柳瑩洙, 趙容安 등이 회장을 지내면서 각종 사업을 벌였다.



1981년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학술논문, 임상논문, 경험애용방, 논고 등을 수집정리하여 『醫道』라는 제목의 학술지를 만들었다. 이 학술지는 金定濟의 祝辭, 당시 한의사협회 회장 車奉五의 激勵辭, 본회 회장 趙容安의 卷頭辭, 池時金益의 “發刊에 즈음하여” 등이 앞에 붙어 있고, 이어서 座談會編, 學術編, 論壇編, 臨床處方編의 순서로 되어 있다.



수록되어 있는 글들은 학술적 논문에서부터 시론, 논평, 경험처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고, 필진들도 대학교수로부터 유명한 임상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수록된 글로 裵元植의 “帶下症”, 劉昌烈의 “補中益氣湯의 加減方 運用例”, 康舜洙의 “오늘의 한의학은 어디에 서있는가?”, 趙容安의 “小兒의 嘔吐疾患에 對한 臨床學的인 考察”, 李鍾馨의 “消化器疾患에 對한 漢方治法의 考察” 등이 있다.



특히, 제일 앞부분에 나오는 特輯으로 “八十年代의 漢醫學”이라는 주제의 논설이 있고, 그 뒤로 座談會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八十年代의 漢醫學”에서는 이전 70년대를 현대화 작업에 있어 일대 전환의 시기로 규정하고 80년대를 한국의 한의학이 세계 속의 한의학으로 널리 보급, 인식시켜야 할 시기로 내다보았다. 이를 위해서 국가적 차원의 한의학 육성책이 조속히 수립되어야 함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80년대에 대두될 業權問題와 관련해서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던 한·양방 일원화 문제, 침구사제도 부활 문제, 약사조제지침서에 한약부문 삽입 문제, 한방의료보험 참여 문제 등을 문제의 불씨로 꼽고 있다.



이어서 座談會의 기록을 22쪽에 걸쳐서 정리해놓고 있다. 본 座談會는 1981년 8월3일 오후 7시에 大韓醫道會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였던 것으로 사회는 趙容安(大韓醫道會 會長), 참석자는 裵元植(醫林社 社長), 車奉五(한의사협회장), 韓堯頊(한의사협회 의권대책위원장), 康舜洙(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장), 李文宰(경희대 한의대 부속병원장), 林鍾國(원광대 한의대 학과장), 池時金益(大韓醫道會 명예회장), 宋在玉(大韓醫道會 명예회장) 등이었다.



본 좌담회에서는 80년대 한의계의 미래 비전이 논의되었다. 裵元植은 그동안의 일본과의 학술교류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화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裵元植에 따르면 지난 세월 한의계는 日本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국제화를 이루어 나갔는데, 일본은 양의사 위주의 洋診漢治를 하고 중국과 대만은 證治가 위주이므로 우리나라 독자적인 한의학의 우수성을 확보하자고 하였다.



車奉五는 한방의료보험의 참여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면서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각오를 내보였다. 韓堯頊은 무자격자에 의해 주도되는 침구사법 부활 움직임에 대해 경계의 발언을 하면서 이를 위해 모든 한의사들이 솔선수범하여 그 부당성을 홍보하는 노력을 기울이자고 하였다.



康舜洙는 한의과대학의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현재의 커리큘럼에 대해 비판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李文宰는 국립한방병원의 필요, 한의대 졸업생의 해외연수 등을 주장하였다. 林鍾國은 기초학문의 정립, 실험적 방법과 고전의 내용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등을 꼽았다. 池時金益은 80년대의 당면과제로 학술의 정립, 진료의 체계화, 의료전달체계의 현대화, 한의학의 국제화 등을 꼽았다. 宋在玉은 약재의 규격화, 의료보험 참여 등을 이루어내어 침구사문제, 군의관 문제 등을 풀어나가자고 하였다.



이 시기에 大韓醫道會의 학술지가 간행된 것의 의의에 대해 池時金益은 다음과 같이 감회를 적고 있다.



“이 小冊子가 건실하고 알차게 자라서 東西古今을 연결하는 한의학의 架橋가 되기를 所願한다. 내용이나 編輯에서 빈약한 점은 많으나 이것이 나오기까지의 우리 會員들의 熱과 誠은 대단한 것이었기에 體面불구하고 첫선을 보이는 이 軟弱한 新生誌 『醫道』가 波瀾없이 자라서 매일매일 고달픈 診療에 몰두하고 계시는 漢方臨床醫의 길동무가 되고 새 時代 國民保健에 조금이라도 寄與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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