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학과 나를 분리해 본적이 없다. 한의학이 나였고, 내가 한의학이었다. 대학 교수인 내가 어떤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다면 한의계 전체가 욕먹을 것이라는 심정으로 교육과 임상을 했다. 지금까지 치료하는 재미로 살았기 때문에 ‘덕분에 좋아졌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류기원 다움류한의원장(69)이 지난 2일 제9회 산청한방약초축제 개막식에서 제6회 ‘류의태·허준상’을 수상했다.
류 원장은 지난 1964년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한 이후 줄곧 경희대에서 수련의부터 시작해 교수로 정년퇴임한 지난 2005년까지 41년간 대학에서 근무했다.
‘다움’, 이름과 위치에 걸맞는 사람이 되자
이 기간동안 류 원장은 ‘복직근구련증의 임상적 연구’, ‘간염에 대한 가미대금음자의 효능’, ‘급성신부전증의 한방치료’, ‘위(胃) 질환에 대한 한방적 분류’, ‘간장병 치험례’ 등 숱한 저술 작업으로 한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을 비롯 후학 양성을 위한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또한 1971년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설립 당시부터 참여해 1986년 한방병원장을 지내며 국내 한방병원의 발전적 기틀을 마련하는데도 앞장섰다. 이와 함께 암이나 성인병 등 난치병 치료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대한한방종양학회장, 한방성인병학회장, 대한한의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방치료 분야를 넓혀 나가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가 좋아하는 말은 ‘다움’이다. ‘무엇무엇답다’라는 말의 명사형이랄 수 있는 ‘다움’은 그의 호이자, 한의원명이기도 하다. “‘다움’은 말 그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교수는 교수답고, 의사는 의사답게, 즉 가지고 있는 이름과 위치에 걸맞는 사람이 되자는 뜻”이라는 류 원장.
자신은 대학에 재직하며 교수답게 처신하고, 의료인 답게 진료하고, 교육자답게 후학 양성이란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큰 상을 받은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류 원장.
“상이란 타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격이 있는 사람이 타야 된다. 정작 타야할 사람이 있는데 내가 탄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류 원장의 이번 상은 대한한의학회에서 추천했고, 심사 결과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됐다.
최근 들어 류 원장은 고령화사회에서의 한의학 역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열렸던 제4권역 전국 한의학 학술대회에서는 ‘고령화사회에서의 한의학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기도 했다.
“노인들의 공통점은 종합병원이란 것이다. 노인의 70~80%가 환자라 할 수 있다. 대부분 10여 가지씩 약 보따리를 들고 이과 저과를 전전한다. 특히 노인들은 기본적으로 고혈압, 당뇨병 등이 생겨 날 수 있는 성인병을 많이 앓고 있다. 이는 노인들의 생명과 직접 연관돼 있는 질병이다. 그런데 한의학은 소화기계 질환에 장점이 많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령화사회를 책임질 핵심 의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류 원장은 이를 위해서는 △한방건강보험급여 확대 △현대 과학문명의 이기 사용 △한·양방 협력 체계 △맥진의 객관화 등 네 가지의 해결 과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 과학문명의 이기 자유롭게 사용해야”
“무엇보다 노인 환자들이 한의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엑기스제 56개 처방이라는 제한적 보험급여에서 벗어나 한방건강보험이 실용적으로 극대화돼야 한다. 한방처방의 상당 부분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 고령환자들은 낮아진 한의원 문턱을 보다 편안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류 원장은 또 진단서 발급 권리와 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한의사는 진단서를 발급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진단서 발급은 과학적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료제도는 한의사들이 과학적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전쟁이 났는데도 총도 안주고 싸우라는 식이다. 시대의 문명과 함께 갈 수 있는 의료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마땅히 제한받지 말아야 한다.”
그는 또 한·양방 협진 필요성을 말했다. “우리나라는 한·양의학이 공존하기 때문에 전 세계 의료를 능가할 수 있는 제3의학의 창출이 가능하다. 두 의학이 상호 협력하여 인류를 위해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의협과 의협, 그리고 정부는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우리 국민은 한약이 있는 것에 대해 행복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당장만 보지 말고 한·양의학이 접목돼 미래지향적 의학이자, 국가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양방 협력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
진단의 객관성도 거듭 강조했다.
“진단 부분도 발전돼야 한다. 맥도 혈압약을 복용하고 재는 맥,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재는 맥이 다 다르다. 올바른 처방은 바른 진단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부를 깊게 하고, 많이 해야 한다. 설령 이렇게 해서 진단을 했더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진단의 객관화는 한의학 발전에 너무 중요한 요소다.”
40여년이 넘게 대학에서 재직하며 느꼈을 보람을 물었다. “1964년 조교를 시작으로 대학에 몸 담으며 오랜 기간 교수직을 수행했다. 그만큼 보람도 많았다. 특히 당시의 교육 수준이라는 것이 ‘동의보감’과 ‘의학입문’을 구독하던 수준이었다. 여러 교수들과 힘을 합쳐 교육 방향을 현대과학적인 분류 체계를 통해 몇 개 전공과를 만들었고, 소화기 내과를 택해 많은 질병들은 한의학으로 치료 가능하다는 점을 후학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보람이다.”
“하나도 둘도 결론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는 현재 환자 진료 틈틈이 빼곡하게 채워진 낡은 서적 한 가운데서 저술 작업에 나서고 있다. “‘경희한방50년’이라는 테마를 갖고 책을 쓰고 있으나 쉽지가 않다. 젊은 한의사들이 소신있게 의료 활동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장고(長考)와 장고(長考)를 거듭하게 되고,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처방을 찾으려 자료를 모으다 보니 그 작업이 끝이 없다.”
후학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물었다. “하나도 둘도 결론은 공부하란 것이다. 부단히 공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대하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고통을 해소시켜 달라고 온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환자는 약자(弱者)다. 그 약자를 강자(强者)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병 치료다.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가능케 하여주는 것이 우리 의료인의 의무이기에 항상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시 태어나도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류 원장.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적인 기기를 이용하고, 침과 한약을 투약해 화학약품이 아닌 천연재료 약물로 환자를 돌보고 싶다. 시대 환경에 맞는 진전된 한의학문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