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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73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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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진흥의 당면과제”

해방 후 韓醫學의 발전을 논하다



1947년 8월23일 서울에 위치한 泰和館에 11명의 한의계 인사들이 모여서 해방 후 처음으로 좌담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 모인 한의계의 인사들은 趙鐘國, 朱弘濟, 姜弼模, 李應昌, 尹睦, 李炳天, 申佶求, 金鐘守, 兪榮敏, 朴憲在, 黃玄 등이었다.



본 좌담회는 1947년 12월21일에 간행된 『東洋醫學』 창간호에 그 전문이 게재되어 있다. 『東洋醫學』은 東洋醫學會의 委員長 李炳天이 발행인을 事業部長 南台元이 編輯人을 각각 맡아 발행하였다. 발행소는 서울 소재의 동양의학회이다. 발간 목적은 “東洋醫學의 新體系를 確立하야 民生保健의 完壁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은 창간호에 실린 이 잡지의 편집인 남태원이 쓴 創刊辭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글에서 “反民族的, 謀利的 惡質要素를 肅淸하고 民衆의 福利와 保健을 위하야 東洋醫學의 萬年大計를 위하야 迷論과 謀略을 排擊하고 正當한 路線을 明確하게 그어 方向을 現實的으로 提示하며 四十年間 日政下에서 거의 泯滅되얏든 東洋醫藥에 대한 一般의 常識을 啓發함이 重大使命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잡지에 실린 이날 座談會는 제목이 “한의학 진흥의 당면과제”였다. 이 제목은 해방을 맞이하여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못한 시점에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 한의계는 한의학의 학술적 발전, 제도권 진입, 미래에 대한 모색 등에 대해 암중모색하고 있었고 이러한 고민은 개별적으로 보다는 집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을 하게 되어 이러한 자리가 마련되게 된 것이다.



사회자 黃玄은 이 자리가 한의학의 장래가 학계와 업계가 어떻게 진흥운동을 전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운을 띄운 후에 申佶求로 하여금 과거의 運動史를 정리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에 申佶求는 일제시대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사설교육기관 東西醫學硏究會, 東西醫學講習所, 東洋醫學講習所, 京畿道衛生講習所, 학술잡지 『東醫報鑑』, 『漢方醫藥』, 『東洋醫學』, 1930년대 한의학 부흥논쟁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일제시대 전시기를 통해 이루어진 한의학 부흥운동의 弱點으로 財政의 貧弱, 當事者間의 熱誠不足, 社會的 無關心 등 세가지를 꼽았다.



趙鐘國은 일제시대 당국이 한의학을 멸시하여 醫生과 藥種商 제도를 둔 것을 비판하면서 이를 “階級的 差別”이라고 표현하여 서양의학과의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일제시대 東洋醫藥協會를 결성하여 千圓의 거금을 낸 金明汝의 희생정신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내면서 講習所를 이끌어온 朴基成, 동양의약협회를 해방 때까지 끌고 온 蔡大植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공적에 감사하였다.



이 시기 한의학의 진흥에 대해 李炳天도 말문을 열었다. 李炳天은 세브란스 의대의 1회 출신인 양의사로서 한의학이 사는 것이 한민족보건이 확립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李炳天은 한의학에 대해 호의적인 인물로서 한의학의 우수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자부하고 있었다. 그는 한의학 종사자들이 “단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면서 한의학 관련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姜弼模는 한의학이 멸시받은 원인으로 한의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결여된 것을 꼽는다. 그는 한의학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자와 업자간의 단결이 있어야 하고 한의학이 과학화·현대화의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의과대학의 설립에 대해서도 전력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兪榮敏은 乾材貿易에 대해 당국의 절대적 후원과 협조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李應昌은 일제시대 시행된 鍼灸免許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말하면서 이 제도를 “통속적 침쟁이에 불과한 제도”라고 표현하고 이를 시정하여 좀더 과학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이 시기에 이 자리에서 논의한 것들은 일제시대라는 구태를 벗어던지고 새시대의 한의학을 일으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60년 이상 흐른 이 시점에서 보았을 때도 여전히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들이다.





◇동양의학 창간호에 실려 있는 1947년 진행된 좌담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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