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은 별세계의 사람들 아닌 ‘조금 다른 사람’일뿐
영국 장애인 보호시설서 잊지 못할 2주간의 봉사활동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사원과 런던아이에 다녀왔다. 템스강가에 위치한 이 웅장한 건물들은 런던의 랜드마크 빅벤, 국회의사당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장엄한 파이프오르간의 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거닐던 웨스트민스터, 그리고 런던아이에서 바라보던 런던의 스카이라인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이니만큼 두 곳의 입장료만 합쳐도 6만원상당이었지만 필자는 한 푼의 돈도 내지 않았다. 돈을 내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이 아닌 장애인의 보호자 신분으로 입장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시설에서 일한지도 벌써 2주가 되었다. 필자가 머무르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시설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굳이 이름을 부친다면 ‘장애인 리조트’ 정도일까? 낮에는 쇼핑, 관광을 나가고, 저녁에는 라이브공연, 댄스파티가 열리는 등 매일 다른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간호사들과 요양보호사,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하면서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즉, 일반인들이 휴가를 보내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시설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인 장애인 수용시설이 장애인들의 생존을 돕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한다면 이곳은 그보다 한 단계 고차원적인 즐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쉽게 말하면 장애인들을 조금 더 사람답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때, 봉사자들과 ‘손님’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서로 농담하고 깔깔대면서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는 구도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끌고 런던 시내에 나갔을 때 만난 다수의 일반인들의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도 자원봉사자들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시설의 ‘손님’들 이외에도 많은 장애인들을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장애인이 길거리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장치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장애인을 사회적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은 별세계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조금 다른 사람’으로 대하는 것 같다.
이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필자의 시각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인들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을 대하듯 이메일도 교환했고 디스코 음악이 흐를 때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시시콜콜한 일로 수다를 떨어보기도 했고 서로 혀를 내밀며 장난도 쳐보았다.
생전처음으로 하루 열 시간 넘게 사람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들의 알아듣기 힘든 말을 이해하지 못해 욕을 먹는 일도 많이 있었지만, 함께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을 기분 나쁘게 여기게 되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급할 텐데도 요구사항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필자를 위해 또박또박 천천히 다시 말해주는 그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게 될 때도 많았다. 필자가 만약 카테터에 달린 소변주머니의 끈 매는 법을 5분 동안 봉사자에게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면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 너무나 짜증이 나는 나머지 소리를 질러댔을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이 사람들은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데에는 목적이 필요하고 성한 몸으로도 그 목적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먹고 배설하는 데만도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고 연필도 쥐지 못해 다른 ‘생산적인’ 일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저렇게 살아서 뭐할까,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에 차등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얼핏 든다.
◇장애인 시설서 봉사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