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9.5℃
  • 맑음8.8℃
  • 맑음철원9.6℃
  • 맑음동두천12.5℃
  • 맑음파주9.0℃
  • 맑음대관령2.2℃
  • 맑음춘천9.5℃
  • 맑음백령도11.7℃
  • 맑음북강릉8.5℃
  • 맑음강릉11.4℃
  • 맑음동해10.5℃
  • 맑음서울14.1℃
  • 맑음인천14.6℃
  • 맑음원주11.3℃
  • 맑음울릉도11.3℃
  • 맑음수원11.7℃
  • 맑음영월8.0℃
  • 맑음충주9.8℃
  • 맑음서산9.8℃
  • 맑음울진10.4℃
  • 맑음청주14.3℃
  • 맑음대전12.7℃
  • 맑음추풍령9.4℃
  • 맑음안동12.6℃
  • 맑음상주13.9℃
  • 맑음포항14.3℃
  • 맑음군산12.7℃
  • 맑음대구13.3℃
  • 맑음전주12.1℃
  • 맑음울산13.0℃
  • 맑음창원16.1℃
  • 맑음광주12.9℃
  • 맑음부산15.5℃
  • 맑음통영14.8℃
  • 구름많음목포12.1℃
  • 맑음여수15.0℃
  • 맑음흑산도11.7℃
  • 맑음완도12.7℃
  • 맑음고창9.8℃
  • 맑음순천10.5℃
  • 맑음홍성(예)9.9℃
  • 맑음11.0℃
  • 구름많음제주14.6℃
  • 맑음고산14.4℃
  • 맑음성산14.1℃
  • 맑음서귀포15.8℃
  • 맑음진주10.3℃
  • 맑음강화13.6℃
  • 맑음양평11.5℃
  • 맑음이천12.8℃
  • 맑음인제8.3℃
  • 맑음홍천9.8℃
  • 맑음태백4.9℃
  • 맑음정선군6.3℃
  • 맑음제천6.8℃
  • 맑음보은9.2℃
  • 맑음천안10.6℃
  • 맑음보령7.9℃
  • 맑음부여8.7℃
  • 맑음금산10.8℃
  • 맑음11.0℃
  • 맑음부안10.4℃
  • 맑음임실9.0℃
  • 맑음정읍9.4℃
  • 맑음남원9.1℃
  • 맑음장수6.1℃
  • 맑음고창군9.3℃
  • 맑음영광군9.5℃
  • 맑음김해시15.4℃
  • 맑음순창군9.4℃
  • 맑음북창원15.5℃
  • 맑음양산시15.8℃
  • 맑음보성군11.2℃
  • 맑음강진군10.9℃
  • 맑음장흥10.3℃
  • 맑음해남9.8℃
  • 맑음고흥10.4℃
  • 맑음의령군13.6℃
  • 맑음함양군9.9℃
  • 맑음광양시13.2℃
  • 구름많음진도군10.7℃
  • 맑음봉화6.5℃
  • 맑음영주12.3℃
  • 맑음문경13.1℃
  • 맑음청송군8.3℃
  • 맑음영덕10.1℃
  • 맑음의성8.8℃
  • 맑음구미11.7℃
  • 맑음영천10.4℃
  • 맑음경주시11.4℃
  • 맑음거창9.6℃
  • 맑음합천12.9℃
  • 맑음밀양14.0℃
  • 맑음산청12.2℃
  • 맑음거제14.1℃
  • 맑음남해13.9℃
  • 구름많음11.8℃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8일 (금)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33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33

B0042009101331020-2.jpg

B0042009101331020-1.jpg

中人의 집안 출신으로 正一品 崇錄大夫까지 오른 脈診의 大家



1712년(숙종 38년)에 태어나 1735년(영조 11년) 增廣試 醫科에 급제한 후로 醫官으로 근무하다 정조 때 縣令을 거쳐 正一品 崇錄大夫까지 오른 慶絢은 중인 집안 출신에서 신분이 높이 상승한 인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 慶國昌은 醫科 출신으로 관직이 惠民署主簿였으며, 조부인 慶溥는 관직이 算學別提인 算科 출신의 中人이었고, 算學敎授를 지낸 증조부 慶善行도 算科 출신이었다.



그뿐 아니라 외조부인 韓重琦는 譯科 출신이었으며, 장인이었던 金景璧도 司譯院主簿를 지낸 譯科 출신이었다. 이렇듯 가문이 中人 출신이고 中人들과 통혼한 것을 볼 때 그가 正一品 崇錄大夫까지 오른 것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日省錄』에는 정조 즉위 년부터 慶絢에 대한 기록이 나오기 시작한다. 수차례 入診하여 三部脈診으로 정조의 증상에 대한 진단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증상에 맞추어 처방을 내는 장면도 나온다. 葛根과 金銀花를 섞은 茶를 권하기도 하고 心腎湯, 六君子湯, 茹藿湯, 倉름散, 加減倉름;散, 加減立效散 등을 처방하기도 하였다.



증상을 진찰하는 일은 慶絢이 도맡아서 하고 있으며 특히 脈診으로 胃氣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그의 전문이었던 것 같다. 그의 脈診은 항상 처방의 전거가 되었기에 그의 판단은 중요한 진단적 기준이 되었다. 慶絢은 내의원 도제조 徐命善, 제조 具允鈺, 부제조 洪國榮 뿐 아니라 醫官 吳道炯, 康命吉, 張祜, 醫女 雪梅, 貴蟾, 色伊 등과 질병을 토론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경현의 기록이 나오는 정종년간의 일성록.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