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醫師 講習會에 對한 나의 所感” 金長憲의 감격에 찬 所懷
1958년 3월 24일부터 31일까지 1주일간 東洋醫藥大學에서는 제1회 한의학학술강좌가 서울특별시 주최로 개최된다. 해방 후 한의사제도가 법률적으로 확실하게 자리잡게 된 지 8년여 기간이 지난 시점에 이러한 학술강좌가 서울시 주최로 열렸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띠는 것이었다.
이 학술강좌 기간 동안 진행된 강연은 金長憲의 傷寒, 韓世靖의 診斷學, 李昌彬의 鍼灸學, 朴性洙의 婦人科學, 宋亨來의 傳染病學, 梁在模의 社會醫學, 朴鎬豊의 斑疹傷寒, 洪性初의 古代衛生學 등이었다.
東洋醫藥大學 敎授 金長憲은 강연자료집에 “傷寒例”라는 제목의 논문을 싣고 있는데, 이것은 王叔和의 傷寒例의 내용을 싣고 강연에 활용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 이 글의 내용은 傷寒의 정의와 그 의미로서 四時正氣로부터 傷寒爲毒, 非時行之氣, 溫病 등에 이르기까지 傷寒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담고 있다. 서울시한의사회 고문인 韓世靖은 “漢方診斷法의 要綱”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이 강연에서 韓世靖은 診斷法을 望聞問切按의 五診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 특히 按診에 대해서 “四診을 備하지 아니하고도 正確한 局部診察을 할 수 있는 科學的 診斷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東洋醫藥大學 講師인 李昌彬은 “鍼灸學講義要項”이라는 제목으로 한의학에서 취급하는 鍼灸學의 영역, 鍼灸學의 연구방법, 經絡의 정의와 경혈, 取穴法, 手技法, 鍼灸療法의 價値와 治驗例 등 순서로 강연하였다. 大韓漢醫師會長인 朴性洙는 “婦人科學”이라는 제목으로 부인병의 특성과 치료원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東洋醫藥大學長인 朴鎬豊은 “麻疹傷寒(發疹窒扶斯)”이라는 제목으로 『金 要略』, 『諸病源候論』 등에 나오는 麻疹에 대한 기록들로부터 역대 醫家들의 학설을 정리하고 여기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東洋醫藥大學 敎授인 洪性初는 “古代衛生學”이라는 제목으로 衛生學을 仙道와 연계시켜 강연하고 있다. 그리고, 裵元植은 “情緖와 健康”이라는 제목으로 감정과 건강의 관계에 대해 강연하였다.
이 학술강좌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당시 東洋醫藥大學 敎授였던 金長憲은 같은 해 4월에 발간된 『東方醫藥』 제4권 제2호에서 “第1回 서울特別市 主催 漢醫師 學術講習會에 對한 나의 所感”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所懷를 밝히고 있다. 한의사의 사회적 위치를 再定位해 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학술강좌가 진행되게 된 데에 대해 金長憲은 감격으로 가득찬 글로 감회를 피력하고 있다.
먼저 金長憲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한의사법이 제정된 후 최초로 서울특별시, 한의사회, 동양의약대학 등의 관청, 직업적 민간단체, 교육기관 등 3者가 合心하여 보조를 같이 하는 강습회를 개최하게 되었다는 데에 감격하고 있다. 이것은 일제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일제의 압정 하에 쇠퇴일로를 걷던 한의학이 해방과 더불어 한의사국가고시의 시행, 한의과대학의 탄생, 한의대 교수의 인정, 한의사의 다량 배출 등 발전일로를 걸으면서 이러한 학술강좌를 열게 되었다는 점에서 감회가 깊다고 하였다.
그리고, 본 학술강좌에 참여한 한의사들의 학술적인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한의사면허를 이미 취득한 상태에서도 학술강좌에 참여하여 상호교류를 도모하는 모습에서 한의학의 밝은 미래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金長憲은 강사들에게도 당부의 언사를 올렸다. 앞으로 더욱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용어도 平易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며, 한의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조직화되고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의학의 과학화에 있어서는 원리를 離脫하여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으로 變易시켜서는 안되고 陰陽을 根本的으로 하여 相對性理論과 辨證法的 方式을 중심으로 하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