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우리가 임상에서 잃어버리거나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기능신경학(Functional Neurology)의 소개 (上)
필자가 속한 미국의 Chiropractic Community에선 향후 미래의 의사는 급성감염, 응급외상, 구강외과, 산과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의사를 제외하고는 전체를 보는(Wholistic view) 의사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현재도 목도하고 있다시피 ‘통합통섭통일’의 시대, Integraton·Convergence의 시대가 의료계에도 밀어닥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의료계에도 ‘통합통섭통일’의 시대 도래
이미 전문과 표기의 포기사례가 늘고 있지 않는가? 숲과 나무 둘다 볼 수 있는 그런 임상의를 원하는 시대정신이 국민들의 의료 요구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필자의 억측일까? 필자는 임상의가 흔히 놓치고 있는 것으로서 첫째 기능적이란 개념, 둘째 전체로서의 하나라는 인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 셋째 이를 위해 좌·우뇌 불균형을 포함한 신경계를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싶다.
인간이 태어날 때 무슨 여러 임상과로 구분되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도 극도의 분열지경으로 세분화 되어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이미 잃어버린 양의학 시스템을 목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은 매우 유용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환자뿐만 아니라 의학시스템을 운용하는 당사자인 의사자신도 임상에서 어떤 질환이 어느 과에 걸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가? 특히 질병이 혼재되어 나타나서 자기 앞에 왔을 때라면 더욱 그렇다.
단일 변수일 때는 세부적인 전문지식이 빛을 발하겠지만 복잡다단한 생명현상과 질병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환자의 현실적인 몸에서 복합 변수들이 작용해서 나타날 때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기 전문영역이 아니라고 그 증상이나 병리상태는 덮어놓은 채 몸의 특정한 한곳만 치료하려고 하는 반복된 어리석음은 그 누가 비판해주겠는가? 전체 시스템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관점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한곳만 치료하다가 전체 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흔히 병리검사나 영상의학검사상 잘 잡히지 않는 질환은 ‘신경성’이라고 치부하며 치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환자본인은 괴로운 증상을 의사 눈앞에서 호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기계로 자연이 만들어낸 보다 고차원적인 기계(?)가 감지한 정보를 무시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신경성’이라는 신경계의 불균형을 치료하면 되지 않는가? 급성감염이나 응급외상을 제외하곤 질병의 원인이 몸에 생길 때는 1차, 2차, 3차 등등의 복합방정식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인체는 그 지혜로 그 원인에 대한 보상과 적응 및 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마치 감기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바이러스를 쫓아내기 위해 체내에서 발열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이런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생명현상과 마주했을 때 우리 임상의들이 진료의 기준으로 삼아야할 자료는 무엇인가를 당신은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신경계 활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병은 항시 전신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이것을 배후에서 조절하고 조정하는 무언가는 바로 신경시스템의 존재이며 인간은 이 복잡한 현상을 통합하기 위해 애초부터 신경시스템을 만들어서 진화해 왔던 진화발생학에 그 근거를 둘 수가 있다.
여기를 바로 지목해서 치료 전후의 기준을 삼는게 현명한 방법은 아닐까? 어떻게 인체라는 소우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해서 치료법을 찾아낼 것인가? 모든 현상은 인체의 정보체계를 거치면서 그것은 인체 신경시스템에 등록되고 그 신경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현상들이 꼭 신경시스템을 거치게 되어 있는 구조에 주목하자. 왜냐하면 이 구조는 그 태생이 인체의 생존시스템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경학이 발달한 나라가 의료선진국
여기에서 우리는 신경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와 연결되어 Comobidity라고 공존질환, 공유병태로 번역되는 한의학의 증(證)과 유사한 개념이 있는데 서양의학계에서도 이제는 전체를 보기 위해 스펙트럼장애, 스펙트럼질환 식으로 연구노력하는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의료수준을 재어보는 잣대 중에 신경학이 발달한 나라는 의료선진국이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의료후진국이라는 말이 있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칠 것인가? 아니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것인가? 이미 앞서 말한 기능적 질환(Functional Disease)이 치미병(治未病) 상태인 것은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릴 것이다.
질병에는 기능적 질환과 기질적 질환(Pathological Disease)이 존재하며 치료의 틀(Paradigm)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생명은 연속적인 것이라 기능적 질환을 방치시 기질적 질환으로 이행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1차방정식 변수가 몸에서 생기면 2차, 3차 방정식 등등으로 번져나간다고 말했는데 난치성 질환의 경우 특징적인 해결변수가 많아져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와 같아진다. 기질적인 급성감염이나 응급외상을 제외하고는 이런 준임상적 상태(Subclinical stage)인 기능적 질환의 기간이 상당히 길다. 자고나니까 고혈압·당뇨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능신경학은 한의학 가치 드러내는 통로
이것은 그 사람의 생활스타일, 생활습관 등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여기에 개입하여 기질적 질환단계로 나아가기 전 병의 진로를 바꿀 여지가 많이 있고 이 단계에서 한의학이나 기능신경학 등등은 공격적인 약물이나 수술이 아닌 다른 방법들로 환자들의 건강 회복이나 유지 등에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병리검사상 양성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개념이 유용한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기능적 질환을 기질적 질환의 치료로 해결하려는 Wait and see method(기다려보자 방법)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준임상적 상태의 중대한 시기를 허송세월하면서 흘려버리고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세포 변형이 올때까지. 그래서 수술이나 독한 약의 공격을 감행하여 그 세포를 없애자는 방법이다. 환자개인의 고통은 물론 의료비의 상승과 낭비, 누군가에 잘 쓰여질 의료자원의 낭비 등등 비효과·비효율은 누구를 위한 의학시스템인지 되묻고 싶다.
우리는 왜 기능신경학을 배워야 하는가? 따라서 전체를 보기 위해선 반드시 신경학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진보된 기능신경학은 한의학의 가치를 진정으로 드러내어 줄 수 있는 통로라고 확신한다. 서로 힘을 합쳐서 할 일이 많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캐뤽연구소의 홈페이지.